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강 단군조선에 나타난 하나님 역사
우리나라 상고사를 기록한 단기고사(발해 대야발 저, 727년)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행촌 이암 저, 1363년) 편을 통하여 단군조선사에 드러나 있는 원래 우리 민족의 하나님 복음을 숭배했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제 1세 단군 임검(壬儉, 일명 왕검) 재위 93년(BC 2333~BC 2240)
유웅국의 왕녀(熊女, 모계사회)는 임검이 신성하다는 소문을 듣고 임검이 14세 되던 갑진년(BC 2357년, 요임금 기년과 일치)에 그를 비왕으로 삼고 시험적으로 24년간 다스림을 대행하게 했다.
임검의 그 다스림이 크고 높아서 웅씨 족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기를 원하여 유웅국(有熊國)을 바쳐 국양하니 총회에서 임검을 단군으로 삼았다.
임검이 천부인을 새겨 하늘의 도리에 따라서 슬기롭게 통치하니 구한(九桓, 혹은 九汗)의 백성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따르고 웅씨 족 사람들이 천계(天戒)를 믿는 하나님 백성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임검은 무진년(BC 2333년), 38세의 나이로 아사달(아침 햇살이 밝게 비추는 언덕)의 단목 터에서 구한의 백성들이 만장일치로 천제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단군 직분으로 선정되는 인물은 홍익인간의 정신과 속성을 갖춘 분으로 보면 된다.
단군 임검은 배달국 신시의 옛 규칙을 도로 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음력 10월 3일을 신시(神市- City of God)를 세운 후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정하고 개천절(開天節)로 기념하였다. 이에 구한(九汗)이 모두 합쳐서 하나로 뭉쳤고 신과 같은 교화가 이들에게 멀리 미치게 되었다.
임검이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의 터에 자리 잡아 무리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제사를 올렸다. 마침내 능히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부인- 천부경(조화경), 삼일신고(교화경), 참전계경(치화경)을 설법하여 백성을 널리 가르치셨다.
단군세기(고려 공민왕 이암 지음)에 따르면 임검 아래 각기 신하를 두어 오가(五加 : 도-猪, 구-狗, 양-洋, 우-牛, 마-馬)로 업무를 분장하여 나누었다. 오가의 수장 원보팽우(元輔彭虞)로 하여금 일신(一神)을 섬기는 일을 관장 하였고 수두에서는 천신제를 집행하였다. 반면에 백성 들은 하나님을 믿도록 하여 집집마다 고인돌(天壇)을 세우고 새벽기도를 하였다.
단기고사(발해국 대야발 지음)에는 BC 2285년에 임검께서는 운사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강화도)에 삼랑성(三郞城, 현 강화군 정족산성)을 짓고 방어를 하였다.
그리고 제천의 단을 강화도 마리 산에 쌓게 하였으니 참성단(塹城壇- 원방각 형태)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황소를 잡아 천신제(소머리 제사)를 드리는 풍속이 단군 임검부터 시작되었다.
이로써 참성단에서의 소머리 동물 제사를 통해 동방의 우리민족이 하나님께 황소를 잡아 제사 드리는 풍속(소머리=수밀이=수메르)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수(牛首)는 소머리를 말하는데 수메르로 발음이 변천되었는데 결국 수메르란 ‘소로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제단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 욥기에 나오는 우스 땅에 나오는 <우스>는 우수(牛首)와 같은 발음으로 추정되는데 소머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음력 시월상달을 새해 초로 간주하여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이 되면 국민적 큰 축제 모임이 있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운동과 가무를 즐기며 백성들 모두 기쁨에 넘쳐서 환호하며 국가적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제 2세 단군 부루 재위 58년(BC 2240~BC 2182)
BC 2215년에 석자장(石子丈)이 신사신전(神社神殿)을 세워 천부경 81자를 기초로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신앙을 갖게 하고 만고의 기본을 잊지 않도록 건의하였다.
