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엄선 단편 - 타락지기(墮落至祇)

[근내]

    타락지기(墮落至祇)


    이것은 우리가 지난 어느 여름에 겪은 일이다. 서울 토박이로 대학생이었던 나는 나와 학창시절 부터 가장 친한 친구들인 미주, 제이, 송비와 함께 짧은 기간 여행을 떠나 일상을 탈출해 보려는 생각으로 들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넷은 모두 졸업을 앞둔 상태였다. 활발하고 언제나 우리의 암묵적인 리더를 맡았던 미주는 모 대기업에 입사 예정이 된 상태였다. 예쁜 미모로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웃음 가득한 친구인 제이, 뷰티샵 아르바이트를 겸하던 넷 중에 비교적 소심한 송비도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향해 시험에 매진하려는 상태였다. 우리 넷에게는 잊을 수 없을 마지막 여행이었다.

    우리가 가려는 곳은 제주도였는데 여행에 앞서 인터넷으로 사전 조사를 했던 제이는 10만원 가량의 일정 금액을 뱃삯으로 제공하면 제주도 내부에서 근처의 작은 모래섬으로 데려다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세히 듣자하니 그 부근에 모래섬들이 굉장히 많이 퍼져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혹 캠프 용품을 가져 가게 된다면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아름다운 해안에서 친구들 끼리의 최고의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방학 여행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예쁘게 단장하고 공항에서 제주도로 출발 한 우리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그 후 선박장에 도착하자 제이가 알려 준 번호로 미주와 함께 통화했고 50, 60대로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 어르신은 캠핑 용품이 잘 구비되어 있는지 잘 확인하라고 하였고 돌아오는 날짜를 정하라고 하였다. 4일을 보낼까 5일을 보낼까 옥신각신 하다가 5일은 너무 길다고 여겨 3박 4일 후에 배로 맞이하러 나와 달라고 부탁했고 선불 금액을 지불했다. 배가 출발하고, 순항 중에 날씨가 너무 좋아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셀카도 찍고 보트 안에서 한참을 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모래섬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모래섬의 크기가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놀랐다. 제이와 송비는 오히려 너무 좋은거 아니냐고 난리를 치더니 모래섬에 내리자 마자 신발을 벗고 마구 뛰어 다녔다.

    주변에는 왜 그런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른 바다만이 눈에 들어왔고, 모래섬의 크기는 정말 한 눈에 들어 올 정도로 작았다. 해안의 크기가 모래섬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오른편의 모래 둔덕을 지나 해안 뒤 쪽으로 아주 작은 숲이 있었는데 숲이라고 하기엔 대궐의 정원 같은 느낌으로 귀여운 수준이었다. 어르신은 전파가 통하지 않으니 건강에 특히 신경쓰라고 말하였고 제주도 선박 경비실의 사이렌을 울려 주는 비상 벨을 하나 주었다. 일이 생겨서 본인이 오지 못 하더라도 이미 직장 동료들에게 말해 놓았으니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온다면 그 사람에게 나머지 삯을 주는 걸로 약속 하였고 이미 주변 모래섬은 최근 상당히 유행으로 많은 이들이 방문했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했다. 우리는 감사 인사를 드렸고 짐을 뺀 후 보트는 떠나갔다. 미주는 살다 살다 이런 일이 있구나 라며 놀라면서도 굉장히 즐거운 표정이었고 한껏 짐을 꾸려 온 제이는 우선 짐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상약, 여벌 옷, 장작, 그릴, 생고기와 술등 음식도 많이 챙겨 왔고 날씨만 도와준다면 정말 꿈 처럼 행복한 3박 4일의 모래섬 여행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나와 미주는 음료수를 하나씩 챙겨서 함께 해안가를 걸어 다녔고 송비와 제이는 뜨거운 햇빛 아래 태닝을 하였다. 맑은 물로 씻을 곳은 마땅히 없기 때문에 내일 해안에서 가볍게 입수로 놀기로 하였고 2박째 밤에는 장작에 불을 지피고 서로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재밌게 보냈을까 어느덧 해가 거의 저물기 시작했다. 네 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장작에 불을 지펴 고기 구울 준비를 하였고, 그 와중에 미주가 미니 텐트를 설치했다. 텐트가 생각보다 좁았지만 4명이서 끼여서 자면 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꽃피울 생각에 너무 신이 났다. 나와 제이가 볼 일을 보러 잠시 모래 둔덕 쪽으로 갔을 때, 우리는 둔덕이 아니라 굴이 파인 곳이 반대편에서 둔덕으로 보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굴일까 하며 신기함 반 놀라움 반으로 미주와 송비를 크게 불렀다.

