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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아내의 회갑 여행
호미곶 모텔에서 촬영한 동해의 일출
스물다섯 색시가 나와 삼십육 년을 살아 올 6월, 회갑을 맞았다. 세월 참 빠르다. 신랑이라고 만난 남편은 십 수 년을 제멋대로 살아, 혼자서 꽤나 속앓이를 했으련만 꿋꿋이 참고 견뎌 지금의 가정을 이루었다. 자식들이 장성하여 딸은 서른여섯, 아들은 서른하나가 되었다. 딸이 어머니의 회갑이라고 5월에 여행을 주선하고 안내하여 모로코와 프랑스 파리를 15일의 일정으로 셋이 함께 다녀왔다.
열대의 나라 모로코에서는 골목 시장 메디나를 구경하고 사막에가 낙타도 타 보았다. 골목과 시골길을 다니는 나귀와 어린애가 안고 온 사막여우도 보았다. 산과 들에서 올리브 나무를 보았고 생 오렌지 쥬스도 여러 번 마셨다. 사막 지역 메르조가 호텔에서는 에어컨 요금을 따로 받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약간의 더위를 견뎌야 했다. 딱딱하게 마른 빵으로 식사를 했고, 사막의 캠프에서 밤하늘에 가득찬 별들의 향연도 보았다.
다음으로는 10여 년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프랑스의 파리에 가 보았다. 독일에 사는 딸은 몇 차례, 아내는 몇 년 전에도 가 본 적이 있지만 나는 처음이라 큰 기대를 가지고 갔다. 하지만 일정이 고작 사흘뿐이라 몽마르트, 에펠탑, 개선문, 센강과 유람선 등 몇 군데만 돌아보는 아쉬운 여행이었다.
그리고, 아내의 회갑일에 내가 제안하고 기획하여 동해안으로 2박 3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에 자전거로 혼자 다니며 보았던 명소들을 아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작년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며 아내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곳이 바로 동해안이었다. 동해안은 바다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많고, 해안은 대부분이 해수욕장으로 이어져 있어 경치 좋은 곳이 많다.
수원에서 동해안으로 가기 위해 먼저 신라의 고도, 경주로 갔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서 많은 유적들이 있다. 그래서 수학여행이나 문학기행 등으로 여러 번 다녀왔지만 경주의 남산은 가보지 못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에 경주 남산에 있는 유적에 대한 소개가 잘 돼 있어 언젠가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1. 경주와 남산, 그리고 호미곶으로
경주시에 들어서니 먼저 오릉이 나왔다. 커다란 왕릉 주변으로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고 소나무가 잘 자라 있어 눈이 시원했다. 마침 해설사가 있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물으니 어느 쌈밥집을 알려 주었다. 방송에도 소개된 유명한 집이었다. 상당히 넓은 식당에 손님도 많았다. 많은 반찬이 깔끔하게 나왔고 맛도 좋았다. 해설사에게 식당을 물어본 것은 잘한 일이었다.
점심 후에 천마총을 갔다. 20~30년 전에 왔을 때는 조그마한 규모였는데 지금은 규모가 매우 커졌고, 조경도 잘해 놓았다. 잔디밭과 왕릉, 우람한 나무들, 담장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역시 이곳에서도 문화해설사가 설명을 해주어 유적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느낀다.’ 더니, 역시 여행에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삼릉주차장에서 내려 소나무 숲길로 삼릉을 지나 금오산으로 올라갔다. 마애보살상, 여래좌상, 상선암을 지나 능선 위에서 들판을 조망하고 금오봉까지 올라갔다. 잠시 쉬었다가 약수골 방향으로 내려오며 마애불 입상, 석불좌상 등 여러 불상을 보고 내려왔다. 어느 불상은 목이 떨어져나가 안타까운 모습의 좌상도 있었다. 내남교도소를 지나 다시 삼릉주차장으로 와서 차에 올라 구룡포로 향했다.
