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여행2 - 부라노섬 컬러풀한 집과 유리공예로 이름난 무라노섬을 보다!
볼로냐에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해 중국인 민박집에 체크인을 하고는 조선족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폰다엔타 누에보 Fondamenta Nuove 선착장
에서 컬러풀한 집과 레이스로 유명한 부라노섬으로 가는 바포레또 배에 오른다.
수상버스 바포레또 Vapoletto 12번 은 직행으로 50분이면 부라노섬 Burano 에 도착한다는데
배는 안개 낀 바다를 헤쳐 나가는데 바다 한 복판에
긴 나무막대 3개 를 묶어 세워 놓은 표지가 있으니 그게 항로표시 로 배들은 그 사이를 지난다.
출발한지 한시간 조금 못미쳐 알록달록한 집 들과 레이스 로 유명한 부라노 Burano 섬에
도착하는지라 배에서 내려 쇼비니어 숍이 늘어선 골목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드디어 운하 가 나오고 그 옆에 붉고 푸르고 노랑색으로 칠한 파스텔톤의 집 들이 나타난다.
여기 부라노섬 은 어촌 마을로 안개가 심하여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어부들이
자기 집을 찾기 위해 대문에 원색을 칠한게
오늘날 디즈니가 모델로 삼을만큼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운하를 따라 어선이 늘어서 있으며 16세기에 부라노 여인들이
정교하고 섬세한 레이스를 만들면서 유럽 레이스 산업의 중심지 로 떠올랐으니
1,872년에는 레이스 학교도 세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16~17세기에 베네치아등 유럽에서 그려진 그림들은
집 안을 묘사할때는 반드시 배경으로
레이스 가 있는 모습이 나올 정도로 대중화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거니는 발사다레 갈루페 거리는
이제는 중국산 레이스 가 점령했으며 박물관 에 가야 전통 수제 레이스를
볼 수가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아쉽네?
또 이 섬 부라노는 국민 여동생 "가수 아이유" 가
"스무살의 봄" 이란 앨범 중에 "하루 끝" 이라는 노래 뮤직 비디오를
찍은 곳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겠다?
베네치아의 또 다른 산업으로 출판을 들수 있는데,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를 발명한지 20년후 베네치아에서는
이탤릭체 가 발명되어 키케로의 전집 이 나왔다고 하네!
베르길리우스며 아리스토텔레스등 문고판 을 개발해 수도원이 아닌
대학생이라는 새로운 독자를 발굴했으니
금서인 단테와 에라스무스의 격언집이 대히트를 쳤다고 한다.
붉고 푸른 집들이 늘어서고 자그만 보트가 메어져 있는 운하 를 따라
들뜬 기분으로 걷다 가
이륵고 조그만 섬에 어울리지 않는 큰 광장을 만난다!
여기에 뜻밖에도 성당 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큰 규모는 아니나 성모 마리아를 모신 제단도 있고 그림들도 보이는 데,
주민들이 예배를 드리는 소박한 집이라....
그러고는 다시 운하로 나와 배들이 운하를 지나가도록 하기 위한
홍예교가 예쁜 운하변의 거리에서
피자리아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살라미 피자 를 시킨다.
실내에는 이집트산 파피루스 그림 들이 여러점 보이는 데....
재작년에 이집트 전국 일주 를 하면서 보았던 그림들이라 정이 가네!
계산을 치르면서 보니 이 집도 테이블 차지를 2.5 유로 씩 받는 데.....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나 베네치아등
큰 도시의 정식 레스토랑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인가 보네?
개펄의 섬사람들인 베네치아인들도 국세가 융성하면서 농경지 를 원하게 되니 1,402년 밀라노의
비스콘티 공작이 사망하는 것을 계기로 파도바와 베로나 및 베르가모 를 취한다.
그렇다고 군사력으로 저 육지 “움직이지 않는 땅”이란 뜻의
“테라 페르마”를 얻은 것은 아니고 도시국가들이 스스로 보호를 요청해 선정을 베풀었던 것이라!
칼브레전쟁에서도 지켜내었던 영토는
1,797년 프랑스 혁명군과 오스트리아군 이 이탈리아 북부에서 전투를 벌일 때,
어정쩡한 중립 을 지키던 베네치아는 결국 나폴레옹에게 항복 한다.
그 전에 베네치아를 방문한 괴테 가 찬탄을 금하지 못한데 비해,
이후 나폴레옹에게 항복한후 오스트리아령이 된
베네치아 를 방문한 스탕달 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쇠퇴하던 베네치아 를 보았던 것이다!
