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커야 맛있는 방어…특대방어, 이 부위 안 주면 의심하라 (2)
에디터손민호
여행 일타강사⑧ 겨울 맛여행 캘린더
바야흐로 겨울이다. 바다로 달려가야 할 계절이다. 겨울만큼 바다가 맛있는 계절도 없어서다. 우리에게 친숙한 꽤 많은 바닷것들이 겨울에 제일 맛있다. 이 모진 계절이 실은 바다가 가장 풍요로운 계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일타강사의 본분에 충실해지려고 한다. 과목별로 기말고사 준비하듯이,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맛봐야 할 제철 먹거리를 종류별로 학습한다.
오늘 강의에서 함께 공부할 겨울 바닷것을 열거한다. 굴, 양미리, 도루묵, 방어, 삼치, 과메기, 대게. 하나같이 겨울 여행의 목적으로 충분한 제철 먹거리로, 여행기자는 이것들 챙겨 먹고 다니느라 겨울마다 바빴다. 물론, 이것들 말고 더 있다.
충남 홍성 남당항의 겨울은 새조개 축제의 계절이고, 전남 벌교 여자만 갯벌의 정월은 꼬막 캐러 나가는 뻘배로 부산한 시절이고, 낚시꾼은 제가 잡은 겨울 숭어 맛을 최고로 친다. 전남 신안 흑산도는 이맘때 잡은 참홍어가 제일 맛있다고 자랑하고, 요즘처럼 양식이 활발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경남 거제도 외포리의 대구탕만 한 겨울 보약도 없다고 했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하나하나 더 공부해볼 작정이다. 특히 홍어는, 별도 특강을 열어도 모자라지 않은 심층 탐구영역이다.
김영옥 기자
용어부터 정리하자. 제철 생선이란 무엇인가. 생선이 제철을 맞았다는 건, 산란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알을 낳기 위해 몸집을 한껏 불렸을 때, 그래서 살이 튼실하고 기름기가 올라와 맛이 꽉 찬 시기를 ‘제철’이라 한다. 제철은 생선을 생명이 아니라 음식으로만 대하는 인류의 시각이 반영된 용어로, 지구 생태계의 안녕과 평화를 고민하는 쪽에선 찬성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인류는 그렇게 영양을 섭취하며 누천년을 연명했다.
무분별한 남획이 문제지, 제철 먹거리 찾는 인류의 본능까지 문제 삼는 건 무리라고 여행기자는 생각한다. 다행히 인류에겐 아직 양심이 남아 있다. 생선이 산란기에 진입하면 금어기로 지정해 보호한다. 갈치·고등어·조기처럼 흔한 생선도 금어기가 있다. 금어기 어종을 잡다가 걸리면 어민은 2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2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 주말 낚시꾼도 바로 풀어주지 않으면 과태료 80만원을 물어야 한다.
하나 더. 일타강사의 오늘 강의는 20년 넘는 취재기록을 그러모은 것이다. 20여 년간 보고 듣고 먹고 잡고 읽고 찍은 경험을 정리했지만, 이 또한 개인의 경험일 따름이다. 바닷것은 지역마다 차이가 커 통상의 설명이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닷것이 올라오는 시기와 바닷것을 잡고 저장하고 요리하는 방법 모두 제각각이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전통 산지가 달라지는 것도 여행기자를 당황하게 한다. 오징어는 더 이상 동해안 별미가 아니다.
심지어 이름이 통일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이를테면 누구는 동해안 양미리와 서해안 까나리가 같은 생선이라고 하고, 누구는 엄연히 다른 종이라고 주장한다. 두 지역이 이 생선을 먹는 방법은 같은 생선인가 싶을 정도로 판이하다. 동해안 곰치와 남해안 물메기는 사실 같은 생선인데, 놀랍게도 두 이름 모두 표준어가 아니다. 곰치와 물메기의 옳은 표기는, 이름도 생소한 꼼치다. 물곰·미거지·물잠뱅이도 다 꼼치의 지역별 방언이다.
물잠뱅이와 물텀벙이가 같은 생선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보통 물잠뱅이는 꼼치, 물텀벙이는 아구로 구분한다. 부산에선 아구를 물꽁이라고 부른다. 이 어지러운 상황에 해산물 유통·판매업자의 상술이 더해진다. 아직 철 이른 바닷것이 제철 탈을 쓰고 시장에 나오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오늘 강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철 바닷것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여행기자의 제안이다. 당신의 겨울 여행에 참고만 돼도 감사하겠다.
