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장. 小國寡民(소국과민)
- 백서본 제30장
남 : 소국과민은 바로 지방 자치이다
장 :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을 적게 한다
주 :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다
톨 : 작은 국가란
오 : 인구가 적은 작은 나라 – 도가적 이상사회
김 : 노자의 이상 국가론
여운 : 노자의 이상국가 - 공자의 대동세상
남 : 남회근(1918~2012) 근래 20~30년 대만에서 국사 대접을 받은 분으로 장개석과 장경국의 국사
장 : 장치청(1959~)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 북경중역국학원 원장.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
주 : 주춘재(1957~) 화가, 작가. 중국문화보급과 전세계 대중화에 앞장섬.
톨 :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 소설과, 사상가.
오 : 오강남(1941~)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명예교수, 종교학자.
김 : 도올 김용옥(1948~) 철학자, 사상가.
여운 이준호 : 야매 한학자, 지식 노가다꾼.
80.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民復結繩而用之.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鄰國相望, 雞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국가의 규모는 작게 하고(小國) 백성의 수는 적게 한다(寡民). 가령(使) 다종다양하고 훌륭한(什伯之) 기물이 있더라도(有器而) 낭비하지 않도록 한다(不用). 가령(使) 백성들이(民) 죽는 것을 큰일로 여겨(重死而), 멀리 피난 갈 일이 없도록 한다(不遠徙). 비록(雖)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有舟輿), 그것을 탈 일이 없도록 한다(無所乘之). 비록(雖)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有甲兵), 진법에 사용하는 바가 없게 한다(無所陳之). 가령(使) 백성들이(民) 노끈을 묶어 차용증을 대신하니(復結繩) 그런 식으로 사용하게 한다(而用之) 백성들이 음식을 달게 먹고(甘其食), 그 입는 옷이 아름답고(美其服), 그들이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니(安其居), 그들의 풍속이 즐거운 것이다(樂其俗). 인접한 나라가(鄰國) 서로(相) 바라보고 있어(望), 닭과 개의(雞犬之) 울음소리가(聲) 서로 들린다(相聞). 백성들이(民) 늙어서 죽을 때까지(至老死) 서로 왕래하고 싶어 하지 아니하게 한다(不相往來).
In a little state with a small population, I would so order it, that, though there were individuals with the abilities of ten or a hundred men, there should be no employment of them; I would make the people, while looking on death as a grievous thing, yet not remove elsewhere (to avoid it).
Though they had boats and carriages, they should have no occasion to ride in them; though they had buff coats and sharp weapons, they should have no occasion to don or use them.
I would make the people return to the use of knotted cords (instead of the written characters).
They should think their (coarse) food sweet; their (plain) clothes beautiful; their (poor) dwellings places of rest; and their common (simple) ways sources of enjoyment.
There should be a neighbouring state within sight, and the voices of the fowls and dogs should be heard all the way from it to us, but I would make the people to old age, even to death, not have any intercourse with it.
小國寡民(소국과민). 使有什伯之器而不用(사유십백지기이불용).
남 : 나라는 작고 백성들은 적어서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한다.
장 :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을 적게 한다. 백성들이 열 가지 백 가지 기물이 있어도 쓰지 않게 하고,
주 :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어, 비록 문명의 ‘이기利器’가 많아도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톨 : 작은 국가에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많은 최고의 무기가 있지만, 사용하지 않고 필요 없이 그대로 보관된다.
오 : 인구가 적은 작은 나라. 열 가지 백 가지 기계가 있으나 쓰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김 : 될 수 있는 대로 나라의 크기를 작게 하고, 나라의 인구를 적게 하라! 온갖 생활의 그릇이 있어도 쓸 일이 없게 하라!
여운 : 국가의 규모는 작게 하고(小國) 백성의 수는 적게 한다(寡民). 가령(使) 다종다양하고 훌륭한(什伯之) 기물이 있더라도(有器而) 낭비하지 않도록 한다(不用).
小(작을 소) - 작다, 적다, 협소하다, 좁다, 가볍게, 삼가다, 낮다, 어리다, 소인, 첩.
國(나라 국) - 나라, 국가, 서울, 도읍, 고향.
