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07.月. 흐림
MR. Monday 미스터 먼데이.
공차貢茶가 공짜라는 착각이 들다.
월요일 오전이다. 누구에게나 월요일 오전은 괜히 부산하고 뭔가 바쁘게도 느껴진다. 그것은 지난 주말동안 신나게 나만의 시간을 즐겼던 후유증이기도 할 테고, 새로운 일주일의 시작이라는 부담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애연가라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생각을 빗질하듯 머릿속 정리를 새로이 하든지 혹은 잠시 따끈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요일 별로 간단한 계획표를 그려보면 마음을 정돈시켜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문제는 월요일 아침에 그런 여유나 짬을 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
차를 한 잔 시키며 카드를 내밀자 주문을 받은 베이지색 모자와 유니폼을 입은 아르바이트생이 카드와 영수증을 내주며 말했다. “네, 사이즈는 큰 걸로요. 그리고 타피오카를 추가하고, 당도는 30%, 얼음은 넣지 말고요.” 주마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카운터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벽 쪽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별 의미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영수증을 쳐다보았다. 여러 가지 숫자를 위에서부터 대충 훑어 내리고 영수증 맨 끝에 찍혀있는 번호를 슬쩍 쳐다보았다. ‘주문번호 : 21’이라고 진한 글씨로 찍혀있었다. 지난주 월요일인 9월30일에는 주문번호가 16이 찍혀있었고, 지난 금요일 저녁에 받았던 영수증에는 553이라고 찍혀 있었다. 이렇게 영수증에 주문번호를 계속해서 찍어가다 보면 그날 하루 동안 몇 잔의 차가 팔렸는지는 쉽게 알 수 있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주마가 주문한 주문표를 보면서 차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때 찻집 문이 열리면서 아가씨 두 사람이 들어와 카운터 앞에 서서 차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주마는 카운터 안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이 먹을 차를 만드는 모습을 쳐다보다 자신을 등지고 서서 카운터를 향해 차 주문을 하고 있는 아가씨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두 사람의 아가씨와 주문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아마 사무실 간식거리로 열 잔이 넘는 차를 한꺼번에 주문을 하는지 시간이 꽤 걸렸다. 하기야 차 한 잔마다 각각 추가할 것과 당도와 얼음양을 일러주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보니 두 아가씨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게 된 주마의 눈에는 아가씨들의 뒷모습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다. 왼편의 아가씨는 청바지에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오른쪽 아가씨는 소매가 긴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20cm가량 뒤트임 스커트 자락이 오금을 지나 종아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래서 오른쪽 아가씨의 뒷모습은 허리선폭보다 검정 스커트 아래쪽 단의 폭이 더 좁아 마치 검은색 호리병박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검은 스커트 겉으로 볼록 튀어나온 엉덩이의 경쾌한 도드라짐과 물결치듯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풍만한 곡선이 하얀 종아리의 미끈한 곡선으로 이어져서 굽이 가파른 검정색 구두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완결된 호리병 도자기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젊은 처녀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라일락 향기 같은 냄새 부스러기들이 희미하게 주변을 연한 보라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세상의 향기는 모두 달콤함 속에 아련한 그리움을 담고 있어서 자신의 냄새를 맡은 사람을 자꾸만 끌어들여 깊은 기억 속에서 잠자는 추억들을 생생하게 깨어나도록 도와주는 힘이 있는 듯했다. 무언가, 아주 오래된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서서히 소용돌이치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11월의 마른 낙엽을 태우는 냄새, 혹은 동짓날 밤에 시린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퍼지던 팥 삶은 냄새 같은 것들이 코끝에 느껴져 왔다. 카운터 쪽에서 밀봉된 채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는 차를 좌우로 흔들면서 크게 말하는 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21번 차 나왔습니다.” 주마는 일어서서 차를 받아와 다시 탁자에 앉은 후에 갈색 차가 담긴 플라스틱 통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달콤하면서도 마른 장미꽃을 연상시키는 맛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차의 명칭이 공차라 차를 주문하기 전까지는 항상 공짜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카드를 건네주고 결제를 할 때는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렇지만 차의 첫 한 모금의 향은 착각의 씁쓸함을 대부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었다. 주마는 주문을 마치고 카운터 앞에서 재잘거리고 있는 아가씨들의 뒷모습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여전히 아름다운 까만 호리병은 발 위치에 따라 스스로를 좌우로 살짝살짝 움직거리며 독립된 생명체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볼까?하는 생각이 난 것은 검은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가 몸을 비스듬히 틀어 홀 안쪽의 누군가에게 손을 흔든 모습을 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주마의 눈에는 노란 국화 화분이 줄지어 놓여있는 문구점 앞의 빨간 우체통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봐야 주마가 그녀를 만난 것은 하루 전인 어제였고, 헤어진 것도 고작 하루 전인 바로 어제였다. 월요일은 지난 주말의 기억과 체험을 불러일으켜 일주일 분을 지탱할 정신적, 육체적 양식을 만들어내는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그래, 가을인데 어때, 누구나 무언가가 그리운 계절이잖아. 그렇다면 편지를 써서 그녀에게 보내보자고 그는 생각을 했다.
각연사 가는 길.
작년 늦은 봄에 친구인 우드가 주말 주택으로 사용을 하고 있는 괴산 연풍 전원주택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연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잠깐 들려봤던 칠보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각연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자그마한 동네 어귀에서 각연사까지 십리 가까운 숲속 진입로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다시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엊그제 토요일 불현듯이 그 생각이 나서 일요일에 각연사에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다. 특별히 준비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추분이 지나면서부터는 부쩍 새벽에서 아침으로 바뀌는 시간이 길어졌으나 이미 창밖은 환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7시가 조금 덜 된 시간이었다. 그가 우려했던 것보다 도로는 한산하고 차분했다. 9월말이나 10월초라는 시기가 휴가철은 끝이 난데다 단풍철은 아직 일러서 이를 테면 관광이나 여행의 휴식기 같은 것이어서 의외로 여행을 하기에는 적절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지체나 정체 없이 중부고속도로를 달렸고, 호법분기점에서는 영동고속도로로 방향을 바꾸어 달려갔다. 다음 번 바꾸어 탈 도로가 중부내륙고속도로인지라 그 전에 있는 여주휴게소에 잠깐 들렀다 가기로 했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자 고소한 음식 냄새가 흘러 다녔다.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원래 예정에는 없었지만 아침 식사로 우동 한 그릇을 시켰다. 우동그릇이 놓인 쟁반을 두 손에 들고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휴게소가 크게 붐빌 정도는 아니었지만 식탁은 저 뒤쪽으로 몇 자리만 겨우 비어 있었다. 저만큼 빈자리를 보며 걸어가는데 식탁에서 누군가가 불쑥 일어섰다. 아마 식사를 마친 사람이 그가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쟁반을 들고 일어선 듯했다. 쟁반끼리 부딪치는 것을 피하려고 그가 몸을 살짝 돌리자 쟁반 가장자리에 걸쳐져있던 쇠 젓가락이 도르르 쟁반 안으로 굴러 내렸다. “엇, 미안합니다.” 주마가 말했다. 식탁에서 일어서던 사람도 몸을 움찔하고 멈춰서더니 “지나가는 줄 몰랐어요. 미안합니다.”하고 단발머리가 귓가에 철렁하게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주마가 잠깐 그대로 서 있자 고개를 한 번 가볍게 숙이더니 쟁반을 고쳐들고는 식기 반납처를 향해 걸어갔다. 주마는 그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식사를 마친 그는 휴게소 밖으로 나가 무지개빛 파라솔 아래 있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휴게소를 들고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들뜨고 신이 난 표정의 사람들은 일행들과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든지 두 팔을 흔들며 이곳저곳을 활달하게 돌아다녔다. 시기로 봐서 행락철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원색이나 명도 높은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보지 못하는 얼굴표정과 그 표정에 어울리는 원색의 복장들을 쳐다보는 일이 주마에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 낱낱의 생생한 표정들과 활기찬 몸짓들은 그에게 늘 감각적인 소재가 되어주곤 했던 것이다. 휴게소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수만큼의 차들이 주차장을 비우고 다시 고속도로 진입로를 향해 서서히 달려 나갔다. 주마도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 바지주머니 속의 키를 손으로 꺼내들면서 차를 향해 걸어갔다. 누군가가 그를 향해 말을 했다. “저기요~ 여보세요! 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졌어요.” 차 키를 꺼낼 때 주머니에 들어 있던 지폐가 함께 따라 나왔던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주의를 주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주의를 전해주고는 그냥 자신의 길을 가버린 듯했다. 주마가 고개를 들어 잠깐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월의 첫 주말 일요일의 가을 하늘은 구름이 넓게 가리고 있어서 깊은 물속처럼 푸르지는 않았지만 회색이 품고 있는 안정되고 차분한 느낌을 대기 중에 느긋하게 뿌려대고 있었다. 산행을 하려는 등산객들에게는 오히려 가을햇살 쨍쨍한 날보다 나을 듯했다. 하늘에는 드문드문 몇 군데만 종아리를 싸고 있는 빵꾸 난 스타킹처럼 반점 같은 푸른빛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작년 봄 각연사 숲길은 온통 푸르름 덩어리를 날로 보여주었다면 오늘은 붉고 노란 단풍이 들기 전의 갈색의 은인자중隱忍自重을 회색구름 아래로 잔잔하게 보여주겠구나.하고 생각을 하니 그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자연自然이란 본래 스스로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니까.
각연사로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떠났지만 막상 연풍IC에 들어서자 예상을 했던 것보다 길이 복잡했다. 어쩔 수 없이 낯선 여자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내비게이션을 켜야 했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길을 이리저리 돌아 각연사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자 바로 내비게이션을 꺼버렸다. 큰 찻길에서 동네어귀로 들어가는 작은 길목에 각연사라고 쓰여 있는 푸른색 이정표가 서 있었다. 차를 우회전시켜 그 길로 들어섰더니 작은 동네를 지나쳐서 가르마 같은 좁은 포장길이 산 안 쪽을 향해 구불구불 나있었다. 어쩌다 맞은편에서 차가 달려오면 서로 주춤거리며 조심해서 길을 비켜야했지만 다소곳이 단풍을 준비하고 있는 숲길을 그렇게 한가롭게 달려갔다. 길가 왼편으로 새로 건축 중인 집 한 채를 지나서 조금 더 길을 따라 들어가자 공사 현장처럼 길 가장자리에 노란 안전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작은 개울 위로 시멘트 다리를 건설 중인 모양으로 오는 동안 두세 번 가량 그를 지나쳐갔던 커다란 트럭들이 아마도 이곳 현장을 들어 다니는 차량들인 듯했다. 어느 농가 대문 앞을 돌아가게 휘어있는 임시로 가설된 길은 차가 지나가면 누런 흙먼지가 풀풀 날아다녔다. 주마의 차도 앞차를 따라 먼지 속을 천천히 굴러가는데 황토가 벌겋게 파헤쳐진 길 가장자리에 은색 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여자가 한 사람 선 채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주마가 느끼기에 어쩌면 그 상황으로 보아 은색차가 정차 중이 아니라 고장이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주마는 차를 은색 차에서 조금 떨어진 앞 쪽 길 가장자리에 세웠다. 차에서 내린 주마는 누런 흙먼지를 손으로 휘휘 내저으며 은색 차를 향해 다가갔다. 지나가는 차량 통행이 없어지자 먼지는 이내 잠잠해졌다. 긴 통화를 끝냈는지 손에 핸드폰을 든 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주마를 여자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주마도 그 여자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았다. 저 숲길 안쪽에서는 하얀 승용차 한 대가 달려 나오고 있었다.
“차가 고장이 났습니까?”
“네에, 갑자기요.”
“차가 가던 중에 갑자기 서버린 겁니까?”
“아니요, 트럭이 저 쪽에서 나오기에 길 가장자리로 차를 붙인다는 게 그만 파헤쳐 놓은 구덩이로 앞바퀴가 빠져버렸지 뭐에요. 그래서 어떻게 차를 구덩이에서 빼냈는데, 그만 엔진이 과열이 되었는지 이제 발동이 안 걸리고 있네요.”
“괜찮으시면 보닛을 한번 열어보시겠습니까? 제가 시동을 한번 걸어볼게요.”
“저어, 얼마 전에도 퇴근하려는데 차가 시동이 안 걸려서 공장에 들어갔다 나왔거든요. 그때 부품도 갈고 완전히 수리를 했다고 했는데, 일주일 남짓 됐나요. 그때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거든요.”
“그래요? 여하튼 보닛 안을 한번 살펴보고 나서 시동을 걸어보지요.”
겉으로 보이는 보닛 안은 깨끗하고 말짱했다. 보닛을 열면 하게 되는 통상적인 점검을 했으나 모두 정상치이거나 양호한 상태였다. 운전석에 앉아 엔진을 켜보았지만 키익~ 키익~ 하는 소리만 날뿐 시동은 여전히 걸리지 않았다. 여자의 말대로 엔진 쪽에 근본적인 결함이 생긴 모양이었다. 주마는 기어를 툭툭 건드려보다 차에서 내렸다. 여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합니다.” 주마는 자신을 말갛게 쳐다보는 여자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신의 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여보세요!” 그는 왠지 그 목소리가 낯익은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 내가 저 목소리를 들어보았지?
“저기요~ 지금 각연사로 가시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저 혹시 지금 바쁘세요?”
“아니요, 시간이 촉박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만.”
“저어,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는데요. 조금 전에 레커차를 불러놓았거든요. 그래서 레커차가 오면 차를 정비소로 보내고 나서 저를 각연사까지 좀 태워다 주시면 안 될까요? 물론 나올 때도 좀 부탁을 드리고요. 시간은 선생님께 맞춰도 되니까요.”
“그러십니까? 나도 오늘은 일정이 바쁘거나 그러지는 않으니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모르는 남자 차를 얻어 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게 불안하거나 그러지는 않으세요?”
“어머! 그러고 보니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네요. 그래도 흙먼지 속에서 서 있는 것보다야 그게 더 나을 것 같거든요. 뭐, 그야 좋을지 불안해야 할지는 오늘 일진에 맡겨야지요.”