목차
굴과 크리스마스의 상관관계
갯마을 애물단지의 변신
겨울 생선의 절대 강자
삼치는 회부터 먹는다
꽁치 과메기를 위한 변명
대게는 겨울 음식이 아니다
굴과 크리스마스의 상관관계
겨울을 대표하는 별미 하나를 말하라면 나는 굴을 제일 먼저 꼽겠다. 그러나 겨울이 왔다고 해서 바로 굴을 먹으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굴은 추워야 더 맛있다. 손민호 기자
겨울은 굴의 계절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더 없어서 못 먹지, 배불러서 못 먹은 적은 없다. 다만 나는 겨울이 와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조금 더 참고 기다린다. 내가 굴을 참는 기간은 크리스마스까지다. 이유는 이따 알려드린다.
굴은 재배 방법에 따라 투석식과 수하식 두 종류로 나뉜다. 재배 방법이라고 썼듯이, 자연산은 미련 없이 무시한다. 거의 없어서다. 투석식 굴이 우리가 아는 자연산 굴과 가깝다. 서·남해안의 갯벌이나 갯바위에서 캐거나 따는 굴이다. 흔히 갯굴이라 한다.
요즘에는 갯굴 대부분이 스스로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이 뿌리거나 붙인 종패에서 자란다. 이게 인간이 먹을 만큼 크면 채취해 오는 것이다. 갯굴은 갯벌을 옮겨 다니며 일일이 손으로 캐야 해서 양이 많지 않다. 알도 작다. 땅거미 내려앉을 무렵 갯벌에 쪼그려 앉은 할머니의 실루엣이 갯굴 캐는 장면이다. 엄숙하고 아름다운 겨울 풍경이다.
전남 해남의 갯벌에서 갯굴 까는 장면. 갯굴은 짭조름한 맛이 별미다. 김성룡 기자
경남 통영의 굴 박신장에서 굴을 까는 모습. 할머니 앞에 굴이 산처럼 쌓여 있다. 손민호 기자
우리에게 훨씬 익숙한 굴이 수하식 굴이다. 수하식 굴의 70% 이상이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재배된다. 통영 앞바다는 문자 그대로 굴밭이다. 전체 면적이 53.71㎢로, 축구장 8000개 크기다. 통영 앞바다의 굴 생산량은 연 4만t에 육박한다. 껍데기 벗긴 알굴만 잰 무게다.
수하식 굴을 양식 굴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이 많은데, 정확한 지적은 아니다. 수하식(垂下式)은 이름처럼 굴을 아래로 드리웠다는 뜻이다. 종패라 불리는 씨받이 조개를 바다에 담근 다음 이태 뒤에 길어 올리면 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료 먹이며 키운 게 아니어서 엄밀한 의미의 양식과 거리가 있다. 그래서 통영에는 굴 양식장이 없다. 굴 작업장만 있다.
경남 통영의 굴 종패장의 수하식 굴. 굴 종패를 끌어올리면 다닥다닥 붙은 굴이 따라서 올라온다. 중앙포토
갯굴과 수하식 굴 중 어느 굴이 더 맛있을까. 갯굴은 물때에 따라 바다에 잠겼다가 나오기를 반복해 알이 작다. 대신 쫀득쫀득한 식감이 살아 있다. 짭조름한 향이 돌아 갯굴만 찾아 먹는 마니아가 존재한다. 반면에 통영 굴은 크다. 알이 커서 씹는 맛을 즐길 수 있지만, 물컹물컹한 식감이 싫다는 사람도 있다.
통영에선 바닷속에서만 자란 수하식 굴이 갯굴보다 플랑크톤을 더 많이 섭취해 영양이 풍부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상관없다. 두 굴 모두 없어서 못 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굴 요리는 날것을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다음이 굴찜이나 굴구이다. 굴무침이든, 굴젓이든, 굴국이든 양념을 넣은 건 그다음이다. 식재료 본연의 향을 잘 살려낸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고 나는 믿는다.
전남 장흥 남포 마을의 석화 구이. 설날 즈음에 딴 석화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참, 크리스마스. 갯굴은 11월이면 수확을 시작한다. 수하식 굴의 수확 시기도 비슷하다. 겨울 들머리에 굴을 수확하는 건, 굴이 여물어서가 아니다. 굴은 추울 때 더 맛있다. 석화 구이로 이름난 득량만의 포구 마을인 전남 장흥의 남포 마을은 보통 정월 대보름까지 석화를 채취하는데, 설날 언저리의 굴을 최고로 친다.
