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누가복음 5장
이전에 K에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에 관한 하늘 뜻 나눈 적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예수님은 특별한 맥락 없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반면, 누가복음에서는 보다 자세한 정황이 등장합니다(요한복음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갈릴리 여러 회당을 두루 다니시던 예수는 갈릴리 호숫가로 갑니다. 호수에는 두 척의 배가 있었고, 그는 여러 회당에서 가르쳤듯이 배 한 척에 올라타 많은 무리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죠. 그러나 때마침 그 배의 주인은 우리가 잘 아는 시몬(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자신의 배를 군말없이 빌려준 시몬의 처지(고기 잡이 허탕)를 예수가 아셨는지, 시몬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황당한 명령 앞에 누가복음의 어부들은 마태복음의 어부들처럼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들은 밤새 고기가 잡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그물을 던지러 떠나죠. 밤샘 피로와 고기가 잡히지 않은 허탈감을 뒤로 한 채 그들은 떠납니다.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게 되죠. 어부들도 알았을 겁니다. 예수가 어부가 아닌 것을. 복음서의 정황을 살펴 보았을 때, 그들은 예수를 아주 뛰어난 선생이라 생각할 수는 있어도 물고기를 잡는데 탁월한 전문가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건 어부들의 반응을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죠. 그들은 예수의 말이 전적으로 동의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한 번양보해서 따라보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물을 다시 던지러 간 것 같습니다(5절). 그러나 결과는 놀랍죠.
지부 모임에서 ‘기독교성서의 이해’를 읽으며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습니다. 바로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믿게하기 위해 기적을 펼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보여달라는 바리새인들의 요구에 예수는 단호히 거부하죠. 예수가 기적을 행했던 순간은 오직 믿음 안에서 가능했습니다(5, 12, 20절).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죠. 누가복음의 어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부들도 예수의 말씀을믿음으로써 자신의 경험과 지식, 수많은 데이터?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은 분명 고기 잡는데는 예수보다 자신들이 한 수 위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도 각자의 직업이나 일에 관해서는 남들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자신들의 신념을 저버립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때론 나의 지식과 경험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배워왔던 관념이나 신앙해왔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껏 살아왔던 세계, 질서, 구조로부터 벗어나는 길에 많은 고민과 고통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저 또한 한몸살이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의심이 가장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 길이 맞나?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다른 세계를 너무 부정하는 것 아닌가? 등의 생각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판단의 근거는 모두 제 경험과 생각이며, 이것을 아직도 온전히 떨쳐 버리지 못해 지금도 마을과 K의 지체들로부터 여러이야기나 권면(권면까지는 아니더라도 권유 정도?) 들을 때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제 생각이나 판단에 점검이 필요해서겠죠. 제 나름대로는 최선의 판단과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내 생각을 비울 수 있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 앞서서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 따라 선하게 선택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입니다. 저도 시몬처럼 예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싶습니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그리고 함께하는 (마을과 K) 지체들을 신뢰하기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행히 이런 저에게 성서의 말씀은 참으로 위로가 됩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고 신뢰하며 살 때에 어부들처럼, 나병환자처럼, 중풍병자처럼 예수를 깊이 만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만나 구원의 기쁨을 누린 것처럼, 우리도 더욱 자유롭고 해방된 삶 살 수 있을 거라확신합니다.
