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선교에 임하는 자세
참고말씀: 민9:17,18; 롬8:28; 고전3:6-8; 갈6:2; 빌2:4; 딛1:6-9; 2:1-5; 3:10,11
읽을말씀: 행28:1-11; 딛1:5
주제말씀: 행28: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첫째,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행28:1)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섬 선교에 임해야 합니까?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한 바가 있어서 그리 된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사전에는 우연이 없으며, 설령 우연처럼 보이는 경우도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바울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 점이 분명합니다. 비록 그가 지중해 한 복판에서 표류하다가 멜리데에 도착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멜리데 도착이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는 그곳의 원주민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이 바닷가에 상륙했을 때 그곳 원주민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적대적이며 그를 몹시도 경계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특별한 동정을 가지고 환영해주었습니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2절) 어디 그 뿐입니까? 후한 예로 대접하고 떠날 때에는 쓸 것까지 배에 실어주었습니다.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10절)
바울의 태도는 또 어떠했습니까? 육지에 무사히 상륙한 것에만 만족한 채 그냥 쉬기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열병과 이질 등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고쳐주면서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으며, 체류 기간 동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8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어서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이곳에 와있음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머무는 동안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행28:11)
또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섬 선교에 임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시는 동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기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어떤 자세로 일관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시면 떠나고 머물라고 하시면 머무는 자세입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민9:17,18) 그리고 여기에 머무는 동안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바울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언제까지 멜리데에 머무를 작정이었습니까? 안전하게 겨울을 나고 파선된 알렉산드리아 배를 고칠 때까지입니다.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태고 떠나니...”(행28:11 중) 대략 어느 정도였습니까? 3개월입니다. “석 달 후에 ...”(행28:11 상)
그때까지 그는 어찌 했습니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했으며 기회가 닿는 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전했던 것입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8절)
누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역시 그의 의술로 여러 병자들을 진료하고 그 회복을 도왔던 것입니다. 여기서 ‘고침을 받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의학적 술어인데, 이로 보건대 누가도 자신의 의술로 질병을 치료하는데 협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초로 의료 선교의 길을 연 셈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여기에 머무는 동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가지고 선교현장에 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 각자의 역할이 있음을 알고 거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딛1:5)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섬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씨를 뿌리면 다음 사람이 물을 주는 등 각자의 역할이 있음을 알고 거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고전3:6 상)
다만 무슨 생각은 금물(禁物)입니까? 내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나나 그가 모두 일반이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역할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책임은 누가 다 지십니까? 하나님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 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6-8)
그레데 선교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바울이 그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지만, 그곳에 계속 남아서 물까지는 줄 수 없었습니다. 대신 누구를 그곳에 남겨서 그 일을 하게 했습니까? 믿음의 아들 디도입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딛1:5)
어떤 중요한 일들을 부탁했습니까? 각 성에 장로와 감독을 세워서 교회들을 튼튼히 하며,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딛1:5-9)
성도들을 바른 교훈으로 양육하며,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2:1-5) 이단에 속한 사람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딛3:10,11)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각자의 역할이 있음을 알고 거기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물론 이 말은 내 할 일만 하고 다른 사람의 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슨 말입니까? 먼저 자기 일을 돌아보고 이후에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4) / “너희가 짐을(또는 무거운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참고로, 여기서 ‘짐’(헬, 바레)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과중한 시련이나 고통, 어려움 등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