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은 푸르구나~
박 재근
“어이, 박총무”
“집사람이랑 청국장 한 그릇 어때?”
“주말이면 언제나 가능하네.”
명일동에 사는 친구가 카페에 들어와 보낸 쪽지다.
자세히 봤더니 5. 3일 15시경 보냈다.
5. 6일 아침 점검 차 들어갔다 봤는데
괜히 미안한 감이 들었다.
문자를 보낼까하다가 오해도 불식시킬 겸 전활 했다.
나네. 재근이,
받을 수 있는가.
“응, 뭔 일이야”
3일 날 보낸 쪽질 이제 봤어.
진즉부터 한 번 만난다면서 쉽지가 않네.
뭐가 그리 바쁜지.
이달도 11일이나 가능할 것 같은데....시간되는가?
“그날은 석모도 가는데....”
누구랑?
“집사람하고”
“난, 항상 같이 다녀”
나도 가면 어떨까?
생각지 못한 질문에 약간 머뭇거린다.
“으...으~응”
“우리 친구들이 아니고 사회친구들이랑...가”
그래 알았어,
그럼 다음에 다시 택일하세.
전활 끊고 나자 불현듯 나도 가고 싶어졌다.
김사장, 잘 다녀왔는가.
좋은 걸 가져왔다며?
“택배비도 아낄 겸 오는 길에 가져왔네.”
이번 주에 할거야?
“연휴엔 선약이 있어서 어렵고
금요일 날 했으면 해”
고향에 다녀오면서
보양식을 가져왔단 얘길 듣고,
혹 휴일에 부를까봐, 확인키 위해 했던 전화다.
전혜경님.
총무대신입니다.
이번 주 어떠세요?
“별다른 약속은 없어요.”
예, 알았습니다.
매달 만나는 <잉꼬회> 멤버다.
다행히 하나같이 선약이 없다.
혹 이의를 달까봐 장소가 확정되었고
성원되었음을 긴급 타전했다.
그리고
세세히 <석모도>에 대한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전에 집사람이랑 인삼 사로 강화를 몇 번 갔었고,
외포리에서 대하,
회도 먹은 기억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쪽으로 도강해 본 적은 없다.
펜션, 음식점, 해수욕장 등 많은 여행정보가 뜬다.
일단 침식이 문제라 한나절을 펜션에 매달렸다.
10곳을 5개로 압축하고, 3개를 다시 골라낸 다음
보문사 근처에 있는 <돌캐산장>으로 최종 낙점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머물렀던 곳이라며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 점수를 후하게 준 탓이다.
8명 숙박에 15만원이라 고집했지만 설득 끝에
12만원으로 예약을 마쳤다.
식당을 겸한 집으로 식사를 한 끼 하는 조건이었다.
최종 ‘예약완료’됐음을 다시 알리고,
뇌 CT를 마치고 나오자,
갑자기 한낮에, 저녁 같은 어둠이 깔린다.
잔뜩 물먹은 먹구름이 하늘 가득하다.
이내 봄비답지 않은
소낙비가 세차게 창문을 때린다.
멀리서 뇌성도 들려온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생각나는 게 있어
다이얼을 눌렀다.
날세.
초교 동창회 갈껀가?
“전에 말했던 칠순잔치 있어”
“어렵다고 봐야지.”
실은 나도 걱정이야.
석모도 갈 일이 생겼어.
“야! 거기 볼 것도 없는데 뭐 하러 가냐.”
갑자기 톤이 달라진다.
“쓰벌, 호객행위는 조질나게 하면서
가격은 좆내 비싸고, 먹을 건 없고,”
“맛도 없어”
“두 번 다시 안 간다고 다짐하고 왔다.”
대뜸 싫은 소리부터 하는 걸 보니
실망이 컷 던 모양이다.
곧 확인 되겠지.
아무튼
사업상 전국을 자주 다니는 친구로
그 말대로라면 명확할 텐데.....어이하나.
예약도 다~했고,
며칠만 있으면 가야 되는데 말이다.
뭔가 가슴을 짓누른다.
착잡한 맘으로 퇴근해 집에 왔다.
갑자기 여행하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운 아침이 왔다.
