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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울산 북구 현대차 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지난 17일부터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아래)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
ⓒ 유성호 |
다시 2012년,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현재 한국 사회 노동자들을 가장 우울하게 하고 비통하게 만드는 문제다. 200
3과 2012년이 노동자들에겐 다를 게 없다.
재능 학습지 교사들은 1800여 일 가깝게 장기투쟁 중이고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은 곡기를 끊은 지 오래다.
울산에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목숨을 걸고 송전철탑에 오른 데 이어
유성기업 아산지회장도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제 정당한 이 투쟁들이 승리하길 바라서만이 아니라
이들을 진정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 노동자들 어깨에 얹힌 무거운 짐을 나눠질 때다.
대선이 코앞이다. 안철수 후보가 가세한 3자 구도 속에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복지는 대선주자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과제로 굳어졌다. 야권 주자들은
물론이고 여당의 박근혜 후보마저도 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약속하고 있다.
마침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의 전기를 맞게 된 것일까.
노동 문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계급 문제다.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고 대법원이 판결해도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묵살한다.
그 누구보다 진정성을 인정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은임이 김주익을 부르던 그 심정으로, 김진숙이 85호 크레인에 오르던
그 심정의 일단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 자리보다 더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힘겨운 삶의 가장자리에서 휘청대고 있는 이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가족과 이웃 중에 이미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다.
10월 27일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10만 촛불행진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돼야 행복한 직장이자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 행복해지는 걸 주저하지 말고 함께 행동하자는 것,
작년 희망버스처럼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면서 교감하자는 것, 여기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이 모인다.
삼삼오오 가족과 이웃, 친구, 연인의 손을 맞잡고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
불가능하다고 포기하지 말고 함께 꿈꾸자. 포기해야 할 이유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견뎌야 할 이유가
더 많은 모든 이들과 함께 어깨동무하자.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소통과 공감의 광장에서 한마디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외롭게 하루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하기는 2004년 8월5일 오마이 뉴스 문동섭 기자의 글입니다.
[오마이뉴스 문동섭 기자]중고등학교시절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추억이 있습니다.
바로 라디오에 관한 추억입니다.
지금이야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첨단을 달리는 핸드폰 등 가지고 놀 만한 것들이 많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청소년들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제게 라디오는 생활의 여유와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독서실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대신 라디오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특히 공개방송을 하는 날에는
아예 책을 덮고 집중해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수만, 이택림, 이경규, 이성미씨 등이 초대손님으로 나오는 날은 낄낄거리며 배꼽을 잡고 웃는 날이 많았습니다.
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면 녹음했다가 반복해서 들었던 일도 빠뜨릴 수 없는
라디오에 얽힌 추억입니다.
그런 추억 중에 가장 값진 것은 이른 새벽 1시 졸린 눈을 비벼가며 들었던 MBC FM <영화음악>에 대한 추억입니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영화를 좋아했던 저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프로그램을 들었습니다.
조일수 아나운서에서 홍은철 아나운서가 DJ를 끝마칠 때까지 십여 년을 들었으니 저의 학창시절을
<영화음악>과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일수-정은임-배유정-홍은철로 이어지는 <영화음악> DJ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고 열광했던
DJ는 바로 정은임 아나운서였습니다. 조일수 아나운서의 차분하면서도 관록 있는 진행에 길들여져 있던 터라,
앳된 목소리를 가진 정은임 아나운서의 방송이 처음에는 상당히 생경하게 들렸습니다.
특히 방송에서 가끔씩 사회문제를 언급할 때면 "왜 저러나?"하고 의아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경함과 의아함은 점점 신선함과 매력으로 바뀌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깊은 밤의 정적을 깨지 않는 그녀의 밝고 진취적인 진행에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지금까지 정은임이었습니다"라는 클로징 멘트를 듣지 않고서는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영화음악>에 대한 저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영화음악"과 청취자에 대한 정은임 아나운서의
사랑도 점점 깊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런 교감이 저를 "영화음악"의 열혈 청취자, 정은임 아나운서의 팬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1995년 정은임 아나운서가 <영화음악> DJ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절친한 친구를 군대에 떠나보내는 것처럼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마음에 방송국에 협박 전화(?)를 걸어 정은임 아나운서를 복귀시키라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있습니다.