그런데도 11월부터 굴을 수확하는 건, 김장 때문이다. 김장은 1년 중에 굴을 압도적으로 많이 소비하는 전국 단위의 이벤트다. 김장철이 지나야 정점까지 치달았던 굴 값이 정신을 차린다. 크리스마스는 부산에서 김장이 끝나는 때다. 부산에서 김장이 끝나면 굴 값이 1㎏에 1000원씩 내려간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갯마을 애물단지의 변신
강원도 강릉 주문진항에서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양미리. 원래는 강원도 갯마을의 애물단지였는데 지금은 관광객이 줄 서서 먹는 별미가 됐다. 백종현 기자
속초·강릉·양양 같은 강원도 갯마을에서 양미리와 도루묵은 애물단지였다. 워낙 흔한 데다 맛도 별나지 않아서다. 옛날 강원도가 명태로 먹고살던 시절, 명태 미끼가 양미리였다. 도루묵 알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이들 주전부리용으로 팔기도 했었다. 10원에 몇 알씩 했었단다. 이들 갯마을에서 양미리와 도루묵이 거래되는 단위가 통이다. 마리나 무게가 아니라 양동이째로 판다. 값나가는 생선은 내다 팔고 남은 게 양미리와 도루묵이었는데, 10년쯤 전부터 강원도 갯마을의 12월 한정 관광상품이 돼버렸다.
두 생선 모두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우선 양미리. 양미리와 까나리는 냉정히 말해 다른 생선이다. 그런데 뒤섞여서 쓰인다. 12월 동해안 갯마을에서 양동이째 파는 생선의 원래 이름이 서해안의 갯마을에서 액젓으로 담그는 까나리고 양미리라는 생선이 따로 있었는데, 양미리와 비슷하게 생긴 동해 까나리가 양미리의 이름을 대신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도루묵의 이름에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조선 선조가 임진왜란 중에 ‘묵’이라는 생선을 먹고 맛있어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 난리가 끝난 뒤 먹어보니 옛날 그 맛이 아니어서 ‘도루묵’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런데 한양에서 의주로 허겁지겁 도망간 선조가 무슨 수로 동해 별미를 먹어봤을까. 선조가 아니라 이성계가 이 옛날얘기의 주인공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려 말의 이성계 장군은 함경도에 주둔한 군인이었고, 함경도 갯마을에서도 도루묵을 먹었으니까. 도루묵이 1970년대 효자 수출상품이었다는 기록도 전해온다. 일본에서 아동 급식용으로 도루묵 알을 쓰면서 전량 수출됐었다. 중국산이 한국산을 밀어내 지금은 ‘말짱 도루묵’이 됐다고 한다.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도루묵과 양미리를 파는 할머니. 왼쪽이 도루묵이고 오른쪽이 양미리다. 백종현 기자
양미리와 도루묵은 12월의 생선이다. 알이 꽉 차 있을 때다. 강원도 갯마을에선 보통 11월 하순부터 12월 말까지 조업에 나간다. 두 생선 모두 깊은 바다에서 살다가 날이 추워지면 알을 낳으려고 연안으로 올라온다. 이때 연근해 어선이 쓸어 담는다. 갯마을 방파제에서 뜰채로 건질 정도로 많이 올라올 때도 있다. 알을 낳으면 다시 깊은 바다로 돌아간다. 1월 초순이 지나면 구경도 못 한다고 한다.
올겨울은 양미리는 괜찮은데, 도루묵이 심각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강릉 주문진항의 홍정현(49) 중매인은 “지난주까지 도루묵이 작년의 5분의 1 수준밖에 안 올라왔다”며 “작년까지 관광객이 1만원에 도루묵 20마리를 샀다면 올겨울엔 1만원에 5마리 정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치어를 너무 많이 잡아서인지, 바다가 아직 따뜻해서인지 이유는 모른다. 아직 겨울 초입이니 기다려보는 수밖에.
알이 꽉 찬 도루묵으로 끓인 도루묵 찌개. 해장에 탁월하다. 백종현 기자
양미리나 도루묵이나 제일 맛있는 건, 알배기를 통째로 구운 것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알이 터지며 고소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더욱이 알배기 도루묵은 삼세기(삼숙이, 삼식이), 도치(심퉁이), 꼼치(곰치, 물곰)와 더불어 겨울 동해를 대표하는 매운탕 재료다.