다행히 어제의 심란함도 사라졌다.
“자기야”
일어나자마자 집사람이 부른다.
왜?
“한밤중에 어떤 놈이 전화해서”
“으~음”
“신음소리를 내는 거 있지”
“누구세요?” 했더니
“나~”
“미친 놈!”
“잠들었는데 짜증나서 혼났어.”
“욕 한 마디해주고 뚝 끊었지.”
“발신번호가 뜬 뒤로 조용하더니....”
“지금도 그런 놈이 있네.”
정신과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야.
잊어버려.
아직 그 여음이 남았는지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이내 돌아온다.
“자기야, 짜~잔”
꽃다발과 봉투를 보이며 활짝 웃는다.
아까의 찌푸린 얼굴은 어디가고 금세 밝아졌다.
딸이 식탁 위에 올려 논 모양이다.
감사의 글과 현금 25만원이 들어 있었다.
아침을 비운 후,
고마운 마음을 안고 직장으로 출근했다.
곧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나도 어버이 은혜에 대한 감사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딸한테,
키운 보람이 있네요.
고맙습니다.♡
엄마의 행복은 곧 아빠의 즐거움입니다.
정성으로 엄말 사랑하세요.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채 1분도 안되어 답장이 왔다.
엄마가 종종 부탁한데 ㅋㅋ
알떠~ ㅋ
*^^*
오늘도 잘 보내♥♥♥~
이 녀석.
속이 꽉 찼다.
중학교 때부터 글에 대한 소질도 보인 친구다.
고등학교 때는 <Free>라는 단편소설로
전국기독교연합회에 기고해
소설부분에서 우수상도 받았다.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노벨리스트>에 <창밖의 여자>라는 장편소설을
투고해 입선되어
우리 집 경사로 야단법석을 치룬 적이 있다.
이에 대한 얘긴 차후에 때가 되면 자세히 하겠다.
공부도 곧잘 해서 국문괄 원했으나
글은 전공에 관계없이 쓸 수 있다며
취업이 잘 되는 과를 가고 싶다고 했던 녀석이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근 병원에 물리치료사로 있다.
조용한 틈을 타, 다시 카페를 뒤졌다.
상봉산, 해명산, 민머루, 어류정항, 보문사 등
이름난 곳이 여럿 보인다.
그 중
눈길 가는 하나가 있었는데,
<낙가산 보문사>다.
절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있고,
관심도 있는 분야라 그런가 보다.
자세히 봤다.
신라 선덕여왕(635년) 때
세워진 것으로 되어있다.
석굴법당과 절 뒤 암벽에 새겨진
높이 6.9m의 마애석불이 일품이고,
서쪽 뒷산에서 바라보는 서해낙조는
민머루해수욕장의 낙조와 함께
강화 팔경 중의 하나라 소개되어 있었다.
절을 창건한 후 14년 만에 어부가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얻어
우측 석굴에 봉안했다는 얘기도 있다.
뒷산에는 작은 배와 흡사한 ‘배바위’가 있고,
석실 북편에는 천 여 명이 넉넉히 앉을 수 있다는
‘천인대(千人臺)’라는 곳도 있다고 되어 있다.
고 육영수 여사가 즐겨 찾았다는 절로
전설도 소개하고 있어 퍼왔다.
<보문사의 전설>
635년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그 돌을 즉시 바다에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려 진 것은
그 돌덩이여서 다시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그것은 천축국에 있던 불상인데
그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이나 버렸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그것을 건지거든
명산에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기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
더 이상은 나아갈 수가 없었다.
바로 이곳이 신령스러운 장소라 생각하고
굴 안에 모시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대충 석모도에 대한 사전 지식은 쌓았다.
이제 현장 답사만 남은 꼴이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비교적 날씨가 좋다.
비바람 치던 어제완 대조된다.
덕분에 환자도 많이 늘었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으로 백반을 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소고기 육개장을 찌개로 가져왔다.
에이~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손 하나 대지 않고 찬으로만 해결했다.
또 다른 하루가 이렇게 흘렀고,
목전인 오늘이 되었다.
한가한 틈을 타
이 회장이 팩스로 보낸
참석 여부를 기록한 회원명단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르륵 진동이 울린다.