寡(적을 과) - 적다, 작다, 드물다, 외롭다, 과부, 홀아비.
民(백성 민/면) - 백성, 사람, 민심, 노예, 어둡다, 다스림을 받는 사람, 어리석음, 잠자다.
使(하여금 사/시) - 하여금, 가령, 만일, 심부름꾼, 하인, 부리다, 시키다, 순종하다, 사신.
有(있을 유) - 있다, 존재하다, 가지다, 독차지하다, 많다, 넉넉하다, 소유.
什(열 사람 십/집) - 열 사람, 열 집, 열, 십, 다종다양한, 여러 가지, 무엇, 무슨, 세간, 가구.
伯(맏 백/패/맥) - 맏이, 첫, 남편, 큰아버지, 백작, 일백, 뛰어나다, 우두머리, 길.
之(갈지) - 가다, 끼치다, 사용하다, 이르다, 어조사, 다, 이, ~의, 에, 와, ,을, 이에.
器(그릇 기) - 그릇, 접시, 도구, 기관, 그릇으로 쓰다, 담다, 존중하다, 개가 짖다.
而(말 이을 이) - 말을 잇다, 같다, 너, 자네, 만약, 따름, 그리고.
不(아니 불/부) - 아니다, 아니하다, 못하다, 없다, 말라, 아니하냐, 불통.
用(쓸 용) - 쓰다, 부리다, 일하다, 다스리다, 나무통, 용도, 작용, 재물, 비용, 그릇, 도구.
‘小國寡民(소국과민)’을 읽고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Neo-Liberalism)를 신봉하는 털 없는 침팬지들이 신나 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시장 자유방임주의를 목 놓아 외치면서 작지만 강한 정부, 자유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시, 노동 시장의 유연화 등의 형태를 앞세워 대처와 레이건, 이명박과 박근혜가 추진했던 이념이다. 노동 시장 유연화를 앞세워 정규직을 축소하여 발주 용역회사를 통해 노동자의 해고를 자유롭게 만들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여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넘겨주려는 시커먼 속내를 가진 털 없는 침팬지들의 신보수주의 정치, 경제이념이다.
나는 인간사회가 타락의 길로 접어든 이유를 익명성(匿名性, Anonymous)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피엔스가 도덕성을 획득한 결정적인 이유가 생각과 언어가 출현한 이후, 무리에 평판(評判)과 여론(與論)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미국 동물학자이자 미시간대학의 리처드 알렉산더(Richard D. Alexander, 1928~2018)의 ‘평판 가설(reputation hypothesis)’을 지지한다. 평판 좋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유전자를 후손에 남길 가능성도 높으므로 인류는 덜 공격적으로 진화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인 진화인류학자인 크리스토퍼 보엠(Christopher Boehm, 1931~2021) 교수와 하버드대학 인간 진화생물학과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 1948~) 교수의 ‘사형 가설’ 역시 지지하기 때문이다. 사형 가설은 ‘공격적이고 규범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과 관계된다. 공격적인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인간은 언어로 모의했고, 연합을 꾀했다. ‘주도적인 연합 공격’은 처형과 전쟁, 학살, 노예제, 약탈, 숙청을 낳았고 사회적 처벌로서 시민사회의 기반이 됐다. 나아가 자신이 처단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집단의 규범에 대한 순응, 즉 도덕성을 강하고 정교하게 진화시켰다는 설명이다.
노자가 꿈꾸었던 세상은 익명성이 통하지 않는 좋은 평판을 통해 통치자와 백성 모두 자기 길들이기(Self-Domestication)가 이루어진 도덕이 넘실대는 참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거대 文明 사회는 필연적으로 익명성을 낳고 익명성에 기대어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힘이 정의가 되는 세상으로 전복된다. 지난 정권 때 만해도 전 세계에서 칭송받던 대한민국이 지금 꼬락서니 어떻게 되었나 보라! 무책임하고 무계획적인 이기적인 침팬지들이 나라를 다스리니 무정부 상태다. 이타적 인간들의 유용한 에너지가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털 없는 침팬지들을 통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에너지로 전환되어가는 무질서의 척도인 엔트로피가 최고조로 증가하고 있다. 나는 이를 오귀스트 콩트가 제안한 용어인 ‘사회 물리학(社會物理學, Social physics)’이라고 정의한다.
