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좋은 시 읽기___주경림
현실과 환상이 하나로 빚어진 마음 진경眞景
주경림
모든 예술가의 창작 활동은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대상에 대한 정신 집중인 몰입과 삼매의 경지에서 이루워진다. 유안진 시인이 “예술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천상천하유아독돈주의天上天下唯我獨尊主義다”(「시도 다수결이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시인도 이와 다름 아닐 것이다. 몰입과 삼매의 경지가 비단 예술가나 불교의 수행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이번 가을, 탑골공원에서 감나무 우듬지 위에 까치밥 삼매에 든 작은 때까치 한 마리를 보았다. 실은 ‘원각사지10층탑’을 보러갔다가 유리보호각에 반사빛이 어룽져 실망했는데 까치 한 마리가 좋은 볼거리를 선물했다. 어르신들이 무료급식 시간을 기다리느라 어수선하고 자동차 소리로 시끄러운데도 아랑곳없이 조그마한 까치가 감나무 우듬지에서 까치밥 삼매에 들었다. 노란 부리로 찌를 때마다 고봉밥이 찌그러들고 밥그릇 속으로 고개가 들어가고 차츰 밥그릇이 비워지며 까치의 회갈색 등어리가 보일락 말락, 꼬리만 삐죽하게 하늘을 빙빙 돌린다. 고봉밥이 실쭉하게 무너지고 까치는 뱃속 든든하게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까치와 까치밥처럼 시인과 오브제가 하나를 이룬 시의 진경眞景을 살펴보기로 한다.
■구름 날개와 눈동자에 비친 바다
눈동자에 구름이 끼었다
휴지로 닦기도 하고
후후 불어도 본다
유리창 하나 사이에 둔 듯
꼼짝도 하지 않는 구름
구름은 저쪽 세계에 속해 있다
구름을 너무 오래 쳐다본 것인가
눈동자에 구름이 번지기 시작했다
흰 구름이 검은 구름과 섞이고 있었다
안과 의사는 익상편이라고 진단했다
안구결막에 새날개 모양의 섬유혈관조직이 증식하여
각막을 덮은 거라고 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날개,
눈을 위로 치켜 뜰 때만 얼핏 보이는 날개,
너무 작아서 핀셋으로 집어낼 수도 없고
눈물을 흘려도 사라지지않는 날개,
그는 늘 입버릇처럼 떠나고 싶다 했다
나는 구름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바람만 조금 불어도 술렁이는 구름이
내 안의 구름을 부추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구름이 자꾸 집적거려도
모르는 척
몸과 마음을 꽁꽁 묶어 놓자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선희, 「익상편翼狀片」, 『시와산문』, 가을호
정선희 시인의 「익상편翼狀片」은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의 후속편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은 하늘의 구름이 흘러들면 저 멀리 허공을 보게 되고 김시습, 임제, 김삿갓처럼 세상에 없는 길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승훈, 이영춘 시인으로부터 흔한 소재인 ‘구름’을 참신한 상상력과 현대적인 언어 감각으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엿보였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익상편翼狀片」에서는 눈동자에 번진 구름이 새날개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정선희 시인이 눈동자의 구름을 즐겨 시적 대상으로 삼고있는 이유를 <시인수첩>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목장 같은 곳”,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나를 무한정 방생할 수도” 있기에 시를 쓴다. 구름의 비정형성과 날개의 자유분방함을 꿈꾸며 눈으로 볼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를 동경한다. “너무 작아서 핀셋으로 집어낼 수도 없고/ 눈물을 흘려도 사라지지않는 날개”에는 결국 포기할 수 없는 시인 자신의 떠남에 대한 욕망의 투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바람만 조금 불어도 술렁이는 구름”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 든실함을 견지한다. 생활인으로서 시인의 의연한 태도는 “구름이 자꾸 집적거려도/ 모르는 척”으로 드러나있다. 짐짓, 구름과 날개가 되고픈 몸과 마음을 꽁꽁 묶어놓으며 눈동자의 기능을 회복하는 자가치유력의 성숙된 면모를 보여준다. 정선희 시인에게 시는 마음껏 구름을 풀며 그렇게 무한정 방생할 수 있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인 셈이다.