“나네”
명일동 친구다.
오, 아침 일찍 웬일이야.
“자네, 지금 어딘가?”
“덕적도 가는 일정이 깨졌어.”
“점심이나 같이 하세.”
석모도가 아니었어.
난, 석모돈 줄 알고 거기서 만날 생각했지.
매달 지인들과 만나는 모임이 있는데
일부러 그쪽으로 부랴부랴 잡았어.
“그랬어.”
참 보기 힘드네.
전화를 끊고 한참 시간이 지났다.
아무래도 맘이 쓰인다.
집사람 몸이 불편한 생각은 까마득 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5시는 어때?
“괜찮아.”
“어디서 만날까?”
자네가 자주 얘기했던 양수리로 가지 뭐.
그래, 집사람이랑 같이 보는 거지?
“응”
“장어 먹을까?”
좋아.
“양수리로 해서 대성리로 가는 방향 있지.”
“조안면으로 가다 좌측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지금 고가도로 공사하는 근방”
통나무 의자에 앉아서 먹는 그 집.
“그래”
그럼 있다 봐.
갑작스런 약속을 한 후
바로 집사람한테 연락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영~ 아니다.
감기 때문이다.
아픈 몸은 생각도 않고
약속을 했다며 짜증을 낸다.
미안하다.
그 친구의 정성이 갸륵하여 어쩔 수 없었다.
퇴근하자 바로 차를 끌고 나왔다.
월계 이마트에서 낼 필요한 과일을 사고
4시30분에 그곳을 벗어나 구리로 향했다.
큰 도로에 접어들자 구름떼 같은 차량들로
홍수를 이룬다.
가다서다가 아니라 주체 서있다.
30분이면 가능한 시간인데,
무려 2시간이나 더 걸렸다.
다행히 서로
기다리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곧 2kg의 장어를 시키고 일부러 가져온
손수 만든 복분자술을 마시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주말이면 약수를 뜨러 간다는
<세정사>를 찾아 들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었다.
심심산골 같은 사찰에 들어서자 속세와
확연히 다른 신선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멍멍~멍 백구가 낯선 우릴 경계하자.
곧 부부인 듯한 스님이 합장하며 나왔다.
서로 인사하는 모양이 매우 잘 아는 눈치다.
들락 거린지 오래 되었다는 말과
‘개인이 운영하는 절’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사방이 아닌 팔방이 산으로 막혀있었고
들어오는 입구 쪽만 포도시 열려있는
예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친환경의 명소였다.
주차장을 넓게 새로 만들어 놓았고
많은 꽃과 나무로 조경을 하고 있었다.
녹차를 인원수대로 내오며 마실 것을 권유하는
스님 내외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유난히 밝은 빛이 세어 나오는
목조건물을 가리키며
일반인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인지 타진했다.
요사채(중들이 거처하는 집)라 한다.
이곳에서도
등산과 삼림욕이 가능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곳을 벗어났다.
다음엔 내가 초대할 것을
구두 약속하고 각자의 집을 향했다.
올 때완 다르게 막힘이 없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 이틀이 흘렀다.
그리고 사흘이 가자
드디어 오늘이 되었다.
평소와 같은 시간대인 6시30분에 기상했다.
아침 후,
집사람이랑 단둘이 커피를 마시며
두런두런 휴일 날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그리고
때가 되자
행낭을 챙겨 실고 집결지로 달렸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싱그럽다.
봄 속의 가을 같은
스산함 마저 감도는 환상적인 날씨다.
내 맘껏
계절의 여왕인 이 5월을 즐겨 주리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름다운 대자연을 찾아
출발~했다.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자유로에 접어들었다.
김포대교를 올라타고
48번 국도를 따라 가속기를 밝았다.
막힘없는 질주에 쾌재를 부르며 달리자
테마모임 때 정체로 몸살을 앓았던
강화가 1시간 만에 눈앞에 나타났다.
다시 40분을 달려 외포리 선착장에 왔다.
도선대기 차량과 일반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5562, 4741번 차량번호를 대고
한 대당 기사 포함 1만4천원,
승객 한 명당 2천원씩 받는 거마비를,
총 4만원 지불하고 표를 받았다.