우리를 만나주신 예수는 이제 명령합니다. ‘앞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예수는 자신을 만난 제자들의 소명이 무엇인지 천명합니다. 예수를 만난 구원의 기쁨을 우리 안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많은 이들을 가르치셨듯이 우리도 많은 이들에게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복음(유앙겔리온)이라 하죠. 복음이라는 단어는 기쁜 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사실 이 단어가 쓰이는 맥락과 배경은 따로 있습니다. ‘유앙겔리온’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당시 로마제국에서 사용하던 단어인데, 이 단어가 쓰였던 상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이며, 두 번째는 전쟁에서의 승리입니다. ‘새로운 황제의 등극, 전쟁에서의 승리’ 이것이 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은 1장에서 ‘복음의 시작이라’ 선언하며, 우리가 함께 묵상하는 누가복음도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죠. 예수는 이처럼 세상에 새로운 왕으로 오셨으며, 전쟁에서 승리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새로운 왕은 이전의 (제국)질서와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시기 위해 새롭게 부임하신 왕입니다. 그는 가장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의 생로병사(중풍병자,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구원하십니다. 심지어 레위라는 세리의 친구도 되시죠. 이는 로마 제국은 물론 뒤이어 나오는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과 크게 대비됩니다. 바리새파가 추구한 거룩함과 정결은 다른 이들과의 분리입니다. 그들은 깨끗하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며,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의 통치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세리들도 죄인의 가장 대표적인 부류로 여겼습니다. 경건한 사람들로서는 피해야 할 대상 1순위인 셈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부정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갖습니다. 스스로 더러워지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실천하신 원리는 경계 짓기와 차별이 아니라, 다가감과 포용이었고, 이를 통해 그들을 새로운 삶으로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우리에게 새롭게 부임한 왕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앞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사람 낚는 어부가 무엇인지 예수는 그의 삶과 행동으로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가장 연약한 이들의 친구가 되시며 사랑으로 그들과 밥 먹고 질병을 회복시킵니다. 2000년 전, 예수의 사역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겁니다. 여전히 생로병사의 문제로 허덕이고 지쳐있는 사람은 셀 수 없으며, 세상은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추구하는 것이 진리인 마냥 선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전한 삶은 이것이 아니죠.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의 제자로서 사람들을 새로운 삶으로 낚을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에 살아왔던 (자본)질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되는 관계로 초대해야 합니다.
다음주부터 우리는 이 소식 전하기 위해 곧 숭실대에 찾아갑니다. 대학은 예수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가르치는 곳이 되었지만, 이곳에서 우리의 삶을 분명히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는 이들에게, 예수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우리가 당당히 전하길 소망합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고픈 이들에게 참된 기쁨과 구원의 소망을 보여주어, 이들을 해방의 자리로 초대할 수 있길 바랍니다.
[생활나눔]
# 고된 신하의 삶..
요즘 주무관 일이 참 바쁩니다. 제가 일하는 송촌초에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셨는데, 이 분이 참.. 열정이 넘치세요. 백성(학생)들에게는 좋지만, 신하(직원)들에게는 참 힘든 성군같은 분이십니다(성군까지는 아닌가?). 실제 성격도 좋으시며 저와 일도 같이하시는데, 그분은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 맞이해주며 학교를 이곳저곳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저에게 찾아오시죠. ‘주무관님~ 오늘 이것 좀 해주세요^^’ 그런데 그분이 저에게 시키는 것은 하나 같이 큰일들입니다. 창고를 뒤집어 엎거나, 학교 교실의 낡은 전기 콘센트를 교체하거나, 학교 이곳저곳 대청소를 부탁하십니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일하는 4시간을 꼬박 몸노동으로 채우며 일하고 있어요. 물론 학교가 깨끗해지고, 학생들이 더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지만, 집에 오면 약간 처지더군요. 요즘은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묵상하고 오전 내내 몸노동하니, 집에서 와서 씻고 점심 먹으면 나른~ 해집니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낮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지만, 최근까지는 자주 낮잠을 잤어요. 낮잠 자니 계획했던 것을 미루기도 하고, 밤에 바로 잠도 오지 않더군요. 물론 정말 피곤하거나 쉼이 필요한 날은 잠을 잘 수도 있겠지만, 이게 습관이 되고 흐름이 되지 않게 의식적으로 잠을 안 자려 하고 있습니다. 기운이 계속 처지는것도 좋지 않은 것 같고요. 그래서 고된 일을 해도 처지지 않는 기운 얻고 싶어요!! 매일 밝고 신명나게 살아가고 싶지만 아직은 잘 안 되는 것 같기에 일하는 여러분들의 지혜 구합니다~(물론 다음에 꼭 알려주세요 ㅎㅎ)
# 노들섬 위에서 기도할게요
먼저 이번주 K 예배모임에 가지 못하는 것 사죄드립니다.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숭실대 특강에 앞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시간 필요한 것 같아 나들이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이번 학기는 오랜만에 복학하는 친구들도 있고, 작년과 올해 새로 들어온 친구들도 있기에 학생들 간에 간극이 존재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필요해요!!) 근데, 가장 많이 올 수 있는 날을 투표한 결과.. 물날이 당첨되었습니다 하하. 너무나 아쉽지만 숭실대 특강을 위해 저도 나들이에 가기로했어요. 가서 특강을 위해 마음 확실히 모으고 오겠습니다👊. 나들이하면서 본격적으로 특강 신청 이야기도 꺼낼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철순님ㅎ). 그리고 이번주는 K 기도회가 있듯이 저도 한강 가운데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