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신 - PAST OF THE NEW WORD Vol.1 물과 같은 가을의 마법(3)
다음 날, 어제와는 다르게 왼팔에 심한 고통을 느끼며 일어났다. 전에는 갑자기 감각이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팔이 몸에 빠질 듯이 아팠다. 하지만 고통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일어난 지 1분도 채 안돼서 언제 그랬냐는 듯 고통은 말끔히 사라졌다. 두 번이나 같은 부위에 이상증상이 나타나자. 나는 약간은 불안함이 생겼다.
그러나 그 감정은 어제 무현이가 놓고 간 가정통신문 한 장에 잊혀졌다. 오늘은 바로 9월 28일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 녀석 일부로 놓고 간 것이 틀림없다. 분명히 내가 수학여행 가는 것을 까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어제 슬쩍 놓고 간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잊고 있었던 수학여행의 준비를 해놓았을 리 만무했다. 갈아입을 옷가지도 챙기고 어차피 쓰지도 않을 거지만 수첩과 필기도구도 준비하고 그러고 보니 도시락까지도 준비해야하니 새벽에 일어났다고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허겁지겁 짐을 챙길 때 나의 짐 싸는 속도를 현저히 떨어지게 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팔찌였다. 챙겨야할 옷을 생각하면 자동으로 반응해서 옷 모양으로 변해버리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팔찌를 오히려 이용하는 것이다. 방구석에 앉아 갈고리 같이 생긴 막대기를 이미지해서 서랍도 열고 옷도 챙기는 것이다. 먼 곳에는 긴 것을 이미지하고 가까운 것에서는 짧은 것을 이미지해서 짐을 챙기니까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되어 여의봉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짐을 다 챙기고 아침은 대충 미숫가루 한잔으로 끝낸 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고 나는 학교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였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는 결과였다. 학교에 들어서니 운동장에는 벌써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여러 대가 대기 중이었다. 목적지는 경주. 목적은 겉으로는 문화재답사지만 실제로는 그냥 노는 거다. 도대체 뭐 하러 이런 이중적인 행사를 하는 지 이해가 가질 않는 다. 처음부터 그냥 놀러 가는 형식으로 만들던가. 아니면 정말로 제대로 문화재답사를 하게 하던가. 겉으로만 애들 질질 끌고 다니고 갔다가 와서 뭔가를 얻어가는 애들이 몇 명이나 있을는지.
나는 애늙은이 같은 푸념을 늘어놓으며 교실로 들어갔다. 역시 내가 늦었는지 우리반은 내가 들어가자마자 바로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계속 이미지를 했더니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아마도 이미지를 하면 정신력이 많이 소비되는 것 같았다.
나는 졸린 눈을 반쯤만 뜨고 앞에 가고 있는 같은 반 친구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무게를 실어 비몽사몽한 상태로 운동장으로 나갔다. 간단한 주의사항과 함께 전교생이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반 담임선생님은 중학교의 남자 선생님치고는 젊은 축에 속하는 분이셨다. 거기다가 아직 총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반과는 다르게 강제로 남자와 여자를 같은 자리에 앉히는 규칙을 정하셨다. 겉으로는 모두 싫은 척했지만 솔직한(?) 몇 명은 대놓고 환호했다.
나는 여자랑 앉는 것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불편했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여자랑 같이 있으면 너무나도 불편했다. 안절부절 못하고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고 거기다가 약간 자기중심적인 여자애랑 같이 앉으면 낭패였다. 친구랑 떠들다가도 옆에서 시끄럽다고 조용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더 시끄럽게 떠들지를 않나 과자부스러기 날린다고 먹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과자봉지조차 치우지 않는 대단한 애들이 가끔씩 있다. 물론 내가 속이 좁아서 그럴 수도 있고 예민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불편한건 불편한거다.
남자애들이 그러면 말로하거나 싸우기라도 하지만 애초에 여자애들한테 이긴다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이다. 불평을 하자면 끝이 없지만 어쨌든 나는 우리반 남자가 여자보다 많다는 데 희망을 걸었다. 나는 기도를 하려다 슬며시 쓴웃음을 지으며 모으려던 손을 풀었다. 내가 그 양반한테 빌어봤자 들리기라도 하겠는 가.
자리가 정해진 후 정말로 창세신이 그라면 다음에 만나면 팔찌를 이용해서라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분명히 제비뽑기였다. 그리고 출석번호 뒤부터 뽑는 거였고 내가 뒤에서 두 번째였다. 내가 뽑을 표는 남자랑 앉을 수 있는 표랑 여자랑 앉을 수 있는 표 둘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내가 뭘 뽑을 까 고민하는 사이 제비가 살짝 열렸다. 열린 제비는 9번 여자랑 앉는 표였다. 나는 승리의 웃음을 지으며 다른 쪽의 표를 뽑았다.