부웅~
뱃고동이 울림과 동시에
낯설고 물 설은,
‘3개의 산이 있다 해서 붙여졌다’는
<삼산면>에 안착했다.
바로 보문사 방향으로 핸들을 꺾고
주변 경관을 바라보며 서행으로 숙박지를 향했다.
구불구불 이 마을, 저 동네를 스치고
염전 같은 정돈된 농토를 지나 보문사 입구에 왔다.
몇 분을 더 진행하자 차와 음식이 있는
<돌캐산장>이라는 간판이 들어온다.
주인장을 만나 8인실을 예약했던 사람이라며
안내를 요구하자 대뜸 미수금 2만원부터 달랜다.
그를 따라 1층 105호실 앞에 왔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방구석엔 가지런히 개진 요가 있었고,
세면장 옆 붙박이장에는
금빛 문양의 이불과 베개가 가득 있었다.
또 출입구에 화장실이 하나 더 있었고,
조금한 냉장고와 TV가 있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자바라형 칸막이가 있는 것이 상당히 좋았다.
10명 이상 잘 수 있는 큰 방으로
침실은 일단 합격이다.
행장을 풀고 바로 나와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갑론을박 속에 2만원짜리 밴댕이 무침 2개,
꽃게탕 4만원짜리 1개를 시켰다.
그것으론
‘한 쪽밖에 찬을 차릴 수 없다’며
주인아줌마가 더 시킬 것을 강권한다.
하지만
우리 고집대로 했다.
또다시 찾아와
하나론 부족하다며 계속 신경을 쓰게 하자
일행 한 분이 약간 역정을 냈다.
조짐이 이상해진다.
근방 무침이 나왔다.
소주를 곁들이며 한 순배 돌자
앞에 보이는 서해바다가 시원스럽게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딱 점심시간이었다.
밴댕이 무침과 해물전을 하나씩 추가 시켰다.
그러자 몇 가지 반찬이 들어왔고,
곧 꽃게탕이 나왔다.
공기밥도 인원수대로 주문하고
상당히 맛있게 점심을 마친 후,
주인장의 산행 안내를 듣고
시작점인 방개고개로 터벅터벅 걸었다.
20분 후 초입에 들어섰고,
가파른 길을 따라 능선에 올랐다.
산림은 짙은 녹음을 이뤄 간간히 들어오는
햇빛마저 차단하려는 듯 빈틈없이 울창하다.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쉬고 큰 암석에 올랐다.
올망졸망 크고 작은 섬들이
한가롭기 그지없게 보인다.
시원한 서풍은 이마의 흐른 땀을 닦아낸다.
그리고
저 멀리서
적막한 바다를 가르며 뭍을 행해 천천히 다가오는
배 한척이 있다.
그림 속 풍경이다.
느릿느릿 평탄한 능선을 계속 타고
1시간여를 소비하자 316m의 <상봉산>정상에
다달았다.
미처 준비 못한 디카 대신 핸펀으로
흔적을 각인하고
이내 낙가산 보문사 방향으로 발길을 틀었다.
500m를 내려가자
거대한 사찰이 보인다.
후미로 바로 들어가려 했더니
통행금지라는 푯말을 붙여 사방에 철망을 쳐놓았다.
무엄하게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설 수도 있는
등산객을 차단하기 위함인 것 같다.
많은 산을 다니고 절을 가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다.
자비의 대명사요, 무욕의 상징인 도량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정문으로 빙 돌아
인당 2천 원짜리 표를 구입하자
점검을 하고 입장을 시킨다.
입구부터 수많은 연등이
양옆으로 사열하고 있다.
모두 금전과 뗄 수 없는 밀접함이 있는 것들이다.
낙가산은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한다.
또한
공수부대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린데서
유래했다는 낙하산→낙카산→낙가산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낙산사>와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인
보문사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마애석불이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도 빈틈없이 형형색색의
명찰이 달린 연등이 산 중턱을 향해
구불구불 나열되어 있었다.
첫 계단부터 하나 둘 세고 올랐다.
392계단을 오르자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418계단이다’, ‘500개단이다’
여러 사람이 여러 말을 한다.