뭐, 그야 좋을지 불안해야 할지는 오늘 일진에 맡겨야지요.라고 말을 해놓고 여자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저렇게 밝은 미소 앞에서는 남자가 간혹 나쁜 짓을 좀 하고 싶어도 왠지 할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신뢰를 확신하는 맑은 웃음이었던 것이다. 약 30분정도를 납작한 돌 위에 앉아 기다리면서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 사과와 바나나를 나누어 먹고 하다 보니 어느 틈에 레커차가 도착을 했다. 여자는 레커차 기사가 보여주는 종이에 사인을 하고나서 자신의 은색 차에서 몇 가지 물건을 내려 주마의 차로 옮겨 실었다. 그러고 난 뒤 레커차가 여자의 은색차를 뒤에 매달고 누런 흙먼지를 날리며 저만큼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차에 올라타고는 각연사 숲길로 들어섰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가끔 귓불을 스치는 바람은 상쾌했고, 작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숲길 안에서는 마른 향냄새가 시냇물처럼 유쾌하게 흐르고 있었다. 열린 차창으로 들어오는 산중 바람이 청량하게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각연사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두 번인가 좁은 길을 마주 오는 차와 서로 비켜갈 때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푸른 잎을 매달고 차창 안으로 들어와 볼을 간질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실 차에서 내려 좀 걷고 싶은 숲길이었지만 일단 주차장까지는 가자고 했다. 일주문이 서 있는 주차장에는 십여 대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각연사가 가지고 있는 마음에 꼭 드는 덕목德目 중의 하나가 아직 유명세를 타기 전이어서인지 관광객들이 들끓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산은 고요하고 절은 아늑했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두 굽이를 돌아서면 다리 건너에 바로 각연사 도량이 보였다.
사시 마지巳時 摩旨.
돌계단을 딛고 올라가 대웅전이 올려다 보이는 종무소 마당에 들어서자 대웅전과 비로전에서 울려오는 목탁소리가 명랑하게 들려왔다. 대충 때로 보아서 사시 마지를 올리고 있는 듯했다. 주마는 고개를 돌려 여자에게 “나는 대웅전에서 참배를 좀 하고 나오겠습니다.” 했더니 “저도요.”라고 여자가 말했다. 대웅전 안에는 주지 스님인 듯한 호리호리한 스님 한 분이 불공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스님과 조금 떨어진 곳에 방석을 깔고 참배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방석 위에 앉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스님이 올리고 있는 불공은 사시 마지 겸 천일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스님의 염불은 그저 평범했으나 목탁만큼은 참 잘 치는 스님이라고 생각했다. 목탁은 굴려 치는 법과 끊어 치는 법이 있는데 끊어 치면서도 마치 굴려 치는 것처럼 저렇게 매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솜씨라는 것을 주마는 알고 있었다. 여자도 주마의 옆 자리에 방석을 깔고 참배를 마친 뒤에 그 자리에 앉아 스님의 염불을 따라하거나 기도를 했다. 여자가 오늘 왜 각연사에를 왔는지 아직 묻지 않았지만 아마 오늘이 여자에게는 특별한 날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만큼 여자는 기도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대웅전의 열려있는 문을 통해 어디선가 찬불가를 합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학생들이나 신도들의 주말 템플 스테이거나 성지순례 차 단체로 각연사를 방문한 순례단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기도 스님은 이제 두툼한 축원책을 펼쳐 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불러가며 축원을 하기 시작했다. 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삼배를 하고 대웅전 밖으로 나왔다. 대웅전 뒤편에 있는 산신각에서는 삼십 여 명의 신도들이 한 가운데 비구니 스님 한 분을 모시고 참배 중이었다. 조금 전에 대웅전 안으로 들려왔던 찬불가도 산신각에서 불렀던 것 같았다. 주마는 뒤로 고개를 돌려 흘낏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자는 제 자리에서 열심히 기도 중이었다. 아마 스님이 기도를 마칠 때까지 함께 기도를 할 요량인 듯했다. 돌계단을 내려가 다시 종무소 마당으로 갔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어둡지는 않았고 공기 중에 더위는 가셨지만 쌀쌀한 정도는 아니었다.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도량 안팎을 돌아보기에는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연각사는 1000m 미만의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어서 연꽃 속에 들어앉은 형국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깊은 계곡과 높고 험한 봉우리가 아니지만 깊숙한 산 속에 들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해우소로 내려가는 길 어귀에 파손된 부도 받침이나 파랗게 이끼 낀 탑지붕이 한데 모아져 있었다. 그 돌덩이 하나하나마다 세월의 때와 지울 수 없는 사연들이 둘둘 말려있으련만 복구나 보수를 하기에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던지 그렇게 방치된 상태로 놓여 있었다. 종무소 옆에 있는 키 큰 세 그루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으면 대웅전이 정면으로 올려다보였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왼편으로는 약수가 흘러나오는 샘이 있었고, 오른편으로는 기와불사를 위한 기왓장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이윽고 대웅전에서 목탁소리가 멈추고 잠시 후에는 기도스님이 가운데 문으로 두 손에 공양구를 든 채 나왔다. 기도스님이 돌계단을 밟고 내려설 즈음에 여자가 대웅전 옆문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삼신각에서 정진을 하고 있는 순례단의 모습을 보더니 이내 대웅전 앞 돌계단을 한 단 한 단 밟고 내려섰다. 계단을 다 내려온 여자는 대웅전을 향해 돌아서서 자세를 바르게 한 후에 합장을 하고 선 채로 또 삼배를 올렸다. 바람이 산등성이쪽에서 불어오자 약수샘 옆에 심어진 빨간 코스모스들이 바람을 타고 우줄우줄 흔들거렸다.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진한 자주색 맨드라미꽃의 빨간 잔상들이 주변으로 흩날리듯 뿌려졌다. 여자의 블라우스에도 두어 줌의 바람이 들어갔는지 왼편으로 살짝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바람이 한 번 불어가자 하얀 화면위에 영상이 되어 흐르던 풍경들이 바람이 그치자 사물들의 움직임은 화폭 위의 그림처럼 멈추어버렸다. 그러자 눈앞의 풍광들이 이제 막 붓질을 끝낸 정물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마는 눈의 초점을 선명하게 맞추려고 눈을 두어 번 깜박거렸다. 풍경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분홍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스커트를 입은 여자의 뒤태가 꼭 호리병박을 닮았다고 생각을 했다. 남자가 여자를 관심 있게 쳐다볼 때는 맨 먼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떠 올리게 되는 걸까? 하고 그는 생각을 했다. 휘허한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마당에는 작은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주마의 가슴 속에는 양떼구름들이 드문드문 흘러 다녔다. 여자는 마당 쪽으로 다시 뒤돌아서서 주마를 보았는지 그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또박또박 걸어왔다. 주마도 여자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절에서 하루 세 차례 불공인 아침예불, 저녁예불, 그리고 사시 마지 중에서 법상에 공양을 올리는 때는 유일하게 사시 마지 때뿐이다. 사시 마지에 마짓밥을 올리는 이유가 있다. 부처님 재세 시 인도에서 수행을 하는 수행자들은 통상적으로 하루 한 끼, 그러니까 오전에만 한 차례 식사를 했다. 물론 부처님께서도 하루 한 번 사시巳時 경에 공양을 드셨다. 그렇다면 아침예불은 아침을 여는 의식이고, 저녁예불은 저녁을 닫는 의식이라면 사시 마지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은 음식을 부처님께 올리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마는 이따금 절을 방문하는 중에 사시 마지를 올리는 것을 보게 되면 하루 한 끼도 아닌 세 끼씩이나 나도 저렇게 음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는 했었다. 내 한 끼를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고 수고로움을 빌어야 하는지 상상이 가지를 않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사시 마지가 끝났다는 것은 점심시간이 거의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주마는 자신의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일행이 있다는 것은 최소한의 식사시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언제고 어디에서라도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먹고, 자고, 대화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천천히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자 주마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때 “텅텅텅텅 또 구르르르르...”하고 목탁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탁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저게 무슨 목탁소리에요?” 주마가 말했다. “네, 목탁을 한 번 내렸지요. 그것은 점심시간을 알리는 목탁소리입니다.” “그러면 목탁으로 다른 신호도 알리나요?” 여자가 또 물어보았다. “그럼요, 목탁을 두 번 내리면 울력 목탁이고, 세 번 내리면 공부 목탁이랍니다.” 주마의 대답을 듣던 여자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여자가 웃자 눈의 가장자리가 반달처럼 휘어지며 얼굴이 분홍꽃처럼 온화해 보였다. 이번에는 그가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 기도를 정성스럽게 하시던데요.”
“네, 사실은요. 오늘 십몇 년 만에 친정아버지 산소에 들리러 온 거랍니다. 그래서 선산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각연사에서 먼저 기도를 드리고 나서 산소를 찾아뵈려고요. 그런데 차가 고장이 나버렸지 뭐에요.”
“아,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그러면 이제 선산에 모셔져있는 아버님 산소를 찾아봐야 되겠네요?”
“원래는 계획이 그렇게 되어있었지만 차가 없으니 선산 쪽으로 이동할 마땅한 방법이 없네요. 그런데다 가본 지가 하도 오래 전이라 선산을 가려면 그 부근에서 살고 있는 사촌 오빠에게 전화로 또 그 위치를 물어보아야 하는데 첩첩산중이네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내 차가 있기는 있습니다만.”
“저어,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성의껏 사례는 할 게요.”
“마침 내가 오늘 일정이 그렇게 바쁜 것은 없으니 좀 도와드려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리고 사례는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각연사와 괴산 일대를 둘러보려고 했으니까요. 그러면 이렇게 하지요. 원래는 여기에서 한 삼십여 분가량 칠보산 쪽으로 올라가면 각연사 중창건주인 통일대사비가 있어서 그곳을 가려고 했는데 그 계획은 그만 두도록 하고, 한 5분 남짓 산으로 올라가면 부도전이 있다고 하니 부도전만 보고 내려오도록 하지요. 그건 그렇고 점심시간인 모양인데 시장하지는 않으세요?”
“그럼 먼저 가까운 부도전에 갔다가 내려와서 제 가방에 먹을 것을 준비해온 게 좀 있으니 주차장 근방 계곡에서 간단히 먹으면 되겠네요. 저어, 선생님 감사합니다. 초면인데 예상치 않게 신세를 많이 지게 되는 것 같아서요.”
“하하~ 신세라니요. 저도 여행길에서 알게 모르게 모르는 분들로부터 도움도 받고 신세도 졌던 일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습니까? 도움도, 신세도 서로 주고받고 하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덜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고맙습니다.”
“그러면 부도전으로 함께 가셔도 좋고, 그냥 주차장에 내려가 그곳에서 기다리셔도 좋습니다.”
“저도 가고 싶네요.”
작은 계곡을 따라 절 뒤편으로 난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길 왼편으로는 파란 배추가 심어져있는 길쭉한 밭뙈기가 보이고 밭 가운데 낡고 금이 가있는 시멘트 창고가 하나 서있었다. 등산객 서너 명이 칠보산七寶山 정상을 다녀오는지 털래털래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폭 좁은 개울을 하나 건너고 모퉁이를 돌아섰더니 부도 두 기가 너덧 걸음 거리를 두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왼편에 있는 부도가 좀 작았고 오른편에 있는 부도의 규모가 좀 더 컸다. 가까이 다가가 작은 부도를 살펴보았더니 종형의 몸체에 善寂堂塔이라고 음각으로 새겨져있었다. 선적당이란 여기에 유골을 안치한 스님의 당호이니 스님의 평소 가장 친근한 이름인 법명은 알 길이 없지만 수백 년 동안 이 산길을 지나치는 수많았던 사람들에게 파란 이끼를 두른 자신의 맑은 모습을 보여 줄만큼 살아서의 수행도 청정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기의 부도가 서 있는 너덧 평의 공간은 이제는 숲속의 오솔길의 일부로도 사용이 되고 있었지만 원래 규모는 이보다 더 크고 넓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해우소로 내려가는 길 어귀에서 보았던 파손된 부도받침이나 이끼 낀 탑지붕도 어쩌면 이 자리에서 제 모습대로 수백 년 동안 의연한 자세로 서 있다가 부서지고 흐트러지자 그쪽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이제는 부도전이라기에는 뭔가 부족한, 그렇지만 맑고 푸른 기운만은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그 공간 한 켠에 주마는 슬그머니 앉아 보았다. 어디선가 투덕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 뒤에는 서너 명의 등산객들이 편안하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숲길을 따라 내려갔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말소리 사이로 숲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아기 바람들이 이숲 저숲으로 쉬엄쉬엄 마실을 다녔다. 가을 햇살에 말라가는 나뭇잎의 향들이, 상처 입은 열매에서 풍겨나는 설익어 비릿한 과육의 향들이 민들레 씨처럼 훨훨 공간 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사람이 자연과 하나 됨의 이치를 파악하는 일이고, 보살행이란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일이라면 여기 있는 두 기의 부도는 벌써 몇백 년 전부터 그것을 지극히 알아 실천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이 둘 아닌 하나고, 있음과 없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말은 이곳 퇴락한 부도전에서도 얼마든지 유효한 법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숲과 향과 바람이 전해주는 적요로운 침묵 속에서 우웅~ 거리는 이명耳鳴 사이로 어디선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두 사람에게 들려왔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주차장으로 내려온 주마는 자동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놓아둔 가방을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여자는 가방을 열더니 작은 보따리와 생수통을 꺼내 들었다. 주마도 과일을 담은 검은 봉지와 생수통을 트렁크에서 꺼내들고 개울을 따라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숲길 아래로 아담한 개울이 흘러내리고, 개울가에는 너부러진 자갈들과 바위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걸터앉거나 물에 발을 담그고 간단한 점심을 먹기에는 괜찮은 장소로 보였다. 개울가에 평평한 바위가 보였다. 주마가 손가락으로 그 바위를 가리키자 여자도 고개를 까딱이며 비스듬한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가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주마도 여자의 뒤를 따라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흐린데다 10월 초경의 날씨라 덥지는 않았지만 졸졸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보자 갑갑한 신발을 벗어버리고 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다. 주마는 구두를 벗고, 양말을 벗고 나서 바짓단을 걷어 부치고 개울물에 발을 담갔다. 시원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개울물이 주마의 두 발을 매끄럽게 받아들였다. 발가락 사이로 물이 흘러 다니자 좀 간지러운 듯했다. 개울은 구불구불 제 몸을 비틀어가며 여러 개의 물굽이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저어, 물이 차갑지 않으세요?” 여자가 두 쪽의 샌드위치 중 한 개를 주마에게 권하면서 물었다. “아뇨, 미지근한데다가 미끈한 느낌이 기분 좋은데요.” 여자는 손가락으로 물을 두어 번 튕겨보더니 샌드위치 한 쪽을 과일을 담은 네모난 통 위에 올려놓고서 옆으로 돌아앉아 구두를 벗었다. 두 사람은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는 과일통을 사이에 놓아두고 과일을 집어 먹었다. 회색 구름을 밀어내고 하늘 한쪽이 푸르스름하게 열리면서 둥근 해가 나올 듯 나올 듯 턱걸이를 하더니만 마침내 힘에 부치는지 다시 구름 속으로 스르르 밀려들어가 버렸다. 이따금 개울 저 위쪽에서 바람이 불어 내려올 때면 하늘에 가득한 구름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왔다.