    넷이서 동굴을 살펴 보았는데 아무래도 원래 사람이 드나들 목적으로 파낸 동굴인 것으로 보였고 자연적으로 만들어 졌다기 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이 느껴졌다. 어둑어둑한 시간이었지만 그 입구 방면이 절벽 쪽으로 이상한 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사실상 쉽게 들어갈 수는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험심이 발동한 것일까, 아니 오히려 들떠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생각 한 우리는 랜턴을 켜고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고 미주가 먼저 철봉을 타듯이 한발 내려가 다른 친구들을 받아 주었다. 동굴은 마치 칠흑처럼 어두워서 우리는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입구가 크게 넓지는 않아서 몸을 구부리고 살짝 들어가니 가면 갈수록 길이 넓어져서 조금 걷고 나니까 한 사람이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을 수준까지 넓어 졌다. 느낌에 구불구불 조금씩 아래로 향하였고 2분 정도 걸었을까 밖에 날도 어두워 졌을 텐데 너무 깊이 온 게 아니냐며 송비가 말했다. 제이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조금 더 들어가보자고 해서 우리는 조금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계속 걷다보니 조금 이상한게 이 모래섬 끝과 끝까지 가는 거리 이상을 걸었음에도 아직 길이 밑도 끝도 없이 남은 느낌이 들었다. 동굴 자체가 아래쪽 방면으로 회전하며 경사가 져서 지하로 내려가는데 빙하처럼 큰 부분이 아래에 더 있는걸까 하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4명이서 가기 때문에 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송비가 장작에 불 붙이고 왔느냐 묻자 미주는 불만 붙였고 음식은 그대로 있다고 말하면서 계속 걸어갔다. 계속 계속 걷자니 우리는 서늘한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파트로 따지자면 지하 몇 층까지 도달해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고 한참을 걸어 들어간 상태로 나갈 때도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나는 걱정이 조금 앞섰다. 이 어둠 속에서 고작 랜턴 두개로 일종의 무인도 동굴 깊이 있자니 살짝 무서웠지만 모험심도 발동 되었고 더불어 송비, 제이, 미주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든든했다.

    우리는 이걸 대체 누가 만든 걸까 하는 꺼림칙한 생각이 들 무렵 두 갈래길에 봉착했다. 그곳에는 피마능(避魔陵)이라고 적힌 작은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한 눈에 봐도 이 시대에 만든 물건은 아니었을 정도로 오래 된 것임이 느껴졌다. 미주와 나는 어렸을 적 한자 자격증을 따놓은 적이 있어서 비석에 적힌 것 처럼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번체 한자들은 다행히도 거진 읽을 수 있었다. 그 비석 위에는 조각처럼 짜 맞추어 놓은 것 처럼 옥석이 올려져 있었는데 긴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여러 색을 띄는 것이 재물의 가치가 있던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 우리들은 말 없이 서 있었고 제이는 갑자기 그걸 낚아 채서 뚫어져라 보더니 우선 가져가 보자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주변에 많은 모래섬 중에 이 모래섬에 온 사람은 많아 봤자 몇 팀 되지 않을 테고, 오히려 우리가 처음 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모래섬은 조선시대나 그 이전 과거 어느 시점에 사람들이 왕래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이런 동굴을 만든 걸까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가는 건 조금 위험해 보이고 여행삼아 볼 건 아닌 것 같아 우리는 뒤로 돌아 다시 모래섬 방향으로 올라 갔다. 오는 길은 네 명이 조금 긴장한 상태로 빨리 걸어서 그런지 들어갈 때 보다는 덜 걸린 것 처럼 느껴졌다. 나오자 마자 제이, 미주, 송비는 크게 숨을 들이키며 재밌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해는 완전히 졌었고 정말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랜턴으로 비추며 미주가 역시 먼저 담을 넘듯이 올라 간 다음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당겨서 넷 다 모래 둔덕으로 다시 올라 왔다. 텐트 앞까지 도착한 우리는 장작이 아직도 활활 타고 있는 걸 보고 랜턴을 텐트 안에 놓은 다음 재미있게 떠들며 고기와 양파를 굽기 시작했다. 배가 너무 고파져서 고기 냄새가 마음을 자극했다. 탄산음료도 개봉하여 맛있게 먹고 마시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았고, 오느라 수고했다며 미주는 모두에게 3박 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가자고 말했다. 술에 살짝 취하며 제이도, 송비도, 나도 너무너무 행복한 모래섬의 캠프 식사 였다.