20여 년 전에 아내와 왔던 구룡포항이다. 작년에 보았던 주상절리 바위벽을 가려 했다. 구룡포 주상절리를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네비를 보고 호미곶으로 가다보니 아쉽게도 지나치고 말았다. 자전거로는 가까이 갈 수 있었지만 네비는 호미곶의 지름길로 안내하여 주상절리로 가는 길로 가지 않아 지나치고 말았다.
호미곶 광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먼저 박양균 시인의 문학비를 보러 갔다. 그 문학비는 필자가 참여하는 단체에서 2016년 5월에 건립해 놓았는데, 잘 있는지 보고 싶었고, 아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비는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서 내륙쪽 1 km 지점, 대보리의 길가, 정자 옆 작은 동산에 있다. 동산에는 풀들이 많이 자라 깎아주어야 할 정도였다.
해맞이 광장에 가니 6시가 지나 새천년기념관이 문을 닫아 전망대에 오르지 못했다. 광장에서 바다 쪽으로 나와 조형물인 ‘상생의 손’, 왼손을 보고, 바닷가로 내려와 바다에 솟아있는 오른손도 보았다. 처음에는 광장에 왼손만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오른손을 바다에 만들어 놓았다. 바닷가의 데크 길을 걸어 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몇 조형물과 여러 안내 글들이 적혀있다. 다시 광장 한쪽에 커다란 가마솥이 있어 설명을 보니 둘레가 10.3 m 라 한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2만 명의 떢국을 끓일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돌문어 조형물, 연오랑 세오녀의 동상 등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있다. 등대에서는 써치 라이트가 방향을 바꾸어 가며 바다 멀리 빛을 쏘았다. 기념관과 광장에 네온사인이 곳곳에서 번쩍거려 밤의 꽃들이 화려하게 빛났다. 그러나 넓은 하늘과 바다에 까맣게 어둠이 내리고 바람이 드센 바닷가에는 사람이 없어선지 마냥 쓸쓸했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 앞바다에 있는 조형물
숙박할 곳을 찾으니 동해가 잘 보이는 언덕에 모텔이 하나 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가방을 들여 놓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 식사를 하러 광장에 나오니 간이음식점들이 늘어선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간단한 회와 매운탕으로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술 한 잔 들며 아내에게 회갑이 되도록 잘 참고 살아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광장을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잠을 청하기는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아내에게 야경을 보러 가자고 했더니, 씻고 쉬겠다고 하여 혼자 포구로 나왔다.
빈 배들이 나란히 묶여 있어 작은 배에 올라 뱃전에 앉았다. 가져온 모과주 한 잔을 마셨다. 해변의 가로등이 멀리까지 늘어서 있고 물결에 흔들리는 불빛을 보고 있자니 왠지 쓸쓸했다.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났다. 문득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았다. 이 여행에 함께 왔다면 좋았을 친구가 생각이 나 뱃전에 앉아서 전화를 걸었다. 페이스톡을 걸었더니 친구는 소파에 앉아 런닝셔츠 바람으로 전화를 받았다. 친구와 여행을 함께 왔더라면 좋았을 걸 혼자 와 있으니 그립다고 말하고, 다음에는 친구랑 여행을 한번 하고 싶다고 했다. 머잖은 날 함께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다. 그게 계기가 되어 9월에 강화도와 교동도를 1박 2일로 함께 다녀올 수 있었다.
날이 밝아 창밖을 보니 하늘이 빨갛게 물이 들었다. 잠시 지켜보니 해가 돋기 시작했다. 아내와 창 앞에서 서서히 돋는 일출을 보았다. 가슴이 설레었다. 전망 좋은 숙소를 잡기 위해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이곳에 와서 숙소를 고른 것이 주효했다.