“작은 샌드위치 한 쪽과 과일 몇 조각으로는 식사가 제대로 안 되시지요?”
“그야 뭐 충분하지는 않지만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기 까만 비닐봉지에도 사과가 몇 개 들어 있습니다. 내가 많이 먹어서 그렇지 원래 점심이라는 말의 근원이 점심點心 곧, 마음에 잠을 찍는다.라는 뜻이라고 하지요. 점심은 그렇게 가볍게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래요? 점심이라는 말 속에 그런 뜻이 들어있었네요. 그럼 아침식사나 저녁식사에도 특별한 뜻이 들어 있나요?”
“그렇지요. 요즘에야 그런 말을 별로 쓰지 않지만 예전에는 아침식사를 꼭 조반朝飯이라고 했거든요. 조반이란 아침식사에는 반飯, 곧 밥을 먹는다.라는 뜻이지요. 여기에서 반飯이란 곡식을 불에 익힌 것을 말한답니다. 그래서 하루 세 끼 중 가장 잘먹어야하는 것이 원래는 아침식사였답니다. 하기야 옛날에는 아침을 잘 먹어야 하루 내내 일을 할 수가 있었겠지요. 그리고 예전에는 생일잔치 상도 아침에 차려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걸게 먹었거든요. 요즘에는 생일파티를 저녁에 하지만요. 그리고 저녁식사는 다른 말로는 약석이라고 했답니다. 약석藥夕이란 저녁에는 약처럼 먹는다는 말이랍니다. 그러니까 저녁식사로는 소화가 잘 되고 위에 부담이 없는 죽 같은 조심스러운 음식이 좋다는 말이지요. 옛 어른들께서는 하루 중 음식을 먹는 방법도 조반, 점심, 약석으로 하루 세끼 식사를 구분지어 놓았는데 요즘에는 아무 때나 지나치게 잘 먹으니 몸에 탈이 생기는 거겠지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맞아요, 저도 조반, 약석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점심이야 지금도 사용하는 말이니까 당연하고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잘 알고 계셔요? 설명해주시는 것이 꼭 선생님 같으세요.”
“하하~ 선생님은요.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지요.”
“그리고요, 선생님. 오늘 각연사에는 특별한 용무는 없이 기도도 하고 절 주변을 돌아보시려고 오셨어요?”
“네, 뭐 그런 셈이지요. 이곳 괴산 연풍면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집 이름을 연풍연가라고 부르면서 주말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드라는 친구가 있는데, 지난 해 늦은 봄에 몇 명이 몰려와서 하룻밤을 재미있게 지낸 적이 있었거든요.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내가 절을 즐겨 다니는 줄 알고 이곳 각연사를 안내해주었는데, 그때가 유월이었으니 함께 왔던 일행들이 각연사로 들어오는 조붓한 숲길하며 푸르른 녹음, 그리고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에 반해버렸단 말이지요. 그렇게 잠깐 각연사를 다녀간 뒤로 언제 한번 꼭 다시 다녀와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한해가 훌쩍 지나가버렸어요. 그러다가 며칠 전에 각연사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는 오늘 갑자기 각연사를 보러 왔답니다.”
“평소에도 절을 자주 다니시나 봐요.”
“네, 뭐 그렇지요. 절집 분위기도 좋아하고, 절 건축물도 좋아하고, 절 주변의 산이나 숲도 좋아하고, 불교교리도 좋아하고, 절음식도 좋아해서 그러다보니 스님 친구들도 몇 분 있게 되니 절을 가끔은 가게 되는 것 같네요.”
“어머 어머, 여기를 좀 보세요. 발이 왜 가렵나했더니 발 주변에 송사리들이 몰려와서 발등을 주둥이로 물고 있나 봐요.”
“글쎄, 나도 어쩐지 발등이 가렵더라니까요.”
개울 옆 숲길로는 이따금 차들이 지나다녔다. 어쩌다 두세 명의 아랫마을에 사는 동네 사람들도 지나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 주변을 지나가는 것은 단지 차와 사람 뿐만은 아니었다. 정오를 지나 오후로 향하는 시간도, 하늘을 덮고 있는 회색 구름도, 그들 사이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이야기의 묶음들도 말하고 듣는 만큼씩 어디론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히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아란 싹이 트고, 꽃들은 곱게 피어나 날 오라 부르네. 여자는 발로 물장구를 치면서 한 옥타브 낮춰 낮고 부드럽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산 정상으로부터 굴러 내리는 그리움 덩이들이 계곡을 따라 개울을 가득 채우면서 흘러내려오고 있는지 주마의 주변을 감돌며 그리움의 파도들이 넘실대고 있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 가슴 깊이 불타는 영원한 나의 사랑, 전할 곳 길은 멀어도 즐거움이 넘치는 나라,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내 마음도 따라 가라 그대를 만날 때까지 내 사랑도 흘러가라. 여자의 노래는 그리움의 바다를 떠도는 사랑의 배가 되어 넘실넘실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주마는 빈 봉지를 챙겨들고 앞장서서 숲길을 걸었다. 한 십여 분을 아래쪽으로 내려가다가 돌아서서 주차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말없이 옆에서 나란히 걷던 여자의 어깨나 가슴이 자신의 몸에 스치면 몸을 움츠리고 그만큼거리를 띄워가며 걸었다. 그 사이로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골바람이 부드럽게 돌아다녔다. 저만큼 일주문이 보였다. 주마가 여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선산이 있는 곳이 어디지요?”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잠깐만요, 전화 통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거든요.” 여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안부의 말을 한참 주고받더니 네에, 네에, 하고 대답을 하면서 수첩에 간단한 메모를 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청천면 지촌리를 치든지 덕평리를 내비게이션에 치라고요? 네에, 알았어요, 오빠. 그러면 거기 가서 다시 전화를 드릴게요.”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자 여자는 익숙한 솜씨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괴산군 청천면 지촌리. 하고 글자를 쳐서 넣었다. 그런데 검색결과가 없음.이라는 안내문자가 나타났다. 그러자 다시 덕평리로 바꾸어 글자를 쳤다. 화면에 지도가 올라오고 지도 맨 끝부분에 덕평보건진료소가 보였다. 일단 덕평보건진료소까지 간 뒤에 다시 선산 위치를 확인하기로 하고 차를 몰아 숲길 안쪽으로 들어섰다. 차창을 내리자 상쾌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주마는 혹시 하면서 라디오 FM음악방송을 켰다. 사소한 잡음은 섞여있었지만 다행히도 방송이 잡혔다. 방송진행자의 간단한 설명이 있더니 소프라노의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주마는 얼른 소리크기를 16까지 키웠다. 스피커에서 더 화려하고 애절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사는 단순하게 아베마리아가 반복되는 곡이었지만 노래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저 높은 곳을 향해 무언가를 간절히 갈구하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었다. 호젓한 산속 숲길을 달리면서 듣는 절정의 소프라노 음색은 각별한 운치가 있었다. 그 노랫소리는 5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좁은 차안을 무한히 팽창시켜놓고 있었다. 그랬다. 노래가 끝나고 다른 음악이 나올 때까지 침묵이 흘렀다. 그 아련한 여음 사이로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저 노래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이지요? 그런데 저 가수는 누구지요? 아베마리아가 여러 곡이 있지만 저 가수가 부르는 아베마리아를 들으면 몸에 막 전율이 일어나는 것 같거든요.”
“그렇지요? 저 깊은 곳에서 영혼을 끌어올려 마구 흔들어대는 것 같지요? 아베마리아는 슈베르트의 작곡도 구노의 작품도 있지만 방금 불렀던 아베마리아가 단연 압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곡이 카치니의 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카치니의 곡이 아니라 1970년대에 활동을 했던 러시아 작곡가 블라디미르 파비로프의 곡이라는 설이 있어요. 저 소프라노 가수는 라트비아 출신의 이네사 갈란테랍니다. 저 아베마리아 한 곡으로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되어버렸지요.”
“아, 이네사 갈란테요. 그렇군요. 저는 여태 저 곡이 카치니가 작곡한 줄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각연사 숲길에서 듣는 아베마리아가 어쩜 이렇게 가슴이 떨릴 만큼 좋지요? 아베마리아라는 말뜻이 성모 마리아를 찬양합니다.라는 뜻인데도 말이지요.”
“그렇지요. 정말 뛰어난 음악이나 미술, 아니 예술은 종교나 국가와도 상관없이 어디든 훨훨 날아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고 감동을 주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호젓한 각연사 숲길이어서 이네사 갈란테의 아베마리아가 더욱 좋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저어, 선생님께서는 클래식 음악을 잘 아시는 모양이에요.”
“아닙니다. 그저 좀 좋아할 뿐입니다. 우연히 아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라 아는 척하며 말씀을 드렸던 거지요. 오히려 음악을 받아들이는 자세랄까 태도랄까 하는 분위기를 보면 그쪽이 더 음악에 대해서 잘 아시고 깊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머나, 이제 겨우 딱 한 곡을 함께 들었을 뿐인데 어떻게 나에 대해서 그렇게 세밀하게 관찰을 하셨어요?”
“아닙니다. 관찰을 일부러 한 게 아니구요. 조금 전에 아베마리아를 함께 들었던 차 안의 분위기속에는 나를 음악 안쪽으로 끌어주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서요. 드물기는 하지만 그 분야에 정통하거나 식견이 높은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 느꼈던 그런 분위기를 살짝 맛보았단 말이지요.”
“호호호,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좋지만 아니에요. 저도 클래식을 조금 좋아할 뿐이랍니다. 그런데 연풍에 친구 분이 살고 계시면 괴산 지리를 좀 아세요?”
“괴산 지리는 거의 몰라요. 지난 해 봄에 연풍을 들렸을 때가 괴산에 아마 두 번째 왔을 겁니다. 괴산 읍내도 그때 낮으로는 처음 가보았으니까요. 처음 읍내를 들렸을 때는 한밤중이라 어디가 어딘 줄도 잘 모르고 저녁식사만 하고 바로 떠났거든요. 괴산이 올갱이국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친구가 버스 터미널 부근의 원조 올갱이 식당에서 점심으로 올갱이국을 사주었거든요. 올갱이가 무언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슬기를 올갱이라고 부르더군요. 우리 고향에서는 그것을 대사리라고 부르지요.”
“저는 다슬기를 물고동이라고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있는데요. 지방마다 독특한 이름들이 참 정감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올갱이, 대사리, 물고동은 다 그 고장에서 오랫동안 불려온 이름들일 테니 모두 같이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요. 같은 것을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투리가 정감 있는 말들이 참 많이 있지요. 부추도 지역에 따라서는 정구지, 졸, 솔, 새오리라고 말하고, 또 명태의 이름은 잡은 지역이나 말리는 방법에 따라 부르는 흥미로운 명칭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네, 맞아요. 그렇기는 한데 저 혹시 국어선생님이세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렇지만 뭘 따져보거나 세세히 알아보기를 좋아는 편이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을 설명하는 방식이나 말투가 꼭 선생님들의 그것과 흡사해서요.”
“내 말투가 그렇게 들리는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이야기를 좀 더 나누어보시면 더 정확하게 아실 겁니다. 나는 말하는 법이나 말 듣는 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농담도 잘하고 실없는 소리도 잘 하는 이를 테면 막말을 더 즐겨하는 사람이거든요.”
“막말이요? 막말이란 앞뒤 분간하지 않고서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이잖아요. 선생님께서 그러실 것 같지는 않는대요?”
“흐응, 날카로운 지적이시네요. 방금 내가 한 막말이란 막춤에 비유해서 사용해본 말입니다. 상대에게 무작정 상처를 주는 무례한 말이 아니라 격식을 갖추지 않았거나 표현이 다소 거친말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거지요.”
“그런데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는 법이나 말 듣는 법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요. 말 하는 법이란 말은 알겠는데 말 듣는 법이라는 말은 생소한 말이거든요. 말 듣는 법도 말을 잘하는 것처럼 사람에 따라서 어떤 기술이랄까 재능 같은 것이 있나요?”
“그럼요, 그렇다고 나는 생각을 하거든요. 사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잘 듣는다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지요. 말을 잘하려면 상대방이나 듣는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대화의 중심으로 끌고 와야 가능한 일인데 그러려면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만 서로의 공감대를 파악할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물론 말을 듣는데도 적극적인 방법과 소극적인 방법이 있겠지요. 상대의 말을 동의하듯이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의 흐름을 따라가며 듣는 방법이 있겠고, 상대의 말 사이사이에 상대방의 숨은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질문을 해가면서 적극적으로 듣는 방법이 또한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어떤 의도를 풍기지 않고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겠네요. 이런 것들을 가리켜 말 듣는 법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랍니다.”
“어머나, 선생님께서는 재미없는 말도 재미있게 하는 재능을 분명하게 가지고 계시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이런 대화 내용이 그다지 재미있거나 귀가 솔깃해지는 흥미로운 내용들은 아니거든요. 어쩌면 토론회나 강의용 설명 같은데도 듣는 저에게 흥미롭게 들려지는 것은 순전히 설명하시는 방법이나 말씀하시는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하~ 칭찬입니까? 항상 그렇지만은 않은 듯한데 오늘은 유독이도 말이 잘 되고 있는 것 같군요. 말씀하신대로 10월의 흐린 하늘, 각연사의 울창하고 고적한 숲길, 뜬금없이 동행하게 된 미모의 여성분, 그리고 가을이라는 계절이 전해주는 이런 분위기 덕분인 모양이네요. 평소보다 두세 배는 말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하하,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철이 들른지요.”
“그렇지만 철이 든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서 말하는 철이 든다는 것은 매사를 계산하고 실속을 따져가며 산다는 말이잖아요. 그렇게 사는 동안은 어른으로 살지는 몰라도 이미 꿈이나 소망이나 낭만 같은 것은 다 사라져버리고 현실만 지켜보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건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게 느껴지는군요. 그렇다고 나이가 들어가도록 철이 전혀 안들 수 없는 노릇이니 상황에 따라 철이 들었다 안 들었다를 반복하면서 사는 게 무난하겠네요. 역시 살아갈수록 인생이라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호호, 철이 들었다 안 들었다는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거지요? 그건 더 어려울 것 같아요.”
“하하, 그러게요. 그러니까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겠지요?”
“글쎄 말이에요.”