“만물이 도(道)에서 나왔고 또 들어가니, 도의 근원은 하늘에서 나왔고 사람의 근원은 하늘과 아주 관계가 밀접한 신조(神祖, 하나님)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신사신전(神社神殿, 구약의 성막<tabernacle>과 같은 개념, 오늘날 교회)을 세워 백성으로 하여금 일신교(一神敎, 하나님 종교)을 갖게 하고 천손 민족으로서 만고의 기본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에 단제께서 삼신전(三神殿, 민족의 성전)을 세우고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위(三神位)를 봉안하여 백성들에게 경배하였다. 이는 소머리로 천신제를 드리는 국가적 행사와 함께 하늘의 도를 바로 세우고 성현의 뜻을 기르도록 조치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격려한 내용이다. 오늘날에는 이방 종교인 불교가 들어 와 불상이 모시는 대웅전과 삼성각으로 대체되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신시(神市) 이래로 하늘에 제사지낼 때마다 크게 모여 노래 부르고 큰 덕을 찬양하며 서로 화목을 다졌다. 어아가(於阿歌)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조상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였다. 즉 사방을 다 화합하는 의식을 올리니 이것이 온 백성을 치화하는 참전(參佺)의 계(戒)가 되었다.
나중 고구려 광개토 태왕 시대에는 어아가가 전쟁 시 군사들이 부르는 군가로도 사용되었다.
한편 어아가 가사(한단고기 단군세기 편 수록)는 다음과 같다.
어아, 어아, 우리들 조상님 네, 크신 은혜 높은 공덕, 배달나라 우리 들은 누구라도 잊지 말세........ 중략........ 어아, 어아,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궁(穹- 황궁 씨 계열의 천손민족)이라, 굳게 뭉친 같은 마음 배달나라 영광일세, 천년만년 크신 은덕, 한배검(桓仁 倍達 壬儉의 축약)이시여, 한배검(桓倍儉)이시여.
여기서 한배검이란 한인(桓仁) 배달(倍達) 임검(壬儉)의 세 문자에서 <한, 배, 검> 한 문자씩을 취해 만든 단어로서 삼신일체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제 3세 단군 가륵 재위 45년(BC 2182~BC 2137)
BC 2181년 삼랑 을보륵(乙普勒) 박사에게 명하여 하늘의 소리(天音)로 된 국문정음(國文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였고 이를 달리 가림토(加臨土) 문자라 일컬었다.
이처럼 마고성부터 내려오던 하늘의 소리를 단군시절에 국문정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늘의 소리를 문자로 만들기 위해 천부경에서 하나님(一)이 천지인(天地人)의 셋으로 나누어지는 원리를 적용하였던 것이다.
국문정음에서 정음(正音)이란 상고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천음(天音)과 같은 의미로서 하늘의 소리(하나님의 음성)를 의미한다. 하늘의 소리(天音)를 하나님을 표현하는 원방각(天地人)을 바탕으로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총 38자로 된 우리 민족의 최초의 통합 문자가 되었다.
우리나라 상고사인 부도지(符都誌, 신라 명신 박제상 저)를 보면 대략 BC 10000년 경 에덴동산과 같은 하늘의 마고 성(지상낙원)에서 최초에 천음(天音, 하늘의 소리)이 존재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마고의 딸들인 궁(穹)씨와 소(巢)씨 자매도 하늘의 소리에 의해서 탄생된 단성생식의 설화를 기록하고 있다.
조선 세종시절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국민을 훈육하기 위한 올바른 소리’라는 의미로서 어느 날 갑자기 세종시대에 만들어진 문자가 아닌 것이다. 후대 학문을 좋아했던 학자 형의 조선 세종대왕 때 옛 문헌을 보고받아 국문정음(國文正音) 38자를 모체로 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를 제정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자음과 모음을 원(하늘), 사각형(땅), 삼각형(사람)의 여러 모양의 형태로 조합하여 천(天, 원), 지(地, 방), 인(人, 각)을 의미하도록 문자를 완성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마고성 시대부터 내려온 하늘의 소리(하나님의 음성)를 단군조선 시절에 국문정음이라는 하늘의 문자로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한편 세종대왕이 가림토 문자(加臨土文字)의 기록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가림토 38자 중 발음이 어렵거나 잘 사용하는 10개 문자를 탈락시킨 후 훈민정음 28자를 비로소 편제했던 것이다.