부라노섬에서 운하 양쪽으로 알록달록한 집 들과 쇼비니어 숍에 걸린 토산품 레이스 를 실컷 구경했으니
바포레또 배에 올라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안개" 가 어찌나 자욱히 끼었는지.....
50미터 앞도 분간하기 힘든데 35분을 가서는 등대가 예쁜 “유리공예의 메카 무라노 섬”에 내린다.
여기 바다는 간석지라 수심이 10미터 되는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1미터에 불과하므로 세쌍 말뚝 을 박아 수로를 표시 하는 데,
“물의 행정관”이 물이 썩지 않도록 관리한단다!
무라노 섬 Murano 파로 선착장 에 내려서는
13세기에 유리 제조 기법이 이 섬 무라노에 전해진후 유리공예품 으로
명성을 쌓은 제작소를 구경해야 하겠는 데....
유리 제품을 진열하고 있는 가게들이 워낙 많은지라......
그냥 거리를 걸으며 우선은 이집 저집의
다양한 제품들을 유리창 너머로 구경부터 하기로 한다.
13세기에 유리 제품에 이어 안경 을 제조하며 창유리 까지 생산했던
무라노 공방 거리를 사진을 찍으며 걸으니
자그만 마당에 "유리 제품으로 꽃밭" 을 이룬 모습이 참 신선해 보이네!
또 몇 집 가게를 구경하면서 모퉁이를 도니
아!!! 거리에 마치 큰 불꽃 모양의 대형 유리 제품이 서 있어
보노라니 가슴이 다 두근거리네....
여기 무라노섬의 유리공예는 유럽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라 중세에 베네치아 정부가
성지순례 패키지팀 을 운영하면서
면죄를 위해 성당에 있는 성 유물을 참배하게 하고는.....
여가에 순례자들을 여기 무라노섬 유리공방 견학을 안내하였으니
산토 브라스카라는 사람 이 13세기에 스키보니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무라노를 견학한 여행기 가 출판되었다.
성지순례 패키지 는 베네치아에서 배를 타고 예루살렘을 다녀오는
6개월이 넘는 오랜 일정인 데....
브루텔베르그 백작 이 도메니코파 성직자 슈미트에게 했다는 말이 전해 온다.
이 세상에는 남에게 권하는 것이 좋을지 망설여지는 것이 3가지가 있다,
“ 하나는 결혼 이요, 두 번째는 전쟁 참가(용병) 며
세 번째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 를 가느냐 하는 여부라...”
참고로 밀라노인 산토 브라스카가 면죄(죄사함) 를 위해 참배했던
베네치아 성안토니오 수도원 의 성유물 을
열거해 보자면 중세 기독교 사회의 면모를 짐작할 수가 있으니...
누가복음의 저자 성 루가의 팔 에다 사도 시몬의 발뼈, 성녀 우르술라의 허벅다리 뼈,
예수가 처형당할 때 로마 군인이 씌운
가시돋힌 면류관 잔가지 하나에 십자가 나무조각 하나라!
프라하와 독일 그리고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자 반종교개혁으로 결성된“예수회”는
자신들과 "다른 방식으로 예수를 믿으면 이단”으로 보았다.
그 불행한 정신을 악마의 속박으로 부터 구제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고통으로 정신을 해방해야한다나?
그런 이유로 마녀사냥 등 종교재판 을 벌일때 베네치아는 정교분리로 대응한 유일한 나라라!
그러고는 운하를 지나 가게를 구경하다가 소품 위주로 진열되어 있어서
좀 소박해 보이는 가게로 들어가서는 목걸이 펜던트로 소품 몇 점을 집어든다!
그러고는 유리 제품을 제작하는 공방 으로 들어가 잠시 구경을 하고는 운하에 놓인 목제 홍예교를 본다.
한적한 바닷가 개펄속에서 소금과 절인 생선 이나 생산하던 촌놈 베네치아가
배를 만들어 동방으로 나가 인도의 후추 와 육계, 정향, 육두구 같은 향신료 를 수입하면서 부를 쌓는다!
중국에서 발명된 나침반 은 아말피 상인이 먼저 들여왔고
항해도 는 1,207년에 피사 상인이 처음 제작했지만
이를 개량하고 정밀하게 만들어 보급한 이들은 후발주자 베네치아 였던 것이라!
그러고는 해변길을 산책하노라니....
거기에 열네 마리의 청둥오리 가 막 날아오를려고 하는 모습 으로 된
설치 작품을 보니 입을 다물지 못하겠네?
나무 말뚝을 박아놓은 선착장을 거닐고는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 와서는 바포레또 배에 오르는데.....