    식사를 다 마치고, 분위기도 한참 무르익어 서서히 잘 시간이 가까워 온 것 같았다. 아쉽지만 내일 더 재미있게 놀 것을 기약하며 장작을 끄고 전지 램프를 키자 주변이 환해지면서 수면 무드가 조성되었다. 제이와 미주가 볼 일을 보러 간 사이에 멀리 멀리 랜턴을 비추면서 장난을 치다가 우리를 잠시 불렀다. 다가간 우리는 무슨 일인가 했는데 저 멀리 동그란 것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미동은 없었는데 확실히 암초는 아니었다. 암초가 있을 장소도 아니었고 따로 저렇게 있지도, 크기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 무언가 동그란 부양체 하나가 반 정도 모습을 보였다. 자세히 보려 했으나 멀기도 멀고 너무 어두워서 랜턴만으론 제대로 비춰지지가 않았다. 우리는 사실 별게 아닌 것임을 알았지만 무언가 모를 여행의 모험심에 그저 소란을 떠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넷이서 자기 직전까지 장난을 치면서 소란을 피우다가 텐트가 북적이도록 넷이 엉켜 몸을 부대끼며 잠에 들었다.

    아침이 밝고 잠에서 깬 나는 텐트 밖으로 나갔는데 제이와 미주, 송비 셋이 먼저 일어나 무언가 작은 소란을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묻자 송비가 손가락으로 바다 쪽을 가리켰고 그 쪽을 바라본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긴 사람 처럼 생긴 부양체가 상반신의 가슴 정도 까지 바다에 잠긴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그 동그란 부양체 였던 걸까, 살짝 튀어 나온 그건 아마 머리 부분이 바다에 잠긴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먼 거리에 떠 있던 터라 상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살아있는 생물은 맞았고 확실히 사람은 아니었다. 우선 사람이 거기 떠 있을 수도 없을 뿐더러 미주의 말을 듣자 하니 이미 한 시간 가량 그 부양체를 지켜보았다고 했다. 물고기일까, 설명 할 수 없지만 곰팡이가 피어 있는 껍데기에 사람의 형체를 하고 사람의 모습을 갖고 있는 물고기라고 밖엔 설명할 수가 없었다.

    큰 공포감에 휩싸인 우리들은 너무 놀란 제이를 진정시키며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였다. 이 부양체는 무엇일까? 텐트 속에 들어간 제이 외에 우리 셋은 난생 처음보는 당혹감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부양체를 지켜보았다. 그 부양체는 마치 그림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정말 한 치의 흐트림도 없이 그 자리에 부동으로 존재했다. 흰자 부분은 검고 눈동자 부분이 노랗게 칠해진 그 눈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무서워서 계속 보고 있을 수도, 그렇다고 지켜보지 않을 수도 없었던 우리는 너무 두렵고 당혹스러워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미주는 이러지 말고 텐트 안에서 물이라도 마시면서 생각하자며 나와 송비를 텐트 안으로 끌고 들어 왔다.