이들 생선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다 지지리도 못생겼다. 아니, 못되게 생겼다. 해장에도 탁월한데, 가끔 지난 밤 마신 술보다 더 많은 술을 부르기도 하니 유념하시라.
겨울 생선의 절대 강자
제주도 '삼바리회센타'의 특대방어 모둠회. 방어는 현재 겨울 생선의 절대 강자다. 손민호 기자
방어는 고급 어종이다. 요즘처럼 너도나도 방어회 타령을 하기 전에는 일본 스시집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방어회는 참치회와 곧잘 비교된다. 일단 큰 데다, 한 점 삼키면 소고기 맛이 난다. 소고기처럼 부위별로 즐기기도 한다. 가격도 만만하지 않다. 한국에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었던 방어가 십여 년 전부터 겨울이면 꼭 맛봐야 할 특식 메뉴로 거듭났다. 시방 방어는 겨울 생선의 절대 강자다.
방어 하면 모슬포 방어였다. 제주도 서남쪽 모서리 모슬포항이 방어 포구로 유명했다. 방어는 정어리·고등어 같은 작은 생선을 잡아먹는데, 모슬포 방어는 자리돔을 먹고 자란다. 모슬포는 보목과 함께 제주도의 대표적인 자리돔 산지다. 이 방어가 요즘에는 동해에서 더 많이 잡힌다. 방어는 동해에서 놀다가 추워지면 제주도 바다로 내려가는데, 동해가 예전보다 덜 추워 겨울이 돼도 방어가 남쪽으로 잘 안 내려간단다.
그래서 동해에서 잡은 녀석들을 모슬포 앞바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한동안 자리돔 먹이며 키워 모슬포 방어라고 팔기도 한다. 그럼 이 방어는 동해 방어인가, 모슬포 방어인가. 자연산인가, 양식인가. 이런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타강사 ‘팔도 한우 투어’ 편에서 배운 게 있다. 횡성에서도 횡성한우는 먹기 힘들다고.
제주도 모슬포 가두리 양식장에서 기르고 있는 방어. 손민호 기자
자고로 생선은 커야 맛있다. 이 불변의 이치는 방어에도 적용된다. 아니 방어만큼 크기와 무게에 민감한 생선도 드물다. 원래 방어는 무게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분류했었다. 소방어(5㎏ 이하), 중방어(5∼9㎏), 대방어(10㎏ 이상). 이 구분이 최근 하나가 더 늘어 네 단계가 됐다.
소방어(3㎏ 이하), 중방어(4∼6㎏), 대방어(6∼8㎏), 특대방어(9㎏ 이상). 제주도에서 9㎏ 이상 방어만 취급하는 ‘삼바리회센타’의 오태진(63) 대표는 “방어는 커야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특대방어라는 최상 등급이 추가됐다”며 “특대방어는 소방어와 두세 배 가격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원래 제주도 맛집은 소개를 잘 안 하는데, 이 집은 이미 유명해 공개한다. 본점은 제주시 도담동에 있고, 용두동에 오 대표 아들이 하는 분점이 있다).
강원도 바다에서도 9㎏짜리 대방어가 나온다. 사진은 양양 앞바다에서 잡은 대방어회. 손민호 기자
방어 부위는 한우와 달리 정해진 기준이 없다. 5가지 부위(뱃살, 몸통살, 사잇살, 아가미살, 볼살)로 나누기도 하고, 7가지 부위(등살, 대뱃살, 중뱃살, 꼬릿살, 가마살, 볼살, 사잇살)로 나누기도 한다. 오태진 대표는 “9㎏이 넘는 방어에서만 먹을 수 있는 부위가 있다”고 말했다.
방어 목살에 해당하는 가마살이다. 양이 워낙 적어 방어가 작으면 따로 떼어내기 어려운 부위라고 한다. 방어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데, 가마살은 식감이 도드라졌다. 그래서 특대방어라고 주면서 가마살을 안 주는 횟집이 있으면 일단 의심하는 게 현명하다. 누구는 방어회에서 아카시아 향이 난다고 하고, 누구는 싱그러운 과일 향을 맡는다고 한다. 나는 향기는 모르겠고, 그저 감탄만 하며 먹었다.