후임 DJ 배유정씨가 괜히 밉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영화음악>과 정은임 아나운서는 고등학교 시절과 20살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지난달 22일 교통사고를 입어 생과 사를 오가다 지난 4일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그녀의 죽음은 한 방송인의 안타까운 죽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영화와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같은 시간대에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추억을 만든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심정이겠지요.가끔 심야시간대
교양프로를 진행하는 정은임 아나운서를 볼 때면 힘든 시절을 함께 한 고마운 이를
다시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반가운 해후를 할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영화 <트루 로맨스>의 주제곡 "Amid The Chaos Of The Day"이 시그널 음악으로 흐르면서
찾아오던 정은임 아나운서를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과 추억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함께 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마이 뉴스 문동섭)
불의의 교통사고로 안타까움 속에 끝내 요절한 故정은임 아나운서 |
라디오 세대의 마지막 DJ, 남은 이들의 가슴에 별이 되어 맺히다 너무 아까운 사람이다. 아직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귀한 사람이었다. 사람 목숨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이 없겠지만,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뜬 아나운서 정은임의 죽음은 그를 아끼는 많은 이들에게 오늘도 여전히 거짓말만 같다. 파르르 떨리던 목소리로 구광본의 ‘꽃 피는 날, 꽃 지는 날’을 읊어주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때 얼마나 많은 청취자들이 그 목소리를 들으며 베갯잇을 촉촉이 적셨을는지… 당시 ‘정영음’은, 영화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던 젊은이들에게 기꺼이 밤의 아지트가 되어주던 방송, 아니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은밀한 감동을 공유하던 젊은이들에게 정은임 아나운서(36)의 존재는 거부할 수 없는 ‘특별함’으로 깊이 자리잡았다. 1992년 11월 2일 MBC-FM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통해서다. 말랑말랑한 소녀 취향 아니면 시끌벅적한 요란함이 선택 사항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던 FM 프로그램들 속에서, ‘정영음’이 툭툭 건드리던 사회와 사람, 삶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영화에 대한 흥미와 열정만큼이나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됐다. 90년대 초반 이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지던 영화에 대한 관심은 가히 ‘열풍’이라 말할 수준이었고, ‘정영음’은 영화에 대한 그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리고 제대로 된 창구 역할을 담당했다. 서른 중반의 아기 엄마가 된 그녀는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성숙하고 신중했지만, 여전히 예의 뜨거운 열정이 훅 끼쳐오는 사람이었다. 작고 가녀린 체구 어디에 그런 열정이 숨어 있는지 ‘복귀’에 대해, ‘영화’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에 대해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니,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믿고 싶지 않은, 그래서 믿기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사고가 있던 7월 22일 낮, 열흘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야근을 하기 위해 회사로 향하던 정 아나운서는 한강대교 남단 흑석동 삼거리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현장은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길이 좁고 노면이 울퉁불퉁한 철판이 깔린 곳으로, 평소에도 사고가 잦았다. 반대편에서 마주 오다 그녀가 타고 있던 렉스턴 차량과 정면 충돌한 스타렉스 운전자에 따르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 아나운서의 차량이 갑자기 차로를 급하게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타고 있던 렉스턴 차량은 완전히 전복됐다. 중태에 빠진 그녀는 곧바로 병원에 옮겨져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회복이 어려워 보였다. 수술 후에도 뇌사 상태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는 것이 병원측의 설명이었다. 두개골이 심하게 함몰돼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는 것이다. ![]()
