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장. 信言不美(신언불미)
- 백서본 제31장
남회근 :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고 해치지 않고
장치청 :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다
주춘재 : 진실한 말은 귀에 거슬린다
톨스토이 : 진실의 목소리는 우아하지 않다
오강남 :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 아름다움과 변론과 박식함을 넘어서
도올 김용옥 : 통치자의 말은 반드시 중험重驗되어야 한다
여운 이준호 : 스스로 다스림으로 다툼이 없다
남 : 남회근(1918~2012) 근래 20~30년 대만에서 국사 대접을 받은 분으로 장개석과 장경국의 국사
장 : 장치청(1959~)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 북경중역국학원 원장.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
주 : 주춘재(1957~) 화가, 작가. 중국문화보급과 전세계 대중화에 앞장섬.
톨 :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 소설과, 사상가.
오 : 오강남(1941~)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명예교수, 종교학자.
김 : 도올 김용옥(1948~) 철학자, 사상가.
여운 이준호 : 야매 한학자, 지식 노가다꾼.
81.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聖人不積. 既以爲人己愈有, 既以與人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믿을만한 말은(信言) 달콤하지 않고(不美), 달콤한 말은(美言) 믿음이 가지 않는다(不信). 도에 통달한 자는(善者) 밝히지 않고(不辯), 밝히는 놈은(辯者) 도는 커녕 오로지 나쁜 놈이다(不善). 제대로 아는 자는(知者) 한방에 얻으려 하지 않고(不博), 한방에 얻으려는 놈은(博者) 제대로 아는 게 없다(不知). 성인은(聖人) 쌓으려 하지 않기에(不積), 이윽고(既) 사람들을 위함으로써(以爲人), 자기에게 점점 있게 되는 것이고(己愈有), 이윽고(既) 사람들에게 베풀기에(以與人) 자기에게 점점 더 늘게 되는 것이다(己愈多). 하늘의 도는(天之道), 이로울 뿐(利而) 해롭지 아니하니(不害), 성인의 도는(聖人之道), 스스로 다스림으로써(爲而) 다툼이 없게 되는 법이다(不爭).
Sincere words are not fine; fine words are not sincere.
Those who are skilled (in the Tao) do not dispute (about it); the disputatious are not skilled in it.
Those who know (the Tao) are not extensively learned; the extensively learned do not know it. The sage does not accumulate (for himself).
The more that he expends for others, the more does he possess of his own; the more that he gives to others, the more does he have himself.
With all the sharpness of the Way of Heaven, it injures not; with all the doing in the way of the sage he does not strive.
信言不美(신언불미), 美言不信(미언불신). 善者不辯(선자불변), 辯者不善(변자불선).
남 : 신의가 있는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이름다운 말은 신의가 없다. 선량한 사람은 말에 능하지 못하고 말에 능한 사람은 선량하지 못하다.
장 :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이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못하다. 선한 자는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을 잘하는 자는 선하지 못하다.
주 : 진실한 말은 거슬리나, 듣기 좋은 말은 진실하지 않다. 행동이 정직한 사람은 변명이 서툴고, 교묘하게 변명하는 사람은 정직하지 않다.
톨 : 진실의 목소리는 우아하지 않다. 우아한 말은 거짓말이다. 도덕적인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오 :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습니다.
김 : 신험한 말은 아름답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말은 신험하지 아니하다.좋은 사람은 따지지 아니하며, 따지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좋지 아니하다.
여운 : 믿을만한 말은(信言) 달콤하지 않고(不美), 달콤한 말은(美言) 믿음이 가질 않는다(不信). 도에 통달한 자는(善者) 밝히지 않고(不辯), 밝히는 놈은(辯者) 도는커녕 오로지 나쁜 놈이다(不善).
信(믿을 신) - 믿다, 신임하다, 맡기다, 신봉하다, 성실하다, ~맡기다, 신의, 신용, 편지, 정보.
言(말씀 언) - 말씀, 말, 견해, 의견.
美(아름다울 미) - 아름답다, 맛나다, 좋다, 맛있다, 경사스럽다, 즐기다, 좋다, 기리다, 좋은 일.
善(착할 선) - 착하다, 어질다, 좋아하다, 사이좋다, 통달하다, 옳게 여기다, 참선.
者(놈 자) - 놈, 것, 곳, 장소, 가리켜 이른다. 허락하는 소리, 여러, 무리, 와 같다.
辯(분별할 변) - 분별하다, 구분하다, 나누다, 밝히다, 따지다, 총명하다, 바로잡다.
