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죽어서 몸이 쓰러졌을 때에도 부어서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 누구 하나 돌보지 않는다네
●●●더하는 말○○○
이 시에서도 사람이 죽어서 부패되고 완전하게 썩는 과정을 묘사하고 그것을 수행방법으로 선택한 아홉 가지 모습의 순서에 따른 관찰[구상차제관]이라는 일종의 깨끗하지 않은 것을 관찰하는 수행[부정관]에 해당하는 방법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자세하게 소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몸이 죽어서 썩는 과정은 냄새도 지독하고 그러한 모습과 모습을 관찰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수행을 결심하기도 쉽지 않고 그러한 수행 대상을 구하기도 쉽지 않으며
이러한 수행은 심리적 혼란등의 위험요소를 안고 있으므로 반드시 이 방면의 수행을 성취한 수행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지도를 받는것이 정석으로 되어 있으니 개략적인 부분만 이해하기 바라며 다른 42종류의 수행방법 중에 하나에 해당되기 때문에 보편적이며 쉽게 접근이 가능한 수행법을 먼저 배우기를 권합니다.
또 이러한 수행법은 하늘 나라 사람은 닦기 어려운 수행법으로 논서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 그것은 두려움과 공포 더러움이라는 심리적 요소가 인간 이나 하늘 사람에게 보편적 수행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인도는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감당이 안되면 버리는 곳이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나이드신 어른이 죽음이 다가오면 버리던 고려장같은 관습이 있었듯이 인도는 그것을 시체의 숲[시다림]에 버렸다고 하는데 이러한 죽은 시체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시체를 수행방법으로 택하였다면 분명 보통 강심장은 아닐것이다.
몸이 기능이 정지되고 나면 쓰러지고 시간이 지나면 팽창하고 부풀면서 퍼런 멍든 사람처럼 되었다가 터지면서 각종 액체가 흘러내리고 썩는 냄새는 사방 으로 퍼져서 역겨우며 시간이 오래지나면 피부와 살 그리고 수분등이 다 없어지면 백골만 남는다.
백골이 진토된다는 옛시조의 표현은 뼈도 풍화되면 흙처럼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유사이래로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처리 하는 부분은 민족이나 나라마다 종교마다 관습이 모두 다르니 인간의 몸을 중요시 여기고 그 몸이 천국에 간다는 기독교나 천주교는 매장이라는 방법을 택하였고 유가적 사고방식도 부모에게 물려받는 몸이니 묘를 쓰고 모셨다.
그러나 인도는 옛적부터 화장이라는 시체를 불에 태워는 방법을 택하니 몸은 허무한것이나 정신이라도 훨훨 날아 하늘 나라의 최고의 신에게 귀속 된다라는 의미등 다양한 사고방식이 공존하며 티벳의 경우 인간의 몸을 독수리에게 먹이감으로 발라서 주면서 마지막 베품이라는 사고방식과 함께 독수리가 자유자재 하게 날으니 그 정신도 자유자재 하게 나른다는등 다양한 관념과 습관이 내려온다.
그러나 사람은 자꾸 늘어나고 사람이 살 땅이 자꾸 좁아 지면서 매장의 습관은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부유한 신앙의 기독교 천주교인들이나 우리나라의 유교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 중국의 관습등에서는 아직도 매장의 습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있는것도 사실이나 이제는 화장아니면 수목장등 몸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불전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의사 지바카가 있는데 그는 석가 세존의 주치의로 의술이 아주 뛰어난 사람 이었으니 부처님과 인연도 깊은 사람이나 그의 여동생은 너무나 아름다운 미모를 타고나서 몸을 파는 창녀가 된 사람으로 당시 인도의 계급사회의 모순이니 여성의 지위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경국지색의 미녀는 계급이 낮은 경우 창녀가 되는것이 공식처럼 된 사회였으니 시리마라는 이 여인과 하룻밤을 자려면 요즘말로 수 천만원을 주어야 한다하는데 수 많은 남자들이 그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죽으니 그 시체와 잠을 자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더라는 비유를 하면서 석가 세존의 주변 인물 중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아름다운 여인 미모의 여자도 죽어 시체가 되니 아무도 원하지 않으며 그를 누구 한 사람 아름답다 라고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며 그 여인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품고 사랑에 빠진 비구 스님을 교화하며 그녀가 살아서는 팔천금을 주고도 함께하려 하더니 그녀가 죽으니 한푼을 주고도 그녀와 함께하지 않는구나라고 하시며 가르침을 주신다.
앞의 시에서 몸이 아름답다 하는 부분에 연결되는 이야기이며 결국 그 아름다운 몸도 죽으면 아무도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