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f 2017.6.18.사도행전메시지(12) 찬송가 354 주를 앙모하는 자
위대한 사람들 위대한 성령역사
말씀/사도행전11:1-30
요절/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기도/영광의 하나님이시여, 생명과 진리의 구주 예수님를 보내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로 우리를 살리시고 세상을 구원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이 컴퓨터 시대에 주 예수의 이름을 사랑하는 귀한 주의 제자들을 세우시고 온 세상에 역사하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천안 UBF센터역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학생들이 사랑하고 위로를 받을만한 교회로 복주소서. 이시간 부족한 종을 통해서 사도행전 귀한 말씀 나타낼 때에 거룩하신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깨우쳐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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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예수님 승천하신 후 오순절성령강림부터 시작된 인류역사의 성령시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놀랍고 감사합니다. 성령은 눈먼자를 보게하고 가난한 자를 풍요케 하고 약한 자를 세우며 병든자를 고치고 이기심과 괴로움에 싸여있는 자들에게 사랑의 온기를 주어 해방시킵니다. 지난 시간에는 가이사랴에 있던 로마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보내사 구원역사를 이루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놀라웠던 점 중의 하나는 성령께서 고넬료에게 욥바의 베드로를 청하라 하시고 또 그 고넬료의 하인들이 도착할 시간에 베드로를 지붕으로 올려보내시고 기도 중에 보자기와 각종 동물들 환상을 보여주사 골수 유대인인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집안으로 영접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얼마나 세밀하고 정확하게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시며 또 동시에 여러사람을 움직이시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갔을 때에 놀랍게도 그 온 로마 정규군 장교의 이방인 집안이 즉각 예수를 믿고 성령이 임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군인들을 딱딱한 분들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고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다는 사실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현역 로마군 장교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성령을 보내시고 영원한 구원을 이루신 것은 정말 의미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고넬료의 구원역사를 이어 이방인 구원역사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폭발적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의 역사는 공식적으로 유대인을 떠나 예루살렘을 터나 온 세계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큰 이방인 구원역사가 있었고 인류역사최초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역사를 깊이 배우기 원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는 참으로 영광스런 시대입니다. 이 인터넷 시대에 주의 말씀을 통하여 참으로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귀하게 복주시고 만민구원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4.베드로의 역사보고와 교회의 공식적인 이방인 선교인정 역사(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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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고넬료
1절을 보십시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베드로와 고넬료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당시에 고넬료의 집안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됩니다. ‘와 로마군 백부장 집에서 베드로 사도가 말씀을 전했는데 그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대~~’ 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대 예루살렘까지 전하여졌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큰 의문이 생겼습니다. 여러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주의 제자들 중에서 아주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사람들, 아직도 유대인의 할례를 중시하는 부류는 이 일로 베드로를 힐난하게 되었습니다. ‘아 복음도 좋지만 저 할례 없는 로마군에게까지 가서 전할 필요가 있나, 고넬료가 정식으로 인생소감을 쓰고 회개를 한 것도 아니잖아? 베드로 사도님은 가끔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좀 문제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 눌러두고 벼르고 기다린 질문이 터졌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그들은 베드로가 비록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할례없는 이방인에게 가서 같이 먹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요 오순절 역사의 주인공과 같았지만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느낄 때에 과감히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좋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지도자에게라도 의문이 있으면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밝히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어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이 솔직하지만 다소 공격적인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단히 겸손한 자세로 사실 그대로 답을 잘 했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예, 베드로는 그 질문에 대해서 결코 자기 생각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그 된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일 하나님의 일을 차례로 보고 들은 그대로 말해야합니다. 이것이 역사보고입니다. 선교보고와 같습니다. 또한 우리 소감과도 같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차례로 정확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보고는 진실하고 개관적이어야 합니다. 감성을 자극하거나 과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욥바에서 지붕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 환상중에 하늘로부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왔던 것부터 세세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보자기 위에 땅의 네 발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나는 것들이 있었던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했던 것을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유대인의 율법에 정한 부정한 것들을 먹지 못하겠다고 대답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하시고 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마침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로부터 온 세사람이 문앞에 와서 ‘베드로라는 시몬이 여기 있느냐’하고 문을 두드렸던 것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즉시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하셨던 것입니다. 