직립한 섬들이 걸어와 멈춘 가로수 거리
기러기가 유리창에 대각선 날금을 긋고 날아간다.
수평선을 향해 손짓하는
건널목 가로수 잎에 찬 가을 햇빛이 반짝인다.
붉은 신호등에 막혀 돛대를 멈추고 끼룩거리는 어깨들
떠도는 사람의 눈동자에 바다가 펼쳐지고
기러기 날아가 하늘 높아진 초고층
반사광 유리창에 소금기 마른 햇빛파도가 출렁거린다.
──최동호, 「가을 바다 눈동자」, 『유심』, 9월호
시작과 시연구, 제자 양성에 평생을 받쳐온 고려대 명에교수인 최동호 시인의 「가을 바다 눈동자」를 읽어본다. 정선희 시인이 눈동자를 덮는 구름으로 비가시적非可視的인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었다면 최동호 시인은 초고층 건물이 늘어선 도심 한복판에서 눈동자에 비친 바다를 펼친다. 시인은 가로수 길에서 기러기, 수평선, 돛대 등의 환상을 본다. “건널목 가로수 잎에 찬 가을 햇빛이 반짝인다.”는 실재적 상황과 시인의 환상이 어울려 자연스럽게 도심 한복판이 가을 바다로 출렁인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 시로 쓰여지는 순간 초현실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맑고 깨끗한 정신세계를 지향해온 최동호 시인이기에 햇빛이 초고층 건물 유리창에 반사되는 광경이 “소금기 마른 햇빛파도”의 출렁임으로 비쳐진다. ‘햇빛파도’의 너울거림과 환함이 길거리에 떠도는 사람의 눈동자에 바다를 펼쳐주고 시를 읽는 독자도 자연스럽게 바닷가에 와 있는 가상체험을 하게 된다. 허구와 사실, 환상과 실재가 시적 상상력 속에 바다의 풍경으로 빚어진다.
문득, “설산의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조각난 부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히말라야의 독수리」가 떠오른다.(제11회 『유심작품상』으로 선정) 머리가 깨지는 아픔 속에 얻어낸 새로운 언어인 ‘햇빛파도’로 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심 한가운데 바다 한 자락을 풀어놓는 독창적인 시세계를 완성했다. “극서정시란 소통 불능의 장황하고 난삽한 서정시의 유행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어로 쓴 짧고 간결한 시를 말한다” 최동호 시인의 시론은 응축과 확장이라는 예술의 미덕을 상기하며 최근, 지나치게 산문화되어가는 시 경향을 돌아보게 한다.
■무적無籍의 앵무와 무애無碍의 시간
저녁에만 밝은 가로등에
구인광고를 보았다 사람을 찾든
개나 고양이를 찾든 바랜 사진과 품을 매긴 가격이 붙어있는 법인데
거짓말처럼 초록색 형광펜으로
고양이의 발, 개의 발 써 있는
“초록색 앵무새를 찾습니다”
실종인지, 가출인지, 이름도 없는 그저 초록색 앵무새
앵무과 328종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초록색 앵무새
가끔 담배를 피워 올리며
새가 날아간다고 농을 치던 후배의 등 뒤로
저녁이 붉기는 했는데
베란다에 키우는 한해살이 푸성귀들이
초록색이었다는 생각
가장 애타는 이름 없음과
집에 가기 싫은 초록색 앵무새는
어느 하늘을 둥지 삼아
초록으로 멍든 소리를 흉내내고 있을 테니
출퇴근에 보는
반쯤 바람에 뜯긴
“초록색 앵무새를 찾습니다”
──전형철, 「초록색 앵무새를 찾습니다」, 『시와산문』, 가을호
전형철 시인은 늘 시선의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꿈꾸고 부단히 흔들려야 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지속적인 변모와 혁신을 시도해 왔다. 일상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그의 시편은 때로는 읽기가 불편했지만 생인손 앓듯 감수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삶의 비극적 진정성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
“초록색 앵무새를 찾습니다”라는 구인광고로부터 시작하는 전형철 시인의 시를 읽어본다. 통상, 구인광고에는 사진과 찾아주는 답례로 사례금이 명시되어있기 마련인데 “초록색 앵무새를 찾습니다” 외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않아 꼭 찾으려는 의도가 불확실해 보인다. “실종인지, 가출인지, 이름도 없는 그저 초록색 앵무새”의 상징성의 의미를 유추해본다. “앵무과 328종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초록색 앵무새”는 이내 사라질 담배 연기, 혹은 한해살이 푸성귀들의 초록색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의 이미지와 동격이다. 서정시의 출발이 자기 확인과 자기 회귀성이라고 볼 때, 초록색 앵무새를 수식하는 실종, 가출, 이름 없음은 바로 전형철 시인이 출퇴근의 일상으로부터의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투사 일 것이다. “가장 애타는 이름 없음”에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소망이 담겨있다. 이제, 시인은 솔직하게 “집에 가기 싫은 초록색 앵무새”가 되어 좁은 집이 아닌 무한 광대한 하늘을 둥지삼아 자유를 흠씬 누려보고 싶음을 고백한다. 초록색 앵무새를 찾는 일과 방기放棄하는 일 사이를 넘나들며 날마다 출퇴근하는 생활인의 비애가 반쯤 바람에 뜯겨 펄럭이는 자리가 바로 시인의 삶의 현장이다.