이는 조선 왕조 세종 시절에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훈민정음 28자는 당시 새로이 창제한 문자가 아니었다. 즉 옛 국문정음을 집현전 학자들에게 이를 시대에 맞게 개량하도록 시킨 것이다. 이는 세종실록(1443년 10월 9일자) 정인지의 기록에는 “옛 전(篆)자인 가림토 38자를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 후 우리민족의 하나님 백성(천손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말살시키고자 일제가친일파 한글학자를 동원하여 훈민정음에서 하늘(천)을 나타나는 아래 아(●)를 포함 한 4개의 문자를 고의로 탈락시켜 오늘날 한글 24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제 5세 구을 재위 16년(BC 2099~BC 2083)
BC 2084년 장당경(티벳 돈황 혹은 개원 추정) 고역산(현 삼위산?)으로 행차하시어 제천 단을 쌓았다. 여기서 삼신의 덕을 봉축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한화(槿樹, 무궁화)를 심었다.
여기서 찬송가 89장에서는 ‘샤론의 꽃 예수’라는 곡이 나오는데 이 샤론의 꽃은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로서 무궁화를 말하므로 나라 꽃 무궁화가 곧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서 천신제(天神祭)에 바쳐지는 거룩한 천지화(天地花)로서 무궁화가 단군시절에 우리나라 나라꽃 무궁화도 헌화로 바쳐지는 신성한 꽃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산 제물로 사용되었듯이 예수님의 헌신과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무궁화와 예수님 양자가 동일하게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과 헌신의 놀라운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 11세 단군 도해 재위 57년(BC 1891~BC 1834)
BC 1891년, 즉위 첫해 유위자(有爲子, 단군 도해의 스승)의 말을 들어 혼탁해진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하여 일신교(一神敎,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를 국교로 세웠다.
이를 위해 당시 행정 체제인 오가(五加)의 신하들에게 명을 내려 백성이 신앙을 바로 잡아 성실하고 순박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전국에 있는 12개 명산을 골라 국선(國仙)이 주관하는 수두(蘇塗, 성막 지성소와 같은 거룩한 장소)를 설치하게 하였다.
국선이란 화랑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으로 수두에서 천신에게 제사지내는 천군(제사장)의 역할을 하면서 천신제와 화랑 교육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랑제도가 신라시절 화랑이 생겼다는 종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단군조선 시절에 국선이 전국의 화랑(국가적 인재)들을 소집하여 수두에서 천신제를 드리고 천부인을 통한 정신교육을 주관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삼국시대에는 수두에 직접 찾아가서 제사를 드리고 교육을 받는 사람을 풍류도(風流徒)라 하였으며 후에 고구려 경당이나 신라 화랑교육으로 이어져 발전하였다.
수두의 교육 내용은 주로 오계(五戒- 忠 孝 信 仁 勇)와 육예(六藝- 글짓기, 노래, 활쏘기, 말 타기, 검술, 주먹치기)로서 문무(文武)를 겸비하도록 훈련시켰다.
BC 1846년, 단제께서 수두가 있는 천산의 남쪽에서 술과 음식을 갖추어 치사를 드리며 소머리 천신제를 드렸다. 제사 후에는 단제께서 누각에 오르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천부경을 암송케 하고 삼일신고를 강연하였다. 한편 살생을 금지하고 방생을 장려하였으며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에 태형제도를 실시하였다.
BC 1835년 천지인경 65자를 만들어 성통공완의 절차를 구하였다.
여기서 도해가 남긴 경전인 ‘천지인경(天地人經)’에 나타난 핵심 귀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신강충 - 성통광명 - 재세이화- 홍익인간 = 성통공완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 (性通功完)
하나님의 영이 내려와 인간의 뇌(머리)에 임하게 되면(一神降衷), 우리의 성품이 확 트여 하나님의 성품과 통하게 되어 세상의 도리를 환하게 잘 알게 된다(性通光明),
그런 다음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세상 만물을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이치에 따라 변화시키면(在世理化), 주위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유익함를 널리 골고루 나누어 주는 인물이 출현하게 된다(弘益人間).
이로써 홍익인간의 절차를 올바르게 구하면 성통공완(性通功完)을 이루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인 홍익세상을 이루게 된다는 단군시대의 핵심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단군시대의 사상은 고구려 연개소문 시절에는 국가 4대목표로 정해져 성기(成己, 元), 자유(自由, 亨), 개물(開物, 利), 평등(平等, 貞)로 바뀌어 시행되었다.
제 15세 단군 대음(벌음) 재위 51년(BC 1661~BC 1610)
BC 1660년 겨울 10월에 양운국과 수밀이(須密爾, 메소포타미아 바벨론 문명의 주체가 된 수메르 국으로 추정)국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BC 1652년 7월, 우루(虞婁, 성경에 나오는 수메르의 수도 우르(Ur)국 사람 20인이 투항해오니 염수(몽고)근처의 땅에 정착하여 살게 하였다.