삼치는 회부터 먹는다
전남 여수에서 배 타고 2시간 남짓 가면 거문도에 다다른다. 이 외딴섬이 겨울 삼치의 고장이다. 사진은 갯바위에서 낚시꾼 포즈를 잡고 있는 거문도의 한창훈 소설가. 중앙포토
방어 못지않은 겨울 생선의 강자가 삼치다. 두 생선 모두 회로 먹을 때 제일 맛있다. 방어회는 알겠는데, 삼치회는 처음 들어본다는 분에게는 죄송하게도 자랑 좀 늘어놓는다.
삼치는 서울 종로 생선구이집에 올라오는 손바닥만 한 생선이 아니다. 다 크면 1m가 족히 넘는 큰 생선이다. 삼치는 가을까지 서해 먼바다 대청도 주변에서 쭉쭉 크다가 겨울이면 전남 앞바다와 제주도 사이 바다로 내려온다. 그 따뜻한 남쪽 바다의 외딴섬 거문도가 겨울 삼치의 대표 어장이다. 거문도에서는 갯바위 낚시에도 대물 삼치가 올라온다. 그 섬에 생계형 낚시꾼을 자처하는, 그러니까 낚시하다가 심심하면 글도 쓰는 소설가 한창훈(60)이 산다.
어느 해 겨울 거문도로 들어간 여행기자에게 한창훈이 1m가 넘는 삼치를 회 뜨다 지겨워 뭉텅이째 던져주며 한 말이 있다. “삼치를 회로도 먹느냐고? 삼치는 회부터 먹는다. 이 불쌍한 육지것아.” 거문도에선(여수에서도) 불쌍한 육지것이 구워 먹는 손바닥만 한 삼치는 삼치 취급도 안 한다. ‘고시’라고 따로 부른다. “삼치 새끼도 삼치 아니냐”고 따져 물으면 차라리 딱하다는 표정을 짓고 이렇게 되묻는다. “개구리랑 올챙이랑 같냐?”
1m가 넘는 삼치는 회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살이 무척 부드럽다. 중앙포토
한창훈에 따르면 “소고기보다 삼치”다. 소고기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게 아니라 소고기보다 부드럽고 고소하다. 이 맛난 삼치회를 육지에선 맛보기 힘들다. 금방 죽어버려서다. 막 잡은 삼치를 얼음에 채워도 이틀이 한계란다. 회 뜨기도 쉽지 않다. 워낙 살이 연해 조금만 거칠게 다뤄도 살이 뭉개진다. 그래서 삼치회는 뭉텅뭉텅 크게 자른다.
삼치는 11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이다. 물론 삼치도 바다가 차가울수록 몸집이 커지고 살이 단단해진다. 거문도 들어가는 뱃길이 부담되면, 여수 여객선터미널 주변 어시장이나 제주도 횟집을 뒤지면 삼치회를 맛볼 수 있다. 요즘은 냉동기술이 발달해 서울에도 삼치회를 하는 식당이 있다.
삼치회는 김치나 야채에 싸 먹기도 한다. 고기가 워낙 기름져 이렇게 먹어야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중앙포토
삼치회는 양념간장에 찍은 삼치살을 양념하지 않은 김이나 행군 묵은지에 싸 먹는다. 쌈에 밥을 넣기도 한다. 워낙 고기가 기름져 이렇게 먹어야 많이 먹을 수 있단다. 거문도의 여행기자와 소설가는 이것도 귀찮아 한 손에 삼치살 들고 뜯어 먹었다. 다른 한 손에 들린 건 물론 소주잔이었다.
꽁치 과메기를 위한 변명
경북 포항 구룡포의 과메기 덕장. 겨울이면 구룡포항은 꽁치 말리는 풍경으로 장관을 이룬다. 백종현 기자
과메기만큼 지역성이 확실한 제철 먹거리도 없다. 지역 별미 하면 십중팔구 삭힌 홍어부터 떠올리지만, 과메기가 삭힌 홍어보다 생산지가 훨씬 제한적이다. 삭힌 홍어는 목포·광주·나주 등 남도의 여러 고장에서 맛볼 수 있으나, 과메기는 경북 포항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지역이 없다. 실제 현황도 그렇다. 경북 포항에서 전국 과메기의 90%가 생산되고, 포항 과메기의 80%가 구룡포항에서 나온다.