무질서의 최고조 집단이 또 있다. 올바른 평판을 통해 여론을 올바른 길로 몰아가야 할 언론집단이다. 권력을 통제하고 감시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정의의 집단의 구성원들이 시험만 잘 보는 이기적인 침팬지들로 채워졌다. 스스로 자신들의 본분과 직분 그리고 사명을 내팽개쳤다. 그들로 인하여 처단해야 할 불선(不善)한 것들이 선(善)이 되고 불의(不義)가 정의(正義)로 탈바꿈하였다.
박근혜 국정 농단 때 광화문에서 외쳤던 ‘이게 나라냐?’ 하며 갈아치웠는데 또다시 적폐 세력들에 의해 침팬지들이 날뛰는 세상이 되었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도 좌파와 우파의 대립도 아니다. 오로지 극악무도한 불선한 자와 선한 자, 비도덕적 인간과 도덕적인 인간, 그리고 인면수심의 털 없는 침팬지와 착한 사피엔스와의 대결이다.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차별이 정당화되는 전근대 사회를 만들 것인가?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공정과 평등이 정의가 되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는 결국 깨어 있는 시민의 한 표에 달렸다.
使民重死而不遠徙(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수유주여), 無所乘之(무소승지),
남 :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히 여기고 멀리 이사하지 못하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고 갈 곳이 없고,
장 : 백성들이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이사 다니지 않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일이 없고,
주 : 모두들 생명을 소중히 여겨 먼 길 떠나는 모험을 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니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필요가 없다.
톨 : 그런 국가의 백성들은 어떤 직업(일)도 잃고, 어는 곳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죽을 것이다. 만약 그(작은 국가)에게 많은 마차와 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사용되지 않고 그대로 보관될 것이다.
오 : 백성이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이사 가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는 일이 없고,
김 : 백성들로 하여금 죽는 것을 중하게 여겨 멀리 이사 다니지 않게 하라!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일이 없게 하라!
여운 : 가령(使) 백성들이(民) 죽는 것을 큰일로 여겨(重死而), 멀리 피난 갈 일이 없도록 한다(不遠徙). 비록(雖)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有舟輿), 그것을 탈 일이 없도록 한다(無所乘之).
重(무거울 중) - 무겁다, 소중하다, 귀중하다, 삼가다, 보태다, 곁들이다, 붓다.
死(죽을 사) - 죽다, 생기가 없다, 활동력이 없다, 죽이다, 다하다, 목숨을 걸다.
遠(멀 원) - 멀다, 심오하다, 깊다, 많다, 오래되다, 멀리하다, 소원하다.
徙(무리 도) - 무리, 동류, 제자, 문하생, 종, 일꾼, 보졸, 맨손, 죄수, 영벌, 헛되이, 홀로, 곁.
雖(비록 수) - 비록, 아무리~해도, 그러나, 밀다, 추천하다.
舟(배 주) - 배, 선박, 반, 끌채, 배 타고 건너다, 싣다, 띠다, 배주.
輿(수레 여/예) - 수레, 가마, 차상, 하인, 노비, 땅, 대지, 기본, 정기.
無(없을 무) - 없다, 아니다, 아니하다, 말다, ~하지 않다, 무시하다, ~관계없이, ~막론하고.
所(바 소) - 바, 곳, 처소, 지위, 자리, 기초, 도리, 사리, 경우.
乘(탈 승) - 타다, 오르다, 헤아리다, 이기다, 업신여기다, 꾀하다, 곱하다, 불법, 수레, 넷.
나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으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내란을 선동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노자는 전쟁 반대론자이다.