내비게이션에 떠오른 지도는 일단 괴산 읍내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을 태운 차는 가을날의 총명한 햇살 대신에 회색의 그리움을 간직한 바람이 허공중을 헤적이며 돌아다니는 한가하고 여유 있는 도로를 달려갔다.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음색이 가을을 닮아 있었다. 일요일의 괴산 읍내는 지나왔던 도로만큼이나 한적했다. 어쩌면 일요일이 아닌 평일일지라도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큰 사거리를 막 지나는데 여자가 말했다. “저어, 잠깐만 차를 세워주세요.” 주마는 차를 길 가장자리에 멈춰 세웠다. 여자는 차에서 내려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여자가 차로 돌아왔다. 주마가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여자가 싱긋 웃고는 말했다. “저기에 큰 마트가 보여서요. 아버지 산소에 올릴 술을 사려고 가봤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그냥 돌아왔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로를 따라 지나가다 마트나 슈퍼마켓이 보이면 차를 세워주겠노라고 말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눈짓을 했다. 그때 주마가 핸드폰을 집어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친구인 우드가 혹시 연풍연가에 내려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뜩 난 것이다. 두 번, 세 번째 신호음이 들리자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우드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려왔다.
“여보세요, 주마! 어쩐 일이냐? 전화를 먼저 다해주고.”
“응, 우드. 나야. 그래 지금 어디에 있지?”
“으응, 지금 괴산에 내려와 있어. 어제 토요일이라 조카애들 데리고 연풍연가에 함께 와서 하룻밤 지내고 지금 점심으로 삼겹살 굽고 있단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응, 나도 지금 괴산 읍내에 와있구나. 그래서 혹시 네가 연풍연가에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해보았다.”
“그래? 언제 괴산에 왔는데, 지금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이리로 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쉬었다가 올라가라.”
“으응, 그러면 좋기는 하지만 지금 읍내에서 어디를 가는 중이다. 그럼 너는 언제 서울로 올라가려는데?”
“그래? 어디를 가는 길인데? 그러면 일보고 나서 연풍연가에 들려라. 나는 점심을 먹고 조카애들하고 놀다가 오후 서너 시경에 서울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너는 일이 언제나 끝나겠니?”
“글쎄다. 나도 아마 그쯤이나 될 것 같구나.”
“그러면 일을 보고나서 바로 연풍연가로 오도록 해라. 혹시 먼저 출발을 해서 내가 없더라도 현관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내줄 테니 알아서 챙겨먹고 쉬었다 올라가도록 해라. 아참, 그리고 말이지 네가 저번에 부탁했던 사진 있잖아, 네가 말한 크기로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 여기에 보관하고 있으니 와서 가져가도록해라. 그렇지 않아도 택배로 보낼까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잘되었구나.”
“오, 그 사진. 그렇지 않아도 그 사진이 궁금했었는데. 그래, 알았구나. 지금으로서는 시간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만 일단 알았다. 그래 또 연락을 하마,”
“그래, 네가 괴산 읍내까지 왔는데 조카애들 하고 함께 있어서 못 나가봐 미안하다. 또 연락하자.”
“별 말을 다 하는구나. 내가 연락도 없이 괴산에 갑자기 내려왔는데 말이지. 아무튼 그 사진 고맙구나.”
주마는 전화를 끊고 차 시동을 걸었다.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주마에게 물었다. “우드라는 친구 분이 사진을 하나보죠?” 주마는 피사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신중한 자세로 셔터를 누르고 있는 우드의 얼굴을 생각하며 말했다. “직업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사진을 무척 좋아하고 사랑하는 친구라서 평소에도 시간 되는대로 출사를 많이 다니는 친구거든요. 언젠가 우드가 찍어놓은 사진 몇 점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크게 인화를 해서 액자에 담아 선물 좀 하라고 했더니 정말 그렇게 준비를 해놓은 모양이네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물었다. “선생님께서도 사진을 좋아하세요?” 주마가 다시 음악방송을 켜면서 말했다. “아니요, 사진작품은 그림을 보듯이 감상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사진을 찍거나 찍히거나 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진에 대해서는 관심도 취미도 없는 셈이지요.” 여자가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여자가 하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하품을 했다. 주마가 차창 앞을 주시하며 사거리에서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을 하면서 말했다. “좌석 등받이를 뒤로 재끼고 잠깐 한숨 붙이도록 하세요. 덕펑보건진료소에 도착하면 깨워드릴 테니까요.” 잠시 후에 옆 좌석에서 여자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 차창 앞으로 고추잠자리가 날아왔다가 회색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라갔다.
괴산군 청천면 지촌리 숭문로길.
덕평이라는 파란색 이정표가 보였다. 내비게이션에서는 300m 전방에서 오른쪽 진입로로 들어서라고 길안내를 해주었다. 그 길로 들어서서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따라 새삼 가을을 느껴보듯 달려갔다. 생머리를 뒤로 모아 질끈 묶고 까무잡잡하게 얼굴이 햇볕에 그은 데다 하얀 긴팔 티셔츠에 파란 장화를 신고 있어서 나이 구분이 애매한 아주머니가 오토바이를 길 가장자리에 대놓고 하얀 핸드폰을 볼에 바짝 붙인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좀 더 동네 쪽으로 들어갔더니 덕평보건진료소 조금 못 미쳐서 오른쪽에 덕평 농협이 보였다. 저만큼 앞쪽에는 덕평 삼거리라고 쓰인 이정표가 걸려 있었다. 옆 좌석에서 인기척이 있기에 돌아보았더니 여자가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주마는 농협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댔다. 여자는 어디론가 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빠 저예요. 네네. 여기 덕평 농협까지 왔어요. 네네, 길을 쭈욱 따라가서 사거리 길이 나오면 수퍼가 보인다고요. 네네, 다리를 건너서 길 위쪽으로 한옥이 있는데 그 한옥을 끼고 산으로 올라가라고요. 그리고 길 오른편에는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고요. 네네, 알겠어요. 고마워요, 오빠. 또 연락을 드릴게요. 네네.” 여자는 전화를 마치고 주마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설명을 들었어도 전화로 들려오는 말은 현장감이 덜해서 그런지 막상 찾아가려면 그 길이 그 길 같아서요.” 주마가 농협사무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무실 문이 열려있고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여기에서 한 번 물어보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여자가 고개를 까딱 하고는 차에서 내려 농협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주마도 차에서 내려 넓은 주차장을 흔들흔들 돌아다녔다. 가로로 길쭉한 농협건물은 가운데는 농협사무실, 오른쪽은 하나로마트, 왼쪽은 무인공판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왼쪽에 있는 무인공판장 옆으로는 패널로 천장을 높게 만들어놓은 너른 공간이 있어서 화물차를 대고 짐을 내리거나 싣기에 편리하도록 되어있었다. 그 뒤로는 누런 벼가 황금빛을 뿌리며 가득가득 채워져 있는 논들이 보였다. 초록색 철망으로 되어있는 담장 밑에는 코스모스가 줄을 맞춰 피어있었다. 일요일 한낮은 너무도 조용했다. 사방의 풍경들이 모두 두꺼운 붓질을 한 정물화처럼 보였다. 만약 길을 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본다면 역시 하나의 정물로 보이겠지.하고 그는 생각을 했다. 이런 한낮에 자신의 그림자가 땅에 비치지 않는다면 해가 나오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굴하고 주마는 세상이 너무도 환하게 잘 보였다. 이럴 때면 역시 사람에게는 제3의 또 다른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물이 보이는 눈 말고 세상을 느끼는 눈이 따로 사람의 몸 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장 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잠시 후에 노란 빗금을 그어놓은 길 한가운데 하얀 승용차가 주차되어있는 사거리 길이 나왔다. 사거리 오른쪽 모퉁이에 동민수퍼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자그마한 가게가 보였다. “저, 여기에서 잠깐만요.” 여자가 말했다. 차는 동민슈퍼 옆에 스르르 멈춰 섰다. 주마는 여자를 따라 슈퍼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요~ 여보세요. 여기 술 한 병 주세요?” 통통한 아주머니가 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어떤 술로 드릴까요?” 여자가 주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소주가 나을까요, 청주가 나을까요?” 주마가 손가락으로 진열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청주가 났겠지요.” 여자가 주인아주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요, 저 술 한 병하고, 컵 하나랑 저기 과자 두 봉지 주세요.” 그리고 주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음료수 하나 드시겠어요?” 여자는 냉장고 진열장 문을 열고 빨간 액체가 담겨있는 작은 병을 두 개 꺼내 들었다. “이렇게 함께 계산을 해주세요.” 여자가 물건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가자 주마도 빨간 석류액이 담겨있는 작은 병을 손에 들고 여자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슈퍼에서 대각으로 길 건너편에 자그마한 동산 중턱을 깎아 만든 터 위에 규모가 웅장한 한옥이 들어서있었다. 여자가 그 한옥을 쳐다보더니 주마를 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 전화로 오빠가 길 위쪽에 있는 한옥을 끼고 산으로 올라가라고 했는데 저 한옥은 아닌 것 같지요?” 주마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슈퍼 옆에서 껌을 씹으며 자전거에 걸터앉아 있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저 한옥이 누구네 집이니?” 하얀 긴팔 티를 입고 있던 아이는 손에 들려있는 껌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저것은 영화 찍으려고 촬영용 세트로 만들어놓은 집이거든요. 저기에서 사람은 살지 않아요.” 주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다시 수퍼로 들어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뭔가를 묻고 나서는 다시 핸드폰 자판을 꼭꼭 눌러가며 전화를 걸었다. “오빠, 저예요. 네네. 여기 사거리 수퍼에 와있는데요. 네네 여기 수퍼 주인아주머니를 바꾸어 드릴 테니 주인아주머니에게 선산 위치를 설명을 해주세요. 그럼 전화 바꿔드릴게요.” 전화를 받고난 주인아주머니는 슈퍼 밖으로 나와 손가락으로 저쪽 하늘을 가리키며 뭔가를 설명해주었다. 여자는 고개를 까닥 흔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위로는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있는 아래로 파란 물이 가득 흐르는 강위에 다리가 놓여 있었다. 주마는 차를 몰아 그 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 앞으로 얼마쯤 달려갔다.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오른편은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벼가 출렁이는 논이 있었고, 왼편으로는 나지막한 산들이 보였다. 그리고 저 앞쪽으로는 산기슭에 한옥지붕이 예쁜 곡선을 그리며 보였다. 차를 길 가장자리에 세우고 주마와 여자는 차에서 내려 한옥이 있는 산비탈을 바라보았다. 길 안쪽으로 고추밭과 콩밭 있고 밭 가장자리에는 진보라색의 굵고 실한 가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가지의 일부는 밭고랑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생생한 자주빛의 굵고 실한 가지들이 수십 개나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광경이 주마에게는 왠지 낯설고 기괴하게 보였다. 가지는 어젯밤 혹은 오늘 아침에 떨어졌는지 거의가 윤기 도는 자주빛으로 싱싱해 보였다. 밭 사이를 지나서 밭두렁을 따라 걸어가자 산비탈을 평평하게 다듬어 놓은 양지쪽에는 봉분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여자는 산기슭의 봉분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뭔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버지 산소 앞에는 큰 잣나무가 서있다고 그랬는데 왜 잣나무가 안 보이지?” 울창한 잡목들과 활엽수 사이로 침엽수들도 무리무리 모여 있었다. 이제부터는 봉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잣나무를 찾기 위해 유심히 나무들을 살펴야 했다. 낮은 산등성이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키 큰 잣나무가 서 있는 양지바른 봉분은 찾지 못했다. 비탈진 산기슭을 오르내렸더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여자도 볼에 땀방울이 흘러내린 채 열심히 앞장을 서서 비탈길을 걸어 다녔다. 주미가 붉은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좀 겸연쩍은 얼굴로 손수건을 받아들며 이마와 볼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러고 나서 손수건을 주마에게 돌려주면서 여자가 말했다. “제가 손가방을 차에 놓고 와서요, 요즘에도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가 있네요?” 주마도 손수건을 활짝 펴서 이마와 목의 땀방울을 슬슬 닦아냈다. 능선 아래쪽 잡목림을 따라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밀려 내려오는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그들은 다시 고추밭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고추밭 위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채 작은 비석이 서있는 어느 봉분 앞에 섰다. 여자는 핸드폰을 다시 볼을 향해 들어올렸다. “여보세요, 오빠. 네, 저예요. 네네. 여기 콩밭도 있고 고추밭도 있는데, 바로 그 위쪽에 작은 비석이 서있는 김해 김 씨네 봉분이 하나 있거든요. 네네. 아, 네네 오빠 알았어요. 네, 그래요. 고마워요, 오빠.” 이번에는 여자가 자신 있는 태도로 또 앞장을 섰다. 조금 전에 꼼꼼히 살피면서 지나갔던 비탈길을 절반이나 올라가서 잡목이 우거진 샛길로 돌아들어갔더니 남향받이 터로 맑은 날이었다면 해바라기가 좋은 듯한 평평한 장소가 보였다. 그 가운데 봉분이 하나 보였고, 그 앞으로는 소나무와 키 큰 잣나무가 울타리를 두르듯이 서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예전에는 여기에서 바라보면 저 아래쪽으로 흐르는 파란 강물이 보였는데, 아마 그동안 소나무와 잣나무들의 키가 부쩍 자라서 앞의 경치들이 가려진 모양이에요. 십 몇 년 만에 아버지 산소에 와서 아버지 산소도 제대로 못 찾아 헤매고 애꿎은 선생님까지 수고를 끼쳐드려서 미안합니다. 참 무심한 딸이라고 속으로는 욕하셨지요?” 주마는 여자의 말간 얼굴을 쳐다보았다. 귓가에 들려오는 쑤석이는 소리들은 산속의 풀벌레들이 목하 사방이 가을임을 확인해주고 있는 살아있는 생명들의 떨림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자가 산소 앞에 술을 따라 올리고 술 잔 옆에는 과자봉지를 뜯어서 놓고는 절을 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더니 술잔을 들어 산소에 뿌리고 나서는 봉분에 자라있는 풀을 뽑기 시작했다. 아마 문중 사람들이 지난 추석에 성묘를 다녀가면서 벌초를 했던 모양으로 봉분은 깨끗했다. 주마도 하릴 없이 엉거주춤 앉아서 봉분의 풀을 뽑았다. 봉분을 감싸고 있는 때보다 잡초는 언제나 튼튼하고 키가 컸다. 산비탈의 주변이 너무도 조용했다. 마치 귓가에 고요~ 고요~ 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 조심스레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이어 소리를 죽여가면서 침을 꼴깍하고 삼키는 소리도 들려왔다. 주마도 마음에 짚이는 바가 있어서 살그머니 고개를 들어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가 쪼그려 앉은 채로 하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고 있었다. 작은 손바닥으로 가린 볼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봉분이 있는 주변은 아무 소리가 없을 때보다 더 큰 침묵이 들어앉은 것 같았다. 여자의 턱에 맺힌 눈물이 풀밭에 떨어지는 소리가 투욱 투욱 하고 들려오는 듯한 환청이 생길 것만 같았다. 슬픔이 슬픔을 몰고 다니는지 여자는 등을 들썩이며 소리 죽이던 울음은 조금씩 흐느낌으로 변했다. 이럴 때 주마가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뽑아낸 잡초의 뿌리에 붙어있는 부드러운 흙을 자꾸만 털어내고 있었다.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주마는 일어나서 여자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손에 쥐어주고 잣나무 아래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소나무와 잣나무의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소나무 가지에는 작은 솔방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마를 향해 걸어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자의 얼굴은 다시 말갛게 바뀌어 있었다. 오히려 가슴에 고인 슬픔을 후련하게 털어낸 탓인지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더 선명해 보였다. 여자의 붉은 눈자위가 하얀 얼굴 가운데서 더욱 붉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 아래 있는 생명들은 기쁘지 않은 것이, 또 슬프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선 채로 여자는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맏딸이었고,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은 차를 세워놓은 길가로 내려왔다. 자주빛으로 빛나던 가지를 보면서 밭두렁을 지나올 때는 여자가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저렇게 놔두면 다 버릴 텐데 좀 주어가면 안 될까? 가지 색깔이 참 예쁘기도 하네.” 올해는 고추가 대풍이라고 했는데 이곳 고추들은 병충해를 입었는지 탈색이 되어 회색을 띤 채로 말라가고 있었다. 농사가 잘 된 가지나 잘 되지 않은 고추나 밭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보였다. 길옆에 있는 어느 농가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오는데 화단에 심어져있는 자그마한 사과나무에 사과가 탐스럽게 영글어있었다. 집 안에 있는 화단에서 자란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맺힌 사과 알들은 땅이 주는 특별한 선물처럼 보였다. 길가에 서서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든지 볼 수 있는 선이 둥글고 나지막한 산들과 그 앞을 흐르는 강과 길가의 느티나무들과 산기슭을 두르고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들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게 있었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되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언제 오더라도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다니는 일은 없겠구나. 하고 주마는 생각을 했다.