여기서 한자어 수밀이는 수메르(Sumer)와 발음이 비슷하고 우루의 발음 역시 바벨론 지역 유프라테스 강 하류의 수메르의 수도 우르(Ur)와도 흡사하다. 이는 이들 지중해 지역의 수메르 국가가 단군조선과의 정치적 및 종교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cf. 길가메시의 왕국 우룩(Uruk)
앞서 성경 욥이 사는 우스 땅에 나오는 우스도 우수(牛首)와 같은 발음인 것인데 우수는 소머리를 말하고 나중에 수밀이를 거쳐 수메르로 발음이 변천하였다.
아마도 ‘황소(Bull) 소머리로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제단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발음상으로 미루어 볼 때 천산 지역에서 내려 와 배달제국을 세운 후 환웅 족들이 여러 지역의 12개 연방국으로 나누어졌다. 이 때 수밀이국과 우루국의 두 개국이 서방으로 간 사실을 잘 알 수가 있고 이는 배달제국의 서쪽 변방이 중근동 이스라엘에 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마치 성경에서 노아의 홍수 심판 후 산 위의 방주에서 내려 와 그 후손 들이 흩어지는 기록과 비교해 볼 수 있다. cf. 창세기 벨렉과 욕단
제 16세 단군 위나 재위 58년(BC 1610~BC 1552)
BC 1583년 구한(九汗)들을 영고 탑(만주 하얼빈 추정?)에 모이게 하여 삼신과 상제에게 제사지내고 닷새 동안 백성과 더불어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
이곳에서 삼신과 상제에게 제사지내고 닷새 동안 민족의 제사와 성만찬을 벌이면서 백성과 더불어 크게 축제를 베풀었다(성도 간의 교제).
밤에는 불을 밝혀 천부경을 외우고 삼일신고를 설법하였다(사도신경 암송과 설교).
또한 현지에서 마당 밟기(교회나 기도원 가기 등)를 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통성으로 기원하였다(통성기도).
단제가 천신제를 행할 때 소머리 제사를 지낸 것은 구약시대의 동물제사와 흡사한 것이다. 천부경을 외우고 삼일신고를 설법 하는 것은 현대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외우고 설교를 하는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또한 현지에 수두에 직접 가서 마당 밟기를 하는 것은 성도가 회당이나 교회 현지에 직접 가서 기원하는 것과 같다. 하늘을 눈을 뜨고 쳐다보면서 통성으로 기원하는 행위는 현대에서 하나님께 소리 내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과 흡사한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의 동물 제사 및 현대 교회에서의 예배 형식인 성만찬, 사도신경 암송 및 성경 설교, 성도 간의 교제, 찬양 및 통성 기도, 헌금과 헌화 등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한편 제사가 끝나고 연회 시에는 백성 한쪽은 횃불을 들고 있고 또 한쪽은 둥글게 모여서 춤을 추고 노래하였다. 강강술래 춤(일종의 Worship Dance)을 추며 애환(愛桓)의 찬송(事天神 樂太平, 천신을 섬기고 태평을 즐기는 부르는 노래)을 부르며 손을 잡고 찬양을 부르면서 서로 어울려 친교(koinonia)를 나누었다.
또 우리의 전통적인 3분박 박자로 애환(愛桓,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는 일종의 찬송가)을 나타내는 제악가로서 ‘산유화’를 불렀던 것이다.
애환의 노래인 <산유화의 가사 일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산에 꽃이 있네, 산에 꽃이 있네.
지난 해 만 그루의 꽃을 심고 올해도 심었네.
불함산에 봄이 오면 산에 붉은 빛이
천신(天神)을 섬기고 태평(太平) 세월을 즐기세.
당시 단제가 주관 하에 하나님(상제)을 모시는 천신제를 올리는 행위는 국가적 행사로 모이는 것으로 5일 간 연회를 하면서 국경일 경축잔치의 의미가 있었다.
이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 온 백성들이 천신제(天神祭)에 바치거나 각자 자신이 먹으려고 준비해 가지고 온 음식물(특별 음식으로 산삼, 잣, 사슴고기 등)을 마당에 풀어 서로 나누어 먹었던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물물교환의 풍습은 현대의 시장매매의 개념으로 5일 장터로 이어 내려져 온 원형이 된다. 그래서 옛 선열들의 천신제 행사를 오늘날에 재현하고 감상해보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다.