‘겨울 한 철 제대로 바람과 추위를 만나 서로 화해하고 싸우며 익어가는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고 있다 기름기 쪽 빼고 몸 말리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남다른 열정을 배운다 아낌없이 베푸는 과메기에게 손 모아 경배를 올린다…’
겨울만 돌아오면 과메기 먹으러 내려오라고 전화 넣는 포항 시인 윤석홍(67)의 시 ‘과메기 2’에서 부문 인용했다. 시인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과메기라고 믿는 게 분명하다. 아무리 포항 시인이라지만, 과메기에 손 모아 경배 올린다는 시를 쓰다니. 이태 전 겨울 포항 죽도시장 주변 과메기집에서 손으로 찢은 과메기와 가위로 자른 과메기가 어떻게 맛이 다른지 한참 설명할 땐 시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었다. 물론 나는 그 차이를 여전히 알지 못한다.
과메기는 꽁치 과메기와 청어 과메기로 구분된다. 왼쪽 작은 것이 꽁치고 오른쪽 큰 것이 청어다. 백종현 기자
겨울 포항은 과메기의 계절이다. 11월부터 과메기가 나오는데, 오롯이 해풍에 말린 건 더 추워야 나온다. 아직 덜 추울 때 나오는 과메기는 다 건조실에서 말린 것이다. 사실 한겨울에도 건조실 과메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해풍에 말리려면 1주일 가까이 걸리는데, 건조실에선 사나흘이면 거뜬해서다. 이제 과메기 앞에 두고 겨울바람 운운하는 건 삼갈 일이다.
옛날에는 꽁치나 청어를 통째로 부뚜막에 매달아 두면 알아서 과메기가 됐다고 한다. 그걸 ‘통마리(통말이)’라 부른다. 요즘에는 포를 떠서 말리는 배지기(짜배기)가 대부분이다. 건조 시간도 단축되고 먹을 때 손이 덜 가 편리하다.
아시다시피 과메기는 청어에서 시작됐다. 청어가 안 잡히자 대신 말린 게 꽁치다. 과메기 좀 먹어봤다는 축은 “청어 과메기 안 먹어봤으면 과메기 맛을 말하지 말라”며 거드름을 피운다. 내 생각은 다르다. 꽁치가 청어의 대체재인 건 사실이지만, 과메기 대중화의 주인공은 꽁치다. 두 과메기는 맛도 다르다. 청어 과메기가 부드럽다면, 꽁치 과메기는 담백하다.
나는 이 둘의 차이가 취향의 차이라고 본다. 한동안 종적을 감췄던 청어가 최근 다시 올라온다는 소식이다. 청어 과메기는 포항보다 영덕에서 더 많이 한다. 청어는 몸집이 커 꽁치보다 말리는 시간이 더 걸린다. 1월 중순은 돼야 제대로 말린 청어 과메기가 나온다. 생산량이나 소비량이나 아직은 꽁치 과메기가 주류다. 과메기용 꽁치 대부분이 수입산이다. 연근해에서 잡히는 꽁치로는 물량을 댈 수 없다고 한다.
과메기는 온갖 채소와 해초를 넣고 쌈을 싸서 먹는다. 백종현 기자
솔직히 나는 말린 꽁치보다 삭힌 홍어를 선호한다. 삭힌 홍어도 각오가 필요하지만, 과메기는 비린내를 감추려고 김·미역·배추 따위로 싸고 쪽파·마늘에 온갖 해초 얹고 초장에 찍는 수고를 되풀이해야 해 영 번거롭다. 그래도 겨울이면, 설날에 떡국 챙겨 먹듯이 한 번씩은 찾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여행기자로서 겨울을 보내는 일종의 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포항에선 차라리 절박하다. 과메기를 먹어야 겨울을 무탈하게 난다는 계절병을 앓고 계시니.
대게는 겨울 음식이 아니다
대표적인 겨울 별미 대게. 대게는 자체로 완벽한 식재료여서 아무 양념 안 하고 단순히 쪄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중앙포토
12월이 되면 ‘대게의 계절이 시작됐다’로 시작하는 여행기사가 꼭 보인다.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아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짜뉴스에 해당하는 엉터리 보도다. 물론 법적으로는 틀린 게 없다. 6월 1일부터 시작한 대게 금어기가 11월 30일 끝나니까. 그러나 금어기가 풀렸다는 문장과 제철을 맞았다는 문장은 같은 문장이 아니다.
