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속의 포교원, 한국불교의 모델 등 수많은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 일요일인
3월 1일 낮, 서울에서 많은 손님들이 오셨다.
동국대학교 스님 20여명과 불교학과 학생 백 여 명이 포교현장 견학을 하기 위하여 우리절을 방문 하였다.
이 날 서울에서 세대의 관광버스로 우리절에 도착한 이들은 우리절 포교사들과 사시예불에 동참하신 많은
신도님들의 환영을 받고 우리절의 최첨단 시설들을 둘러보며 회주 큰스님을 친견 한 뒤 법문을 들었다.
지하 공양간에서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맛깔스런 공양이 준비되어 있었다.
깨끗하고 화사한 분위기의 공양간은 우리절의 자랑거리이다.
먼 길을 달려온 대학생 불자들을 위하여 버섯잡채와 삶은 계란을 곁들인 떡볶기와 함께 군만두가 있는 식단이었다.
스님들께서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줄은 몰랐다고 하시면서 대웅전의 법당들과 납골당, 그리고
적멸보궁을 둘러보고 참선방과 기도법당 그리고 천도재가 봉행되고 있는 3층 대법당들을 보면서 감탄을 하셨다.
우리절의 발전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삼보전을 견학하고 진행을 맡아주신 포교사의 안내로 하늘법당을 산책 하였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연못에서 연꽃이 피면 축제도 열린다는 설명을 듣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물이 말라버린
연못도 들여다보았다.
참좋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둘러보고 어린이법당에서 잠시 담소도 나누고 ....
옥불보전 대법당에서 큰스님을 친견할 예정이다.
큰스님께 오체투지로 삼배의 예를 올리고 법문을 청했다.
회주 큰스님 법문
예 반갑습니다.
다 서울에서 내려오셨습니까?
교수님은 어느 분이십니까?
저는 과거를 쭉 생각해 보면 학인시절이었을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강원은 강원대로 졸업을 했지만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입학을 해서 다녔는데 힘들어도 그때가
제 삶 속에서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백상원에서 기거를 하면서, 지금도 84번 버스가 있는가요? 84번 버스도 있고 361번인가 하는 그런
직행버스도 있고 그리고 지하철이 있는데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역을 지나 간적이 수두룩합니다.
하도 피곤해가지고 서울역까지 가서 다시 돌아오고, 버스를 타고도 거기서 내려야 하는데 못 내리고.
저의 도반 같은 경우는 지하철이 끝이 나고 차고에서 깨어나서 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공부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서울의 공기도 안 좋고, 그렇지만 그 때 시절이 제일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한 6개월 정도 미국에서 지내다가 그저께에 들어 왔습니다.
미국에서 한국불교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는가 해서 핑계는 영어를
배운다고 했지만 나가서 영어도 좀 하면서 6개월을 있었지요.
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불교가 미국사회에서 기여하고 있는 기여도는 거의 1%가 안 됩니다.
만약에 미국사회에서 불교를 100으로 본다면 한국불교가 미국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1%가 안 됩니다.
99%는 티벳불교 일본불교 그다음에 미얀마불교 태국불교 그런 불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배로서 조언을 하건데 공부하는 동안에 어학공부, 중국어도 좋고 다 좋은데 특히 영어를
좀 많이 해두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중국어 일본어 산스크리트어 같은 것은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런 것들도 좋고, 하면서 영어를
좀 많이 해야지 편합니다.
공부를 하는데도 편하고 나중에 뭘 하던지 필요 합니다
.
여기 보시면 포교집중 해서 한사람이 두 명 씩 포교를 하자 했는데 저는 거기서 세 명을 포교를 했습니다.
미국국적 스님 세 명을 포교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요.
흑인 한 명, 황인 한 명, 백인 한 명 세 명을 포교를 해서 데리고 오다가 흑인 한 명은 출입국관리소를
통과 하다가 잡혀서 못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5년 전에 한국에 들어와서 살면서 학원에서 과외를 했는데 정식으로 선생님으로 온 것이 아니고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가르쳤기 때문에 불법취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걸려서 다시 돌아갔습니다.