아내와 일출을 보고 밖으로 나와 호미곶 포구, 위판장으로 갔다. 경매꾼들이 몰리더니 잠시 후에 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사는 손 종을 흔들어 소리를 내며 뭐라 말하자 경매꾼들은 알 수없는 손짓으로 흥정했다. 경매가 이루어져 광어를 사가는 분에게 값을 물어보니 시중 가격보다는 훨씬 싼 값이었다.
2. 호미곶 반도를 지나 불영계곡으로
대포항과 독수리 바위를 지나 한반도의 호랑이 꼬리 부분을 돌았다. 노란 꽃이 피어있는 모감주나무의 군락지를 지나 길가의 공터에 주차하고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바닷가 마을을 보았다. 작년 6월에 혼자서 자전거로 지나갈 때도 잠시 내려 조망하고 간 곳이다. 이번에는 아내와 자동차로 오니 힘도 들지 않았고 동반자가 있어 기분이 좋았다. 나의 이번 여행은 아내를 위한 가이드였지만 작년 여행과 비교 되어 스스로 흐뭇했다.
한반도 지도에서 호랑이의 꼬리 부분을 돌아 영일만을 보며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은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을 바탕으로 2016년에 준공한 테마공원이다. 그 전설을 벽화와 글로 게시해 놓고, 커다란 정자, 산책로, 기념관을 잘 만들어 놓아 경관과 전망이 아름다운 공원이다. 아직 아침 9시가 되지 않아 기념관이 문을 열지 않아 공원을 산책하다 나왔다.
포항제철을 지나 해안길을 달려 영일대 해수욕장에 갔다. 작년처럼 커다랗게 모래를 쌓아놓고 조각을 만들고 있었다. 커다란 모래 더미 위에 ‘포항시 승격 70년’ 이라는 타이틀을 쓰고 그 아래에는 증기기관차와 기이한 동물상을 부조로 만들어 놓고 작업 중이었다.
해변길을 더 달려가니 작년 라이딩 때 하룻밤 야영을 했던 월포해수욕장이 나왔다. 작년에 혼자서 야영하던 자리를 아내에게 알려주고, 조금 더 가 소나무 밭이 울창한 장사해수욕장에 들어갔다. 장사동 상륙작전 때 학도병을 싣고 온 문산호의 모형이 멀찍이 정박해 있다. 상당히 큰 배였는데 수송선이어서인지 배의 모양이 단순했다. 모래밭 한쪽, 소나무밭 옆에는 근래에 만들어 놓은 장사 해전 기념비와 동상이 있다. 학도병 772명의 대부분이 희생된 애달픈 사연을 기록하여 그 희생을 기리고 있다. 그 사연을 알게 되어 숙연해졌다.
장사 해수욕장을 나와 남정면 부흥리의 아름다운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이 집은 담장과 대문이 없고 계단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마당은 잔디밭과 정원으로 꾸며 놓았는데 이 정원에서 장사해수욕장이 잘 보인다. 저택은 아니지만 아담한 정원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편안하게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집이다. 작년 라이딩 때 이 집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담장과 대문을 만들어 놓지 않은 점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아내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다. 집안으로 들어가 정원에서 동해와 장사해수욕장을 잠시 살펴보고 나왔다. 이 마을의 담장에는 잘 그려진 벽화가 이어져 있다. 영덕군에서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고 마을 사람이 알려 주었다.
강구항으로 가서, 수산시장 2층의 식당에서 대게 1마리, 가리비와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옆에는 널찍한 해맞이 공원이 있다. 넓은 주차장과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게의 집게 모형을 산뜻하게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 있는데 영덕게의 홍보에 효과가 높을 것 같았다. 이 영덕군의 해안 길을 블루로드길이라 하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도보 여행을 한다. 길 옆 청록빛 바닷물이 매우 아름다운 길이다.
영덕 해맞이광장에 있는 영덕게 모형 조형물
그 길을 따라 달리다 오르막으로 오르면 창포말등대가 나온다. 영덕대게의 집게발이 등대를 문 형태로 디자인된 등대다. 이 언덕의 벤치에 앉아 넓은 동해를 보면 시야가 매우 시원하고 싱그럽다. 쉬면서 푸른 동해를 조망하기에 일품이다. 옆에는 작은 매점이 있어 아이스크림이나 간식을 사먹을 수 있다.
