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전 협정 이후 북한의 주요 도발행위
남북한이 맞붙은 상씨름의 전초전 한국전쟁(6·25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이를 둘러싼 주변 4대강국은 서로 밀고 당기는 샅바싸움을 지금껏 벌여왔다.
특히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무장공비침투와 테러공작 등의 야만적인 도발행각을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정전협정을 셀 수 없이 위반해
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북한의 이러한 도발행각은 북한이 결코 무력 적화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일깨워준 사건들이다.
청와대 기습사건 [1·21 사태] / 1968.1.21
이날 밤 북한군 제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침투, 청와대 습격을 기도했다.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4대의 시내 버스에 수류탄을 던져 승객들을 살상했다. 이날 밤 7명의 군경과 민간인이
살해됐다. 군·경 수색대는 2월 3일까지 31명의 공비 중 1명을 생포하고 도주한 2명을 제외한 28명을 사살했다.
생포된 공비 김신조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의 목적은 1)대통령관저 폭파와 요인 암살 2)주한 미대사관 폭파와 대사관원 살해 3)육군본부 폭파와 고급지휘관 살해 4)서울교도소 폭파 5)서빙고 간첩수용소
폭파 후 북한간첩 대동 월북 등이었다.
푸에블로호 사건 / 1968.1.23
1·21 사태가 발생한 지 3일 만인 이날, 미국 첩보 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부근의 공해 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무장한 4척의 북한
초계정과 미그기 2대의 위협 하에 원산항으로 강제 납치됐다. 이 사건은 11개월 동안 28차례나 비밀협상을 벌인 끝에 북한에 몸값을 지불하고 생존 승무원 82명과 시체 1구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 것으로
타결됐다. 미 해군 함정이 공해 상에서 납치되기는 미 해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 1968.10.30∼11.2
세 차례에 걸쳐 북한은 울진·삼척지구에 무장공비 120명을 15명씩 조를 편성, 침투시켜 게릴라전을 펴게 했다. 이들은 공포에 질린
주민들을 대검으로 찌르고, 돌로 머리를 쳐서 죽이는 등의 만행을 자행했다. 군경과 예비군은 약 2개월간 계속된 토벌작전에서 공비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여 침투한 120명을 모두 소탕했다. 우리측도 군인·경찰과 일반인 등 20여명이 사망하는 많은 희생을 치렀다.
미 첩보기 격추 사건 / 1969.4.15
북한은 동해 공해 상에서 정찰활동을 수행하던 미 공군 첩보기
EC-121기를 공격해 격추시켰다. 이 사건으로 첩보기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 1976.8.18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나무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UN군 소속 미군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는 국제적 만행을 저질렀다. 북한군은 초소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30여명의 증원부대와 함께 폭력을 행사, 도끼로 미군 장교 2명을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고, 9명의 한·미군 장병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한편, UN군 트럭 3대와 초소를 모두 파괴했다.
버마 아웅산 폭파사건 / 1983.10.9
북한은 버마(미얀마)를 방문하여 아웅산 국립묘소에 참배하려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암살하기 위해, 묘소 건물 천정에 설치한
원격조종폭탄을 폭발시켰다. 천인공노할 북한의 야만적인 테러로 한국의 부총리·장관 등 수행원 17명이 순국하고 14명이 부상당했다.
KAL기 폭파사건 / 1987.11.29
태국의 방콕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기가 북한의 공작원 김현희(마유미)와 김승일에 의해 공중 폭파됐다. 폭파 주범은 “88서울올림픽 개최방해를 위해 KAL기를 폭파하라”는 북한 김정일의 친필 공작명령을 받고 기내 좌석선반에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한 폭발물을 놓고 내려 여객기를 공중폭발시켰다. 중동에서 귀국하던 한국인 근로자
등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희생됐다.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 1996.9.18
강릉시 강동면 동해고속도로상에서 택시기사가 거동수상자
2명과 해안가에 좌초된 선박 1척을 경찰에 신고, 군인·경찰·예비군이 합동으로 무장공비에 대한 소탕작전에 돌입했다.