자기는 울면서 여기 와서 스님 생활도 하고 동국대학도 꼭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국말도 곧 잘합니다. 서울대학교 어학원에서 2년 정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한국말도 잘 할 수 있었는데
법이 그래서 못 데리고 왔고 두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미국사회에 있어서 불교적 관심은 대단히 높은데 한국불교가 미국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대단히 미약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때는 늦지만 지금이라도 학인스님들이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다면 어떻게 생각해 보면 불교 공부해서
취직하기도 힘이 들고 장래가 막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본인이 노력하지 않고 길을 찾지 않기 때문에 길이 없고 할 일이 없는 것이지 할일은 태산같이 많습니다.
우선 열심히 공부를 하는 일이 중요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어학을 해 놓으면
여기저기 자기가 분신을 나투게 할 만큼 할 일이 많습니다.
학생들 전체가 다 똑 같습니다.
처음에 입학을 하셔서 각오를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각오 한 만큼 계속 열정적으로 공부를 해야지 2, 3개월 지나고 나면 처음 했던 마음들을 다 잊어버립니다.
그냥 세월에 몸을 맡기는 수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나중에 할일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나중에 후회가 되지요. 시간을 아주 아껴서 써야 됩니다.
불교는 미국사회에 있어서도 대단히 희망적인 것은 분명한데 우리 한국불교는 아직도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말씀과 또 열심히 하면 학생 불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엄청 많다는 말씀을 제가 드립니다.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말씀드리니까 희망을 가지고 정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설들을 모두 들러 보셨을 텐데 여기는 3세 영아부터 시작을 해서 납골당까지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아까 보셨던 납골당은 1080기정도 모셔져 있고 또 영 유아 어린이집은 약 500명 정도 아이들이 여기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갖추어진 시설들은 빠른 시간 안에 어찌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불가사의 한 일들로 진행이 되어
왔습니다.
제가 대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 1992년도였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에 조그마한 땅을 매입을 하고 다시 또 5년 뒤인 지금부터 8,9년 전에 7층으로 지어진
납골당이 있고 종무소가 있던 그 건물 그 법당을 2000년 9월 20일에 낙성을 했습니다.
그 뒤로 우리가 앉아 있는 옥불보전 대법당이 완성이 되면서 어린이집 유치원 이런 시설들이 들어오고
경주 감포도량에 스님들 선방인 무문관이 들어서게 되고 칠곡 경산 구미등 여러 곳에 분원을 세우게
된 것 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강의를 하거나 법문을 하면 모든 도량이나 분원에서 동시에 강의를 듣고 법문을 듣는
채널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금 잘 안 보이겠지만 여기 전체가 화면 프로젝트시설들이 되어 있습니다.
천정에 달린 것들이 다 그런 것들입니다.
여기서 강의를 하거나 법문을 하면 분원에서 동시에 강의를 다 듣는 시설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도량 전체 법당은 큰절이 7개의 법당으로 되어 있고 7개의 법당전체가 동시법회 동시 강의가
가능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왼쪽에는 복지시설이 되어 있는데 복지시설 안에는 독거노인들을 위한 봉사와 아울러 치매 중풍환자들을
받아들이는 완전 무료, 그리고 잘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유급의 노인 복지센터가 잘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증축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불교의 틀이라고 하는 것이 이제 겨우 갖추어졌습니다.
2000년 9월 20일부터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한 7, 8년 동안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는데 이것이
어느 한 시주자에 의해서 완성이 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순전히 불교대학 학생들,
불교교양대학이라고 하는 제도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십시일반 학비 또는 신심으로 인한
기도비등을 잘 모아서 성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도량보다도 기초가 튼튼한 그런 도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두 사람의 시주로 인해서 도량이 설립이 되면 부작용도 많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절이 흔들릴 수도 있는데 제가 6개월 동안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도 그냥 잘 돌아가고
있는 편입니다.