창포말등대
산길을 내려와 후포로 달렸다. 등기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 민가 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두고 등기산에 올라갔다.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오르니 정자가 있고 여러 모양의 등대가 있다. 세계의 유명 등대를 축소해서 만든 모형들인데 띄엄띄엄 배치해 놓았다. 이곳에 후포리 신석기 유적관이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햇볕이 쨍쨍한 여름 낮, 땀 꽤나 흘렸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이 있다. 피서하기 좋았다. 해설사가 이곳의 신석기 유적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유적관에서 나와 출렁다리를 건너 스카이워크로 갔다. 아내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무섭다고 들어오지 못하여 나만 들어가 끝까지 가서 바다와 주변을 돌아보고 왔다. 중국 장가계의 유리잔도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이런 유리바닥의 길이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 만들어져 있다.
작년에는 오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울진 망양정으로 갔다. 20년 전에 왔을 때에는 보지 못한 주차장이 있고, 낯선 길이었다. 새로 지어진 정자였다. 여러 차례 복원, 중수, 개축 등으로 풍상을 많이 겪은 정자다. 새로 지어 산뜻하지만 고풍스럽지 않아 옛 정취는 맛볼 수 없었다.
이 정자에서 쉬고 있는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보니 동향의 수원 사람이었다. 어제 금강송을 보고 그곳에서 자고 왔는데 상당히 좋았다고 그곳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금강송을 보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며 그곳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내일은 예약이 다 되어서 더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들과 작별하고 내려와 불영계곡을 향해 달렸다. 산모롱이를 굽이굽이 돌아 약 10 km를 달려도 계곡만 계속 이어져 차를 멈추고 구경할 곳이 나오지 않았다. 더 가다보니 정자와 주차장이 나왔다.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보니 불영정이었다. 간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분에게 물으니 불영계곡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저 정자에서 계곡을 보라고 알려주었다. 정자에 올라가 계곡을 보려니 나무가 가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불영사가 있다고 알려 주어 차를 몰고 갔다.
불영사 입구의 주차장에 내리니 매표소는 문을 닫았고, ‘천축산불영사’ 일주문도 쇠줄로 막아 놓고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그러나 일주문 옆으로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들어갔다. 못 들어오게 하는 사람이 있거나, 나가라고 하면 나오면 되지 싶어 길을 따라 들어갔다. 해가 기울어 산 그림자가 내려오고 인적이 끊기어 적막한 산길, 잔잔히 흐르는 냇물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호젓한 길을 아내와 걸어가는데 여승 한 분이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출입 시간이 지났다고 나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마운 마음으로 답례를 하고 불영사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불영사를 돌아보고 나오다 또 그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이 일주문에 가서 쇠줄을 열어주어 아까 승용차가 우리를 앞질러 지나갔던 모양이다.
20분쯤 걸어 태극 같이 휜 굴곡을 지나니 불영사가 나왔다. 채마밭에는 고추와 몇 가지 작물이 자랐는데 풀도 없이 잘 가꾸어져 있다. 깨끗하고 아담한 경내는 비구니 도량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나지막한 산, 소나무 숲을 등진 대웅보전은 크지 않지만 장중해 보였고 고풍스러웠다. 좌우에는 여러 채의 와가(瓦家)가 있는데 스님이나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범종각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숲이 못 속에 담겨 고즈넉했다.
