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를 훌쩍 넘겨 감자를 캐고... 참 맛있습니다

감자는 늦어야 하지까지만 둔다고 하는데(올해는 양력으로 6월 22일이 하지였네요.) 올해는 하지를 훌쩍 넘겨 오늘에야 캤네요. 일년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가 되면, 들에는 흰 개망초가 만개하고 모내기한 논의 벼는 새 뿌리를 내려 나날이 푸르러지고,사람들은 논에 비료치기와 벼 병충해 방제를 위한 농약 살포 작업에 바빠진답니다. 장마와 가뭄대비도 해야 하는 이때는 일년 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쁜 때로, 옛날에는 메밀파종, 누에치기, 감자캐기, 고추밭매기, 마늘캐기 및 건조, 보리수확 및 타작, 보리수매, 콩심기, 대마수확이 이루어지는 시기였다네요. 지금에야 밭농사가 많지 않아 예전만큼 일손이 바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늘캐랴, 감자캐랴, 콩심으랴, 동네 여인네들의 손길이 바쁩니다. 민들레 아이들과 함께 캐고 남은 감자가 3이랑. 그제 오늘 해가 나왔어도, 땅은 아직 물기를 머금어 질척거립니다. 며칠전 옆집 할머니가 손주와 감자 캐는 것을 봤기에, 오늘은 할머니가 감자를 캐던 그대로 캐 보았습니다. 감자대를 뽑아 대를 따라 올라온 감자를 떼어 바구니에 담은 뒤, 흙을 호미를 살살 긁어 땅속에 있는 감자를 마저 캐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부드럽게 호미질을 하면서 말이지요.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반이라고, 할머니를 흉내내 감자를 캤더니 호미 날에 찍힌 감자가 몇알 없네요. 감자는 힘들여 서둘러 캐는 일이 아니네요. 부드러운 손길로, 여유롭게, 감자 하나하나를 쓰다듬듯이, 컴컴한 땅속에서 여무느라 고생했다, 위로도 하며 그렇게 감자를 캐야 하나봅니다. 아이들은 감자를 바구니에 주어 담았습니다. 감자가 담겨 제법 무게가 나가는 바구니를 규홍이는 끄응, 힘 한번 쓰고는 번쩍 들어 옮깁니다. 아들놈이 제법 많이 자랐네요. 규홍이가 아빠몫의 일을 해 냈습니다. 감자를 캐면서 두놈은 조잘조잘 학교에서 있었던일,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풀어놓습니다. 사교성 좋은 규창이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형을 보고 '안녕'인사도 나눕니다. 올해는 감자가 흉년이라고 하네요. 저희집 감자는 작년보다는 굵은 알이 더 많습니다. 굵은 놈은 어른 주먹 2개를 붙여 놓은 것 만하니, 퍽 실한 셈입니다. 수확도 작년만 한 것 같으니, 저희집으로서는 흉년이라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감자를 주어 담으며 아이들은 감자 튀김을 해달라, 감자탕이 먹고 싶다, 아라리가 났습니다. 돼지고기와 감자를 굵직하게 썰어넣고 고추장 팍팍 풀어 미나리 넣고 깻잎 넣고 얼큰하게 감자탕 사촌(?)쯤 되게 고추장 찌게를 끓였습니다. 거기에 수제비도 뚝뚝 뜯어 넣어 밥 2공기씩 뚝딱 해지웠습니다. 내손으로 길러서인지, 아니면 씨감자가 맛있는 종자여서인지 모르겠지만, 뒤끝이 구수한 맛이 나는것이 유별스럽게 감자가 맛있습니다.(ㅎㅎㅎ, 안 믿기지요? 진짠데~) 오전에는 이사할 집 청소를 했습니다. 어제 남편이 짰다는 문짝이 퍽 궁금했었는데, 서툰 첫 솜씨치곤 가히 예술이라 할 만 합니다. 집 지어도 충분하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지나치게 넓게 만들어졌다 싶었던 문틀을 이리저리 나무를 이어붙여 폭을 줄이고, 합판을 덧댄후, 청소하다 나온 문짝을 주어서 가로세로 무늬를 넣었네요.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무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의미를 두고 했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하니, 문짝 무늬에 화살표를 넣어 나쁜 기운은 문 밖으로 나가도록 유도하였다고 하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 뜻만은 높이 사고 싶었답니다. 사람이 머물고 난 흔적은 왜 그리 큰지. 살아있는 생명중 그 흔적이 가장 크게 남는 것은 분명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싱크대를 닦고 방 두개와 마루를 닦고 나니 파김치가 됐습니다. 이사할 집 부엌이 환해서 참 마음에 듭니다. 거칠것 없이 앞이 툭 트여서인지, 마치 해바라기가 활짝 웃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차한잔 마시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