그런데... 내가 뽑은 표는 9번이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문제의 표를 보았다. 그 표에 적혀있는 숫자는 6이었다. 허허 이건 분명 그 양반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합리화시켰다. 나는 속으로 엄청난 욕을 퍼부으며 내가 뽑은 9번 자리로 갔다. 그런데 나를 쳐다보는 남자애들의 눈빛이 이상했다. 부러워하는 눈빛과 질투의 눈빛 등이 섞여 복잡한 심정을 나타내었다.
나는 아무생각 없이 가방을 위에 올리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내 옆자리의 여자애를 보고 기겁했다. 이 여자애는 자기중심적이지는 않지만 뭐랄까 제 3의 케이스였다.
8일전쯤 전학을 왔었는데 이름은 한시애. 이 한시애는 분위기가 묘했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나쁜 쪽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배경과 동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히 거기에 있지만 벽지에 그려진 수많은 무늬 중 하나 정도로 느껴졌다.
말수도 별로 없다. 아니 전학 와서 자기소개 할 때 한번 빼고는 한번도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선생님들이 발표를 시키지도 않았고 영어 말하기 시험 같은 것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꼭 말해야 하는 상황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반은 한시애의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머리카락은 어깨에서 약간 내려간 정도 길이의 약간 갈색 빛이 감도는 생머리였다. 평소에도 여학생에게는 두발규정이 관대하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의 유일무이한 규칙인 머리는 묶어야한다는 규칙마저 지키지 않는 한시애를 선생님들은 지적하지 않았다.
얼굴은 갸름하여 그냥 놓고 본다면 가련 형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매서운 눈빛과 어머니와 같은 포용감 그리고 고고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 한번 우리 반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사귀고 깨지고를 반복하는 놈이 한시애에게 다가갔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전학생에게 누구나 물어볼 수 있는 어디 살고, 어디서 왔고 등의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가벼운 말이라 누군가의 신경을 건드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한시애의 존재감이 강렬해졌다. 그리고 동화가 아닌 부조화가 일어났다. 배경과 확연히 구분되며 거기 있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듯 했다. 다른 곳을 보고 있었던 애들까지 포함하여 우리 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한시애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살기가 넘쳤었다. 눈에 힘을 준 것도 아니라 단지 쳐다본 것이었다. 살기의 느낌이 없다면 무심히 쳐다봤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기품까지 뿜어 나왔다. 그 뒤로 말을 걸었던 남자애는 물론이고 우리 반 모두는 한시애를 건들릴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이 한시애를 발표시키지 않는 이유가 혹시 교무실에서 그런 짓을 해서 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이런 무시무시한 여자애랑 몇 시간을 계속 같이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는 사실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창문자리가 아니라 통로 쪽 자리였다. 차라리 창문 쪽 자리였으면 창문을 보면서라도 갈 수 있을 텐데 상황이 너무나 안 좋았다.
주머니에서 껌이라도 꺼내려고 손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는 데 동그란 물체가 만져졌다. 물결무늬 팔찌였다. 만약 밖에서 팔찌가 변하기라도 한다면 그냥 난감해지는 걸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빼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있다. 껌을 꺼내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창문으로 옆 버스가 보였다. 옆 버스에서 누군가 긴장된 모습으로 정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
<계속~>
주~간~연~재 현.대.판.타.지
창세신이 돌아왔어요~
월간연재를 넘어 분기연재가 될뻔헀던
창세신을 겨우겨우 썼습니다.~
매화 도둑을 완결까지 줄거리를 정해놨더니
그 쪽이 더 급해지는 군요~
아무래도 이번 편에는 강지환편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라던가
철학적인 면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폭풍전의 고요라고 해두지요~(자기합리화중)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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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다음주를 기대하세요~
주제에 너무 연연하진 마세요. 어차피 자연스럽게 녹아드니까요.
그런가요오오오오오? 그런데 주제가 뭐였지이이이이이?
창세신 오랜만에 보는듯한 ..? 그런데 .... 글이 ...... 글이!! 묘사가 너무 많아요 ㅠㅠ
월간연재를 넘어 분기연재가 될뻔했었죠오오오~~ 묘사가 없는 것보다는 좋지 않겠습니까아아아아아ㅏ~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간연재라 하십니까. 일일연재로 해야지요. -_- +
시작부터 주간연재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제와서 바꾼다는 것은 사나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진상은 단순히 귀차니즘이라는 전세계적인 불치병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