나 역시 수많은 사기를 당해 봤지만, 사기꾼의 말은 기가 막히게 달콤하다. 몇 마디 나눠보면 금방 때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조금 있으면 벌써 나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닐 것 같이 붕 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때 내가 노자의 도덕경을 알았더라면 한 번은 의심해 보고, 의심이 아니라 아예 과욕과 탐욕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눈이 멀고 귀가 멀고 혀가 뽑혔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그것이 나중에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가히 해머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공부해야겠다는 맘을 먹었다. 알아도 제대로 알아야 어떤 인간이 어떤 말로 달콤하게 사기 치는 거짓말인지 알 수 있고,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때부터 정말이지 죽는 힘을 가지고 결심해서 공부했다. 지난 13년 동안 매일 최소 7시간 이상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짬 나는 시간마다 유튜브로 명사들의 강의를 찾아 들었다. 잘 때도 강의를 틀어 놓고 잤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게 되어 지금의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은 어떤 사람의 말투 행동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느 정도의 지식수준인가가 거짓말 많이 보태 0.3초 안에 견적이 나온다. 과학은 자연을 정량화, 수량화해온 과정이다. 나는 인간도 정량화 수량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력이 된다면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탄생시킨 사회생물학(Sociobiology)처럼, 나는 인간 동물학(Human animalogy)이라는 학문을 진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섭(統攝)하여 인간을 관측하고 예측하는 교과서를 저술하고 싶다.
“믿을만한 말은(信言) 달콤하지 않고(不美), 달콤한 말은(美言) 믿음이 가질 않는다(不信). 도에 통달한 자는(善者) 밝히지 않고(不辯), 밝히는 놈은(辯者) 도는커녕 오로지 나쁜 놈이다(不善).”
知者不博(지자불박), 博者不知(박자불지).
남 : 앎이 있는 사람은 박식하지 못하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장 : 지혜로운 자는 해박하지 않고, 해박한 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주 : 참된 지식을 지닌 사람은 뽐내지 않고,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참된 지식과는 거리가 멀다.
톨 : 현자는 많이 알지 못한다. 많이 아는 자는 현자가 아니다.
오 :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못하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김 : 참으로 아는 자는 박식과는 거리가 멀고, 박식하여 떠벌이는 자는 참으로 알지 못한다.
여운 : 제대로 아는 자는(知者) 한방에 얻으려 하지 않고(不博), 한방에 얻으려는 놈은(博者)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것이다(不知).
知(알지) - 알다, 알리다, 나타내다, 맡다, 대접하다, 사귀다, 친한 친구, 짝, 슬기, 지식, 앎.
博(넓을 박) - 넓다, 깊다, 많다, 크다, 넓히다, 얻다, 바꾸다, 무역하다, 노름하다, 넓이, 폭.
노자는 앎에 대해 구분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앎을 지혜라고 번역하면 지능, 지식, 지성, 지혜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다. 48장에서 지식과 지혜의 차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였다. 지능은 있는 답을 빠른 시간에 찾는 능력이다. 지식은 정보를 통해 습득하는 것이다. 지능과 지식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유형들이다. 직관적 지식을 통해 시험문제만 잘 푸는 지능만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얻은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부류들을 분별해야 한다고 일컫는다. 제대로 안다는 의미의 지성과 지혜는 답이 없는 문제를 평생을 걸고 찾아가는 순고한 능력이다. 이러한 앎에 대한 정확한 구분이 이루어져야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외우는 것만, 시험 성적이 우수하고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그 사람의 도덕성과 인간성까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도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연수까지 다녀왔다. 안중근에게 암살당한 이토 히로부미 역시 1863년 국비 유학생으로 1년간 영국 런던 대학교(University of London) 화학과에 다녔다.
공부를 잘한다고 그 사람이 인격이 완성되고 품성이 바르다는 착각과 오류에서 벗어나야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가시 세계가 아닌 가지 세계의 메타인지 능력으로 인면수심을 한 침팬지 같은 인간과 선하고 이타적인 참사람인지 볼 수 있다.
“제대로 아는 자는(知者) 한방에 얻으려 하지 않고(不博), 한방에 얻으려는 놈은(博者)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것이다(不知).”
聖人不積(성인부적), 既以爲人(기이위인), 己愈有(기유유), 既以與人(기이여인), 己愈多(기유다).
남 : 성인은 쌓아두지 않으니 이미 가진 것을 남에게 주되 내 것이 더욱 많아진다.
장 : 성인은 쌓아두지 않고 남에게 모두 베풀어도 자신은 더욱 가지게 되고, 모두 주어도 자신은 더욱 많아진다.
주 : 성인은 남김없이 남을 위해 베풀지만, 그럴수록 자신은 풍요로워진다. 성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주지만, 오히려 자신의 마음은 더욱 충만해진다.
톨 : 만약 그가 무엇인가를 저장한다면 그것은 남을 위한 경우이다. 그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따라서 그의 저장고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오 : 성인은 쌓아놓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뭐든지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이 가지게 되고, 사람들을 위해 모두를 희사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아 지게 됩니다.