31장에서 노자는 “병기란(兵者) 상서롭지 못한(不祥) 도구라(之器) 군자가 아닌 자가(非君子) 사용하는 물건이다(之器). 부득이할(不得已) 때만 사용해야 하며(而用之), 평온하고(恬) 담박하게(淡) 다스림이 최상이다(爲上). 전쟁에서 이겼더라도(勝而) 찬미하지 마라(不美)! 그것을(而) 찬미하려는(美之) 놈은(者) 살인을 옳다 하고 즐기는 놈이다(是樂殺人). 무릇(夫) 살인을 즐기는 놈이(樂殺人者) 천하가(天下)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得志於) 불가한 법이니라(則不可)!”라고 전쟁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했다. 위정자가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니 “가령(使) 백성들이(民) 죽는 것을 큰일로 여겨(重死而), 멀리 피난 갈 일이 없도록 한다(不遠徙). 비록(雖)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有舟輿), 그것을 탈 일이 없도록 한다(無所乘之).” 백성들이 사는 곳을 떠나서 멀리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雖有甲兵(수유갑병), 無所陳之(무소진지). 使民復結繩而用之(사민복결승이용지).
남 : 비록 갑옷이 있어도 진칠 곳이 없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끈으로 매듭을 지어 사용하게 한다.
장 :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그것을 늘어놓을 일이 없다. 백성들이 다시 새끼를 꼬아 그것을 사용하게 한다.
주 : 비록 군대도 있고 장비도 있지만 전쟁을 벌일 곳이 없다. 백성들이 먼 옛날로 돌아가 새끼줄을 엮어 문자를 대신하도록 한다.
톨 : 비록 그가 잘 조직된 군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배치할 곳이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밧줄을 짤 것이다.
오 :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내보일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 다시 노끈을 매어 쓰도록 하고,
김 : 비록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그것을 펼칠 일이 없게 하라!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끈을 매듭지어 쓰게 하라!
여운 : 비록(雖)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有甲兵), 진법에 사용하는 바가 없게 한다 (無所陳之). 가령(使) 백성들이(民) 노끈을 묶어서 문자를 대신하니(復結繩) 옛 방식으로 계속 사용하게 한다(而用之).
甲(갑옷 갑) - 갑옷, 딱지, 껍질, 첫째, 아무개, 손톱, 첫째가다, 싹이 트다, 칱압하다.
兵(병사 병) - 병사, 병졸, 군사, 무기, 병기, 싸움, 재앙, 원수, 상하다, 다치다, 치다, 죽이다.
陳(베풀 진) - 베풀다, 묵다, 늘어놓다, 늘어서다, 말하다, 많다, 조사하다, 펴다, 방비, 진법.
復(회복할 복/부) - 회복하다, 돌아가다, 돌려보내다, 갚다, 겹치다, 채우다, 대답하다, 다시.
結(맺을 결/계) - 맺다, 모으다, 묶다, 매다, 꾸미다, 짓다, 다지다, 엇갈리게 하다, 매듭, 상투.
繩(노끈 승) - 노끈, 줄, 먹줄, 法, 바로잡다, 통제하다, 제재하다, 잇다, 계승하다, 판단하다.
다른 나라와 평화롭고 사이좋게 지내니 비록(雖)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有甲兵), 진법에 사용하는 바가 없게 한다(無所陳之). 병기가 있어도 상서롭지 못하니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무기는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으로 충분하다. 46장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천하에(天下) 도가 생기면(有道) 달리는 말이(走馬) 쉼으로써(卻以) 거름을 준다(糞). 천하에(天下) 도가 사라지면(無道) 전쟁에 나간 말이(戎馬)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게 된다(生於郊).”라고 전쟁을 극도로 비판한다.
結繩(결승)은 문자가 탄생하기 이전에 새끼줄의 매듭을 꼬아서 셈하던 셈법이라고 한다. 중국의 『역(易)』 계사전(繫辭傳)에 의하면 “상고에는 結繩(결승)에서 시작하여 후세의 성인이 이것을 서계(書契, 刻記)로 바꾸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동양 문화권에서 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가령(使) 백성들이(民) 노끈을 묶어서 문자를 대신하니(復結繩) 옛 방식으로 계속 사용하게 한다(而用之).” 다툼도 적고 갈등도 적었던 문자가 없던 태고 시대에 노끈으로 매듭을 묶어 부호를 삼아서 행한 소박하고 질박한 小國寡民(소국과민) 노자가 이상으로 추구하는 정치 형태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甘其食(감미식), 美其服(미기복), 安其居(안기거), 樂其俗(락기속).