    우리는 텐트의 지퍼를 올리고, 생각에 잠겼다. 마땅히 생각이 나는 것도 없었고 좋은 휴가에 갑자기 안 좋은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나 안에서 말 없이 지냈을까, 텐트의 지퍼를 내린 우리들은 다시 그 부양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부양체가 서 있었는데 아까보다 확실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아무런 미동도 없는 물체임에도 미주 역시 그것을 느꼈다. 더불어 그 크기가 일반적인 사람의 크기가 아니었고 퉁퉁한 몸 부분에 신장은 2미터를 훌쩍 넘어 굉장히 거대한 생명체라는 걸 알수 있었다. 어제를 돌이켜 보자면 저 부양체는 사실 바다 속에서 머리 부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걸까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혹 어제 본 것이 저 부양체인 것도 확실히 않았으며 잠시 착각이 든 걸수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다. 우선 미주가 밖에 나가 텐트 뒤에서 라면을 끓여 왔고 우리는 그걸 텐트로 가져와 먹고 일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만약 저 부양체가 계속 저 자리에 있는다면, 휴가는 커녕 불안감에 남은 2박을 텐트 속에서나 지내야 할 판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밖으로 나간 우리는 확실하게 느꼈다. 부양체는 더 가까워져 있었다.

    제이는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렸고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힌 우리는 더이상 상황을 지켜볼 것이 아니라 처신을 해야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선 여기 도착해서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 보았고, 저 부양체를 떠나 자리를 옮겨 볼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 곳은 다 한 눈에 전경이 들어오는 곳이라 그 어떤 곳에서도 바다가 보였고 마땅히 텐트를 다시 펴고 지낼 만한 곳은 없었다. 더불어 그 부양체에게서 눈을 떼면 상황을 지켜볼 수 없어서 그런걸까 무언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골똘히 생각 해도 별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없었고, 다만 모래 언덕에 위치한 동굴에 다녀왔던 것이 하나 마음에 걸렸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관련된 것이 있는걸까 라며 사실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뭐라도 해보라는 심정이었고 제이 혼자 놔 둘수 없었던 우리는 네명 모두 다시 그 동굴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언덕까지 도착한 우리는 어제와 같이 미주가 먼저 내려가 우리들을 받아 주었다. 아직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동굴 내부는 칠흑과도 같았기 때문에 랜턴을 각자 하나씩 챙긴 채로 우리는 서서히 동굴 속으로 들어 갔다. 미주는 그 부양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조금 불안하다며, 왜 미동도 없는 것이 가까이 올 수가 있는 걸까 하며 의문을 말했다. 송비도 같은 생각을 하였고 나는 훌쩍거리는 제이와 손을 잡고 미주와 송비를 따라 갔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랜턴을 이리저리 비추며 일방통행의 동굴 안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눈 앞에 어제 조우했던 비석과 함께 두갈래 길이 나타났다. 송비는 계속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라며 걱정했지만 미주는 무언가 관련되는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며 들어가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비교적 담이 강했던 미주와 겁에 질린 제이가 한 팀으로, 나와 송비가 한 팀으로 양 갈래 길에 들어가자고 했고 서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갈라졌다. 왼쪽으로 먼저 들어간 나와 송비는 좌우로 병사의 모습을 한 작은 토우들이 줄지어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나와 송비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손을 꼭 잡고 어두컴컴한 길을 랜턴으로 이리저리 비추며 걸었다.