김 : 성인은 재화를 감추어 쌓아두는 법이 없나니, 힘써 남을 위해 재화를 쓰면 쓸수록 자기가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됩니다. 힘써 남에게 주면 줄수록 자기가 더 풍요롭게 된다.
여운 : 성인은(聖人) 쌓으려 하지 않기에(不積), 이윽고(既) 사람들을 위함으로써 (以爲人), 자기에게 점점 있게 되는 것이고(己愈有), 이윽고(既) 사람들에게 베 풀게 되니(以與人) 자기에게 점점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己愈多).
積(쌓을 적) - 쌓다, 많다, 누적되다, 머무르다, 더미, 부피, 넓이, 주름, 저축, 모으다.
旣(이미 기/희) - 이미, 벌써, 원래, 트림, 처음부터, 이윽고, 다 없애다, 끝내다, 쌀.
爲(위할 위) - 하다, 이루다, 만들다, 위하다, 다스리다, 되다, 바꾸다, 길들이다, 삼다, 속하다.
人(사람 인) - 사람, 너, 타인, 백성, 인격, 품성, 체면, 몸, 일손, 인재.
己(몸 기) - 몸, 자기, 자아, 사욕, 어조가, 다스리다.
愈(나을 유) - 낫다, 뛰어나다, 고치다, 유쾌하다, 즐기다, 근심하다, 점점, 더욱, 취하다, 가지다.
與(더불 여) - 더불다. 함께 하다, 같이하다, 참여하다, 베풀다, 허락하다, 간여하다, 협조하다.
多(많을 다) - 많다, 낫다, 더 좋다, 뛰어나다, 많게 하다, 두텁다, 늘어나다, 넓다, 크다, 남다
『숲속의 평등』을 저술한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인류학과 크리스토퍼 보엠 교수를 비롯하여 진화인류학자들의 비교적 공통된 견해는 사피엔스가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절을 수렵채집인(狩獵採集人, hunter-gatherer) 시절로 보고 있다.
남자들은 주로 수렵을 통해 동물 단백질을 공급했고 여성들은 채집을 통해 비타민과 포도당의 집합체인 탄수화물을 공급했다. 배고프면 나가서 잡아먹고 배고프면 나가서 주워 먹거나 잘 익은 열매를 따 먹으면 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명저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불행은 풀을 길들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밀, 보리, 쌀을 재배하는 농사를 시작하면서 인간은 수렵채집을 끝내고 한곳에 정착하여 생활하는 정주생활(定住生活)을 시작했으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잉여(剩餘) 생산물인 식량을 축적(蓄積)할 수 있었다. 인류는 배고픔은 사라졌으나 잉여 생산물의 많고 적음으로써 신분을 나누는 새로운 계급 질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피엔스는 스스로 풀의 노예가 됨으로써 같은 사피엔스에게 지배와 복종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노자는 인간 불행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인과(因果)를 핵심적으로 통찰(洞察)하고 있었다.
“성인은(聖人) 쌓으려 하지 않기에(不積), 이윽고(既) 사람들을 위함으로써(以爲人), 자기에게 점점 있게 되는 것이고(己愈有), 이윽고(既) 사람들에게 베풀게 되니(以與人) 자기에게 점점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己愈多).”
天之道(천지도), 利而不害(리이불해), 聖人之道(성인지도), 爲而不爭(위이부쟁).
남 :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고 해치지 않는다. 성인의 도는 행하고 공을 다투지 않는다.
장 :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할 뿐 해하지 않는다. 성인의 도는 베풀 뿐 다투지 않는다.
주 : 자연의 이치는 만물을 이롭게 하고, 성인의 ‘도道’는 만사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남과 다투지 않는다.
톨 : 하늘의 도는 유용하다.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성자의 도는 선을 창조하고, 다투지 않는다.
오 : 하늘의 도는 이롭게만 할 뿐 해로운 일이 없습니다. 성인의 도는 하는 일이 있더라도 겨루지를 않습니다.
김 : 하늘의 도는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해치지 아니하고, 성인의 도는 사람을 위해 잘하면서도 사람과 다투는 법이 없다.
여운 : 하늘의 도는(天之道), 이로울 뿐(利而) 해롭지 아니하니(不害), 성인의 도는(聖人之道), 스스로 다스림으로써(爲而) 다툴 일이 없게 되는 법이다(不爭).
利(이로울 이) - 이롭다, 이롭게 하다, 유익하다, 편리하다, 통하다, 날카롭다. 이기다, 탐하다.
害(해할 해/할/갈) - 해하다, 거리끼다, 해롭다, 시기하다, 훼방하다, 재앙, 어느, 막다, 어찌.
爲(위할 위) - 하다, 이루다, 만들다, 위하다, 다스리다, 되다, 바꾸다, 길들이다, 삼다, 속하다.