여기 무라노의 파로 선착장에서는 수상버스 바포레토 41번이나 42번 을 타면
불과 15분 만에 베네치아 북쪽 폰다엔타 누에보 Fondamenta Nuove 선착장에 도착한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걸어 리알토 다리 근처 깊숙한 골목 안에 있는 중국인 민박집을 찾아 가는데...
처음에는 올 때 디카로 찍은 사진을 보며 요리 조리
골목길을 헤치며 잘도 찾아가다가 어느 거리에선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네?
시간은 오후 6시 50분이니 밤이 되기 전에 민박집을 찾아야 하는지라...
이제는 별수가 없으니 대충의 방향만 짐작하고는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에서 리알토 다리 표지판 을 찾아 걷는다.
몇 골목을 돌아나가서는 이윽고 자그만 운하가 나오고 거기에 줄무늬 옷을 입고 모자를 쓴
키 큰 베네치아 사공이 젖는 곤돌라 를 탄 태평스러운 관광객들을 본다.
그러고는 큰 길을 만나니 바로 대운하 그랑 카날레 북동쪽에 운하 한 블록 건너 평행으로 달리는
거리라 짐작하고는 왼쪽으로 따라 걸어 오른쪽으로 한 블록 건너 리알토 다리를 확인한다.
되돌아와 왼쪽길을 걸어 교회가 있는 광장을 만나니 이제야 살았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여기 교회 옆에 푸른글씨가 보이는데 좀 전에 조선족 아주머니 말이....
예전에 아들이 엄마를 죽이고
심장을 꺼내 들고는 뛰다가 여기서 넘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귓가에 들리는 엄마 말이 “얘야 급하게 뛰지를 말아라! 다칠라” 라고 했다니...
우리나라 “고려장”이나 일본의 “나라야마 부시코” 전설과 같은 것일러나?
10여년 전에 부산 남포동에서 저 “나라야마 부시코”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는 데....
일본 궁벽한 산골에 아이를 셋 이상 낳으면 남자 아이는 산에다 갖다 버린다.
노인도 70 이 되면 잔치를 연 후에 아들이 지게에 져다가 깊은 산속에 버리는데,
산에서 자신의 마지막 김밥을 오히려 땀흘린 아들에게 먹이며
길 잃지 말고 조심해서 마을로 돌아가라고 걱정스레 바라보던 할머니의 눈동자.....
그러고는 왼쪽 길을 잡아 다시 왼쪽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서는 자그만 운하 옆에
위태롭게 서 있는 5656번지의 이층집 건물 초인종을 누른다.
가파른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 우리 방문을 여니 여긴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고
창 너머로는 건너편 건물벽이 보여 좀 답답한 곳이다.
예전에 베네치아 귀족 가문의 처녀 는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뒤집어 쓰고 나가는
주일 예배외에는 "외출이 금지" 되어 수예나 배우며 하루종일 집안에서만 갇혀 생활했으니 답답했겠다!
하지만 결혼한 부인 들은 외국무역으로 몇년씩 집을 비우는 남편 부재시에 아침에 기상하면
콤파니아 델라 카르체 라 불리는 봉사하는 기사 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외출도 자유자재로 하였다고한다.
합의제 정치체제 하에서 베네치아는 남자라도 개인 영웅이 없었다고 한다!
더욱 여자의 정치참가는 불가 하여 헝가리 왕비, 키프로스 왕비, 피렌체 대공비, 술탄비를 배출했으나!
그런 여자들도 고국 베네치아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은 전무했으니...
오직 1,472년에 파울루스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누이 엘라사베타가 우쭐댔으나 교황 사후 추방 당한다!
1,786년 2월 26일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카페 플로리아”의 주인 발렌티노는 풍기문란 을 이유로
여성의 카페 출입을 금지한 법안을 취소 해 주기를 청원한다.
베네치아 당국은 “카페에 여자가 오지 않으면 남자도 오지 않는다” 라는
주인의 청원을 주의깊게 심사하고는 “시민의 영업을 방해할수 없다” 는 취지로 법안을 폐기 했다네?
어두컴컴해 답답한 민박집 내에도 주방은 있어서 라면을 끓이고 있노라니....
중국인 주인 아주머니가 김치를 내주어 그런대로 잘 먹는다.
저 조선족 아주머니와 친구로 지내서인지 아님 가끔 한국인 여행자도 받는지
한국말을 떠듬떠듬 하는 것이
우리와 의사 소통은 그리 불편하지는 않아 다행스럽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유리공예... 참으로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