그 결과 잠수함과 유류품 367종 4,380점을 노획하고, 조타수
이광수 상위를 생포하고 승조원 11명의 사체를 발견했다. 이어 도주한 잔당을 추적한 끝에
정찰조장·잠수함장 등 13명을
발견하여 교전 끝에 사살했다. 하지만 우리측도 아군 11명, 경찰·예비군 2명, 민간인 4명이 피살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북한의 남침땅굴
제1남침땅굴: 경기도 연천 고랑포 동북방 8㎞ 지점에서 발견. /
1974.11.15
제2남침땅굴: 철원북방 13km 지점에서 발견. / 1975.3.19
제3남침땅굴: 판문점 남방 4km지 점에서 발견. 서울에서 불과
44km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훨씬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
1978.10.17
제4남침땅굴: 강원도 중부 양구 동북방 26km 지점에서 발견. 이로써 중·서부전선 뿐 아니라 전선전역에 걸쳐 남침 땅굴을 굴착해 놓았음이 입증됐다. / 1990.3.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
제1차 서해교전 / 1999.6.7
북한경비정 6척이 꽃게잡이 어선을 앞세우고 연평도 서방 10km 지점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영해를 침범, 침입과 퇴각을 반복했다. 그러던 9일째 한국함정에 선제사격을 가함으로써 결국 남북
함정간의 치열한 포격전으로 발전했다. 이 교전에서 북한해군은 어뢰정 1척 침몰, 경비정 4척 대파, 북한군 20∼30여명 사망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반면 한국해군은 경비정 몇 척 일부 파손, 해군 7명 부상이라는 비교적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제2차 서해교전 / 2002.6.29
이날 오전 서해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해상에서
북측 경비정 두 척이 우리측 고속정에 기습포격을 감행했다. 이날 남북 해군간의 교전(交戰)으로 우리 해군 장병 4명 사망, 1명 실종, 19명
부상 등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우리측 고속정 한 척이 침몰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한편 북한측 경비정 한 척도 화염에 휩싸인 채 북측으로 퇴각, 승조원 50여 명 가운데 30여 명이 사상된 것으로 국방부는 추정했다.
기아로 허덕이는 북한 주민
북한 기아로 인한 사망 최대 200만 명 추정
미국 국회 자료에 의하면(1998년 기준)북한은 지난 3년간 계속된 기아로
인해 북한 전체인구의 거의 10%에 육박하는 최대 200만 명의 사망인구를
추정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계속되는 식량 부족으로 북한 주민들은 나무껍질이나 풀뿌리 옥수수 줄기 등을 먹거나 가루로 만들어 밀과 섞어 국수나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북한의 기아
상황은 1997년에 가장 심각했는데, 지난 3년 동안 해마다 30만 명에서 8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정부는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사망은 기아 그 자체보다도 기아와 함께 발생되는 결핵 페렴 이질 등의 병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인구 10년 전 비해 약 700만 감소
북한은 수년간 지속된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로 적어도 250만 명의 기아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10년 전에 비해
인구가 약 700만 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16일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일요판이 보도했다.
탈북자 증언 “군대도 굶는다”
미 하원에서 북한 인권과 식량난에
관한 청문회를 열어, 분배에 제약이 없는 한국과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식량은 군대에 최우선적으로 배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어린이와 임산부 등
약자들에게 가도록 돼 있는 세계식량계획과 NGO들의 지원식량은 암시장에서 팔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북한군 대위 출신의 탈북 주민 김성민씨는 북한 군대도 굶주리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탈북자 수천명, 中서 강제로 북송
2001년 현재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자수가 5만 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수천 명이 북한에 강제 송환되고 538명만 한국에 들어오는데
성공했다고 미국 난민위원회(USCR)가 밝혔다. 러시아와 기타 지역에도 북한 난민이 흩어져 있으며 북한 내에서 유랑하는 주민도 10만 명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봄 중국이 탈북자 색출을 강화한 뒤 6∼7월에만 6000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탈북자 여성·아이 짐승처럼 팔려가
미국 ABC방송의 시사 토론프로그램 ‘나이트라인’에서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삶을 방영했다. 1년 전 탈북한 김만수 씨 가족은
공안의 감시를 피해 길림성 연변 산골의 토굴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산다. 배고픔과 두려움에 시달리다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아이들은 고아원에 보내야만 했다. 탈북자들은 인신매매꾼들의 좋은 사냥감이 되어 윤락행위를 강요받거나 중국 가정집으로 짐승처럼 팔려간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아이들은 구걸 등을 통해 번 돈으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