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전라남도 순천] 뭘 어떻게 해... 다 버려야지

[도시에서온총각]

뭘 어떻게 해... 다 버려야지
가뭄, 태풍, 폭우

  “현재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제주 해상엔 많은 비와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말. TV에서 뉴스 속보를 전하는 기자가 강한 비바람을 맞으며 태풍 소식을 전했다. 그로부터 보름 후, 며칠간 머물었던 경상도를 떠나, 전라남도 순천으로 향했다. 

  ‘드디어 반 바퀴를 돌았구나.’

  터미널에서 들리는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가 내가 전라도에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터미널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미리 연락드렸던 순천의 어느 배 농장으로 가기 위해 마을 버스에 올라탔다. 도착한 곳은 순천 낙안면에 위치한 한 버스정류장. 마을의 이장님이자 배 농장을 운영하시는 아버님은 차가 없으면 마을까지 오기 힘들다며 나를 데리러 온다고 하셨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저멀리서 트럭 한 대가 나타났다.

  “자네가 그 전화 했던 학생인가?”

  “네!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일손이 많이 필요했는데 잘 왔네.”

  아버님은 나를 차에 태우시고는 마을 자랑과 함께 배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기 낙안면은 배가 아주 유명한 마을이야. 보통 전라도에선 나주배가 제일 유명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낙안배를 더 알아준다니깐! 생산량도 꽤 된다고. 그런데, 이번엔 우리 마을에 태풍 피해가 좀 있어서 큰일이야.”

  며칠 전, 태풍 솔릭(2018년 8월)이 호남권을 지나면서 피해를 본 과수 농가들이 적지 않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번 태풍은 제주에서 내륙으로 올라오면서 세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태풍 이후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려, 속이 꽉 찬 배들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마을로 들어서니 여기저기 커다란 배 나무가 눈에 띄었다.

  “아버님, 마을에 배가 정말 많네요?”

  “그렇지? 안으로 들어가면 더 많아.”

  “안녕하세요~”

  “아이고~ 동영씨라고 했죠? 정말 잘 왔어요!”

  한창 작업을 하시던 어머님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나는 짐을 풀고, 어머님이 타 주신 커피 한 잔과 함께 두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 여름 내내, 비가 안 와 가뭄으로 고생했는데, 갑자기 태풍 이후로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배 상태가 말이 아니야. 좋은 상품은 다 떨어져 나갔어. 가뭄에, 태풍에, 폭우에....”

하필 추석 대목 전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매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사과나 배를 잘 안 먹어서, 명절 대목이 아니면 물량이 잘 나가지도 않는데, 추석 대목을 앞두고 이래 버리니...”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그래도 어쩔 수 있나. 하늘이 저러는데.”

  아버님은 드시던 커피잔을 비우시곤 탁자에 내려놓으셨다.

  “이제 남은 거라도 잘 살려야지.”

  이날 내가 할 일은 배 나무 밑에 상자를 옮겨두는 일이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인력이 배치되어 배 수확이 시작되는데, 수확 전 날 두 분이서 노란 플라스틱 상자를 밭에 옮겨두어 내일 작업할 준비를 미리 해둔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님과 함께 노란 배상자를 경운기에 싣고, 밭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는 밭 들어서자마자 농장의 큰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배의 양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나무 위에 주렁주렁 달린 배 밑으로, 정말 많은 배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어머님, 이게 이번 태풍 피해로 인해 다 떨어진 배들이예요?”

  “응...”

  “그럼 얘네들은 다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다 버려야지.”

  얼핏 봐도 크고 굵직한 놈들만 떨어져 있는 거 같았다. 태풍이 불면 크고 굵어 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최상급의 배들이 가장 먼저 떨어진다고 했다. 한 번 땅에 떨어졌거나 충격이 가해진 배는 그 주위가 쉽게 멍들고 물러지기 때문에, 상품 값어치가 없어진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바닥에 떨어진 배들을 보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어머님이 배나무에 달려있는 멀쩡한 배를 따서 떨어져있는 배 옆에 버리고 계셨다.

  “어머님, 그건 왜 버리시는 거예요?”

  “응, 이건 태풍에 봉지가 벗겨지면서 배가 햇빛을 받아 색이 빨개졌어. 다른 한쪽은 아직 파랗고."

  “아, 이런것도 못파는 거예요?

  “그렇지."

  “맛은요?” 

  “한번 먹어봐.”

  나는 어머님이 건네신 색 바랜(?) 배를 한입 크게 배어물었다. 달콤하고 향긋한 과즙이 입안에 퍼졌다.

  “맛있는데요?”

  “그래, 맛은 괜찮아. 근데 이게 조금 더 지나면 색이 완전히 빨갛게 변하거든. 그렇게되면 상품으로 나갈 수 있을까?”

  “...”

  “사람들은 배가 이런 색이면, 절대 안 사가.”

  어머님은 말씀이 끝남과 동시에 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으로 버리셨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도시에 살면서 태풍으로 인해 피해를 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겪었던 태풍 피해라고는 날씨가 좋지 않아 밖에 나가지 못했던 것? 물론 뉴스를 보면 길거리에 간판이 떨어지거나 신호등이 떨어져 인명 피해를 보거나 재산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뉴스에서 태풍이나 홍수가 온다고 해도, 나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분들은 달랐다. 태풍은 농부님들이 한 해 동안 지은 농사를 하루 아침에 망칠 수도 있고, 과수 농가의 경우 몇 년 동안 키운 과일 나무를 싹 다 날려버릴 수 도 있다. 그만큼 농촌에게 자연재해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이번 태풍은 처음보다 세력이 많이 약해져 강한 태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농가에 끼친 피해는 상당했다. 뉴스로 봤을 땐 와 닿지 않았던 사실들이, 현장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니 농가의 쓰라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배들을 보며, 그동안 이 배를 생산하기 위해 피땀 흘린 농부님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도 더 마음 아프게 한 것은 이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시는 농부님들의 모습이었다. 항상 있는 일인 듯 무덤덤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씁쓸했다.

  "뭐 어쩌겠나 날씨를 맘대로 조종할 수 도 없고...”

2018.09.07-09.10
전남 순천에서

*해당 글은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151일간 시골 농가를 다니며 여행한 국내배낭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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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시골을 돌아다녔는가 [독립출판] : 도시총각

[곰나루]

시골체험기라 해야할까 잘 읽었습니다.
농부들의 피눈물나는 실상을 잘보여주셨습니다.
공감가는 글입니다.

[도시에서온총각]

감사합니다!! 앞으로 몇개 안남았는데 끝까지 관심가지고 지켜봐주세요!

[우정이랑]

우와
오늘 낙안배꽃피는 마을님댁
파랜트 작업하고 왔는데
총각님 낙안배 글 읽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자세한 체험후기
감사드립니다~^^

[도시에서온총각]

낙안에 다녀오셨군요!! 배가 유명한 순천의 낙안. 읍성으로도 유명합니다~

[뱜바우]

귀한 경험 공감합니다. 더 나은 농촌을 위한 밑거름이 되지 싶네요.

[도시에서온총각]

감사합니다!!

[태기산농부(신현효 횡성)]

농촌의 실상을 알리는대 등대가 되어 주세요

[도시에서온총각]

감사합니다!! 괜히 어깨가 무거워 지네요 ㅎㅎ

[십이월(김병욱)]

바로 옆에 배를 가공할수 있는 건강원이라도 있으면 태풍에 봉지가 벗겨진 배는 바로 도라지배즙이라도 만들텐데 아깝네요

[도시에서온총각]

수확으로 바빠질 시기라 거기까지 신경쓰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