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도안과 등장인물 ②
등재된 화폐 인물과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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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등재된 화폐 인물과 말, 말, 말; 정경시사 Focous 2023.10.28
http://www.yjb0802.com/news/articleView.html?idxno=36775
1. 시대적 편중성
화폐에 나오는 이황, 신사임당, 이이, 세 인물 모두 조선 중기에 살았던 같은 시대 사람들이어서 시대적 불평등을 보인다.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이이는 말할 것도 없고, 퇴계 이황도 연산군 조에 태어나서 중종, 인종, 명종을 거쳐 선조 즉위 직후에 사망했다. 우리나라 지폐가 네 종류인데 그중 세 명, 이황(1501~1570), 신사임당(1504~1551), 이이(1536~1584)는 임진왜란(1592~1598)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세 사람 모두 100년을(1501~1584) 같이 산 사람들이고 세종대왕(1397~1450)까지 넣어도(1397~1584) 겨우 200년 사이의 살았던 인물들이다. 이는 우리의 반만년 역사의 자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시대적 편중성을 보이고 있다. 고대나 중세, 조선 후기 인물은 단 한사람도 없다. 민주 공화국 시대인데도 봉건 왕조시대의 인물, 더군다나 엘리트만 지폐에 올리는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 후 근현대 이후부터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 많은 업적을 이룩한 인물이 적지 않음에도 과거 들어갔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제외하면 근현대의 한국인이 화폐에 들어간 인물이 전혀 없다.
2. 학문적 편향성
100원 주화의 이순신과 1만 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아예 이견이 없지만, 이황, 이이, 신사임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위치에는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황, 이이가 성리학자로서 존경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할지라도 글로벌 시대를 사는 지금 이기이원론이나 이기일원론이 현대 철학을 압도할 만큼 중요하냐는 것이다. 지금도 이황과 이이의 철학사상이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자문해 볼만하다. 이황과 이이 두 인물은 모두 유교 철학자이지만, 유교는 더 이상 국정의 기조도 아니고, 유교자체도 생활종교로서의 지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 더 이상 깊게 다뤄지는 학문도 아니다. 더구나 한 사람도 아닌 두 명의 유학자를 화폐인물로 하는 것은 당연히 재고되어야할 편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성씨의 집중성
최근에 신사임당이 추가되기 전까지는 모두 이(李)씨라는 점도 특징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이황과 이이는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종장(宗匠)이라는 점이다. 퇴계의 영남학파는 동인(나중에 남인), 율곡의 기호학파는 서인(나중에 노론)으로 당쟁을 하였다. 한 가지 곁들이면 세종대왕(본명은 이도), 이황, 이이, 이순신이 모두 이씨(李氏)이다. 그런데 예외가 된 신사임당조차도 따지고 보면 이씨 집안 며느리이다. 한국의 화폐인물은 조선전기 인물로, 이씨 성을 가진, 남성들이 대다수다. 신사임당과 율곡처럼 세계 유일의 모자(母子) 화폐인물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에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초상이 지폐에 들어 있는데 이승만도 역시 전주 이씨이다.
4. 인물초상의 독식
우리나라에서 지폐의 앞면 소재로 채택된 인물초상에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학자인 율곡, 퇴계 등이 있지만 독점적인 인물초상은 이승만과 세종대왕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50년부터 정권이 무너지는 1962년까지 총 10종의 지폐와 주화의 도안 모델을 독식했다. 이중 가장 오랜 기간 변함없이 지폐 모델로 채택된 것은 세종대왕 초상이다. 세종대왕 초상은 제2공화국 탄생과 더불어 1960년 8월 15일에 발행된 천환권에 등장한 이후 500환권(1961.4.19), 100원권(1965.8.14), 만원권(1973.6.12), 만원권(1979.6.15), 만원권(1983.10.8), 만원권(1994.1.20)에 이르기까지 거의 40여년에 걸쳐 여러 권종에 두루 사용된 우리나라 지폐의 수퍼모델인 셈이다.
5. 초상화 논란
우리나라 화폐에는 대부분 역사 위인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그 인물과 관련된 문화재도 함께 그려 넣는다. 5만 원권에는 신사임당 초상이, 1만원 권에는 세종대왕의 초상이, 5000원 권에는 율곡 이이의 초상이, 1000원 권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이, 100원 주화엔 이순신 초상이 등장한다. 그런데 초상화나 사진 등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현재 우리가 보는 영정은 다 현대에 와서 상상해서 그린 작품이다. 한국인이 제일 존경하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도 모두 공식 초상화가 존재하지 않으며, 화폐인물 5명의 얼굴은 모두 상상으로 그리다 보니 논란이 일수밖에 없다.
