목포 역사의 시작, 목포진(木浦鎭)
2018.12.26 김동규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鎭營)이며 목포영·목포대라고 불렀고 만호(萬戶)가 배치되었다
고 해서 만호영·만호진·만호청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리상으로 볼 때 목포는 영산강 하구를 안
고 있으며, 바다로 연결되는 지리적인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남과 경상남부지역으로 통하
는 세곡 운반로로 사용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목포는 조선초기부터 그 중요
성이 부각되어 주목받게 되었다.
1439년 (세종21년) 처음 목포진의 설치가 재가 되었으며, 성의 모습이 갖추어 진것은 1502 (연산
군 8년)으로 전해진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당초 진성의 규모는 석축둘레 1,306척, 높이 7척 34촌
이었으며, 우물과 못이 각 1개소씩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목포진은 한반도 서남해의 방어지역으
로써 그 역할을 다 했으나 1895년 (고종 32년) 7월 15일 고종 칙령 제141호에 의해 폐진되었다.
만호진이 설치된 정확한 연대는 세종 21년(1439년 4월 15일) 의정부가 무안 현의 목포는 왜적침입
의 요해처이므로 만호를 파견하고 병선을 주둔토록 건의하여 세종의 재가를 받아 냈다. 이것이 목
포만호진의 역사적인 출발점이다. 현재의 목포진 자리에 목포진성(城)이 처음으로 구축된 것은 연
산군 8년 어간임이 밝혀지며 당시 중지 건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폐진 직후인 개항당시만 해도 청사의 일부가 남아있어 무안감리서, 일본영사관 또는 역국사관 기지
로 사용 되다 훼손되어 목포진 유적비만이 남아있던 곳을 2014년 현재의 모습으로 일부 복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던 군사기지가 120여년만에 역사공원으로 복원돼 역사 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
되고 있다.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37호 목포진지(木浦鎭址/지정일자 : 1987.01.15)
* 소재지 : 전남 목포시 만호동 1-56번지
상기 목포진에 대한 내용은 목포시청 및 문화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다.
2010년 8년 전 만호동 1번지의 높고 평평한 두드러진 작은 고원지대 목포대(木浦臺)에서 살고 계시
는 숙부님의 팔순잔치를 분당에서 치렀는데 숙부님으로부터‘목포대’를 역사공원으로 복원하기 위하
여 주택과 토지를 시에서 보상 매수하고 있으며, 이미 매장 유물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씀을 듣
고 목포시 만호동 1~54번지 목포대 중심에서 살았던 시절(초등학교 부터)이 떠오르고 긍금하여 그때
부터 관심을 두고 목포진 역사복원 현장에 대한 목포지역 언론에서 보도된 자료들을 검색, 목포진과
목포대, 그곳이 어떻게 하여 목포의 역사적인 위치가 되어있으며, 역사공원으로까지 복원, 조성되고
있는지 그리고 만호동의 지명 유래 등 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
목포대(木浦臺)라 불리는 만호진터는 유달산을 포함하여 목포시내가 훤히 잘 내려다 보이고, 기와집
과 일본식 빌라 등 주택으로 꽉 들어차 있어 전망 좋은 양호한 단지로만 알고 있었다. 몇 군데의 공지
가 있었는데 이곳은 시유지이었으나 인근 주택에서 침투 활용하면 목포시 공무원들이 단속 나오고,
어떤 능력있는 주민은 시에서 불하 받기도 하였다. 아무튼 역사 유적으로 전혀 관리되지는 않았다.
이곳이 만호진의 유적임을 알려주는 비석 하나만 세워져 있을 뿐이고 도로가의 공간들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목포진 비석 반위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는데 말리는 사람도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러한 곳을 '목포진 역사공원'으로 복원 하였다니 ~
나는 지난 11월 10일 오후 목포에서 조카 결혼식 참석위해 KTX 편으로 예식 3시간 전에 보다 일찍
도착했다. 실로 오랫만에 목포진과 항만 부두를 다녀볼 요량으로 좀 일찍 출발 했던 것이다.
목포 역을 빠져나와 동명동을 지나 초,중,고교 사회 등 8년간 지내던 곳, 역사복원 현장을 향해 부지런
히 걸어가면서 살펴보니 역시 목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해 보였다. 다른 도시에 비해 발전이 더디어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어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게 느껴왔다. 50여년 이전 옛 시절을 떠올리면서
낭만적 분위기에 잠시 센티해지기도 하였다.
목포의 역사 1번지 목포진(木浦鎭)의 위치를 간단히 안내하면 목포역에서 유달산 등구 쪽을 향해 5분
여를 가다보면 '초원관광호텔'이 보이고 그 앞에 민어회로 유명한 '영란횟집' 우측 샛길로 올라서서
'제일성결교회'를 끼고 오르다 보면 이내 만호동 1의 56번지 앞 공터에 외로이 서있는 ‘목포진 유적비'
(木浦鎭 遺蹟碑) 석비(石碑)를 볼 수 있게 된다. 유적비 하나로 옛 목포진의 향취를 느낄 수는 없겠지만
목포진 비석이 있는 주변 큰 바위에서는 목포역과 목포 연안여객선 터미널, 삼학도, 용당 부두까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감시 조망 입지가 양호하여 그곳 목포대에 목포진을 설치하였을 것이라고 수긍하게된다.
현재도 그 주변의 주택 울타리는 돌담이 많은데 아마도 옛날 성곽으로 사용되었던 돌들이 아닐까 추측
해 본다. 초교시절부터 8년간 살았던 추억 어린 동네는 다 사라지고, '목포진 역사공원'으로 복원된 현장
에서 추억을 되새겼다.
■ 목포역 ➜ 목포대(진) 가는길
* 신혼예식장이 없어지고 바위언덕으로 남아있다 (하)
* 목포예식장이 없어지고 목포사진관으로 남아있다
* 민어의 거리 진입
* 영란횟집옆 작은 오르막길로 올라 이 교회를 통과, 잠시 더 오르면 목포대,목포진(만호진)에 이른다.
목포진 입구에는 교회가 있고, 절이 있고, 비탈진 계단길 가에는 작은 무당 집을 지나칠 때 징, 꽹과리를
치며 굿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