주마는 차에 올라 여자와 나란히 앉았다. 차 엔진을 켜고 버튼을 눌러 음악방송으로 주파수를 맞췄다. 그러고 나서 기어 윗부분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이제 볼일은 다 마쳤고 서울로 올라가면 되겠군요?” 여자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더니 주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서울까지 태워다주시려고요?” 주마가 여자를 마주보며 말했다. “그러면 다른 해야 할 일이 또 남아 있습니까?” 여자의 얼굴에 얼핏 수삽한 빛이 지나가더니 말했다. “다른 일이 더 있는 건 아닌데요. 저는 괴산시내 터미널까지만 데려다주실 줄 알았거든요.” 주마가 또 기어 윗부분을 툭툭 치며 말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왕 나선 일이라면 마무리까지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나도 이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니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려 얼굴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말했다. “그러면 저야 고맙지만 신세를 너무 많이 지는 것 같아서요.” 주마가 음악방송의 소리를 조금 키우면서 말했다.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언젠가 내가 여행길에서 누군가에게 받았던 도움을 조금 되돌려주고 있는 거라니까요. 자, 그럼 가볼까요?” 차가 스르르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이자 여자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저어, 괴산읍내에서 친구 분과 통화하실 때 친구 분 댁에 부탁했던 사진액자가 있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주마도 그 말을 듣자 집에 들렸다가라고 하던 우드의 목소리와 사진액자 생각이 났다. “맞습니다. 나도 깜빡 잊고 있었군요. 그런데 그 친구 집에 들렸다가게 되면 아무래도 서울 도착시간이 좀 늦어질 것 같은데요.” 주마는 여자의 뜻을 물어보았다. “그래도 연풍이면 별로 멀지도 않는데 사진액자를 찾아가시는 게 났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주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나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연풍에 들렸다 차 한 잔 하고 서울로 출발을 하겠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세를 편하게 고쳐 앉아서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주마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연풍연가 주소를 쳐 넣었다. 하얀 화면에 지도가 올라오고 붉은 줄이 도로를 물들여가며 길 안내를 시작했다.
은화銀花의 꿈과 음악 사이.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요즈음 며칠 동안은 온통 그 생각만 하고 있을 정도였다. 출퇴근 시간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도 조금 일이 한가해질 때면 그 생각을 했다. 며칠 째 비슷한 꿈을 꾸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괴산의 선산에 모셔져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는데 알 수 없는 산길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산길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숲이 울창해지고 계곡은 깊어졌다. 그런데 날씨조차 흐려지면서 안개가 스멀스멀 끼기 시작하니 마음 불안해지고 슬그머니 두려움도 생겨났다. 그래도 아버지 산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자꾸만 산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돌아다녔더니 몸이 지치기도 하도 안개도 점점 자욱해지는데다 서서히 밝은 빛이 사위어가며 날이 어두워지려는지 어둑한 기운이 사방 숲속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왈칵 겁이 나면서 아, 이러다 사람들이 산에서 조난을 당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몸에 힘이 쭈욱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붓한 오솔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 이제 더 걷기가 힘에 겨워 저 모퉁이만 돌아서서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한번 주저앉으면 일어날 수가 없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그 모퉁이까지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두려움이 솟아났다. 잠시 쉬어간다는 희망이 아니라 그 자리에 주저앉을 거라는 절망감이 가슴 속에서 모락모락 일어났다. 불안하고 두려운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서 팽창을 해서 숨을 쉬는 것마저도 힘이 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무언가 모를 힘에 이끌리듯 모퉁이를 향해 걸어갔다. 제법 어둠해진 오솔길 모퉁이를 겨우 돌아섰더니 저쪽에서 부연 빛 덩이 같은 것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뭘까?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주변이 점점 밝아지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커다란 노루 한 마리였다. 발치 앞까지 다가온 노루가 아는 체를 하듯 고개를 서너 번 까닥거리더니 숲길을 따라 사뿐사뿐 걸어갔다.
노루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때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이 연주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관현악이나 합창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평소에 즐겨 듣던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그 노루가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자신도 모르게 그 빛 덩이를 따라 걸어갔다. 이제 숲속은 어둡지도 않았고 한 발짝씩 걷는 걸음에서 두려움이 솟아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며 마치 친구들과 산행을 나온 것처럼 가슴이 가볍게 들뜨기까지 했다. 빛 덩이와 음악소리는 밝음으로 안내를 해주는 가장 친근한 두 명의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숲길을 따라 몇 번 모퉁이를 돌아서고 작은 계곡을 따라 걷고 하다 보니 왠지 눈에 익은 장소가 나타났다. 울창한 숲속으로 따라 들어가 모퉁이를 돌아섰더니 만약 해가 나와 있다면 분명 양지바른 터일 아버지 산소가 보였다. 그러자 앞장서서 걸어간 노루는 아버지 산소 주위를 빙빙 돌아다녔다.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고마운 마음에 노루에게 다가가 털이 부드러운 목을 꼭 껴안아 주었다. 그렇게 아버지 산소 주위를 노루와 함께 빙빙 걸어 다녔다. 이렇듯이 내용이 비슷비슷한 꿈을 며칠 째 계속 꾸었다. 꿈이 이상하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왠지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도 들어 손가락을 꼽아 보았더니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에 아버지 산소를 찾아보고 나서 그 뒤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 해씩 미루다보니 어느덧 13년이 흘러버린 것이다.
은화는 며칠 전에 만났던 친한 친구인 바나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더니 바나는 호들갑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깔깔깔, 그거 태몽 아니야? 얘는, 노인네들이 그 꿈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태몽이라고 그러겠구나.” 은화는 바나의 말에 괜히 가슴이 뛰었다. 그렇지만 얼굴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태몽은 무슨 태몽이니. 그나저나 요새 꿈 때문인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기는 한단다. 생각이 난 김에 아버지 산소에 한번 다녀올까 생각 중이다. 너 혹시 오는 일요일에 시간이 비면 나랑 함께 괴산에 내려가지 않을래? 바람도 쏘일 겸 말이야. 응?”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갈색 커피를 작은 빨대로 쪼옥 빨아먹더니 친구가 말했다. “오는 일요일이라고? 으음, 다른 계획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함께 다녀오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되면 충주에 사는 언니네 들려와도 좋겠다. 언니네 사과 농장에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텐데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언니가 한번 놀러오라고 했거든.”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용기를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은화가 다짐을 하듯이 말했다. “그러면 말이야 내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쯤에 연락을 할 테니 그때 출발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일요일 아침에 만나도록 하자꾸나. 가능하면 좀 일찍 나서기로 하자. 그래야 도로사정이 좋을 테니까 말이야.”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들은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카페에 앉아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속닥속닥 주고받으며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은화가 미처 전화를 하기도 전에 바나로부터 금요일 저녁에 전화가 걸려왔다. “응, 바나니?” 은화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핸드폰 속에서 바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은화야 미안해. 이번 일요일이 조카 생일이어서 조카들이랑 일요일에 자연농원에 가기로 해놓고선 글쎄 그걸 깜빡 잊어버리고 너하고 또 약속을 했구나. 미안해서 어쩌니?” 바나가 미안해 할 때면 버릇처럼 하던 혀를 낼름 하는 얼굴이 떠오르자 웃음이 나왔다. 바나의 멋쩍어 하는 얼굴이 겹쳐지는 하얀 핸드폰 위에 대고 은화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않니. 그 개구쟁이들하고 내가 고생을 좀 하겠구나. 그래 그러면 괴산 다녀와서 내가 전화를 할게.” 바나가 다시 생기 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잘 다녀오고 다음 주에 만나면 내가 맛난 거 사줄게.” 통화가 끝나자 은화는 인터넷을 켜고 들어가 괴산군 각연사.하고 문자를 쳐서 넣고 검색해 보았다. 먼저 유서 깊은 절에 들려 기도를 드리고 난 뒤에 아버지 산소가 모셔져 있는 선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 전 어렸을 적 충주에서 살았을 때 각연사를 가본 적이 있기는 해도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은 곳이라 낯설기는 하지만 유서 깊은 고찰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은 집에서 빨래와 집안 청소 등 밀린 일들을 대충 마무리 해놓고는 음악을 들으면서 쉬다가 저녁에는 평소보다 이르다싶게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어쩌면 하루 내내 운전을 해야 했고, 또 이왕이면 새벽같이 서울에서 괴산으로 출발을 하고 싶어서였다. 간단한 먹을 음식은 아침에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혹시 오늘밤에도 혹시 똑같은 꿈을 꾸게 되지 않을까하고 은근히 기대를 하면서 잠자리에 누웠다. 막상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있으려니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것이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소리를 낮추어 음악방송을 켜놓았다.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 클라리넷소리들이 귓등을 간질이듯 어두운 방안을 물결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짬엔가 그만 사르르 잠이 들었다. 은화는 핸드폰에서 울려나는 모닝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보았더니 새벽5시였다. 한 10여 분가량 그렇게 누워 있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음력 초이튿날이라 달도 없고 하늘이 흐린 탓인지 별도 보이지 않는 창밖은 아직 깜깜했다.
각연사 가는 길.
손가방과 좀 더 큰 검정 자루처럼 생긴 가방을 옆 좌석에 놓고 운전석에 앉았다. 심호흡을 깊숙하게 한 번 하고나서 시동을 걸었더니 차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현대인에게 자동차는 더 이상의 사치품이나 과시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두 발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자동차는 척척 해내주었다. 그런데다 불평도 하지 않고 투정도 하는 법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기름을 넣어주고, 두세 달에 한 번 가량 엔진 오일을 갈아주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코끝이 찌이 해지는 추운 겨울날이나 목 뒷덜미가 녹아드는 듯한 여름철에도 별다른 신경을 따로 써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딱 한 가지가 항상 염려스러웠다. 고속도로나 지방에 갔을 때 바퀴가 펑크 나면 어쩌나, 혹시 엔진이 멈춰 길 한가운데서 차가 서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여느 여성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차 정비에도 둔감한 은화로서는 처음 겪어본 일이었지만 지난주에 시내에 나갔다가 을지로5가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속도를 줄이면서 완만하게 커브를 도는데 엔진이 스르르 꺼져버렸다. 길 한가운데라 무척 당황을 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 매는데 지나가던 어느 택시 기사님이 대신 운전석에 앉아 비상등을 켠 뒤 시동을 켜려고 몇 번인가 시도를 해보다가 고개를 흔들면서 레커차를 불러주었다. 레커차를 타고 자동차 직영 서비스센터에 도착을 해서 자동차를 점검해보았는데, 손에 기름때 묻은 목장갑을 낀 관리기사가 알려주었다. “아직 연식이 얼마 안 된 비교적 새 차인데 엔진에 결함이 생겼네요. 엔진을 들어내고 부속을 교체하면 깨끗하게 수리되겠습니다. 여유 있게 한 삼 일 뒤에 찾으러 오십시오. 저기 사무실로 가서 수속을 밟고 가세요.” 그 생각이 불현듯이 나자 오늘은 괴산까지 가는 장거리 여행이라 첫 시동이 부디 힘차게 걸려달라는 뜻으로 심호흡까지 가슴 깊숙이 해가며 엔진을 걸어보았는데 반응이 쾌청이었다.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를 받고 나온 뒤로는 자동차가 힘이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하기야 자동차 수리비로 예정에 없던 삼십 여 만원이나 들였으니 자동차도 양심이 있다면 뭔가는 달라져야했겠지만.