대게는 동해안의 대표 특산물이다. 경북의 세 고장, 울진·영덕·포항이 대게 산지로 알려졌지만, 실은 강원도 속초 바다에서도 대게가 올라온다. 한때 울진과 영덕이 대게 원조 고장을 놓고 다툰 적이 있었다. 울진으로서는 억울했었나 보다. 울진 앞바다에서 잡는 대게가 영덕보다 더 많았는데 사람들이 ‘영덕대게’만 알아줬으니 말이다. 영덕도 대게 고장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축산항 아래에 경정 마을이라는 작은 갯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이 대게 원조 마을로 통한다. 경정 마을 앞 죽도산(竹島山)이 보이는 바다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겼다 해서 대게가 됐다는 게 영덕 쪽 주장이다.
울진과 영덕은 각자 대대로 내려오는 대개 서식지를 자랑한다. 울진은 왕돌초, 영덕은 무화잠. 두 곳 모두 깊은 바다에 있는 암초 지형이다. 여기에 대게가 모여 산다고 한다. 그러나 대게를 둘러싼 두 고장의 오랜 알력은 옛날 얘기가 된 지 오래다. 포항이 대게 생산량 1위의 고장에 오른 게 10년이 넘는다. 항구도시 포항에 큰 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배가 크면 더 먼바다로 나가고 더 먼바다까지 간 배가 더 많은 대게를 잡아 온다.
박달대게를 주문하면 일일이 해체한 상태로 나온다. 사진은 대게 집게다리. 가장 맛있는 부위다. 손민호 기자
대게에 양념을 하는 건 죄악이다. 자체로 완벽한 식재료이어서다. 대게는 그냥 쪄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대게도 큰 놈이 맛있다. 특상품인 박달대게는 그냥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몸통 길이가 위에서 아래로 9㎝가 넘어야 박달대게라 한다. 무게는 최소 1㎏이 넘는다. 박달대게는 수협에서 집게다리에 하얀 딱지를 붙여 표시한다. 1마리에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대게는 암컷을 먹을 수 없다. 잡아도 안 된다. 내가 알기로 바닷것 중에 산란기가 아닌데도 암컷을 잡을 수도, 먹을 수 없는 건 대게가 유일하다. 그만큼 각별하고 귀한 식재료다.
원체 귀하신 몸이다 보니 가짜가 판을 친다. 제일 딱한 양반이 여름 휴가 때 동해안에서 대게 먹고 왔다고 자랑하시는 분들이다. 국내산 대게로 알고 사 먹었다면 사기당한 것이다. 여름 수족관의 대게는 100% 러시아산이다. 이 시기에는 국내에서 대게를 잡을 수도, 팔 수도 없다. ‘홍게’라 불리는 붉은 대게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금어기가 7월 10일에서 8월 25일까지다. 이 기간만 피하면 불법행위는 피할 수 있다.
경북 영덕의 한 횟집 수족관에서 촬영한 박달대게. 손민호 기자
대게는 사실 겨울에 먹는 바닷것이 아니다. 오히려 꽃 피는 봄날이 제철이다. 울진에서 평생 대게를 잡았다는 할아버지 어부에게서 들은 말이 있다. “옛날에는 보리밭에 들어간 장끼가 안 보이기 시작하면 대게 배를 띄웠다네.” 무슨 뜻일까. 보리밭에 내려앉은 꿩이 안 보일 정도로 보리가 컸을 때, 그러니까 겨울이 가고 봄이 움틀 때 대게를 잡으러 나갔다는 말이다. 얼추 3월 하순에 해당한다. 영덕에서는 복숭아 꽃 필 무렵의 대게가 가장 맛있다고 했었다. 복숭아 마을로 유명한 영덕군 지품면이 매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 사이 복사꽃 축제를 연다.
대게는 겨울을 보내고 살이 꽉 찼을 때 제일 맛있다. 5월 말까지 잡을 수 있으니 5월에 가면 되겠다고 작전을 짤 수 있겠다. 그러나 헛걸음만 치고 돌아올 공산이 크다. 대게를 비롯한 수산자원 대부분은 1년에 잡을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한도보다 더 잡으면 처벌을 받는다. 대게는 겨울철 최고 인기 상품이어서 늦어도 4월이 가기 전에 한도 물량을 다 채운다. 5월에는 안타깝게도 대게가 없다. 바다에는 있을지 몰라도 포구에는 없다. 내가 바로 그 꼴을 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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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보여행(섬&산) 좋은사람들--버스매일출발 원문보기 글쓴이: 임금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