또 그들이 베드로에게 고넬료가 가이사랴에서 천사에게 받은 말씀을 그대로 이야기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욥바에서 두 형제와 함께 그들을 따라 가이사랴로 갔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의 고넬료 집에서 예수십자가 복음을 전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날 받았던 성령역사와 꼭 같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때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하신 부활 예수님의 말씀(행1:5)을 기억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보고는 정말 진실하고 객관적입니다. 베드로는 힐난하는 형제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하였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가 그들속에 있던 수천년간의 편견을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 오히려 더 적극 순종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이 베드로의 역사보고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는 형제의 질문에 겸손하고 진실되게 역사보고를 하였습니다. 번거롭지만 조목조목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말할 때에 흥분하거나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억지로 호소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와 고넬료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모두 성령께서 주체적으로 이끄신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 속의 진실이 다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선교보고요 간증적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이 조용한 역사보고의 힘이 얼마나 컸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이 18절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기독교의 이방선교에 대한 교회지도부의 공식적인 인정이요 출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고넬료집 심방역사를 통해서 온세계를 향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역사가 공식적으로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이 말씀, 또,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이 말씀으로 전능의 창조주 하나님, 생명과 진리의 구세주 예수님이 전세계 모든 이방인에게 공식적으로 전파될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부터 유대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유대인 제자들의 예수님이 우리의 예수님으로 불리시게 된 것입니다. 이 역사로 인해서 이후로 정말 자유자재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 땅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방인의 삶은 얼마나 무지하고 고통스럽습니까? 조선시대까지 우리 조상님들은 평균수명이 30세 정도였습니다. 그 짧게 살아있는 동안에도 무지와 고집으로 어둠을 헤메였습니다. 여자들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고생하며 살아야했습니다. 남자들은 전쟁에 가고 노동에 시달려 피부가 쇠가죽같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사탄에 속아서 밥먹을 곡식도 없는데 흰쌀로 제사밥을 지어 올려야했습니다. 조상귀신을 넘어서 동네귀신 산귀신 들귀신 나무귀신 물귀신을 좇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선교보고후 이 어둠의 이방세계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제는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생명의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주 예수의 복음을 이방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전심으로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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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주의 종 베드로가 한 역사보고를 잘 배워야겠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있었던 성령의 역사를 정직하게 사실대로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정직하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역사는 참으로 과장이나 변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대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힘이 강합니다. 제가 삼국유사를 읽어보니 신라시대 부처님이 얼마나 엄청난 기적을 행했는지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 영주에 부석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이름이 부처님이 돌을 뜨게 해서 절이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불교의 고승들을 통해서 기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자세하지 않습니다. 부석사의 돌이 몇월몇일 어느 지점에서 어느지점으로 날아왔는지 빼먹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의 역사는 근거와 날짜가 분명합니다. UBF교회가 어느날 몇시에 한국에 와서 배사라 선교사와 이사무엘목자가 어떤 과정으로 대학생들을 구원했는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주께서 나를 구원하신 천지개벽같은 일을 인생소감을 통해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믿음역사는 영주부석사 기록보다 더 정확하고 위대한 역사입니다. 믿는자의 진실된 역사보고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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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무엘 배사라 선교사
35.바나바와 사울과 안디옥 역사(19-30)
19절부터는 성령의 이방인 구원역사가 얼마나 입체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잘 보여줍니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19절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 후 성경선생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흩어진 성도들은 자신들이 정착하는 곳에서 언제나 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까지는 유대인에게만 전하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방인들까지 구원으로 인도할 마음을 갖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직 베드로의 이방인역사 소식이 구체적으로 전해지기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대단히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안디옥에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도 이방 사람들인 헬라인에게도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어떤 일이 있엇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같이 환상을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목자의 심정에서 이방인인 헬라인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역사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부지불신간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시점이 베드로가 욥바에서 환상을 보고 백부장 고넬료로부터 초청할 받던 그러한 시점이 아니었을까 추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야흐로 이방인 구원의 때가 이른 것을 아시고 한편으로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고 또 한편으로는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 성경공부를 시키는 그러한 역사를 동시에 시작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안디옥 교회의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ubf
주님이 함께 하시다