허공중에 밝은 기운이 빗살처럼 쫘악 펼쳐지면서 어둠덩어리들이 자디잘게 부셔져 길바닥에 떨어져 내리자 이내 눈 녹듯이 사라져갔다. 석양을 향해 밝음 속으로 어둠이 스며드는 속도보다 어둠을 밀어내고 밝은 기운이 여명에 깃드는 시간이 더 빠른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중부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변경관들이 금세 환해져 왔다. 엊저녁에 인터넷상에서 고속도로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어떤 길을 택할까 하고 잠깐 망설였지만 역시 중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갔다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에 연풍IC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빠르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엊저녁에는 잠자리에 들면서 은근히 기대를 해보았던 신비한 꿈은 못 꾸었지만 잠도 푹 잘 잤고, 차 엔진소리도 좋을뿐더러 무엇보다 오랜만에 아버지 산소에 간다는 들뜬 마음과 더불어 왠지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무척이나 기분이 상쾌했다. 커다란 원을 따라 돌듯 왼쪽으로 굽어있는 완만한 커브의 호법분기점을 돌아가면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여주진입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가기 전에 여주휴게소에 들려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료게이지는 어제 연료를 가득 채워둔 덕택에 빨간 바늘이 맨 윗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주휴게소라는 이정표가 보이자 오른쪽 신호등을 켜고 휴게소 진입로로 들어섰다. 휴게소에는 벌써부터 제법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그 차에서 내린 원색복장의 행락객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휴게소 안팎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휴게소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무얼 먹을까 하고 메뉴판을 쳐다보고 있는데 대학생인 듯한 두 젊은 사람이 쟁반에 우동을 담아 은화 옆으로 지났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소한 우동국물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벌써 아침, 저녁으로는 따스한 국물이 생각나는 휘영청한 가을이 깊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은화도 우동을 시키고 곧바로 음식이 나오자 우동그릇을 쟁반에 담아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더운 여름날 지치고 목마를 때 첫 한 모금의 맥주가 그러하듯이 첫 숟갈의 우동국물 한 모금은 목구멍까지 시원하게 적셔주었다. 어제 저녁식사도 사과 반쪽과 우유 한 컵으로 때웠던 만큼 슬슬 시장기가 돌던 참이라 우동 한 그릇을 달게 비웠다.
이렇게 우동을 후후 불어가며 먹다보면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시장 근방에 있던 칼국수 집에 어린 은화를 데리고 나가 따끈한 칼국수를 가끔 사주셨던 생각이 났다. 아버지께서는 말 수도 별로 없으셨고 자상하신 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술이나 담배를 즐겨하지도 않으셨지만 집에 계실 때는 책을 많이 보고 계셨다. 그렇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들을 집밖에서 보내셨다. 어떤 때는 돈을 벌어온다고 외지에 나가 2,3년 만에 돌아오신 적도 있었고, 보통 몇 달씩 집을 비운 적이 많았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외지로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시면 한 동안은 집안이 풍족하게 지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만큼 시간이 흐르면 또 어디론가 떠났다가 한참만에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맏딸이었던 어린 은화는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면 항상 신이 났었다. 시내에 외출했다 들어오실 때면 은화가 좋아하는 신발이나 동화책, 과자를 잊지 않고 사다주셨다. 그렇지만 은화가 철이 들 무렵부터는 아버지께서 몸이 아파 안방에 자주 누워계셨다. 그래도 은화는 그런 아버지를 끔찍이도 좋아했다. 용돈을 조금씩 모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두유나 사탕을 사서 안방에서 주무시는 아버지 머리맡에 살짝 놓아두곤 했었다. 서울로 진학을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취업을 했을 때 그해 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내려가 병상에서 어쩌다 홀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것도 은화였었다. 바람이 빠져나가는 듯한 숨소리 사이로 은화의 손을 꼭 잡으시며 은화의 이름을 두세 번 부르셨던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은화의 몫이었다. 은화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로 한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던 상처에는 조금씩 새살이 돋아났다. 음식 냄새가 요란히 풍겨나는 휴게소 식탁에 앉아 마지막 단무지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는 허름한 탁자에 아버지와 마주앉아 뜨거운 칼국수를 후후 하고 불어가며 맛나게 먹고 있던 어린 은화의 모습이 눈앞에 잠깐 동안 어른거렸다.
주변 식탁의 사람들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깨끗하게 비워진 우동그릇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은화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생각하면서 쟁반채로 들고 일어나 통로로 몸을 돌렸다. 그때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발을 멈칫 하면서 은화의 눈앞으로 다가오던 쟁반을 옆으로 살짝 돌렸다. 그러자 쟁반 가장자리에 놓여있던 쇠 젓가락이 쟁반바닥으로 또그르르 굴러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누군가가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통로를 지나가는데 은화가 예상하지 못하게 불쑥 쟁반을 들이밀며 통로 쪽으로 몸을 일으키자 몸을 멈칫 세우면서 쟁반을 옆으로 돌려주는 것 같았다. “엇, 미안합니다.” 앞의 누군가가 은화에게 사과의 말을 했다. 은화도 고개를 숙인 그 상태에서 말했다. “지나가는 줄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자신의 단발머리가 귓가에 철렁하고 스치는 감촉을 느꼈다. 은화는 몸을 옆으로 틀어 통로로 나와 쟁반을 들고 식기 반납처를 향해 곧장 걸어갔다. 그리고 식당을 걸어 나와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주차장 한 켠에 있는 둥근 탁자에 앉아 흐린 하늘을 쳐다보며 커피를 홀짝홀짝 들이켰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제는 또 가볼까? 은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되어 있는 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식당 앞 무지개빛 파라솔 아래 있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서 계단을 내려서면서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는데 초록색 만 원 권 지폐가 함께 딸려 나와 계단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저기요~ 여보세요! 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졌어요.” 은화는 말을 해주고는 그대로 차를 향해 걸어갔다. 엔진소리도 경쾌하게 울리면서 차는 휴게소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을 했다가 금세 보이는 여주JC를 통해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연풍IC 진입로를 지나 괴산으로 들어섰다.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길을 따라 달려갔더니 각연사라는 파란 이정표가 나타나며 마을로 들어서는 작은 길이 보였다. 작은 동네를 지나 좁은 숲길을 따라 달려가는데 왼편으로 새로 집을 짓는 공사장도 보였고, 저만큼 앞에서는 웬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지 길 가장자리에 노란 안전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쪽에서는 커다란 트럭들이 몇 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주위에 누런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공사 중인 길은 통행이 금지되어 있고, 그 대신 어느 집 앞으로 지나가는 임시도로가 벌건 황토가 파헤쳐진 상태로 개설되어 있어서 그쪽으로 누런 흙먼지 속을 지나가는데 맞은편에서 커다란 화물트럭이 다가오자 차를 길 가장자리로 붙여주었다. 그런데 차 왼쪽 앞바퀴가 길바닥이 파헤쳐진 구덩이에 빠졌는지 덜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물트럭이 지나가자 은화는 차에서 내려 앞바퀴를 보았다.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구덩이 속에 왼쪽 앞바퀴가 들어가 있었다. 그 정도 구덩이는 잘만 하면 빠져나올 수도 있을 듯했다. 다시 차에 타고 기어를 R에 놓은 채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보았다. 엔진이 부웅 소리를 내자 차가 뒤로 움찔거리며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듯하더니만 앞바퀴가 구덩이 비탈에 걸려 계속 헛바퀴를 돌려댔다. 몇 차례를 반복해 보았으나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 생각만큼 쉽사리 빠져나오질 못 했다. 그러자 근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근로자 두 사람이 차 있는 데로 다가와 우리가 앞쪽에서 차를 밀어줄 테니 다시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은화는 고맙다고 말하고 다시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보았다. 자동차가 움찔거리더니 앞에서 두 사람이 밀어대는 힘 덕택에 구덩이를 간신히 빠져나왔다. 은화는 고개를 차창으로 내밀어 큰소리로 근로자들을 향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기어를 D로 바꾸려는데 이번에는 기어가 듣지를 않았다. 어, 이상한데 하는 마음으로 기어를 몇 차례 움직여보다 앞에 있는 게이지를 쳐다봤더니 엔진이 꺼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시동을 걸어보았지만 이번에는 엔진이 켜지지를 않았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한적한 시골길이라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몇 차례 시동을 걸어보았으나 엔진은 마치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것처럼 키익~ 키익~ 하는 소리만 낼뿐 꼼짝을 하지도 않았다. 은화는 짜증이 났지만 얼마 전에 유사한 상황을 겪어봤기 때문에 보험회사를 통해 레커차를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러고 난 뒤 전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지나가던 검정색 차가 자신의 은색 차 앞쪽에 멈춰서더니 어떤 남자가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와서는 말했다. “차가 고장이 났습니까?”하고.
내 마음 속의 풍금風琴.
생각지 않은 곳에서 우연치 않게 낯선 남자의 차를 얻어 타게 된 은화의 마음속은 좀 야릇해졌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처신이 잘하고 있는 일인지 잘못하고 있는 일인지가 도대체 판단이 잘 서지를 않았다. 지금이라도 남자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한 부탁의 말을 무르고 레커차를 기다렸다가 그 편에 동승을 해서 일단 괴산 시내로 나가볼까 어쩔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 남자가 은화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모르는 남자의 차를 얻어 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데 혹시 불안하거나 그러지는 않으세요?” 남자의 질문을 받고 나니 어머, 정말 모르는 남자와 차를 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야 물론 불안하지요.라고 마음속으로는 생각을 했으나 입에서는 본마음과는 다른 미묘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뭐, 그야 좋을지 블안해야 할지는 오늘 일진에 맡겨야지요.” 오늘 일진에 맡겨야지요... 오늘 일진에 맡겨야지요... 은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생뚱맞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마치 오늘 일진에 한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만만하다는 자신의 의도를 남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듯이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러자 혹시 내가 요즘 들어 연거푸 꾼 꿈을 믿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남자가 자신을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안 은화는 어쩐지 깊은 속내를 들킨 것만 같아 멋쩍은 기분을 무마해볼 양으로 씨익 웃었다. 남자는 모처럼 신문에 난 선행기사를 읽는 표정을 지으며 은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은화는 이런 상황에서 저런 시선을 받고 있을 때면 어떤 자세와 얼굴 표정을 취해야 하는지 정도는 여자 본능의 가르침에 따라 알고 있었다. 그러고 난 뒤 레커차가 올 때까지 납작한 돌 위에 앉아 30여 분간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부담스러운 그 시간들을 메우려고 가방에서 과일을 꺼내와 나누어 먹기도 했다. 이윽고 레커차가 도착을 했고, 은화는 레커차 기사에게 간단한 설명을 한 뒤 기사가 보여주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레커차는 소를 쇠코뚜레에 고삐를 매어 끌 듯 차의 앞바퀴를 매달아 올려 먼지를 풀풀 날리면서 달려가버렸다. 서울에서 함께 집을 나섰던 차가 사라지자 은화는 왠지 혼자 남은 것 같은 쓸쓸함이 밀려왔다. 그래, 지금부터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을 해보는 거야.라고 생각을 했다. 앞으로의 일들이 좋을지 불안해야 할지는 오늘 일진에 맡겨봐야 아는 것 아니겠어.하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이 말해주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낯선 남자하고의 쏠쏠한 동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숲속의 연풍연가戀風戀家.
그러니까 지난 해 늦은 봄에 우리들 몇몇이서 연풍연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 괴산 읍내에 있는 버스터미널 앞에서 우드를 만나기로 했었다. 마침 그날이 괴산 장날이라 괴산 장 구경을 할 겸 장을 보기로 하고, 또 괴산의 명물인 올갱이국도 한 그릇씩 먹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 앞에서 우드와 만난 뒤 먼저 두어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괴산 장을 구경하러갔다. 장터의 입구에 철망으로 만들어져 줄줄이 놓여있는 박스 안에는 강아지 새끼들과 고양이 새끼들이 들어있었다. 철망 안에 여남은 마리의 새끼들이 서로 엉킨 채 굼실거리며 놀고 있는 모습들이 귀여워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쭈그려 앉아 구경을 하다가 이번에는 그 뒤쪽에 있는 닭장 안의 생김새가 제각기 다른 닭들을 구경했다. 붉은 볏이 의젓한데다 검은 꼬리에 풍채가 좋은 장닭도 보았고, 그 주변을 고개를 끄덕이며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는 암탉들도 보았다. 그런데 철망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더니 닭 중에 한 마리가 구석에 비실비실하게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따금 다른 닭들이 그 닭에게 다가가 한 번씩 부리로 쪼아대는 것이었다. 나는 이상해서 닭장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닭 장사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닭 장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해주었다. “짐승 중에서 제일 사납고 텃세가 심한 놈이 바로 닭인데 제일 늦게 닭장에 들어온 닭을 먼저 있던 닭들이 텃세를 하는 통에 다쳐서 저렇게 한 귀퉁이에서 비실대고 있는 거지요.”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그렇다면 다친 닭은 왜 닭장에서 빼내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닭 주인이 밥 먹으로 다녀온 사이에 여러 마리가 너무 쪼아대서 꺼내주어도 이미 살기가 틀린 것 같아 그냥 놔두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는 그렇더라도 저렇게 놔두면 불쌍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닭 장사 아저씨가 아참, 멀쩡한 닭도 하루에 수십 마리씩 잡아 생닭으로 파는데요.라고 말하고는 허허 웃었다. 그 말에 나도 하긴, 그렇기도 하네요.라고 말하고는 따라서 허허 하고 웃었다. 닭 장사 아저씨에게 닭의 생사란 그날그날의 매상이자 사업의 대상일 테니 언제나 팔려나가는 닭들의 마릿수가 가장 중요하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우리는 장터 안쪽으로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을 구경하다가 초록색 만 원 권 지폐 무늬의 재수팬티의 아이디어가 돋보여 그 팬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까불어대다가 팬티가게 사장님께 혼이 나가도 했다. “아니, 이것 보쇼! 아직 마수도 못했는데 점잖은 양반들이 빤쓰를 들고 그렇게 영업집 앞에서 머리통에 뒤집어 써가며 장난을 치면 됩니까? 빤쓰라도 한 장 사가면서 장난을 치든지 말든지 할 일이지 뽄새를 보아하니 살 것 같지도 안구만.” 그러자 우리가 슬그머니 진열대 위에 내려놓은 재수빤쓰를 탈탈 털어 솜씨 있게 갠 뒤에 무늬를 맞추어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우리들은 그 자리에서는 좀 머쓱했지만 저만큼 돌아서서는 하하거리며 웃어댔다. 사실 말이지만 명색이 괴산 장날인데 장터 마당이 흥겨운 것까지는 그만두더라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썰렁했다. 경기가 전체적으로 안 좋은 까닭도 있겠으나 올봄의 극심한 가뭄도 한 몫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원래가 가뭄이 심하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뛰기 시작하면 경기가 안 좋아지고, 경기가 좋지 않으면 자연 인심이 사나워지기 마련이어서 평소 같으면 웃고 지나칠 재수빤쓰 가게 사장님의 심사가 십분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파리 날리는 영업집 앞에서 재수빤쓰를 머리통에 둘러쓰고 기념사진을 찍은 우리가 죽일 놈이지, 암만! 