낙가산 중턱 암벽에 조각된 석불로 좌상이었으며,
머리 위에는 거대한 눈썹바위가
차양 구실을 하고 있었다.
챙은 인간이 일부러 만든
인공적인 냄새가 좀 풍겼고,
석불은 약 80년 전에 조각되어진 것이라
기록되어 있었다.
무심히 몇 분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내려와
이곳저곳을 거쳐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시 바쁜 발길을 돌렸다.
입구 아래 저잣거리엔 수많은 인파로 넘실되었고,
양옆 도로에는 촌로들이 약초와 해산물을
펴 놓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는데
차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부자가 울린다며
집사람이 호출을 했다.
달리다시피 현장에 왔다.
숙소에 다다르자 3번 울리고
잠잠해 졌다며 덤덤한 표정이다.
미리 준비해 온 과일과 오징어,
입구에서 사온 특주, 새우튀김 등을 차리고
이미 한잔씩 걸치고 있었다.
나도
한약재가 첨가된 탁주를 연거푸 2잔 마셨다.
이내 갈증이 사라진다.
참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낙조를 구경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펜션에서 만들어 논 바닷가 산책길을 따라
들뜬 맘을 아기자기 표출하며 서해를 바라봤다.
유난히 크게 보이는 햇님은 서산에 걸쳐있다.
석양은 핏빛으로 바다를 물들였고,
긴 노을을 드리우고 있다.
온전히 그 모습을 담고자
이번에도 연신 핸드폰을 터뜨린다.
장엄하게 기울어져 가는 해를 끝까지 바라본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차를 끌고 나왔다.
조개구이, 횟집, 장어구이 등
여러 식당을 돌아보다
마땅히 맘이 가는 곳이 없어 결국 회귀해
식당 발코니에 자리를 잡고 바비큐를 주문했다.
두 접시에 길쭉한 삽겹살이 나왔고,
서너 가지의 밑반찬이 따라 나왔다.
번개탄 위 석쇠에 고기를 올리자
근방 기름이 흘러 불길이 솟는다.
주인장의 아들인 듯한 종업원에게
왜? 목삼겹이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여긴 그런 거 없단다.
바비큐의 기본은 목삼겹인데, 이럴 수는 없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삼겹살을
제대로 손도 못되고,
다시 된장찌개를 시켰다.
불친절과 뜨내기손님으로만 대하는
그들의 상술에 회의가 느껴진다.
이래서는 아니 되는데,
차츰 친구의 말이 맞아 들어가는 분위기다.
침실로 돌아와 준비해온 과일과 술로 부족함을
달래며 주야장천 떠들고 까불다 보니
새벽 3시가 되었다.
겨우 한 숨 붙이고
6시경에 전원 기상했다.
인정 없는 이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어
급히 애마를 몰고 나와 선착장을 향했다.
첫 배를 타기 위해
몇 대의 승용차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근방 승하선하고 마니산으로 달렸다.
쭉~늘어선 관광지의 번화가를 훑어보다가
‘전주’라는 간판이 맘에 들어 들어섰다.
콩나물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모닝커피를 홀짝이며 입구로 갔다.
1,5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혹 사찰이 있어 그런 줄 알았는데,
참성단을 관람하는 요금이라 한다.
마니산(魔尼山)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만, 뜻이 난해하다.
그래서 찾아봤다.
‘마니’=‘보주’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쓰여 있다.
보주는 또 뭔가.
이것도 찾았다.
보주(寶珠)=‘보배로운 구슬’이라 되어 있다.
즉 ‘재난과 불행을 없애주고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하며,
물을 변하게 하는 따위의 덕이 있다는 구슬’이라
덧붙여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마니산은,
강화군 강화도에 있는 468m의 산으로
전국체전 성화가 태양열로 채화되고,
10월3일 개천절엔 단군제를 지내는
참성단이 있는 신령한 산이라는 뜻을 지닌 것이었다.
답답함이 사라지니 시원함이 온다.
역시 앎은 힘이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으며 힘차게 들어섰다.
단시간에 올라갈 수 있다는
계단로와 2시간이 소요된다는
등산로의 갈림길이 있었다.
우린 후자를 택해 등산을 시작했다.
아침 9시경이다.
