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현주가 친샹란에게 보고한 정보는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월에 600 그램 한 근에 35원55전이던 설탕 도맷값은 그해 연말이 가까워지면서980원으로 폭등했고 다시 다음해 구정을 전후해서는 품귀현상까지 나타내면서 계속 상승했다. 이런 폭등에도 당국은 설탕이 가격 통제품이 아닌 기호품이라는 이유로 가격폭등을 방치하고 있었다. 설탕 파동이 한풀꺾이기 시작한 1963년3월에 들면서 밀가루 값에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3월은 전통적으로 춘궁기다. 서민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밀가루 수요가 늘어난다. 특히 1963년 봄은 전해 쌀 농사가 흉작을 기록하면서 밀가루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생활 필수품인 밀가루는 정부 고시가격의 대상이다. 1963년3월 현재 밀가루 고시가격은 한 포대에 370원이다. 3월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밀가루 품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판매업자들은 제조 업체에서 제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고 했고 제조업체 쪽에서는 밀가루 수요의 폭등으로 아무리 제품을 내 놓아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르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이때부터 밀가루의 고시가격은 유명무실해 지면서 한 포대에 1.200원에 거래되었다. 궁핍한 서민의 피를 빠는 업자들의 농간이 계속 되었다.군사 정부는 여전히 방관만 하고 있었다. 그런 1963년5월 말. 세진 계열사 핵심경영진들이 부산에 모였다. 고 회장님. 고맙습니다 김 회장.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분회사 처분해 주신 것요. 외국에서 제분회사 처분하겠다는 연락 받고 조금은 불쾌했어요 당연하지요. 세진 제분 주식의 78%가 김 회장 소유 아닙니까?. 대주주를 따돌리고 회사 처분한다는 것 자체가 월권이지요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일을 만치 서민은 어려워요. 밀가루가 뭐예요?. 춘궁기 서민들이 목숨을 이어가는 생명 줄입니다. 그런 밀가루를... 김미현은 목이 매어 잠시 말을 끊었다 다시 이어 갔다. 이건 단순한 가격 조작이 아니라 국민의 목을 조르고 주머니를 털어 가는 강도행위예요. 내가 그런 강도행위에 끼이지 않게 해 주신 고 회장께 감사 드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설탕 파동 밀가루 파동은 업자도 나쁘지만 방치한 당국이 더 나쁜 것 아니겠어요. 강 장군 만나면 한번 물어 볼 거예요. 이게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혁명을 한 사람들이 할 짓이냐고요.. 한경진이 흥분해 말했다. 강 장군 미국으로 밀려 나갔다는 것 잊었군요 하긴 강 장군 같이 순순한 혁명 주체들이 밀려나지 않았다면 서민 목을 조르고 일부 업자 배나 채우게 하는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강성철은 정치적으로 밀리면서 준장 진급과 동시에 예편을 당하고 외국으로 나가 버렸다. 공장 증설 계획 추진도 한동안은 중단해야겠지요? 시멘트 값이 이렇게 올라서야 어떻게 공장 증설 계속하겠어요 이번 가격 조작으로 제당업자와 제분업자 그리고 시멘트 제조업자는 떼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기업인을 보는 국민의 부정적인 시각은 오래 갈 겁니다. 그게 걱정입니다 1962년에서 시작해 63년까지 이어졌던 설탕 시멘트 밀가루 가격조작 폭리를 역사는 삼분폭리사건으로 기록해 놓았다. 삼분 폭리 사건은 제당 제분 시멘트 생산시절을 몇 사람이 독점하고 있었던 데서 가능했다. 삼분폭리로 업자에게 들어간 부당 소득은 1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밀가루의 경우 제분협회 통계에 따르면 63년 한해 동안에 846만 포대가 팔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고시 가격 370원과 실재 판매 가격 1.200 사이에는 830원이 차액이 발생한다. 이 차액 830원 중 판매업자가 230원을 차지했다고 가정해도 생산자는 밀가루 한 포대에 600원의 부당 이익이 취했다. 한 포대에 600원이면 846만 포대로 업자 주머니에 들어간 부당이득은 50억원이 넘어선다. 당시 언론은 설탕파동으로 업자에게 돌아간 부당 이득을 25억원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시멘트까지 합치면 100억원을 훨씬 넘어선다. 63년 1달러 당 한화의 공정환율은 65원이다. 업자에세 돌아간 부당 이득은 1억5천만 달러에 해당한다. 1964년 12월5일 정부는 드디어 수출이 1억 달러를 넘어섰다며 감격에 겨워 그날을 수출 날로 제정하던 1년 전의 1억5천만 달러가 몇몇 악덕기업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많은 국민이 아직도 굶주림에 허리띠를 졸아 매어야 했고 농촌에는 봄이면 풀뿌리 나무 껍질로 연명을 해야하는 절량 농가가 대다수이던 시절 궁핍한 서민의 유일한 생명선인 밀가루로 가격조작이라는 수법으로 폭리를 취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던 기업인이 이 땅에 있었다. 그리고 당시 삼분폭리사건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기업인의 2세들이 불과 30년 전에 선대들이 저질렀던 죄악을 잊고 선대가 더러운 방법으로 쌀아 오린 부위에 앉아 한국 최고의 재벌을 자처하면서 조국의 세계화 기수가 되겠다고 외치는 현실은 역사적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삼분폭리사건. 이것은 군사정부가 63년 형식상의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정치 자금이 필요했던 민주공화당과 특정 기업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일어난 정경유착에 의한 대형 경제 비리의 한 표본이었다. 권력과 악덕 기업인이 야합 그것은 시작이 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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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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