남 : 그 음식을 달게 여기고, 그 의복을 아름답게 여기고, 그 거처를 편안히 여기고, 그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한다.
장 : 음식을 맛있게 여기고,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거처를 편안히 여기고, 풍속을 즐겁게 여긴다.
주 : 그러면 아무리 거친 음식을 먹어도 달게 느낄 것이다. 아무리 허술한 옷이라도 아름답게 느낄 것이다. 아무리 생활이 누추해도 편안하게 느낄 것이다. 아무리 풍속이 소박해도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톨 : 비록 그가 잘 먹고, 아름답게 옷을 입고, 가장 조용한 주택을 짓고, 즐겁게 살지만, 그의 존재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오 : 음식을 달게 여기며 먹도록 하고, 옷을 아름답게 생각하며 입도록 하고, 거처를 편안하게 생각하며 살도록 하고, 풍속을 즐기도록 하십시오.
김 : 백성이 먹는 것을 달게 해주며, 백성이 입는 것을 아름답게 해주며, 백성이 사는 것을 편안하게 해주며, 백성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풍속을 즐겁게 해주어라!
여운 : 백성들이 음식을 달게 먹고(甘其食), 그 입는 옷이 아름답고(美其服), 그들이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니(安其居), 그들의 풍속이 즐거운 것이다 (樂其俗).
甘(달 감) - 달다, 달게 여기다, 맛 좋다, 익다, 만족하다, 들어서 기분 좋다, 느리다, 감귤.
其(그 기) - 그, 그것, 아마도, 만약, 어찌, 장차, 이미, 마땅히, 이에, 그래서.
食(밥 식/사) - 밥, 음식, 제사, 벌이, 생활, 생계, 먹다, 먹이, 기르다, 양육하다.
美(아름다울 미) - 아름답다, 맛나다, 좋다, 맛있다, 경사스럽다, 즐기다, 좋다, 기리다, 좋은 일.
服(옷 복) - 옷, 의복, 일, 직업, 직책, 일용품, 옷을 입다, 좇다, 복용하다, 들어맞다.
安(편안할 안) - 편안, 편안하다, 안존하다, 즐기다, 안으로, 어찌, 이에, 곧, 어디에.
居(살 거) - 살다, 거주하다, 차지하다, 처지에 놓이다, 자리 잡다, 앉다, 쌓다, 거만하다.
樂(노래 악/낙/요) - 노래, 음악, 연주하다, 즐기다, 즐거워하다, 다스리다, 바라다, 좋아하다.
俗(풍속 속) - 풍속, 관습, 속인, 범속하다, 평범하다, 대중적이다, 저급하다, 저속하다, 신기x.
‘자연으로 돌아가자(Retour à l'état de nature)!’라고 외쳤던 스위스 태생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인간 세상, 인간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 고찰하면서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자연성을 잃지 않은 인간, 곧 자유로운 자연인을 길러내고자 하는 교육론을 펼쳤다. 그는 원시 공동체 사회를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사회로 보았다. 즉, 자연 상태에서 차별 없고 평등한 삶이 이루어지고, 간혹 배는 곪아도 행복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세상으로 노자의 정치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백성들이 음식을 달게 먹고(甘其食), 그 입는 옷이 아름답고(美其服), 그들이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니(安其居), 그들의 풍속이 즐거운 것이다(樂其俗).”
鄰國相望(린국상망), 雞犬之聲相聞(계견지성상문). 民至老死(민지노사), 不相往來(불상왕래).
남 :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장 : 이웃 나라와 서로 바라다보고 닭울고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주 :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이웃 나라가 눈앞에 바라보여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톨 : 비록 그런 국가가 수탉의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웃과 가까이 있을지라도, 그들 사이에는 결코 의사소통이 없을 것이다.
오 :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지만, 사람들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습니다.
김 : 이웃하는 나라들이 서로 바라다 보이는 데, 꼬끼요 소리와 멍멍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왔다 갔다 하지 아니한다.
여운 : 인접한 나라가(鄰國) 서로(相) 바라보고 있어(望), 닭과 개의(雞犬之) 울음소 리가(聲) 서로 들린다(相聞). 백성들이(民) 늙어서 죽을 때까지(至老死) 서로 왕래하고 싶어 하지 아니하도록 한다(不相往來).