아무튼 우리 불교도 절 운영 자체를 빨리 현대화할 필요가 있고 시스템화 할 필요가 있다고 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혹시 후일에 시간이 나서 불교대학 강의 프로그램이나 복지시설의 프로그램 또는 사찰 운영에 대한
프로그램을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는 분들은 다시 제차 오셔서 조언을 구하면 제 경험만큼 얘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표방하고 있는 사찰의 제정 또는 틀은 불교인이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교양대학은 모든 요일에 공부를 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일요일까지 법당이 쉬는 날이 없습니다. 전체 법당이 다 풀가동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저는 공부를 시키는데도 반드시 아울러서 수행을 같이 시킵니다.
내적인 힘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공부하는 것은 금방 달아나 버립니다.
공부 하시면서 학생들도 학인스님들도 수행을 등한시 하면 진척이 없습니다.
하루에 108배라도 꼭꼭 하고 다라니라도 하시던지 사경도 좀 하고 정근도 좀 하고 그래서 내적인 힘을
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바로 이 수행단체가 수십 개가 됩니다.
자기의 근기에 따라서 수행을 해 볼 수 있도록 참선부터 시작을 해서 사경기도까지 많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수행프로그램을 많이 제공하고 있고 봉사 또는 복지 활동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익히고 배운 것을 회향하지 않는다면 그까짓 거 해서 뭐하느냐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편하면 강변의 돌덩어리가 낫지요.
그래서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내가 익히고 닦고 부처님께 배운 것은 모든 이웃들에게
회향을 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향의 방편으로 복지사업을 하고 또 봉사 활동을 많이 합니다.
대구시내만 하더라도 17개의 병원에 6개의 단체가 들어가서 봉사활동을 합니다.
단순히 불교대학이라는 수준이 아니고 실지로 보살행을 추구하는 그런 도량을 가꾸고 있습니다.
17개의 병원이라면 기독교병원은 들어가기가 힘이 들지만 웬만한 대학병원은 다 들어가고 있습니다.
호스피스봉사라던가 무급, 유급의 간병사 그리고 영안실에서의 염불봉사단 각 병원의 기도봉사단이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구 경북지방의 불교인구가 5,6년 전보다도 6%정도 상승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니까 다른 사찰들도 덩달아서 열심히 하게 되고 동시에 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모델적인 도량은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다른 도시에 이런 도량을 좀 더 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인원이 많이 모자랍니다.
스님들 인원도 모자라고 해서 그것이 숙제입니다.
한 도량을 운영을 하려면 적어도 스님 두 세분은 있어야 하는데 스님숫자가 모자라는 것이 현제 가장 큰
숙제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두세 명 스님 좀 하라고 포교를 했더니 하나 같이 하는 얘기가 장가 갈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장가가는 것은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고 출가를 해 보는 것도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이 도량을 찾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고 선배로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 시간이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잠깐 지나가고 나면 나중에 할 일이 없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시고 특히 어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단단히 결심을 해도 잘 안 되는데 결심조차
안 하는 사람은 공부가 잘 안 됩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십니까?
복지분야는 어떤분야를 하시는지요?
지금은 노인복지 쪽이 많고요. 그 다음에 장애인 복지 족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지역아동센터를 같이
운영을 하면서 어느 한 분야에 국한 된 것이 아니고 종합복지입니다.
현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노인복지입니다.
현재 증축되고 있는 저 건물을 포함하면 나중에는 100여명의 노인들을 모실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지금은 7,80명의 노인들이 들어와 계십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봤을 때 노인복지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다 보니까 국가재정이 바닥이 나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가 모든 분야에서 조금씩 더딘 점이 있습니다.
늦어져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복지도 조금 늦게 출발을 했고 학교 짓는 것도 많이 늦어 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려니까 너무 힘이 듭니다.
뉴욕의 맨하탄 쪽에 나가서 보니까 그 쪽도 한 발 한 발 늦어지다가 보니까 성당은 그리 많지도 않고
다 같은 체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미국의 성당을 빌려서 집회를 하는 데가 많고 교회는 전혀 다른데
뉴욕에 교회가 천개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미 한국 교민들 전체를 다 잡아 버렸습니다.
한국교민이 뉴욕에 55만 명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천 개의 교회에 분산을 한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지금 들어 갈려니까 미국도 우리나라와 부동산 경기가 비슷해 가지고 5,6년 전보다도 맨하탄 시내에
건물 값이나 땅값이 열배 이상 올라 버렸습니다.