제 33세 단군 감물 재위 24년(BC 819~BC 795)
BC 813년 영고 탑 서문 밖 감물산 밑에서 삼성사(三聖祠, 환인 환웅 단군을 섬기 는 사당)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드렸다.
“삼성(환인, 환웅, 단군)의 존귀하심은 일신(一神, 하나님)과 더불어 그 공이 나란히 하오며 삼신의 덕은 성인에 의해 더욱 크시어라. 빈 것과 큰 것은 한 몸이라 하겠고 하나는 또 삼신 모두와 한가지로 같음이라. 지혜와 삶을 함께 닦고 모습과 얼을 함께 넓힌다면 참된 가르침은 이에서 나오고 믿음이 오래 갈 것은 보이는 이치라.
그 기세를 귀하게 여기고 스스로 살피고 되돌아본다면 저 백악(아사달의 수도)은 어딜 가나 끝없이 푸르리니 여러 성인들은 끝없이 이어나리라. 글은 흥하고 예와 악은 크리니 도술은 그 연원이 넓어서 하나를 잡으면 셋을 포함하고(執一含三) 셋을 합쳐서 하나로 돌아오네(會三歸一)" 라고 맹세하였다.
당시 수두지역인 감물 산에 삼성사 신전을 세우고 하늘의 가르침을 영원한 법으로 삼겠다고 맹세한 기록이 나온다. 이로 살펴볼 때 단군과 그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늘의 뜻을 살피는 천손 민족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는가를 잘 엿 볼 수 있다.
제 36세 단군 매륵 재위 58년(BC 704~BC 646)
BC 675년 우세숙이 성리학(性理學)과 심리학(心理學)을 지어 바쳤다.
중국 유학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는 공자(BC 551~BC 479)는 우세숙 보다 120년 후에 나오는 인물이다. 단군조선의 성리학은 신학으로서 하늘과 인간관계로 구성되어 서술되었다. 춘추전국 시절 노나라에 성리학이 전해지자 공자가 이를 바탕으로 인간적인 주석을 가미하여 편집한 것이 중국 유학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원래 성리학으로부터 공자가 유학의 이단사상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의 성리학은 우리민족의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는 일종의 한국의 신학(神學-하나님의 성품과 하늘의 이치를 규명하는 학문)이었다. 이는 천부경에서 인중천지인(人中天地一)의 홍익사상이 학문으로 연장되어 한국사상의 초석으로 등장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선생의 천인무간(天人無間)사상이 나오며 조선말에는 교주 최제우가 세운 동학 교리에서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 44세 단군 구물 재위 29년, 대 부여국(제 3왕조, BC 425~BC 396)
BC 424년 3월 16일에 삼신영고(三神迎鼓, 천신제에서 하나님을 부르기 위해 북을 두드리는 행위)의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영고란 북을 두드려서 신을 부르기 위한 맞두둘이(일본 말 마쯔리의 기원이 되는 단어) 행사를 일컫는 것이다.
이 후 삼신영고 행사는 부여의 영고 및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제천행사로 이어져 단군조선 시절부터 천손민족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과거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에서 큰 북을 치고 입장한 것은 제천행사를 시작하는 절차처럼 북소리로 하나님을 영접하여 부르는 영고행사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도움으로 올림픽 축제와 같은 커다란 국가행사를 훌륭하게 잘 치룰 수 있기를 기원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 준바 있다.
또한 삼국지 위지동이 부여 전에는 음력 시월(정월)에 하늘에 제사지내고 단제께서 친히 상제에게 삼육대례(三六之禮)로 경배하였다. 또한 국 중 대회를 열어 연일 마시고 놀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삼육대례의 인사는 단제가 삼신에게 첫 번째 큰 절을 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며, 두 번째 큰 절을 하고 여섯 번 조아리며, 세 번째 큰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천제가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열 번 머리를 숙였다. 이는 하나님에게만 행하는 예법절차라고 부르며 온갖 정성을 다 드려서 하나님을 경배한 것을 엿 볼 수 있다.
위에서 본 바 와같이 우리민족은 본시부터 하나님을 잘 믿고 존숭했던 천손 민족으로 특별히 단군에 의해서 먼저 천신제를 드리고 난 후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등 경전을 논하고 설법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해 왔다고 것을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