오일장이 열리고 있는 장터에 돌아다니는 손님들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한산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재수빤쓰 가게 사장이래도 구경꾼들의 장난질에는 화가 날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군침 도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찐빵가게도,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져나는 통닭튀김 집도, 예전 같으면 골라, 골라!를 신나게 외쳐대던 옷집 사장님 가게도 맨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모퉁이 한 켠에 앉아서 고무 다라이를 앞에 놓고 푸성귀를 팔고 있는 할머니께 상추랑 풋고추랑 아욱 같은 채소를 사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들었다. 그리고 수레에 실려 있는 초록색 바탕의 검정 무늬가 선명한 커다란 수박도 세 덩이나 흥정을 했고, 둥근 양파도 빨간 그물망 째 샀다. 우드는 그런 와중에도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 저녁과 내일 먹을 것들을 장을 봐서 차에 실어놓고 이제는 점심을 먹으려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버스터미널 옆에 매미처럼 딱 붙어 있는 원조 올갱이국집에서 우리들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식사로는 조금 늦은 시간에 음식점으로 들어갔더니 마침 그날따라 손님이 평소보다 많았던지 밥이 떨어져버려서 새로 밥을 지을 동안 30여분가량을 기다려야 한다고 음식점 아주머니가 말해주었다. 우리들은 그 정도야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어서 식탁에 둘러앉아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 식탁 말고도 두어 군데의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다른 일행들도 있었다. 식당 안쪽 벽에는 이 집에서 올갱이국을 먹고 갔던 많은 사람들이 음식에 대한 평을 해놓거나 이곳을 추천하는 글이 쓰여 있는 코팅된 종이나 메모지들이 도배를 하듯이 붙어 있었다. 그 중에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라도 알 만한 사람도 간혹 눈에 띄었다. 그리고 또 벽에는 올갱이의 효능이라든지 올갱이국이 성인병에 좋다!라는 인쇄물들이 한쪽에 붙어 있었다. 그것을 보자 나는 갑자기 응? 올갱이? 올갱이가 뭐지? 하는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우드에게 물었다. “우드, 올갱이가 뭐지? 무엇을 올갱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자 우드가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응, 올갱이? 다슬기를 괴산 인근에서는 올갱이라고 하거든. 이쪽에서 나오는 올갱이가 다른 지방에 비해 맛이 훨씬 좋은가봐. 그러면 주마, 너네 동네에서는 다슬기를 뭐라고 하는데? 그게 지방마다 명칭이 조금씩 다르더라고.” 우드가 인자하게 보이는 작은 실눈을 더 가무스름하게 뜨면서 나에게 물었다. “으응, 다슬기를 이 지방에서는 올갱이라고 하는구나. 우리는 어렸을 적에 대사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우리도 대사리를 개울에서 잡아다 삶아서도 먹고 국도 많이 끓여먹었는데.” 그런저런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고 있는 사이에 기다리던 막 지은 하얀 쌀밥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올갱이국이 점심식사로 나왔다. 시장하던 참이라 올갱이국에 밥을 말아 맛나게 먹었지만 기대를 했던 맛에는 약간 못 미치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우드가 우리 일행들에게 말했다. “아마 점심에 쓸 올갱이가 부족했던가봐. 이곳이 올갱이국이 맛이 있는 집인데 국에 올갱이가 평소보다 너무 적게 들어가서 올갱이국 국맛이 제대로 나지 않은 것 같더라구. 마침 연풍연가에 가면 냉동실에 보관해놓은 올갱이가 한 봉지 있으니까 된장이랑 아욱이랑 넣어서 제대로 한번 끓여 맛있게 먹어보도록 하자구.” 언제 들어봐도 친구인 우드의 말에는 진정성이란 게 들어있어서 연풍연가에서 먹게 될 올갱이국은 당연히 맛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에 너른 논들이 넓게 펼쳐져있어서 그 가운데로 시원하게 뚫린 길을 지나 연풍연가가 있는 마을에 들어섰더니 괴산을 상징하는 느티나무 몇 그루가 정자 옆에 시원스럽게 하늘을 향한 채 서 있었다. 차는 개천을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가더니만 작은 다리가 있는 빈터에 멈추어 섰다. 낡은 시멘트 다리를 건너 개울로 변한 작은 계곡의 조붓한 길을 따라 걸으면 두세 채의 가옥 저 위쪽으로 초록색 철망 울타리가 먼저 보이고 나서 동그란 쇠 손잡이가 운치 있게 걸려있는 녹색 대문의 연풍연가가 나타났다. 담장 밖으로 무성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감나무와 뜰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고욤나무와 집 뒤꼍에 울창한 가지를 뻗치고 있는 앵두나무가 연풍연가를 중심으로 아담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들은 환호성을 울리면서 마당에 들어섰다. 마당 오른 편에는 수도꼭지가 나와 있는 샘이 있었고, 왼편 담장 아래로는 평상이 놓여 있었다. 현관 입구 주변과 커다란 창 아래 있는 나무 데크 밑으로는 제철에 피는 무지개 빛 꽃들이 합창소리를 내면서 몸피를 부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갈색 지붕까지 매어놓은 철사 줄을 따라서는 붉거나 보라색의 나팔꽃들이 하얀 패널 벽과 어울리게 피어 있었다. 그래, 그 모양 그대로가 뷰티풀이었다. 일행들이 간단하게 몸을 씻고 짐을 풀어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동네나 한 바퀴 돌아보려고 슬그머니 연풍연가를 빠져 나와 아담한 골목길들을 터덜터덜 걸어 다녔다. 동네를 한 바퀴 빙 두른 뒤에 다시 연풍연가로 올라왔다가 연풍연가를 지나 계속 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자그마한 계곡을 따라 올라가 보기로 했다. 산기슭의 비탈이 점점 키가 커지면서 그 안쪽 숲속으로는 별장인 듯한 지붕이 뾰족하고 창문이 예쁜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작은 등성이를 넘어서자 다시 짙고 푸른 숲들이 눈앞에 가득 차게 펼쳐져있었다. 울창한 나뭇가지로 인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둠직한 숲속 길을 지나 커다란 느티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 모퉁이를 돌아섰더니 숲길을 따라 널찍한 터에 아담한 유럽풍 집들이 이십여 채 남짓 모여 있는 것이 마치 남해에 있는 프랑스마을이나 독일마을처럼 유럽의 작은 마을 하나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것처럼 보였다. 잠깐 저 마을에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행들에게 말없이 나온 시간이 좀 길어진 것 같아서 오늘밤이나 내일 시간이 나는 대로 일행들과 다시 한번 오도록 하지 뭐 하고 생각을 했다. 연풍연가로 돌아갔더니 일행들은 마을 앞 정자에 나가 동네 어르신들과 수박을 두 통이나 나누어 먹으면서 재미나게 놀다 돌아왔다며 내가 잠시 집에서 빠져 나가 있었던 것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 눈치들이었다.
저녁식사는 우리들이 만들고 꾸며낸 성대한 만찬이었다. 참나무 숯불에 지글지글 구운 고기를 잘라 상추에 싸서 양파와 풋고추를 넣고 그 위에 막된장을 올려 쌈을 싸먹었고, 담백하고 고소한 나물무침으로 끝없는 입맛이 반 박자 쉬어가도록 다독여주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제대로 된 올갱이국에 밥을 말아 마당 텃밭에서 뽑은 채소와 뒤꼍에서 따온 앵두로 샐러드를 만들고, 맛이 갓 들어가는 열무김치와 함께 먹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간단히 식사 뒷정리를 한 후에 포만감을 느끼며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 속에서 모여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모두 얼근하게 취해서 각자 편한 위치대로 자리를 보고 푸른 몽상속의 잠으로 빠져들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자던 내가 잠결에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에 얼핏 잠이 깬 것은 새벽 두 시가 지나고 있는 무렵이었다. 어두운 창으로 달빛이 밀려들어와 방안의 정경들이 눈 오는 날 대숲처럼 부옇게 보였다. 어디선가 낮게 코고는 소리와 깊고 차분한 숨소리가 교대로 들려왔다. 그렇게 10여 분가량 누워 있다가 소파에서 부스스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셨다. 열어놓은 창을 통해 넘치듯 들어온 달빛 줄기가 방바닥에 찌그러진 직사각형을 그려놓고 있었다. 오늘밤이 보름날이던가?하고 생각을 하며 나는 현관으로 나가 마당으로 내려섰다. 공활한 새벽하늘에 눈사람 몸통 같은 하얀 달이 데롱 매달려 있었다. 가벼운 골바람이 지나가자 담장 옆에 서있는 수은등 아래 있는 나뭇가지들은 희번득거리는 잎사귀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담장 밑의 검게 보이는 화초들 속에는 짙고 푸른 유월의 초록들이 낮게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어제 오후에 비탈길을 따라 작은 잔등을 넘어 숲 안쪽에서 보았던 유럽풍의 마을이 생각났다. 이렇게 세상을 은밀하게 내려쬐는 둥실한 달 아래서 아담한 독일이나 프랑스마을을 방문을 하기에는 적절한 시간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대문을 열고 작은 계곡을 따라 달빛을 밟아가며 산비탈 길을 걸어 작은 등성이를 넘은 뒤에 짙은 숲으로 들어갔다. 검고 키가 큰 나무 몇 그루가 있는 모퉁이를 지나갔더니 달빛에 부옇게 빛을 발하는 숲을 따라 아담한 마을이 들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제 오후에 보았던 그 마을이었다.
마을 주위에는 하얀 널빤지로 만든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는데 그 부분이 마을 안쪽과 바깥쪽의 선명한 경계를 만들어내며 유난이도 도드라져 보였다. 은실처럼 쏟아지는 달빛 아래서 창이 크고 지붕이 뾰족한 유럽 마을이 으슴한 달그림자를 부드럽게 한쪽으로 흘리면서 잠들어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본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분위기로 봐서 콩쥐와 팥쥐는 아닐 테고 숲길을 돌아다니다 지친 헨젤과 그레텔이나 말썽꾸러기 피노키오가 침대에 몸을 묻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겠지. 아니, 이런 달빛 아래라면 숲속의 잠자는 공주나 일곱 난쟁이와 함께 사는 백설 공주를 떠올릴 수도 있을 테니 깜깜한 밤과 달빛과 유럽마을에서 풍겨오는 상상력 앞에서는 꾸지 못할 꿈이 없을 듯싶었다. 그런데 사실 헨젤과 그레텔이나 일곱 난쟁이와 백설 공주를 원작으로 본다면 잔혹동화나 어른 동화로 구분을 해야 한다. 원래 그림 형제가 1812년 처음 펴낸 민화집 <그림동화>속의 백설 공주는 왕인 아버지와의 성관계가 탄로나 계모인 왕비에게 궁정에서 쫓겨난 팜 파탈 같은 여성이다. 게다가 일곱 난쟁이는 밤마다 백설 공주의 침상을 교대로 오르는 호색한들이다. 발표 당시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해 1857년 7판으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에 널리 알려진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이야기다. 미국 영화사 월트 디즈니는 1937년 이 이야기를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 상업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문화로 포장하여 세계에 퍼뜨렸고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림 형제의 원작에 밀봉되어 있는 어두운 사회적, 심리적 모습들은 당시 유럽사회의 세련과 풍요 뒤에 감추어진 퇴폐와 금기라는 이름을 들추어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되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환상과 문화라고 부르는 고도의 상술인 셈이다.
달빛에 빛나는 하얀 울타리는 마치 현실과 동화의 세계를, 순간과 영원의 세계를 선명하게 구분지어 놓은 금단의 하얀 선처럼 보였다. 잠시 그렇게 마을 안쪽을 바라보다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마을 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길을 건너 마을 광장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퍽~ 퍽~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마을 광장과 그 주변의 가로등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나는 몸을 멈칫하며 그 자리에 섰다. 마치 한꺼번에 쏘아올린 불꽃놀이처럼 환각인 듯한 밝은 조명들이 마을 광장과 주변의 뾰족지붕 집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 쪽에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흥겨운 음악이 들려왔다. 이 산속 마을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나는 기이하기도 했지만 호기심에 끌려 홀리듯 광장을 향해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광장 가운데는 긴 탁자와 커다란 술통이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그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거나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조명들과 그 사이를 분주히 움직이는 몇몇 사람들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금 여기서 무얼 하는 겁니까?” 그 사람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 너머 동네 분이세요? 오늘 밤에 촬영이 있어서요. 미리 군청에 신고를 하고, 어제 동네 이장님께도 찾아뵙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나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또 물었다. “이 마을에는 누가살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도리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동네 분이 그것을 모르세요. 여기에 영어체험 마을을 지어놓고 아마 다음 달엔가 개장을 한다고 그러던데요. 그래서 우리가 이곳을 오늘 밤 잠시 촬영장소로 빌렸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네. 그렇군요.” 나도 조명들 사이에 서서 광장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파티를 쳐다보았다. 서서히 주위 환경이 눈에 익자 한쪽에서서 끊임없이 지시를 하고 있는 감독인 듯한 사람도 보였고 다음 장면을 위해 대기 중인 연기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가끔 바람에 맥주냄새가 풍기는 걸로 봐서 광장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진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파티장면은 몇 번이고 중지했다 다시 찍고 또 중지했다 다시 찍기를 반복을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파티장면의 촬영이 끝났는지 사람들은 광장 건너편에 있는 집으로 몰려갔다. 아마 집안으로 들어가 실내에서 촬영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조명들이 집 주변과 실내를 환하게 밝혔다. 커다란 거실 창을 통해 집안의 풍경들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여주인공인 듯한 키가 크고 날씬한 여배우는 눈부신 조명 아래서 소위 화장발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환상 속의 백설 공주 못지않게 예뻤다.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얼굴과 드러낸 어깨에서 튕겨져 나와 부슬부슬 날리는 가루눈처럼 주변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조명 속에 들어있는 둥글고 밝은 공간 자체가 이 세상과는 다른, 생소하지만 매우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실내 장면 촬영을 마치자 오늘 새벽 촬영은 일정대로 끝이 났는지 모두 마을 광장으로 돌아가 긴 탁자에 둘러 앉아 술통을 따서 술을 마셨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 주춤거리고 서 있는데 조금 전에 나하고 말을 나누었던 사람이 내게 다가와서 모처럼 촬영구경을 오신 동네 분이신데 같이 한 잔 하자면서 탁자로 끌고 갔다. 나는 홀릴 듯한 달빛 아래서 진한 화장으로 인해 마치 신비로운 요정이거나 사람을 홀려내는 요귀처럼 보이는 배우들과 마주 앉아 맥주를 마셨다. 식탁 맞은편에 앉은 여배우들의 붉게 칠한 입술이 오물거리면서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어느 화창한 정오에 보았던 칸나꽃처럼 그것 자체로서 살아있는 독립된 생명체로 보였다. 저 붉은 입으로 하거나 했던 말들 중에는 계모인 왕비의 말이나 백설 공주의 말들도 함께 들어 있겠지.하는 생각을 하며 향이 독특한 맥주를 마셨다. 간단한 술지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촬영장소를 분주하게 정리를 하자 나도 마을에서 나와 그 주변을 돌아보았다. 마을 어귀 저쪽에 촬영버스와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쪽으로 돌아들어오는 길이 있는 듯했다.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머지않아 부지런한 유월의 새벽이 찾아올 것 같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발걸음 소리를 죽여 가며 거실로 들어갔다. 얼마 전 내가 하얀 달빛에 홀려 집에서 마당으로 나왔을 때처럼 낮은 코고는 소리와 차분한 숨소리가 교대로 들려왔다. 나는 슬그머니 소파에 몸을 눕혔다. 관자노리를 빨리 지나가는 실핏줄안의 빠른 흐름에서 몸 안을 돌아다니는 술기운을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금세 까무룩이 또 그렇게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동네 산책을 하고, 그리고 저 마을 위쪽에 있는 바닥이 들어날 만큼 거의 말라붙은 저수까지도 다녀와서 조금 늦은 아침을 해먹은 뒤에 집을 나와 쌍곡 계곡이랑 각연사를 돌아보고 다녔지만 나는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들을 우드에게도 일행들에게도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일은 왠지 연풍연가에서 유월의 어느 달빛이 매혹적이던 날밤에 나만이 간직한 비밀인 듯도 했고, 어쩌다보면 말을 예쁘게 수식하려고 하는 실없는 사람이 되거나 혹은 정말 그런 일이 밤사이에 내게 일어났는지가 의아스럽기까지 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만들 만한 여지를 아직 마음이 주고 있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늦은 어느 봄날에 그렇게 연풍연가에서 이틀 낮 하룻밤을 머물다가 연풍연가를 떠나왔다.