청정한 공기가 그간의 불편함을 위로하듯 반긴다.
산길을 따라 중턱에 오르자
짙은 녹음과 대비되는
서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서울 근교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치다.
뒤돌아보니
어떤 이가 알림판을 만들어
<신비의 갯벌>이라는 글을 적어 논게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적는다.
강화 갯벌은 3,900만평에 이르는
세계 5대 갯벌(미국 동부해안, 캐나다 동부해안,
아마존강 하구, 북해연안, 강화 갯벌)이며
수천수만 세월동안
쌓인 퇴적물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노랑부리 백로 등 50여종의 철새가
찾아오는 신비의 갯벌입니다.
한참을 전망 좋은 그곳에서
서풍을 맞으며 서 있다가 이내 정상을 향했다.
남쪽 해안을 바라보며 걷는 산책 같은
등산로는 풍광의 압권이었다.
참성단 가는 방향표가 보인다.
많은 계단을 올라서자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 전하는 작은 탑이 나타났다.
참성단 관람료라 받더니
훼손을 막는다는 핑계로 철조망을 만들어
여기서도 출입통제를 하고 있었다.
바로 옆 헬기장에서 바라봤다.
짓다만 초라한 집터 같다.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는 단이 있었고,
동서에 돌층계가 있었다.
총 높이는 6m라 적어 놓았고,
지금까지의 관례로 전국체전 성화가 채화되고,
연말연시, 개천절만 개방된다는
안내가 있었다.
칠선녀의 사진도 있었고,
강화군 마니산 이라는 목재
표지도 세워져 있었다.
잠시 사방을 조망하다
참성단까지 거의 직선코스로 뻗어 있는
계단을 따라 하산했다.
입구 근방에 다다르자 눈에 띈 글이 있다.
강화 마니산 전국 제1의 ‘생기 처’
‘좋은 기를 마음껏 체험하세요.’
거의 뜬눈으로 지샜지만 피곤함이 없는 것이...
상당히 일리 있다.
그곳을 지나
몇 걸음 더 걸어 주차장까지 왔다.
전날 산행으로 피곤함을 느껴
동행하지 못한 집사람이 토속품을 파는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우릴 보며 반긴다.
주변에 돗자리를 깔고 빙둘러 앉아
맥주와 수박으로 지친 목을 축였다.
늘어진 육신을 다시 차에 실고 전등사로 향한다.
곧 초파일 인파와 많은 차량을 만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 같아 유턴했다.
강화를 향해간다.
농협인삼센타에 주차를 시키고,
마침 장날이어서 시장을 둘러봤다.
집사람은 토산물을,
다른 일행은 상추, 도라지 등을 샀다.
난, 리어카 위에 올려 논 서책을 뒤적이다,
유대인의 교양서라는 <탈무드>를 한 권 구입했다.
정가 8천원 인데 5천에 준다.
몇 장을 들췄다.
오우! 하나같이 금싸라기 같은 명언이다.
내친김에 이것도 제대로 알아보자.
탈무드란?
히브리어로
‘가르침에 관한 교훈이나 약속’이라는 뜻이며
동시에 ‘위대한 연구’를 뜻한다.
기원전 500년으로부터 기원후 500년에 이르는
약 1천년의 세월동안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것을
2천 명에 달하는 많은 학자들이
10년 동안에 걸쳐 편찬한 것으로
모두 20권, 1만2천 쪽에 달하고,
2백50만개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진 방대한 책이다.
이것은 법전이 아니지만 법률을 논하고,
역사책이 아니지만 역사를 말해주고,
인물사전이 아니지만 많은 인물들을 소개해 주고,
백과사전이 아니지만
백과사전의 구실까지도 해주고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행복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5천 년 유대 역사의 정신적 재산과
양식이 여기에 모두 담겨 있다 라는 설명이 있었고,
그 외
많은 부연이 있었으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긴다.
그럼 내용은 뭔지 보자.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해 다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앞장에서 몇 개 추렸다.
1)만약 생활이 궁핍하여 가산을
팔아야만 될 경우라면
금, 보석, 집, 토지 순으로 팔아라.
최후까지 팔아서는 안 될 것은 책이다.