鄰(이웃 린) - 이웃, 이웃한 사람, 보필, 수레의 소리, 이웃하다, 인접한.
相(서로 상) - 서로, 바탕, 도움, 모양, 다스리다, 따르다, 이끌다.
望(바랄 망) - 바라다, 기다리다, 기대하다, 그리워하다, 바라보다, 망보다, 엿보다, 전망, 희망.
雞(닭 계) - 닭, 화계, 물의 이름.
犬(개 견) - 개, 겸칭, 하찮은 것의 비유, 남을 멸시하는 말.
聲(소리 성) - 소리, 풍류, 노래, 음악, 이름, 명예, 명성, 사성, 읊다, 말하다, 펴다, 밝히다.
聞(들을 문) - 듣다, 들리다, 깨우치다, 소문나다, 맡다, 방문하다, 아뢰다, 견문, 식견.
至(이를지) - 이르다, 미치다, 과분하다, 지극하다, 힘쓰다, 다하다, 이루다, 주다.
老(늙을 노) - 늙다, 익숙하다, 노련하다, 숙달하다, 대접하다, 공경하다, 오래 되다, 쇠약하다.
死(죽을 사) - 죽다, 생기가 없다, 활동력이 없다, 다하다, 목숨을 걸다.
往(갈 왕) - 가다, 떠나다, 죽다, 향하다, 과거, 옛날, 죽은 사람, 이따금, 가끔, 언제나, 이후.
來(올 래) - 오다, 돌아오다, 부르다, 위로하다, 이래, 그 이후로, 앞으로, 미래, 후세, 보리.
인간이 비참한 순간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느끼는 박탈감과 부러움이다. 북한에서 끊임없이 탈북자가 생기는 이유는 그 이웃한 나라가 내가 사는 곳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잘 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내 인생을 책임지어주는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인접한 나라가(鄰國) 서로(相) 바라보고 있어(望), 닭과 개의(雞犬之) 울음소리가(聲) 서로 들린다 해도(相聞). 백성들이(民) 늙어서 죽을 때까지(至老死) 서로 왕래하고 싶어 하지 아니하도록 한다(不相往來).”
일찍이 동양사상에는 사회복지에 대한 역사가 깊다. 공자는 『예기 예운편』에서 다음과 같이 자기가 이루고 싶어 하는 세상에 대하여 설파했다.
“大道之行也(대도지행야), 天下爲公(천하위공). 큰 도가 행하여진 세상은 천하를 온 세상 사람들이 공정히 다스린다. 選賢與能(선현여능), 講信修睦(강신수목). 어질고 유능한 인물을 선발하였고 진실을 강조하고 화목을 위해 애썼다. 故人不獨親其親(고인불독친기친), 不獨子其子(불독자기자). 그러므로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의 부모만을 부모라 여기지 않았으며, 자기의 자식만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使老有所終(사노유소종), 壯有所用(장유소용), 幼有所長(유유소장). 노인들은 그 생을 편안히 마칠 수 있게 해주고, 장정들은 본인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아이들은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矜寡, 孤獨, 廢疾者, 皆有所養(긍과, 고독, 폐질자, 개유소양).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병든 자들도 모두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男有分(남유분), 女有歸(여유귀). 남자는 사·농·공·상의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가정이 있게 하였다. 貨惡其弃於地也(화오기기어지야), 不必藏於己(불필장어기), 사람들은 재물이 헛되이 낭비되는 것을 혐오했지만, 반드시 자기에게만 사사로이 감추어 두지 않았으며, 力惡其不出於身也(역오기불출어신야), 不必爲己(불필위기). 사람들은 힘쓰지 않고 빈둥거리는 놈팽이들은 혐오했지만, 자기들에게 득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是故謀閉而不興(시고모폐이불흥), 盜竊亂賊而不作(도절난적이불작). 그런 까닭에 간사한 모략이 막혀 일어나지 못했으며, 도둑과 절도, 난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故外戶而不閉(고외호이불폐), 是謂大同(시위대동). 그러므로 바깥 문을 닫는 일이 일절 없었으니 이러한 세상을 대동 세상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