    아래로 경사진 듯한 길을 계속 걷자니 기묘한 이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밑으로 어떻게 이렇게 긴 길이 있는 걸까 계속 되새겼다. 토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그 뒤로 한참을 걸었을까, 또 다른 비석이 나타났다. 비석 정면에는 환옥(還獄)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고 윗면에는 붉은 구슬이 놓여져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기나긴 세월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었다. 다시 경사진 정면을 랜턴으로 비추자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와 송비는 두려움에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손을 꼭 잡은 채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더이상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하며 우선 계속 앞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 얼마나 걸었까 갑자기 송비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공기가 부족한 건지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는 느낌이 조금 들었고 조금만 더 걸어가 보자고 송비를 다독였다. 굽이치고 경사진 암흑의 길을 얼마나 아래로 내려갔을까, 또 다른 비석이 나왔다. 역시 그 비석 정면에도 겸절나락(鎌切奈落)이라는 한자와 함께 그 위로 검은색 염주가 틀에 맞게 놓여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다리가 떨려와 끝이 없는 이 길을 더이상 갈 수 없었다. 반 정신이 나간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빠른 걸음으로 뒤를 돌아 왔다. 다시 갈림길까지 가는 길은 마치 몇 시간정도나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갈림길에 도착한 나와 송비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미주, 제이와 만났다. 큰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우리 넷은 눈물을 흘리며 안도했고 서로 안으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미주가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들이 간 오른쪽 길은 얼마 가지 않아 막혀 있었다 하였고 그곳엔 괴이한 벽화들과 형체를 알 수 없는 찌꺼기들과 고문서들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 미주도 너무 겁이 나서 제정신이 아닌 제이와 함께 그 고문서를 하나 집어서 다시 갈래길에 도착하여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우리를 한참동안이나 기다렸다고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미주는 아무래도 이 모래섬에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는것 같다고 말했다. 좁고 어두운 이곳에 더 있다간 폐쇄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던 우리는 신속히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애초에 그 동굴은 한 사람이 걷기에 알맞은 정도로 비좁아 우리 넷은 줄지어 걸었고, 제일 선두에 있던 미주는 가장 먼저 입구에 도달했다. 미주가 먼저 동굴을 빠져 나갔고, 다음으로 빠져나오려는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쳤다.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미주는 다시 동굴 안쪽으로 우리를 밀었고 자신도 같이 들어왔다. 미주의 말로는 처음에 육안으로 구별만 가능 하던 거리에 떨어져 있던 그 부양체가 거의 전신이 다 드러난 상태로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까지 다가 왔다고 했다. 어찌 여기서 보이냐는 송비의 질문에, 그 부양체가 어찌된 것인지 원래 보였던 곳의 정 반대편인 동굴 입구 정면 방향에 서 있었다고 하였다. 미주는 그것을 어인간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하는데 너무 형체가 기이하고 소름이 끼쳐서 전신이 다 드러난 그 부양체는 인간이 근처에 범접하기 힘든 생물이었다.