시기를 잘 택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불교는 시기를 놓친 점도 많은 것 같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LA에도 법회가 있어서 가보고 시카고, 워싱턴, 보스턴도 다녀 봤는데 LA에는 단일 직종 중에 가장
인구가 많은 직종이 목사라고 합니다.
목사 만 명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는 스님들이 들어오는 숫자도 많이 떨어지고 그런데다가 재정적으로도 열악하고 시기도 많이
놓쳤고 해서 안타깝지요.
그래서 제가 미국에 분원으로 출발을 한다면 이 시스템을 옮기고 싶습니다.
어린이 영 유아부터 시작을 해서 노인복지 그리고 불교대학과 젠센타를 겸하는 종합수행도량의 틀로서
들어갔을 때 우리 교민들은 물론이고 현지 미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포교, 수행에 직접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문제 환율문제 등이 문제가 되지만 우리가 장차 해야 될 일이 그런 일이 아닌가 하고 많이
추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질문 있으십니까?
스님들 중에서 한 번 질문을 해 보십시오.
월정사에 계신 스님 한분께서 질문을 하셨다.
출가를 해서 살아가다 보니까 스님으로 살아 갈 부분이 수행자적인 노력과 사회교육도 겸해야지 불교에서
요구하는 리더쉽 적인 자질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제가 부족한 부분을 이렇게 채울려고 하다 보면 스님께서 짧은 기간동안 한국불교대학을 이루어
오셨던 그런 실무적인 내용이라던가 이런 것을 스쿨식으로 또는 교과 과정식으로 해 놓은 이런 것이 참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저희들이 신행활동이라던가 방향 설정을 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스님의 경험을 후학들이
지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여실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스님들께서 처음에 발심을 해서 고민은 사회도 버려서는 안 되고 그리고 출가생활도 소홀해서도 안 되고
두 가지를 다 하자니 갈등도 많이 생깁니다.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살아도 될 것인데 꼭 내가 이 것을 해야 될 것인가? 또는 사회에 접하다 보면
공부가 등한시되지 않는가 하는 그런 고민도 생기고 그런데 지금으로의 상책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교면 학교 백상원이면 백상원의 룰을 잘 따르고 예불에 열심히 동참을 하고 나름대로 수행과목을
하나씩 넣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자기 수행을 해 가면서 힘을 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하신 내용 가운데서서 이런 경험을 제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신가 하셨는데 한때는
제가 여기다가 학교 또는 강원을 졸업한 뒤에 다시 2년 정도 공부하는 전법학림을 해서 여기서 생긴
노하우를 전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공부를 해서 경험을 하면 각 도시에 세계적으로 분원을
내고 사찰을 여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해서 전법학림을 추진을 하다가 조계종의 법이 까다롭고 제가
관리를 하려면 여기에 있어야 되니까 그런 점이 힘이 들것 같아서 추진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계종의 종지에도 보면 포교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스님들께서 포교를 등한시하는 그런 풍조가 있습니다.
불교가 잘 안 되는 이유 중의 큰 문제는 그런 데에 있습니다.
생각을 빨리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우선에 내 놓은 책을 스님들께 한 권씩 드릴 것입니다.
불교 혁신론, 포교론이라고 해서 책이 간단하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거기에
다 써 놓았습니다.
책만 봐서는 안 되니까 학림 같은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해 볼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인데 나중에 후일
인연이 되면 스님들과 포교사들을 생각하는 학림을 운영을 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여기 위쪽으로는 스님들 방만 마흔 개의 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많은 방을 만들었느냐 하면 전법학림을 해서 스님들을 수용을 해서 이런 경험들을 보급을 하고
나누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지금은 상좌들이 많이 들어오고 해서 스님들의 숙소를 어떻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나가 보니까 미국의 사정도 너무 열악하니까 스님들이 살려고 안합니다.
문화적인 부분도 개선 할 것은 개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흔 개의 방 안에 전부 욕조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가정의 아파트의 수준은 못
따라 가는 겁니다. 우리가 편하자고 출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이 것은 돼야 합니다.