산그늘이 길게 늘어져 산사엔 땅거미가 짙어졌다. 어둡기 전에 주차장까지 가야 해서 사찰 내를 자세히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주차장까지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가는 길이 멀리 느껴졌던 것은 언제 목적지가 나올지 모르기에 더 멀리 느껴진 것 같고, 돌아오는 길은 목적지를 알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다시 차를 타고 숙소가 있을 만한 동해안으로 갔다. 해안길을 따라 가니 죽변항이 나왔다. 상가가 밀집된 해안가에서 숙박할 곳을 찾았다. 포구 끝 쪽에 호텔이 있어 들어가니 빈 방이 없다 한다. 되돌아 나오니 모텔 몇 곳이 눈에 띄었다. 그 중 포구가 잘 보이는 모텔에 들어가니 시설도 깨끗하고 전망이 좋아 방을 예약했다. 밖으로 나와 잠시 걸어가며 식사할 곳을 찾으니 방파제처럼 포구를 가린 곳에 회 센터가 있었다. 맨 끝 조용한 식당으로 들어가 우럭탕으로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3. 장호용화관광랜드와 죽서루, 경포대에서 집으로
장호용화로 가다가 아침 식사를 하려고 8시쯤 출발했다. 작년에 자전거로 원덕에서 임원을 지나 근덕으로 갈 때, 산 고개길을 예닐곱 번이나 오르내리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 그 길을 아내에게 보여주며 이런 길을 달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네비의 목적지를 장호용화랜드로 해 놓으니 네비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안내해 그 힘들었던 길은 지나치고 말았다. 아침 식사를 할 마땅한 식당도 찾지 못하고 장호용화랜드에 도착했다.
해상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9시가 되지 않아 조금 기다린 후 탑승했다. 케이블카를 타는 것 보다는 아래에서 케이블을 보는 게 더 멋진 장면인 것 같다. 케이블카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아래의 바다가 잘 보였다. 약간 무서움도 있지만 그런 기분을 맛보도록 그렇게 고안했을 것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장호항 언덕으로 건너가 바다를 보니 날씨가 맑아서 바닷물이 더욱 파랗게 보였고 망망대해가 참 시원해 보였다. 언덕 아래 작은 바위섬 위로 갈매기 떼가 비상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데크로 만든 계단으로 내려갔다. 바위섬에는 조그만 정자가 하나 있는데 장호항 전망대였다. 바위산에 갈매기들이 많이 앉아 있는데 꽥꽥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바위섬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가 회덮밥을 주문했다. 점심으로는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한참만에야 음식이 나왔다.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맛있게 먹었다.
용화로 케이블카를 타고 돌아와 차를 몰고 삼척 죽서루로 갔다. 20여 년 전, 관동팔경을 돌아볼 때, 기대에 실망했던 곳이지만 삼척의 대표적인 명소라 다시 가보았다. 죽서루 주차장에서 입장하다 보니 나무들이 울창했고 주변 조경이 옛날과 달리 잘 조성되었다. 죽서루에 올라가 산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도 수량이 과거보다 많아 보기 좋았다. 이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관광지는 잘 가꾸어 놓은 것 같다. 지방 자치의 노력과 경제 발전이 가져온 산물일 것이다.
삼척 시내를 벗어나 산길로 올라가 내려가는데 황영조 기념관의 표지판이 나와 그 오른쪽으로 내려갔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마라톤의 영웅, 황영조의 기념관에 도착했다. 우리에게 감격스런 기쁨을 안겨준 황영조는 손기정 이후, 그 당시 최고의 마라토너였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언덕 아래의 태극기를 게시한 집이 황영조의 생가라 했다. 기념관에서 내려와 난간에서 찾아보니 오륜 마크와 태극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네비에 정동진을 목적지로 정하고 달렸다. 정동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니 햇볕이 따가운 한여름 더위였다. 우산을 꺼내 아내를 받쳐주며 철길 아래로 나가 모래사장에 섰다. 앞에는 동해의 망망대해, 우측 뒤로는 정동진역이 있고, 좌측으로는 멀찍이 모래시계 공원이 있다. 워낙 무더운 햇볕이라 공원에 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래시계 공원이 볼만하기 때문에 아내를 인도하여 10분 정도 걸어갔다. 1년에 한 바퀴 돌아간다는 시계 조형물, 그늘에 매달린 그네, 기차 카페, 산 위에 있는 커다란 배 모형의 식당 등을 보고 잠시 쉬었다가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강릉 경포대로 가는데 아내가 오죽헌을 보고 싶다고 하여 먼저 오죽헌으로 갔다. 오죽헌에는 아마 30년 전 쯤에 갔을 텐데, 그 당시에는 오죽헌 하나의 건물만 보았던 것 같다. 강릉의 대표적 명소이지만 유명세에 비해 별로 볼 게 없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주차장이 넓고 오죽헌 안에 건물이 많아졌다. 경내가 상당히 넓었고 조경도 잘 되었다. 마침 해설사가 해설해주는 시각이 되어서 잠시 기다렸다가 해설사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다. 이번 여행에는 여러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 매우 유익했다. 시대의 발전 덕택인지 각 지자체의 준비 덕택인지, 여하튼 좋아진 세상이다.