    실체적인 두려움에 우리 넷은 칠흑의 동굴을 다시 미친듯이 걸어 두 갈래길까지 도착했다. 그 갈림길은 이 좁은 동굴에서 유일하게 네 명이 앉아 있을 정도의 넓이가 되었다. 잠시 앉아서 한 숨을 돌렸으나 사실상 보통의 여대생들이었던 우리는 제정신으로 있기가 힘들었다. 미주는 마음을 다잡고 제이와 송비, 나에게 우선 고문서를 살펴 보자고 말했다. 한자와 알 수 없는 언어가 섞여 대부분 알아 볼 수는 없었으나 우리가 해석한 바로는 그 고문서 자체는 구한말 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 고문서를 엮은 인물역시 이 동굴과 비석을 만든 자는 아니었다. 그건 주변의 지리와 어떤 신화적인 기록들을 나열한 고문서였고 상당히 자세한 내용들이 들어가 있어 두꺼웠기 때문에 전부 다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우리는 비석이나 동굴에 관련된 한자들을 주로 찾아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볼을 타고 땀이 뚝뚝 떨어졌다. 네 명이 흙투성이의 몸으로 칠흑의 좁은 공간에 둘러 앉아 랜턴으로 책을 비추며 넘기기를 반복했다. 낡아서 누렇고 뻑뻑한 종이에 삽화가 기록된 부분이 계속 되었는데 난생 처음보는 괴이한 생명체들이 그림 속에 그려져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는 놀라며 소리쳤는데 그 중에 부양체의 생김새와 비슷한 생명체의 삽화를 발견 했기 때문이다. 붓으로 가볍게 건드리듯 그려진 것이지만 그 비슷한 형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상세한 설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해석한 바로는 대강 이와 같았다. <수륙괴 라고도 불리던 천년의 생명, 타락지기(墮落至祇). 본디 인간이 아니었던 존재, 어디에서 왔는가 알 수없는 존재. 천의 절구와 같은 힘으로 인간의 머리를 갈아 버리는 존재. 그것은 눈을 떼지 않으면 죽는 것, 눈을 떼면 제어할 수 없는 것.> 우리가 해석한 바를 옮기고 이해하자니 우리들이 했던 그 불안감은 사실처럼 느껴졌다. 미주와 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고 말을 꺼냈지만 송비와 제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시점에서 이미 우리가 동굴에 들어온 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태였고, 밖은 어둑어둑해 오고 있을 쯔음이었다. 미주는 우선 배도 채워야 하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텐트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리고 두 팀이서 번갈아 가며, 타락지기에서 눈을 떼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다시 어둡고 좁은 동굴에 일렬로 나란히 걸어 입구쯔음에 도착 했을 때는 날은 저물어 있었다. 역시 미주가 먼저 입구로 나갔는데 타락지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먼저 입구 벽을 타고 올라간 미주는 우리들을 당겨서 올려 주었고 넷은 다시 텐트 쪽으로 돌아 왔다. 송비가 왜 그 생명체가 사라진 걸까 의문을 갖던 찰나, 우리 넷의 시선이 함께 떠난 그 찰나의 순간 타락지기는 우리 눈 앞에 나타났는데 얼굴 부분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아가미와 같은 입을 크게 벌리며 한 팔을 뻗은 채, 이제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미주와 내가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2미터를 넘는 그 거대한 몸집과 비늘과 같은 몸, 초점없는 노란 눈동자와 씨커먼 흰자, 전신을 찍어 누르는 압도감과 공포감에 몸이 굳어버렸다. 타락지기는 이미 전신이 물 위에 떠 있었고 우리와의 거리는 고작 몇십 미터 정도였다.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나와 제이, 송비에게 미주는 이제부터 절대 눈을 떼면 안 된다고 소리 쳤고 나와 제이, 미주와 송비 2팀으로 번갈아가면서 절대로 눈을 떼지 않기로 하였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시선이 떨어진 찰나의 순간, 우리의 앞으로 나타날 거라는 생각이 번뜩이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다. 타락지기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보다 다가오는 속도가 현저하게 빨라진 듯 느껴졌다. 절대 눈을 떨어 뜨려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나와 제이가 그것을 랜턴으로 비추며 바라보고 있을 동안 미주와 송비가 텐트를 설치 가능한 가장 뒤쪽으로 옮겨서 그 거리를 조금 벌렸다. 송비가 문득 선박장에서 받은 비상 벨을 울릴 수 있느냐고 하자 미주가 재빨리 가방에서 찾은 후에 버튼을 눌렀다. 경보음이 전달 된 걸까, 잘 모르겠지만 계속 버튼을 누른 후에 미주는 다시 고문서를 집어 들고 앞으로 지켜보지 않는 두 명은 남은 시간동안 계속, 줄곧 이 고문서로부터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고 하였다. 어둠이 다가선 모래섬에 도망갈 곳 따윈 없었다. 제이는 고통스럽고 무서운지 타락지기를 자주 바라보지 않아서 나는 절대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느껴지는 일분 일초의 공포감, 하지만 눈을 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치 살아있는 지옥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공포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침이 오는 걸까 하며 2시간 가량씩 번갈아 지켜보며 우리는 미친 사람인 마냥 번갈아 쪽잠을 청하며 해독 가능한 고문서의 부분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긴 8시간이 흘렀다. 새벽 5시쯤 되었을까, 날이 밝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진 우리들은 아무 말도 없이, 두명씩 맞춘 조가 무색할 만큼 누구나 할 것 없이 타락지기를 바라보며 아닌 자는 고문서를 읽어 나갔다. 한 명이 지펴놓은 장작도 이제 곧 꺼질 분위기였다. 새벽동안 타락지기를 바라보랐으나 넷의 시선이 떨어진 그 짧은 찰나 찰나에 타락지기는 우리 앞으로 더 다가와 있었고 이제 곧 해안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 고문서를 훑어 본 양이 가장 많았던 미주가 봉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나는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이야기 했다. 비석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사실상 몇 가지로 유추할 수 있었다. 다만, 문득 비석에 관련하여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송비가 제이가 거기서 무엇을 낚아채 오지 않았냐고 미주에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미주는 번뜩 생각이 들더니 옥석 이야기를 제이에게 꺼냈다. 넷 다 제정신이 아니라 언성이 약간 높아진 상태에 말도 계속 더듬고 있었다. 제이는 텐트 속으로 뛰어 들어가 미친듯이 가방을 뒤져 옥석을 찾아 냈고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미주는 제이를 다독이며 우선 이게 비석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에 의해 구비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한참 전부터 제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서 우린 텐트 안에 재워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즉시 나를 불렀고 송비에게 이곳을 지켜 봐 달라고 부탁했다. 나와 미주는 옥석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모래 동굴로 향했다.