22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했습니다. 이 역사는 정말 기독교사의 대전환의 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베드로의 역사보고를 통해서 이방인에게도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에 주의 제자들은 했던 망설임없이 일심으로 이방의 성령역사를 지원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 역사소식을 듣자 즉각 가장 영향력이 강한 성경선생중의 하나였던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나바는 오순절후 초대교회시절에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내어놓고 니것네것없이 섬길때에 밭을 팔아서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인물도 좋고 성격도 좋은 데다 겸손하고 희생적이라 새롭게 개척하는 역사에서 여러 성도들을 부드럽게 섬기는 데에 아주 적합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다’ 이 말이 우리에게도 적용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기독인들이 다 착한 사람들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고 평가를 받을 수있기를 기도합니다. ‘저 분은 믿음은 있는데 성격이 좀 까칠해’ ‘저분은 새벽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말씀공부시간에 자주 늦어요’ 이런 평가도 있을 수 있는데 하나씩 줄여나가야겠습니다. 바나바는 모든 면에서 원만하고 믿음의 은혜가 충만한 제자였습니다. 바나바가 원래 그랬겠습니까? 아닙니다. 다 인생의 연단을 거쳐서 회개하고 성장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바나바가 안디옥에 가서 섬기자 큰 무리가 교회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볼 때에 하나님의 역사에 성숙하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요 또한 믿음의 역사요 또한 성경선생의 역사입니다. 바나바와 같은 한 사람의 종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합니까? 우리가 이시대에 주의 종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며 성숙하고 원만한 주의 종이 참으로 중요함을 알고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이 바나바 목자님의 대단히 위대한 점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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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바나바
26절을 보면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전에도 다메섹에서 부활예수를 만난 후 바나바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가 되었습니다(9:27). 그런데 그해에 예루살렘에서 강력한 반대자에 부딫혀 가까스로 죽음을 피하고 고향으로 칩거해 있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부활 예수님을 만나고 크게 변화되었지만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하자 두려움에 위축되어 낙향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 예수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강력으로 전파하게 하신 이 시기에 바나바는 다소에 칩거하는 사울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발품을 팔아서 사울을 찾아 다소로 심방하여 의기소침한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서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동역자로 세웠습니다. 바나바는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 주의 종입니까? 주의 종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또 인물을 알아보고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모두 바나바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참으로 믿음 안에서 상호보완이 잘 되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 뛰어난 두 사람이 일년간 열정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니 안디옥에 큰 역사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굳게 섰습니다. 그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의 신자들이 얼마나 진실되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했던지 사람들의 입에서 그들을 칭찬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말씀을 공부하고 주 예수의 십자가로 그 영혼이 거듭나 변화를 받으니 안디옥 도시 전체가 변하는 느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에 처음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특별한 용어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가보아도 뚜렷이 드러나는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지구에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외에 새롭게 등장한 인종과 같아서 ‘그리스도인’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종이 탄생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처럼 위대하고 이처럼 놀라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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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를 데리고 온 바울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일정한 생활패턴이 있습니다. 말씀 공부를 사랑하고 일요일에는 반드시 예배에 갑니다. 또한 술담배를 하지 않고 세상의 쾌락이나 유희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분들은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크게 복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에서도 성실하고 온순합니다. 거칠지 않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도 좋은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역대대통령들이 거의 다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며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학생시절 매주 성경을 공부하며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참으로 인생의 큰 축복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소감을 쓰고 자신을 연단하면 주께서 귀하게 쓰시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여름더위에 무기력하게 피해다닐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내면을 단련해서 훈련된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해야겠습니다. 주께서 우리 천안 UBF에 바나바와 사울과 같은 귀한 주의 종들을 세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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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27-30절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이 와서 동역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일꾼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모이는 것을 봅니다. 선지자들은 가뭄의 때를 대비하였고 유대의 동역자들을 부조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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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역사를 보고하게 하시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주의 종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방인구원역사를 선포하고 출발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바나바 사울과 같은 위대한 주의 종들을 통해서 안디옥에서 헬라인 제자양성을 이루시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을 얻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우리의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바나바와 같은 착하고 믿음 충만한 성경선생이 되어야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