2)장사꾼 한 사람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을 팝니다.”
순식간에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는 비결’을
살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랍비도 몇 사람 섞여 있었다.
“제발 그 행복의 비결을 나에게 파시오.”
사람들이 다투어 졸라대자 그 장사꾼이 말했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이란,
바로 자신의 혀를 조심해서 쓰는 것뿐이오.”
3)인간의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하여 좌우된다.
보고, 듣고, 걷고, 서고, 딱딱해지고,
부드러워지고, 거만스러워지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등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가장 강인한 인간이란,
자신의 마음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다.
4)인생에는 돈, 술, 노래, 섹스 등과 같은
즐거움도 필요한 것으로서
때로는 규제를 벗어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때로는 취해서 쓸데없이 지껄여보는 것도 좋고,
노래를 크게 불러보는 것도 좋다.
어쩌다 싸움을 한다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착실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인생의 톱니바퀴가 한때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전 생애를 그르치는 행동은 두려워해야 한다.
5)여자란?
①어떤 남자라도 여자의 야릇한
아름다움에는 버틸 수가 없다.
②여자의 질투심은 하나의 이유 밖에 없다.
③여자는 자기의 외모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④여자는 남자보다 육감이 예민하다.
⑤여자는 남자보다 정이 두텁다.
⑥여자는 불합리한 신앙에 빠지기 쉽다.
이해했을 것으로 믿고 다시 본론으로 간다.
일행 중 한 분이,
김포IC 근방 유명 붕어찜이 있다 해서
점심을 해결하러 갔는데,
없다.
어쩔 수 없이
행주대교를 거쳐 자유로로 왔다.
행주산성으로 빠져
다시 맛집을 찾아 가기로 했으나
2차선을 타고 쌩쌩 달리다 이곳 마져 놓쳤다.
에이~달린 김에 출발지인 종암동을 거쳐
제기동까지 와버렸다.
자주 가는 횟집에 온 것이다.
강화와 확실히 다른 친절로 산해진미를 차려낸다.
고마워서 팁까지 2만원 줬다.
이곳에서 무려 3시간 이상을 먹고 마시다,
거나해 질 무렵,
자식들을 위한 초밥을,
하나씩 챙겨들고 귀가 길에 올랐다.
이틀간의 행복한 이탈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봄엔 어린이만 자라는 게 아니었다.
나도 자랐다.
마음도 자랐고, 소양도 훌쩍 자랐다.
역시
5월은 푸르고 우리는 자란다.
이런
싱그러운 오월 속 여정이,
금세
이제는 어제가 되었다.
그러나
끝은 시작의 출발이라 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또 다른 그를 찾기 위한
출발선상에 서있다.
ㅎ ㅎ~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2008. 5. 16
<끝>
|
첫댓글 참 이쁘게 사네. 언제나 몸과 마음이 푸르게 사는 모양이 보기에 좋구만.
언제나 변함 없는 예쁜 심성을 지닌 회장님이, 오늘도 변함 없는 고운 마음으로 이쁜 발자취를 남기고 가셨네요. 감사합니다. 곧 배알하겠습니다.
자주 다니는 석모도 그림으로 뇌리에 와 닿는구먼. 언제나 여행은 즐거운 추억을 남겨주지.젊어서 많이 다니시게나 난 국내는 많이 다녀서 이제 눈을 해외로 돌리고 싶더군. 박총무 계속 가속 페달을 밟으시게나. Go! Go!
재력, 시간, 건강 3박자를 두루 갖춘 자네야말로 '국내는 좁고, 세계는 넓다'를 인식할 때가 되었네. 잘 돌아보고 견문록도 한 질 멋지게 쓰시게. 제목은 내가 붙였네. '강삿갓 세계를 섭렵하다' 그럼 홧팅~
잉꼬회 회원이 아닌 나같은 선녀는 하나도 재미없고 가슴팍에 가시만 박히는것 같으니까 노는자랑 작작이하고 간단하게 (같이했으면 좋았을걸) 해봥?~~~ 담부터는 기대해볼겨!!!
죄송합니다. 결과가 그렇게 되었네요. 그럼 어딘들 가봅시다. 말씀만 하세요. 1박2일? 2박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