오죽헌은 우리나라의 가장 고전적인 현모양처라는 사임당이 살았던 집이다. 또 그의 아들인 율곡이 태어난 곳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깊은 곳이다. 오죽헌 주변에 오죽이 있어 오죽헌이라 했다는데 지금도 오죽이 잘 자라있다. 매표소 앞에서 경내로 들어가니 먼저 율곡의 동상이 나왔고 자경문을 통과하니 우측에 아담한 오죽헌이 있다. 주변 건물들은 단청 색채가 선명하고 규모가 커 주인공인 오죽헌은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율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 사랑채, 어제각과 율곡기념관도 있다. 기념관과 강릉시립박물관을 보고 나왔다. 옆에는 인성교육관도 있는데 교육관은 들어가지 못했다. 한번 가 보았다고 해서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잘 조성해 놓은 걸 모를 뻔했다.
강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경포대다. 경포대 주차장에서 내려 언덕 위에 있는 경포대로 올라갔다. 산기슭에 우람하게 자란 소나무들의 둥치가 시원하게 뻗어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근래 만들어진 정자나 전망대에 비하면 경포대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큰 정자였을 것이다. 누각에서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경포호가 하늘이 담긴 커다란 거울같다. 경포호 왼쪽으로 스카이베이 쌍둥이 호텔이 있고, 그 옆으로 동해가 보인다. 과거에는 동해가 더 잘 보였는데 그 호텔이 동해를 가리고 있어 아쉽다
언덕의 경포대를 올라오느라 땀 좀 흘렸고 3일의 충일한 여행으로 약간 피로했다. 정자를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앉아 피로를 풀었다. 산그늘이 길게 늘어지는 6시 30분, 귀가하기 위해 일어났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길가에서 파는 삶은 옥수수를 사 먹었다.
수원까지 4시간이 걸려 밤 10시쯤에 도착했다. 2박 3일의 알찬 여행, 작년에 혼자서 자전거로 여행한 곳을 이번엔 아내와 함께 했다. 작년에 본 곳이 대부분이지만 선험자로서 아내에게 설명해 줄 수 있어 스스로 뿌듯했다. 올해는 아내의 회갑, 그 기념으로 모로코와 파리 여행을 했고, 이번 여행은 나의 제안과 경비 부담으로 아내를 위한 여행을 했다.
이번 동해안 여행은 맑고 파란 바다와 해수욕장, 동해안의 명소 여러 곳을 즐겁게 돌아보았다. 여행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36년 동안 나와 가족을 위해 애써 준 아내에게 이번 여행으로 작은 보답이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아니 나 자신도 삶의 동반자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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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솔한 마음으로 기록된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두 분 항상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사모님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고맙고 부럽습니다.
여기서 보네. ㅎ
그레고리오님, 목행님, 말객님, 재미도 없는 긴 글 읽고 댓글 주시어 감사합니다.
아! 아이디만 보고 제가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른 분이셨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