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가쿠노다테3 - 무사들 마을 가쿠노다테에서 이시구로가 저택을 구경하다!
10월 29일 아키타현 동북부 뉴토(乳頭) 산 자락 '뉴토온천향' 을 구경하고는 내려와 센보쿠시
다자와코역 田沢湖駅 에서 신칸센 기차를 타고 무사들의 옛 마을 가쿠노다테 (角館) 에
도착하는데 1620년 아시나 蘆名 가문이 세운 성곽으로 도호쿠의 작은 교토로 불린다고 합니다.
다마치 부케야시키 도리와 우치마치 부케야시키 도리로 나뉘며 300년전 교토에서 옮긴 400그루 벚나무
로 4월 하순에 벚꽃 축제 가 열린다는데 일본에서는 옛 무사들의 저택을 부케야시키 武家屋敦
(무가옥돈) 라고 부르니 목조 기와집으로 대나무 못을 썼으며 집 주위에 황토 흙담 을 두른게 특징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약한 오래된 농가 주택인 민슈쿠 로 찾아가는데 5~6분 가량을 걸으면
도로는 왼쪽으로 휘게 되니...... 길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우체국을 지나
네거리가 나오고 오른쪽(위쪽)은 우치마치 부케야시키도리 內町武家屋敷通り 입니다.
이시구로 저택 (石黑家) 에 도착하니 몇 년전에 왔을 때 300엔 입장료를 내고 집안으로 들어
가서 구경한 일이 떠오르는데...... 1809년 분카 6년 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저택으로 단아한 멋을 풍기는 정원이 유명하며 촛불그림자를 투영하는 채광창 이 유명합니다.
이시구로가 (石黑家)는 상주하는 여직원이 관광객을 모아 단체관람 을 하는 형식이니 다다미방에 7~ 8명의
관광객을 앉혀놓고는 이시구로 가문 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일본어가 짧아 모두 알아듣기는 힘듭니다.
다만 방에서 추녀끝 을 가리키는데 비가 올 때에 무슨 물받이 홈통 그런 것을 설명
하는 것 같네요? 그러고는 자유 관람 이라 서로 인사를 하고는 일어섭니다.
야채 저장고 를 지나 방으로 들어가니 고문서가 진열되어 있고 벼 1석 이 150kg 이라고 되어 있는걸 보니
비로소 평소의 의문이 풀리는게..... 일본은 15~ 6세기 전국 대명시대나 도쿠가와 에도 막부의
번이든 260여개 나라 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다이묘는 "쌀 수확량인 고쿠다카" 로 그 세력을 가늠합니다.
다이묘 번주 의 지위는 자자손손 대대로 계승 되며 260여개의 자기 영지에서 세금 을 징수하고 군대 를
기르며 생사여탈 사법권을 가진 왕 이었으며 가신과 무사들도 대대로 세습 되며 번주를 모시는데
연공으로 쌀을 지급 했으니 번주의 집은 어전 이고 어전 회의이며 아들은 세자, 딸은 공주 로 불렸습니다.
가장 하급 무사는 1년에 쌀 7석 을 받았으며 "성인 한명이 쌀 1석으로 1년" 을 살았다고 하니 그것
으로 어찌 생활이 가능했는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보니 벼 1석이 150kg 이면 정미소에서
도정하면 쌀 80kg 이 나오니...... 내가 어릴때 농촌에서 쌀 한가마니 라고 불렸던 바로 그 양이라?
그런데 몇십년 전이던가? 한국에서는 쌀 80kg을 줄여서 쌀 60kg 을 한가마니 로 고쳐 부르고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고구마나 감자 가 도입되기 전의 조선 도 그러했지만...
일본에서도 "서민은 하루 2끼" 로 연명했으니 성인은 쌀 80kg 으로 1년 을 살았던 것이네요?
그러니 최하급 무사가 쌀 7석 을 받으면 4석은 가족의 1년 식량 으로 하고 나머지
3석은 팔아서 석유나 비누등 일용품 을 사서 생활했던 것입니다!
물론 하급 무사들 가족은 7석으로는 어려우니 따로 부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시구로 저택 을 구경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일본에서 무사 거리 등 옛 거리를 본 것은
교토, 마쓰모토, 오비, 우스키, 기쓰키에, 유후인, 가라쓰, 야나가와,
구루메, 초후, 하기, 모지코, 구라요시, 가쿠노다테, 가 나자와 등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곳을 찾자면 서울 북촌인 가회동과 익선동, 경주 양동, 안동 하회마을 전주 한옥 거리 등
을 들 수 있는데...... 숫자에서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몇안되는 곳 중에 서울 익선동
은 돈이 된다 싶으니 대문 및 문간방 벽을 일부 철거해 테라스를 만들어 카페로 변신한 집 이 많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북촌 은 창덕궁에 가까워 별궁과 왕실건물이 많았는데 1920년대 말에 건양사라는 주택 개발회사 가
토지를 매입해 도시형 한옥단지 를 지었으니, 건양사 설립자 정세권 씨는 한국의 전통적 건축 양식을 도시
공간에 적용하고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유리 및 타일 을 활용한 새로운 "조선 기와집" 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건양사 정세권씨는 1930년대 중반에는 북촌 가회동 한옥단지 도 개발했다는데, 조선시대
엣 집 한 채를 구입해 분할해서 4~6채로 만드니 면적은 좁았으며....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니 후원자로 밝혀져 재산이 몰수되는 탄압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럼..... 서울 북촌의 한옥 은 조선시대 부터 내려오는 옛집 은 아니고.... 일제시대인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에 기존 조선 기와집을 사 들여서 4~ 6채로 작게
나누어서 분양하기 위해 새로 지었으니 역사가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전주 한옥마을 도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풍남문 서쪽에 일본집을 짓고 상권 을 형성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조선인들이 풍남문 동쪽에 한옥 을 짓기 시작했다니..... 그럼 한 90년쯤 될러나?
일본 전국 수십개 도시의 옛 주택 들은 200~ 300여년 을 내려오고 있으니 양과 오래된 건축년대
등 2가지에서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는데..... 이처럼 잘 보존하고 있으니 부럽습니다.
그 외에 갑옷과 옷 이며 여러 가재 도구를 보고는 뜰 로 나왔는데 정원 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게 볼만 합니다. 여기 가쿠노다테 에서 유료로 관람하는
곳은 이집 이시구로 저택 과 바로 옆에 대저택인 엄청 넓은 아오야기 저택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 시청 에서 관리하며 무료로 개방 하는 곳은 이와하시가, 가와라가, 오다노가, 마츠모토가, 타데츠가,
니시노미야가 및 안도가 등이 있다고 합니다. 또 개인 사유지로 비공개하는 곳으로는
고이가와 사카모토가 등이 있고 그외 유료로는 히라후쿠 미술관, 전승관 및 무사저택 자료관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