연줄 툭 끊어진 빈 얼레만 쥐고 있는
손
바라보는 마음 편안하다
빈손 웅크려 만든 항아리 속에
장성 편백나무 숲 향기가 묻어있다
낮닭 함부로 울어제끼는 바닷가 마을
동백 떨어진 자리 뭉클하다
파도가 튕겨지는 한나절 햇빛에
금가루 흩어져서 눈이 시리다
꽃대를 치켜세운 흰 연꽃 같은
시간, 밋밋하고 둥근
──조창환, 「꽃대를 치켜세운 흰 연꽃 같은 시간」, 『시인동네』, 가을호
전형철 시인이 앵무과 328종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찾을 수 없는 초록 앵무새를 동경했다면 조창환 시인은 무형無形의 시간 흔적을 독자에게 선물한다. 조금 긴 듯한 시의 제목, 「꽃대를 치켜세운 흰 연꽃 같은 시간」을 대하는 순간부터 숙연해진다. 순백의 고요함, 맑음, 평화로움에 젖어들게 하는 시간의 흔적이 긴 여운을 남긴다.
조창환 시인은 여덟 번 째 시집 『벚나무 아래, 키스자국』, ‘시인의 말’에서 “밝음과 맑음, 공손함과 순함이 있는 다른 세상에 관하여 자주 생각해 본다. 바다 밑 같은 고요와 큰 나무그늘과 같은 안온함이 있는 세상은 자유롭고 넉넉할 것 같다. 그런 시간이나 공간을 만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먼지와 때와 얼룩이 가득한 일상의 삶을 넘어서는 길의 하나는 그런 시를 쓰는 일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바로 「꽃대를 치켜세운 흰 연꽃 같은 시간」에서 밝음과 맑음, 공손함과 순함이 있는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시인의 시적 대상은 연줄 툭 끊어진 빈 얼레만 쥐고 있는 손, 빈손 웅크려 만든 항아리, 동백 떨어진 자리, 등의 상실과 상처의 풍경들이다. 쓸쓸함과 서러움이 감도는 풍경에서 역설적으로 편안한 마음과 편백나무숲 향기 같은 맑고 정치精致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시작詩作으로 수행해온 시인의 연륜과 내공을 쌓아 이룩한 성과물일 것이다. 언어의 향기에 은은하게 젖어드는 고요함 속에도 낮닭의 울음과 파도가 튕겨지는 한나절 햇빛이 생명성과 활기를 작품에 불어넣어준다.
