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류층 |
재산 40억 이상, 최고급 사교클럽 멤버십 필수, 결혼은 ‘투자’ |
‘상류층’의 요건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경제력, 전문직업, 명문가 출신, 빼어난 문화적 소양, 명예’를 고루 갖춰야 상류층에 낄 수 있다는데…. 한국의 상류층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가치관, 직업의식, 취미생활, 사교클럽, 결혼 풍속도, 육아와 교육법 등 그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들여다봤다. |
30대 중반의 치과의사 김모씨는 이름난 의사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서양 의료기술을 들여와 병원을 운영했고, 가업을 이어받은 아버지는 서울 강남의 유명 종합병원 원장이자 의과대학 교수다. 김씨도 강남에 개원했다. 그의 형제, 사촌들 중에도 의사가 여럿이다.
김씨의 남편인 강모 변호사는 법조인 집안의 일원이다. 그의 부친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변호사. 강씨는 어릴 때부터 법대 진학을 당연하게 여겼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법시험을 준비해 두 번의 실패 끝에 합격했다. 검사생활 7년째 되던 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두 사람은 중매로 만났다. 강남의 유명 ‘마담뚜’가 다리를 놨다. 시작은 중매였지만, 과정은 연애결혼과 다를 바 없었다. 무엇보다 자라온 환경이나 부모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비슷해 말도 잘 통했고 취미며 관심사도 잘 맞았다. 그래서인지 결혼 10주년을 눈앞에 둔 지금도 서로를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강남의 50평대 아파트에 산다.
김씨는 교육열도 남다르다. 올봄 딸아이를 상류층 자제가 많이 다닌다는 사립 초등학교에 어렵사리 입학시켰다. 김씨도 사립 초등학교를 나왔다. 딸은 지난해까지 영어 유치원과 어린이 레포츠클럽에 다녔다. 영어 유치원 수업료는 월 80만원. 레포츠클럽은 연회비가 350만원이지만, 해외 연수 등 다양한 이벤트에 참가할 때는 따로 돈을 내야 했으므로 실제로는 1년에 1000만원 정도 들었다. 이젠 ‘국제적 수준의 문화적 소양’을 학교에서 가르쳐준다고 하니 김씨로서는 여간 마음 편한 게 아니다. 중학교부터는 외국으로 유학을 보낼 계획이다.
그는 상류층 사교클럽인 S클럽 멤버다. 어렸을 적부터 드나든 클럽이라 이젠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고만고만한 수준의 사람들과 외국 대사, 기업인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 온종일 병원 울타리에 갇혀 지내는 김씨로선 인맥 쌓기에 그만이다. 특히 엄마를 따라온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일요일이나 휴가 때는 가족과 함께 RV를 몰고 교외로 놀러간다. 차를 살 때 RV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여가시간은 꼭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 가끔 친구나 동료들과 어울리지만 밤 늦게까지 과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식이 있어도 저녁식사에 와인 한 잔 곁들이는 정도다. 약속이 없는 저녁이나 주말에는 멤버십 피트니스센터나 수영장 등에서 운동을 한다.
돈, 명예, 문화적 소양
하지만 여가시간에 레저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1년에 두세 차례 의료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딸을 데려간다. 지난해에는 외국의 오지 마을로 딸과 함께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딸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도 커서 불쌍한 사람들 도와줄거야”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뿌듯했다. 김씨는 틈만 나면 딸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살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돈은 많이 벌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잘 사지 않는다. 사실 돈을 쓰고 다닐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옷도 주로 단골집에서 맞춘다. 구입한 옷을 집이나 직장까지 배달해주니 편하다. 물론 좋아하는 브랜드만 입는다. 유행을 쫓는답시고 익숙지도 않고 비싸기만 한 옷을 살 생각은 없다.
김씨는 “내가 한국의 상류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돈만 많은 졸부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어쩌다 운이 좋아 벼락부자가 된 게 아니라 할아버지대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도 의사가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고, 지금도 환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른 병원보다 진료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돈과 명예,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이를 사회에 환원할 줄 알아야 진정한 상류층”이라며 “그런 상류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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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주고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
“졸부들은 ‘사’자를 좋아해요. 하지만 진짜 상류층들은 집안부터 살핍니다. 어떤 집에선 자녀 배우자감의 형제나 자매 중에 고졸이나 전문대졸이 있으면 안 된다는 조건을 내세우기도 하죠.”