    아직 어둑어둑함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우리는 전력으로 모래사장을 달렸다. 그리고 언덕에 도착하여 살이 까지는 것도 모르고 동굴 입구 까지 뛰어 내려 갔다. 랜턴을 각자 하나씩 챙긴 미주와 나는 칠흑의 동굴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담이 정말 강하다고 생각 했던 미주가 동굴에서 앞으로 걸어가며, 뒤에 있던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고 걷는 걸 보았다. 나도 두려움에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났는데 미주가 곁에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 어둠의 동굴 통로는 왜 이렇게 좁고 긴 걸까, 한발 한발 걸을 때 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굽이치고 경사진 길을 계속 나아가며 그 걸음 걸음을 세며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리듬으로 신속히 걸었다. 두 갈래길에 도착 했고, 이전에 미주는 왼쪽 길로 가본 적 없지만 무한의 길 끝까지 각 비석에는 봉양의 목적으로 무언가가 놓아져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미주는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옥석을 꺼냈고 땀 범벅이 된 손을 벽과 땅을 쓸어 흙을 묻혔다. 랜턴을 비춰 주고 침을 꿀꺽이자, 미주는 가진 옥석을 그 비석 위의 자리에 딱 맞게 놓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송비가 걱정되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미주와 나는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다시 입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밖으로 나와서 언덕으로 빨리 올라가 해안을 바라본 우리는 멀리 텐트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채 앉아서 울고 있는 송비를 발견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2박이 흘러 간 시점이었다.

    그 후에 자세한 것은 우리의 트라우마 때문에 서로에게 묻지도,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수 시간 동안 우리는 텐트 주변에 널부러져 잠이 들었고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 깨자 해안 경비대처럼 보이는 중형 보트가 해안에 와 있었다. 직원 남자 두 명이 내려서 우리에게 상황을 묻고 보트에 앉혀 물과 음식을 주었다. 모두 입이 꿰메진 마냥 별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모래섬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짐을 다 챙기고 즉시 제주도로 출발했고 집에 도착 해서도 그 악몽에 한달 가량을 시달렸다. 누구에게 한들 들어주지 않을 이야기. 트라우마 때문에 그것을 겪은 우리 넷이 다시 만나기 까지 3개월 이상이 걸렸다. 얼마 전에는 미주와 도서관을 가다가 혹시 그날 고문서는 어찌 하였느냐고 물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주변 돌 밑에 깔아 두었다고 했다. 가장 후유증이 심했던 송비는 요양을 위해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잠시 있다 왔었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제이와는 그 휴가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한 적 없다. 우리 넷은 아직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미주는 그 일이 있은 후에 고대문명이나 고대사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 처럼 보였고 인터넷이나 오래된 서적등으로 관련 자료도 찾아 본다고 할 정도로 여전히 무언가의 짐을 해결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건 최근에 미주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제주도 선박장 일대에서 성행하던 불법 보트 수송자의 일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형을 선고 받았다고 했다. 또한, 그곳 제주도 일대에서 불법 보트 수송을 해주던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 살아 온 그 지역 토박이가 많았다고 하며 우리가 갔던 모래섬 주변 일대는 국가에서 지정한 접근 금지 구역이 되었다고 한다.

[아는 오빠™]

못읽겠다...ㅠㅠ

[록호]

닥터후, SCP 두개 짬뽕해서 배꼈네요

[예전회원]

읽어볼거

[붕가맨]

재밌네요

[피망주세요]

음 뭐랄까 유행에 뒤쳐지기 싫은 나이 지긋하신 작가님의 SF단편소설 느낌이랄까

[알겠습니다]

읽기가 무섭다..눈아파서... 안읽../.

[속앓이]

읽어볼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