연풍戀風이 흘러 다니는 연가戀家.
내비게이션의 길안내가 먼저 괴산 읍내를 향하고 있었다. 어느 시월 오후의 흐릿한 공기를 밀어 재끼며 그들이 타고 있는 차는 읍내 버스터미널과 원조 올갱이국집을 지나 연풍연가를 향해 그대로 달려갔다. 어쩌다 회색의 구름 아래로 여린 빗방울들이 후두둑 후두둑 소리를 내며 차창에 떨어져 내렸다. 오늘 일기예보에서 서울 경기는 많은 비, 중부지방에는 가끔 비라고 했었지.하고 생각을 하면서 주마는 와이퍼를 돌렸다. 다시 선명해진 앞쪽의 경치가 시원하게 시야를 밝혀주었다. 어쩌면 비가 오후에는 제법 내릴 것처럼 습기를 품은 미지근한 바람이 차창으로 밀려들어왔다. 스피커에서는 맑고 높은 소프라노 음색이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글쓰기나 마찬가지로 음악을 감상하는 일도 맑고 청명한 날보다는 흐린 날이 쉽게 몰입이 잘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차창 앞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흐린 하늘 아래 차 안 가득히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몰입하듯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농협과 하나로마트를 지나고 나서 툭 트인 넓은 논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낯익은 정자와 그 옆에서 하늘을 가리고 서있는 키 큰 느티나무 서너 그루가 보였다. 개천을 따라 좁고 아늑한 길을 올라가다보면 오래된 시멘트 다리가 보이고 그 옆에 있는 잡풀 우거진 빈터가 보이는데, 하얀 우드의 차는 보이지가 않았다. 주마는 차에서 내려 핸드폰을 켰다. “응, 우드. 나야, 주마.” 방금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던지 앞말의 여운이 남아있는 우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주마. 그래 지금 어디야?” 주마가 빈터 가장자리에 노랗게 피어있는 국화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를 보면서 말했다. “ 응, 연풍연가 앞에 와 있는데 우드의 차가 안 보이기에 서울로 출발을 했나보다 하면서 전화를 하는 거야.” 우드가 사람 좋은 웃음을 허허거리더니 말했다. “꼭 그렇더라니까. 오후 네 시가 가까운데도 네가 안 나타나기에 일이 좀 늦어지나 보다 생각하고는 십여 분전에 조카들을 태우고 출발했지 뭐냐.” 주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랬구나. 아까 마을로 들어오기 전에 하나로마트 앞에서 나하고 길을 비켜간 하얀 차가 네 차 아니었는지 모르겠구나.” 우드의 목소리 사이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응, 그래 맞아. 조금 전에 하나로마트 앞을 지나 빠져나왔거든. 그나저나 이왕 연풍연가에 왔으니 잠시든 얼마가 됐든 맘 놓고 쉬었다가거라. 대문 자물통 열쇠는 아랫집에 가서 말하면 줄 것이고, 현관 비번은 바로 문자로 보내 줄 테니 집으로 들어가라. 웬만한 것은 집에 다 있으니 네가 알아서 찾아먹고, 아참, 그리고 그 사진액자는 거실 한쪽에 세워놓았으니 잊지 말고 챙겨가도록 해라.” “그래, 알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다음 주쯤에 얼굴 한번 보도록 하자구나.” “그래 좋지, 그러면 또 연락하자.”
회색 하늘에서 이따금 뿌리던 빗방울이 골바람을 타고 장난을 치듯 후드득거렸다. 파란 철망 담장 가운데는 전설의 고향을 닮아있는 창연한 녹색이 농담濃淡을 나올치며 번져있어서 운치 어리게 동그란 손잡이가 걸린 대문이 다소곳이 서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현관 자물쇠의 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 안쪽에는 지난해 봄에 와서 주마가 설치해놓았던 바다색 모기장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주마는 자신도 모르게 한 해 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모기장이 은근히 반가웠다. 주마가 씨익 하고 웃음을 짓자 뒤따라 현관으로 들어오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 씨익 웃으세요?”
“여기 이 파란 모기장이 말이지요. 지난해 여기에 들렸을 때 괴산 읍내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마침 그날이 괴산 장날이라 일행들과 구경도 할 겸 몇 가지 장을 보다가 이 모기장도 함께 샀거든요. 연풍연가에 도착해서 다른 일행들이 짐을 풀고 정리를 할 때 내가 이 모기장을 현관문 안쪽에 설치를 했었지요. 그 뒤로도 친구가 네가 붙여놓은 모기장 덕분에 현관을 활짝 열어놓고 시원한 여름을 보냈다고 몇 차례나 말을 해주어서 그때 생각이 잠시 났거든요.”
“아항, 그런데 선생님은 일을 잘 하시나 봐요. 손이 선생님처럼 생긴 사람이 일을 잘한다던데. 이곳에는 가끔 오시나 봐요.”
“아니요, 지난해 봄에 한 번 오고, 그 뒤로는 오늘 오고, 아니 그 사이에 한 차례 더 왔던가 아마 그랬지요.”
“너른 논 사이를 한가운데로 지나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랑, 정자 옆에 서있는 느티나무랑, 산비탈을 따라 작은 개울을 옆에 끼고 오르는 길이랑 이 주변이 참 마음에 드네요. 가을도 좋지만 봄에 왔을 때는 짙은 녹음하며 활짝 피어난 꽃들이 정말로 예뻤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그때에도 함께 온 일행들이랑 하룻밤과 이틀 낮을 여기에서 뒹굴거리며 지내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때가 유월 중순쯤이라 장미는 꽃이 지기 시작했지만 대신 다른 꽃들이 아주 빛이 났었지요. 그 중에서도 매어놓은 줄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던 흰색과 보라색 나팔꽃이 막 피어나는 참이라 아침 햇살에 일품이었지요.”
“그럼, 나팔꽃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나팔꽃의 꽃말이요? 아니요, 모르는데요.”
“나팔꽃이 영어로는 morning glory잖아요. 그런데 꽃말은 허무한 사랑이거든요. 아침의 영광과 허무한 사랑 사이에는 그 틈이 너무 크지 않아요?”
“글쎄요, 아침에 피었다 밤이면 시드니 꽃의 특성 상 허무한 사랑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 같으면 아침의 영광에 한 표를 던지고 싶네요. 그런데다 나팔꽃은 덩굴식물이라 다른 것을 똘똘 감고 올라가거든요. 그런 걸 보면 허무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열적인 사랑이라고 했으면 좋을 듯하군요.”
“어머,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역시 선생님께서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능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주마는 가스레인지 위에 물주전자를 올려놓고 찬장을 열어 국화차를 꺼냈다. 찻잔에서 진한 국화 향기가 피어나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주마는 찻잔을 들고 큰방 미닫이 창 옆에 설치된 나무 데크로 나가 한 켠에 놓여있는 동그란 탁자로 여자를 안내했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 파란 담장 너머에 있는 산비탈과 산비탈 위로 서 있는 산과 그 위에 떠있는 구름과 또 그 위에 있는 하늘까지 다 보였다. 이쪽 담장 안에 있는 감나무 서너 그루와 저쪽 담장 너머에 있는 감나무 서너 그루에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9월의 햇살이 벼이삭을 여물게 한다면 10월의 햇살은 감을 여물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하루 내내 하늘이 흐려 있는데다가 조금 전부터는 빗방울까지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풍경들이 이제 갓 마흔에 접어드는 성숙한 여인의 자태를 보는 것 같아서 회색 가을 하늘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찻잔에서 국화향이 피어오를 때마다 어느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의 시구詩句가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나무데크 아래에서 현관을 지나 뒤꼍으로 돌아가는 집 모퉁이까지 연풍연가의 마당이자 화단은 온통 노란 국화와 하얀 구절초가 만발이었다. 흐린 날이었지만 부지런한 벌들은 예외 없이 향기로운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자의 시선도 담장 밖 산비탈 너머의 회색 가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옆얼굴은 앞 얼굴에 비해 어딘지 방비가 소홀하지만 채색되지 않은 자신만의 분위기가 어려 있어서 주마에게는 그런 모습이 편안하게 비쳐졌다. 하얀 잔을 들어 붉은 입술을 바짝 붙이고 살며시 후우~ 불어가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여자의 옆모습이 참 예쁘다고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태양이 있으면 달이 있고, 불이 있으면 물이 있고, 봄이 있으면 가을이 있는 것처럼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또한 있었다. 차를 마시던 주마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여태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주마는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그러자 어쩌면 여자도 배가 고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 우리가 아직 점심식사를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시장하지 않으세요?”
“그러게요. 그럼 서울로 올라가면서 휴게소에서 먹지요, 뭐.”
“그렇긴 한데요. 여기에도 밥이랑 국이랑 몇 가지 반찬들을 챙겨놓았더라고요. 국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친구의 음식 솜씨가, 특히 저 된장국 솜씨가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요, 그럼 휴게소 음식보다는 여기서 먹도록 하지요. 제가 준비를 할 게요.“
“아니, 됐어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잘 모르실 텐데, 그냥 여기에 앉아 차를 마시고 계시면 내가 준비를 하지요.”
“그럼, 함께 준비해요, 선생님.”
“가만있자 밥은 밥통에 있고, 국은 국솥에 있고, 반찬은 냉장고에 들어 있고, 그리고 채소 칸에는 상추하고 깻잎이 있네요. 그렇지, 그 위쪽 칸에는 구워먹고 남긴 고기도 들어 있군요, 프라이팬에 얼른 구워내면 밥상이 훨씬 화려해지겠지요?”
애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시장한 배가 입맛이 당기도록 풍성한 식탁이 되어버렸다. 다락에는 우드가 평소에 즐기는 와인이 서너 병 가량 있었지만 귀경 시 운전을 대비해서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깊어가는 가을의 호젓한 오후에 숲속에 들어앉은 집 거실에 앉아 창 너머로 회색 하늘을 쳐다보며 먹는 느지막한 점심식사는 또한 각별한 운치가 있었다. 동양에서는 공자 가라사대 ‘스우위食勿語!(食中不言)’라 했지만 서양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식사의 기본예절이다. 그저 밥상의 밥과 국만을 꼬나보면서 지나치게 열심인 자세로 순식간에 밥을 먹어치우는 우리들이 식습관이 공자를 대표로하는 유교사상의 오래된 전통이라고 한다면 우리 자신들도 아마 놀랄 것이다. 직관直觀과 통찰洞察을 사유思惟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이 논리論理와 분석分析을 근거로 하는 서양적 생각하기와는 서로 차이가 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동양적 사유는 고요하게 생각을 많이 해야 했고, 서양적 사고방식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받는 논리를 형성해야 했다. 그래서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동양에서는 침묵이 금이었고, 서양에서는 대화가 금이었던 것이다. 주마는 구태여 공자를 따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난 해 봄에 연풍연가에 왔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려다보니 아직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는 등성이 너머 달빛 아래 눈부시던 유럽풍 마을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자가 눈이 동그래지더니 주마에게 물었다.
“저기요, 그러니까 괴산 연풍에 있는 영어체험 마을이라고 하셨지요?”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곳이 유럽풍으로 지어진 집들로 마을을 이루고 있고요. 그때가 작년 유월경이라고 하셨지요.”
“네, 맞습니다. 지붕이 뾰족하고 창이 커다란 유럽풍으로 지어진 스무 채 가량의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거든요. 그 당시 다음 달에 영어체험 마을을 개장할 거라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왜 그러지요?”
“그 말을 듣다보니 생각이 난 건데요. 내 친한 친구가 건축디자이너거든요. 작년에 괴산에 영어체험 마을을 지었는데, 유럽풍으로 아주 예쁘게 잘 지어졌다면서 언제 한번 같이 가서 구경을 하고 오자고 했었거든요. 그러던 것이 아직 마땅한 시간을 못 잡아 가보지를 못했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그 영어체험 마을이 여기에서 먼가요?”
“아니요, 그렇게 멀지는 않아요. 한 이십 여분 가량 산길을 가면 금세 나오는 정도지요.”
“저어, 선생님이 괜찮으시면 그 유럽풍 마을을 한번 볼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네, 그야 별로 어렵지 않은 부탁이지만 날씨가 비가 뿌리고 있는데다가 이제 점점 어두워질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야,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선생님께서 함께 계시는데요, 뭐. 별로 멀리 있지도 않다고 하시니 빨리 나서면 두어 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지 않겠어요?”
“시간이야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날씨가 비가 오는데다 산에는 밤이 빨리 찾아오거든요. 여하튼 그러시다면 지금 바로 그곳으로 가볼까요?”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첫댓글 연재가 길어지네요 ㅎㅎ 결말이 궁금한데요
연재소설읽는기분^^
일년에 서너차례 괴산을 가곤하는데 갈때마다 연풍연가 생각을 하곤했는데..
흥미진진 다음글 기다릴게요^^
아~ 각연사는 필히 들러봐야겠읍니다
긴울림님~ 아주 재미지게 읽으면서 올라왔네요. ㅎ ㅎ
지금의 인연도 예전에 알지 못했던 인연의 끈이 있었다는 . . .
참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인생길이네요.
긴울림님의 깊고 넓은 사유 또한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