넷째 연에서는 파도와 햇빛이 어울린 눈 시리도록 환한 풍경을 보여준다. “낮닭 함부로 울어제끼는 바닷가 마을”의 세속을 훌쩍 뛰어넘어 신비하고 몽환적인 세계에 이른다. 금가루 흩어져서 아른아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불쑥 “꽃대를 치켜세운 흰 연꽃”의 이미지는 연출의 효과를 십분 활용한 마음 풍경이다. 불교에서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결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세상을 맑게 하는 지혜를 상징한다.(處染常淨처염상정) 조창환 시인은 흰 연꽃의 미덕인 맑음을 “밋밋하고 둥근”이라고 표현한다. 야트막한 동네 뒷산처럼 편안하고 푸근한 모습의 시간이다. 날마다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도 시인의 시를 읽는 동안만큼은 맑고 순한 흰 연꽃처럼 “밋밋하고 둥근” 시간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
■생의 가파른 길목에서
가파른 산을 오를 때마다
내 어릴 적 오르던 높은 산을 떠올린다
사방이 길이고 사방이 길이 아닌 그 산을 떠올린다
진달래 지천인 꽃길을 따라 걸어오셨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의 허적허적 걸어온 가난을 떠올린다
흰 수건 동여매고 밭고랑과 씨름하셨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의 그 서러운 저녁을 떠올린다
그 가파른 길에서 가끔 헤매는 나를 떠올린다
그 때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한 사내를 떠올린다
바람 잘 날 없는 벼랑 끝의 새들을 떠올린다
그 돌 틈에 피는 마른 잡풀을 떠올린다
간신히 머리를 박고 사는 한 그루 소나무를 떠올린다
──임동윤, 「사람이 그리운 날 7」, 『시와산문』, 가을호
조창환 시인의 시가 먼지와 때와 얼룩이 가득한 일상의 삶을 넘어서는 맑음과 밝음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면 임동윤 시인의 「사람이 그리운 날·7」은 세속의 삶, 그대로 아픔의 흔적들을 어루만져 한 편의 시를 탄생시켰다. 현재 계간 시전문지 『시와소금』 발행인 겸 편집주간인 임동윤 시인의 시를 읽어본다.
시인은 가파른 산을 오를 때마다 어릴 적 오르던 높은 산을 떠올리며 연상 작용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 어머니의 가난하고 서러운 가파른 길에서 시인은 헤매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의 고단한 시적 화자인 한 사내의 삶도 아버지, 어머니가 그러했듯 삶의 흐름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인생유전人生流轉은 비단 사람 뿐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유정물有情物에게도 해당된다. 벼랑 끝의 새들, 돌 틈에 피는 마른 잡풀에서 간신히 머리를 박고 사는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파른 삶의 도정에 있다. 시적 화자의 고달픈 자리를 확인하며 점층적으로 감정이 고조되면서 주위의 생명에게까지 따듯한 눈길을 건넨다. 이 세상의 유정물들의 상처와 고난을 어루만지며 함께 가는 가파른 길이기에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 외부의 자연, 가파른 산을 안으로 끌어들여 녹록치 않은 삶의 여정이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내면 풍경을 만든다.
개인의 고백이지만 애절한 정서의 교감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미덕을 지닌 작품이다.
■끝맺으며
밖의 풍경을 그대로 실내로 끌어들이는 것을 옛 조상들은 ‘차경借景’이라 불렀다. 밖의 풍경을 창문을 통해 잠시 빌려온다는 뜻이다. 한옥에서는 창문 액자를 통해가 계절,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섯 분,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문득, 창문을 자연과의 소통의 통로로 삼았던 ‘차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차경’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정선희 시인의 구름을 빌려 날개를 빚은 「익상편翼狀片」, 햇빛의 반사광을 파도 삼아 햇빛파도로 도심 한가운데 바다를 끌어들인 최동호 시인의 「가을 바다 눈동자」를 읽어보았다. 일상에 안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전형철 시인의 무적無籍의 앵무새와 “밝음과 맑음, 공손함과 순함이 있는” 조창환 시인의 「꽃대를 치켜세운 흰 연꽃 같은 시간」 또한 그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임동윤 시인 역시 가파른 산을 심중으로 끌어들여 시적 화자의 고달픔은 아버지, 어머니 때, 그 이전부터도 겪어왔으며 무릇 생명 있는 유정물들 또한 피해갈 수 없는 흐름임을 보여주는 마음 진경眞景을 「사람이 그리운 날·7」로 완성했다. 자연을 빌려쓰는 시인들의 겸허함도 옛 조상들의 ‘차경’의 마음 같이 삿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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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림 /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씨줄과 날줄』, 『눈잣나무』, 『풀꽃우주』가 있음.
출처: 시와산문 그리고 시와녹색 원문보기 글쓴이: 김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