유가족으로는 건국대학교 대학원 조교수로 재직중인 남편 조종수씨(38)와 다섯 살 난 아들 성빈군이 있다. 빈소를 지키던 남편 조종수씨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다가도 이따금씩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정 아나운서의 시어머니는 “성빈이가 아직 엄마의 죽음을 알지 못해 매일 엄마를 찾고 보챈다”며 안타까워했다. 빈소에서 만난 MBC 아나운서 국장 이윤철 아나운서는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믿기지 않는다”면서 “옳고 바른 것에 대한 정의감이 남다른 아나운서였는데 너무나 안타깝다”며 침울해했다. 함께 TV 영화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던 홍은철 아나운서도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비통해하며 말을 꺼냈다. 사고 나기 전날도 환하게 웃으며 밝게 인사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요즘 굉장히 밝아졌다’고 말했을 정도인데 하루 만에 사고가 나다니,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꼈는데… 영정 사진을 찾기 위해 컴퓨터를 열어봤더니 자기 사진은 별로 없고 아들 사진만 2백여 장 되더군요. 남편과도 얼마나 금실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손석희 선배가 미국에 있을 때 정 아나운서 부부가 그 집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아침에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둘이 꼭 끌어안고 얌전히 자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고 하더군요.” 말했고,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며 말리는 사위의 말에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혹시 손자가 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안타까워하는 모정이 눈물겨웠다. 이재용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유족과 MBC 임직원 등 3백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육성이 담긴 영화음악 방송이 장내에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입사 동기이자 서울대 선후배로 평소 절친한 사이였던 김지은 아나운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편지를 낭독하자 장내는 더욱 숙연해졌다. 왜 엄마는 공룡과 싸워야 하느냐고 한대. 언니가 그랬지, 인간은 물살을 따라가면서도 때로는 역류를 탈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러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역류 타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어. 언니 잘 가라는 말, 오늘은 너무 힘들다”며 김지은 아나운서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에도 어린 아들 성빈군은 장내를 뛰어다니며 웃고 떠드는 등 천진한 모습을 보여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정 아나운서의 미니홈피 ‘은임이 다락방’에는 아직도 매일 추모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녀의 팬 카페인 ‘정은임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에도 애도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19일 그녀가 미니홈피에 남긴 마지막 글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묻혀서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 여러 가지가 있죠? 그들은 더이상 실수나 과오가 없을 테구요, 또 배신도 변절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너무 변하는 세상, 믿지 못할 사람들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 전 우리 가슴속에 묻힌 후에 그는 한 번도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었죠. 리버 피닉스. 피닉스라는 그의 성이 참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져요. 스물세 살, 그렇게 죽었지만 참 불사조처럼 우리 마음속엔 이렇게 오래 살아 남아있네요.’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별이 되어 맺혔다. 어느 팬의 말처럼 그 좋아하던 리버 피닉스, 저세상에서는 만났을는지…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반다. |
은임 누나가 남긴 멘트로 정리를 할까 합니다. 마음에 안드는 사람 자르기를 마치 무자르기같이
하는 재처리(재철이)와
그 일파들에게 한때 당신네들과 같은 방송국에 있었던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라고...!!!
“19만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사발에 김치 한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 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바퀴달린 운동화)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고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만3000원이 마음에 걸려있었습니다.
19만3000원, 인라인 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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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그립네요. 누나에게 바칩니다.누나가 진행할때 나온 영화이고 누나가 소개하기도 한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제곡인 브르스 스프링스틴이 부른 <스트리트 오브 필라델피아>입니다.
첫댓글 아 이 아나운서 있었는데 죽었군요..어머나 몰랐었네요,,,아까운 분,,,![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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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ㅠㅠ 8월4일이 기일인데..매년 이분을 추모하는 분들이 바자회하는것 같더라구요..작년하고 올해는 바쁘기도 했고 ,미권스와 정치에 관심이 가고..유령추적기나 모기 퇴치기가 아닌 가카와 닭들 추적기를 발동해서 못갔지만 내년에 좋은 세상이 되면 꼭 가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