그래야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후일에 여유가 생기면 감포도량에 무문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원한다면 입소를 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모든 조계종의 장치가 거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거쳐 가는 것처럼 되어 있으니까 공부가 안 되는 겁니다.
진짜로 하고 싶어서 목에 칼을 대고 정진을 해야 하는데 교육과정이라서 거쳐야 되니까 강원이나 학교를
나오게 되고 그러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그리운 것은 사람입니다.
한국 땅 안에서 절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지스님 혼자 계시거나 또는 빈 절도 많습니다.
미국에 가도 빈 절이 많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이 점 깊이 생각 해 봐야 합니다.
사람이 없는 절은 단지 건물일 뿐입니다.
스님이 없는 절은 건물일 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면 그런 중심에 서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교수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어떤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가장 이상적인 불교 지도자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교수님 말씀대로 다 교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교학적으로 보면 아직 까지 문이 좁습니다.
그렇다면 인접학문과 관련을 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 가운데서 단순한 예로
출판을 하고 있는데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 곳이 도서출판 좋은 인연이라고 있습니다.
도서출판 좋은 인연은 사찰 내에 있습니다.
책 한 권을 내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있어야 하는데 불교 안에서 전문 인력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불교학을 충분히 했고 국어실력도 있으면 그런 쪽으로 충분히 취직을 할 수 있고 그리고 또 이것을
영어로나 다른 나라 말로 번역을 하려면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필요한 입장에서는 사람이 없고 취직을 하려는 입장에 봤을 때는 취직할 데가 없고 서로 잘 안 맞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얘기는 어학을 공부하고 부전공을 반드시 하나씩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시설을 갖추고 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불교단체나 시설에서는 왜 취직을 못 시켜주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찰의 규모가 집만 덩그러니 있으면 별로 의미가 없지요?
이 시설들이 백 퍼센터 가동이 되고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젊은 층의 불자들이 여기 와서 생활터전이
된다는 생각을 애초부터 했습니다.
예전에 대구지역의 대불회 회장이 복지과를 나와서 갈 데가 없으니까 천주교의 복지시설에 들어가 있다가
얼마 있다가 개종을 했습니다.
우선 밥을 먹여 주는 데가 고마운 거니까 그 학생을 나무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찰들에서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은 불교적 활동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복지법인, 전체 종무원 등 우리 종교시설 안에 들어와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수 백
명입니다.
그렇게 해야지 불교와 관계되는 분들이 생활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종교로 다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염려하시는 그런 부분들이 저한테도 큰 숙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수한 불교 인력을 불교시설 안으로 흡수할 것인가?
그러려면 불교시설이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좀 특이한 것이 서울대학교나 이런 곳에 불교학과가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 세운학교라 할지라도 예를 들면 콜롬비아대학이던가 UCLA라던가
하버드대라던가 이런 곳에도 석 박사가 아니더라도 불교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나와서 학과가 증설되면 교수로 나가고 그런 길이 많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수를 하려고 해도 중앙승가대학, 동국대학교, 위덕대학 이런 곳에 한정이 돼 있으니까
문제 입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유산인 불교를 홀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서울대학교 같은데서 개방을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종교학부 이렇게 하지 말고 불교학 계통의 학과가 개설되면 불교 위상도 올라 갈 텐데 그것을 잘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불교적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불교 인심이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힘이 없으니까 그렇겠지요?
교수님께서 염려하시는 그런 부분은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인접학문과 같이 해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부전공도 하면 할일은 많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법문을 마치신 큰스님께서는 인솔 교수님과 인사를 나누시고 학인스님들과 학생회장에게 성금을 전달 하셨다.
이번에 우리절을 방문하신 동국대 스님들과 학생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의미가 달랐다.
선배님께서 직접 설립하신 모범적인 사찰을 견학하면서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관심 또한 특별했다.
큰스님께서도 우리불교의 미래를 걱정하며 연구하는 후배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셨다.
자랑스러운 선배님의 모습으로 우뚝 서 계신 회주 큰스님과 부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후배들의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원명신님 기사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수고하셨습니다.()()() 편히 앉아서 잘 보았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깔끔하고 자세한 기사쓰시느라 고생하셧습니다 덕분에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원명신 기자님..ㅎㅎ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_()_()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