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꿈
이순희
광야를 떠돌던 이가
난생 처음 보는 물체를 발견했다
그에 딱 맞는 이름 붙여서
바깥 세상으로 가져가고 싶은데
궁핍한 언어는 붙일수록 궁색해졌다
그는 말의 사막에서 그만 길을 잃고
아사 직전까지 구겨졌다
비몽사몽간에 누군가 나타나
사물에 딱 맞는 이름이란 세상에 없다
왜 틀속에 그것을 가두려 하느냐
크게 꾸짖고 사라졌다
부질없는 이름짓기
다 내려놓겠다 하고서도
사막의 모래 언덕을
기어오르다 흘러내리고
기어오르다가 떨어지고
그는 천형을 받은 시지프스처럼
그곳에 갇히고 말았다
무심한 바람이
모래 속에 묻힌 그의 몸을
쓸어주다 덮어주다 할 뿐
어떤 잔해도 발각되지 않고 있다.
이순희
단국대 한문교육과.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기독교상담학과 졸업. 2002년 《심상》등단. 가곡 독집 『어디로 가는 가』(2010)와『아무島』」(2021)가 있고,「그냥」,「산 그림자」,「하늘을 보고 있으면」등 다수의 시를 가곡으로 발표 했다. 창작 의병가 『의병, 겨레의 횃불이여』, 시집『꽃보다 잎으로 남아』가 있다. 동국문학상. 애지문학상. 한국 창작 문학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