더 한심스런 경우는 1972년 영국 화폐제조 전문업체가 제작을 대행해 만든 5000원 권의 율곡 이이 초상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율곡의 콧날과 눈매가 서양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1973년부터 국내에서 발행되는 화폐 초상에는 표준 영정만을 넣도록 규정해 놓았다. 표준 영정도 문제는 있다. 신사임당의 표준 영정을 그린 김은호 화백이 친일 인사로 분류되는지라 영정작가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은행도 지폐 속 위인들이 모두 조선시대 인물인 점, 신사임당을 제외하면 모두 이씨 성을 가진 점, 독립운동가가 없는 점 등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당연하다. 다양성을 우선해 기존 지폐 도안을 교체하려 한다면,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우려를 했다는 측면에서 100원 주화, 1000원권, 5000원권, 1만 원권 지폐는 1970년대 초반 선정된 이순신, 이황, 이이, 세종대왕의 초상도안을 그대로 활용한다는 논리이다.
6. 신사임당 논란
한국은행은 고액권 인물을 발표하면서 신사임당을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인물”로 소개했다. 또 선정 이유로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은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라는 이유로 화폐인물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많이 뒤처지고 시대 상황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되었다.
5만 원권 발행 결정 이후, '5만 원권에는 여성인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신사임당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화폐에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신사임당이 최초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일반 여성이 화폐에 등장한 것은 기록상 1960연대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자 범국민 저축 장려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저축통장을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도안하였다. 그러나 소위 모자상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지폐는 1962년 5월 16일에 100환권으로 발행된 지 25일 만인 6월 10일 제3차 통화개혁으로 새로운 화폐가 발행되면서 폐기됐다.
이 모자상으로 알려진 인물에 대한 일화가 재미있다. 당시 도안을 맡은 도안실장과 안면이 있었던 조폐공사에서 근무하던 여직원 권기순과 그 아들인 유재순이 모델이다. 권기순이 조폐공사에서 일하다가 "오장동 흥남집" 사장 아들과 결혼하고 나서 퇴사를 했는데, 어느 날 조폐공사에서의 상사가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호출해서 영문도 모른 채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사진이 그대로 새 지폐의 도안이 된 것이다.
이 지폐는 최단명의 통화권이이라는 기록 말고도 역사상 기릴만한 인물이 아니라 일반인이 도안의 모델로 최초로 채택된 사례이기도 하고, (신사임당과 이이처럼) 모자가 함께 등장하는 최초의 사진도 되고, 국내 화폐 역사상 사실상 첫 여성 인물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7. 김구와 10만 원권 발행
다른 나라들의 화폐도안 인물에는 그 나라의 독립운동가가 들어가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에 10만 원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지지로 백범 김구로 도안이 확정되었다. 한은도 선정 이유로 “독립애국지사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통일의 길을 모색한 지도자로서 미래의 바람직한 인물상을 제시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지만 일부 보수단체들은 김구 선생이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또 독립운동가가 들어갈 경우 일본과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어른의 사정’이 개입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른의 사정’이란 일본식 표현인대 우리말로하자면 '법이 그렇다'라든가‘, '상부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애들은 몰라도 된다', '알면 다친다.' 등과 같은 말이다.
이는 미발행 사태에 대한 변명같이 들리는데 그럴싸하게 들리는 해명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지폐 고액권은 1914년 발행된 조선은행권 100원 짜리인데 당시 가치는 80㎏짜리 쌀 11가마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1973년에는 지폐 1만 원권이 발행되었으며 사용해 오다가 2009년 6월 발행된 5만 원권이 1만 원권을 제치고 36년 만에 새로 발권된 최고액권으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당시 10만원권의 발행 직전까지 논의됐다가 정부의 요청으로 중단됐다.
정부는 고액권 화폐발행에 대해 물가 상승을 우려하고 전자결제수단 활성화 흐름에 역행하는 사업이라며 중단을 요청했다. 현재 실물화폐에서 디지털화폐로 넘어가는 과도기이어서 97% 이상이 전산거래를 하고 있다. 따라서 고액권의 신규 화폐는 탈세와 불법 거래에 악용되고 있다. 반면에 1000원 단위 이하만 실물 화폐가 필요하고 그 이상은 전산거래로 충분하다. 2009년 당시 5만 원권만 발행되고 10만 원권이 취소, 연기된 이유라 하였다. 실례로 2021년 기준 5만 원권 지폐의 환수율이 17%대까지 떨어져서 한은에 환수되지 않은 5만 원권은 금고 같은 곳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