이렇게 맺어진 상류층의 젊은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단한 열정을 갖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자신들이 ‘최고급 교육’을 받았기에 그것이 삶에 주는 혜택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 제일기획의 소비자 조사 결과 ‘자녀의 성공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라는 항목에 전체 응답자의 63.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월수입 4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경우 ‘그렇다’는 응답이 72.0%로 평균치보다 거의 10%나 높게 나타났다는 것. 또한 제일기획의 마케팅 보고서 ‘신인류 탐구-코보스를 찾아라’에 따르면 ‘코보스(한국의 보보스, 즉 한국의 신상류층)는 자녀에게 물고기도 주고, 물고기를 잡는 법도 가르친다’고 한다.
공인회계사 송모씨는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투자를 해서 어떤 게 더 좋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다양한 고기를 먹여주고, 그 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고기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 물고기를 잡는 법은 그 후에 알려주는 것이 순서다”고 말한다. 귀족 마케팅 전문가이자 VIP 매거진 ‘코리아 태틀러’ 대표인 박성희씨는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좋은 부모와 가풍 아래서 자라는 아이들이 상류층으로 커가는 것 같다”고 했다.
어린이 멤버십클럽 싸이더스 스포츠 리틀즈는 아이들에게 ‘차세대 리더’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가르쳐준다. 영어와 국제 매너 교육은 기본이고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골프, 승마, 수상스키, 산악자전거 등 다양한 레포츠를 경험하게 한다. 현재 500여 명의 어린이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연회비는 대략 350만원이지만 이벤트마다 일정액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 특히 방학 때는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열리는 영어 캠프에 참가하는데, 비용이 600만원 정도다. 이래저래 1년 동안 들어가는 돈이 최소 1000만원선이지만, 부모들은 “전혀 비싸지 않다”고 한다.
서울 반포동에 사는 주부 김모(36)씨의 말.
“지난 겨울방학 때 아이가 영국으로 영어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오전에는 원어민 강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호텔 매너, 파티 예절 등을 배웠어요. 여가시간에는 스노클링, 스킨스쿠버다이빙, 골프, 승마 등을 배웠고요. 아이가 참 즐거워했어요. 특히 아이가 승마를 좋아해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가르쳤더니 이젠 ‘속보’ 수준이 됐어요. 캠프에서 사귄 외국인 친구와는 지금도 이메일을 주고받아요. 이렇게 양질의 교육을 받는데 1000만원이 비싸다곤 할 수 없죠.”
삶의 본질은 다르지 않아
리틀즈의 이원형 대표는 “상류층 부모들은 자녀가 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 가서도 상류층으로 살아가길 원한다”고 했다.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으면 어디에 내놔도 주눅들지 않고 외국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 또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지닌 집안의 친구들과 사귈 수 있다는 것도 부모들이 꼽는 장점이다.
1999년 한국학술문화연구원이 발표한 ‘계층별 교육열’ 보고서를 보면 상류층 학부모들은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외국인 회사의 이사급으로 근무하는 김모씨는 “지금 아이를 사립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데, 초등학교도 사립에 보낼 계획”이라며 “중학교 이후에는 아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낼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 문화에 두루 익숙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류층은 아이들의 패션에 대해서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오일릴리키즈, 폴로보이즈, 겐조정글, 게스키즈, 압소바, 타티네쇼콜라 같은 유아 및 아동용 수입 브랜드는 원피스 하나에 20만원이 넘는 고가이지만 신세대 상류층 엄마들에겐 없어 못 팔 지경이다.
국내 모 자동차 회사의 광고에 ‘대한민국 1%를 위한 가치’라는 문구가 있다. 1%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말은 1%의 삶과 나머지 99%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 상류층이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성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나머지 99%들은 1%가 도대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상류층 취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실은 1%라 해서 본질적으로 99%와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 1%는 단지 99%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기에 좀더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경험을 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소 결여됐다고 해서 ‘삶의 본질’ 자체가 달라지거나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1%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그들 역시 자꾸 성채 속으로만 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문화적 소양을 단지 자신들만을 위해 쓰느냐, 다른 이들을 위해 쓰느냐는 나머지 99%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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