爭(다툴 쟁) - 다투다, 논쟁하다, 간하다, 경쟁하다, 모자라다, 차이 나다, 다툼.
하늘의 도는(天之道), 이로울 뿐(利而) 해롭지 아니하니(不害), 성인의 도는(聖人之道), 스스로 다스림으로써(爲而) 다툴 일이 없게 되는 법이다(不爭). 노자 81장의 마지막 구절이다. 마지막 구절을 어떻게 주해할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고 잠시 시간을 두고 쉼표로 놔두었다. 1장에서 우주의 시작을 알렸으니 81장에서는 인간의 종말에 대한 경고의 글로 마무리하려 한다.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동물 계통학적으로 영장류(靈長類)에 속한다. 그런데 다른 영장류보다 특이점이 많다. 몸집에 비해 엄청나게 커다란 뇌를 가지고 있고 복잡한 언어를 구사하며, 그 어떤 영장류 사촌들보다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엄청나게 복잡한 사회구조를 이루고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명백한 영장류에 속한다. 누군가는 우리가 영장류에 속하며 제3의 침팬지라는 사실이 불쾌하고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오늘날 영장류는 아주 작은 안경원숭이부터 거대한 고릴라까지 약 400종이 알려져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 영장목, 특히 유인원 계통에서 신체적, 유전적 특성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유인원은 생명의 나무에서 아주 가장 최근에 등장했다. 6,600만 년 전에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떨어진 소행성과의 충돌로 공룡이 멸종한 후 지구 대륙에는 포유류가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작은 쥐를 닮은 원시 영장류인 푸르가토리우스(Purgatorius, 6500만 년 전)가 여우원숭이를 닮은 다르위니우스 마실레(Darwinius masillae, 4500만 년 전)로 진화하는 데 2,000만 년이 걸렸다. 이후 두 계통의 영장류가 번성하였다. 하나는 로리스와 여우원숭이로 다른 하나는 안경원숭이로 진화했다. 4,000만 년 전에 좀 더 진화한 영장류인 유인원 아목이 나타났고, 여기에서 원숭이, 유인원, 인류가 나왔다. 이런 유인원 아목은 아시아에서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화석을 보면 코와 입 언저리가 튀어나온 영장류 특유의 얼굴이 이미 짧아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2,500만 년 전, 숲은 다양한 종류의 원숭이로 채워졌다. 꼬리가 없는 프로콘술(Proconsul)은 2,500~2,300만 년 전에 동부 아프리카에 살았는데, 유인원과 원숭이의 특징을 모두 가졌다. 곧 진정한 의미의 유인원이 여럿 등장해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 나갔다. DNA 분석 결과, 이들이 갈라져 오랑우탄과 고릴라가 된 것은 각각 1,600만 년 전과 900만 년 전이다. 또한 각각은 아시아의 시바피테쿠스(Sivapithecus)와 아프리카 대륙에 자리한 에티오피아의 코로라피테쿠스(Chororaphitecus)와 친척관계였다. 약 900만 년 전 아시아에 등장한 거대 유인원 기간토피테쿠스(Gigantopithecus)는 아주 최근까지 존재했다. 사람족인 호미닌(hominin)에 속하는 최초의 아프리카 영장류 중 하나인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 700만~600만)는 우리 조상이 침팬지로부터 분리될 무렵에 살았다. 초기 유인원은 손재주와 지능, 유연한 적응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강한 유대 관계와 복잡한 의사소통이 특징인 다양한 집단을 이뤘다. 그중 일부는 오늘날 여러 유인원과 꼬리 감는 원숭이처럼 도구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구가 작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은 약 400만~300만 년 전에 출현했고, 그 후 다양해져 강력한 이빨을 지닌 거구 형태가 등장했다. 최초의 호모 하빌리스는 약 240만 년 전에 나타났다. 상당한 시간 차가 존재하는 둘 사이를 연결해주는 턱뼈 화석이 2015년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다. 연대가 280만~275만 년 전인 이 화석은 호모 속(屬)의 대표적인 특징을 잘 보여 주지만 뇌의 크기를 추정해볼 만한 두개골(頭蓋骨)의 나머지 부분이 없어서 어떤 인류 계통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호모 속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식단을 바꿔서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특히, 고기의 섭취는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해 인간은 사냥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200만 년 전부터는 인간의 뇌가 커졌다. 그 결과 사회 구성과 크기가 바뀌면서 최초의 지구탐험가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 우리 종(種)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 길고 드디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138억 년 빅히스토리)
138억 년 전 한 점에서 시작하여 호모 사피엔스인 인류의 탄생까지 무한하게 오랜 억겁(億劫)의 시간이 걸렸다. 지구에 등장한 지 가장 막내뻘인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자신들을 품어준 거대 자연에 맞서 지구를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하겠다고 교만과 오만과 꼴값을 떨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나타난 20만 년을 수렴과 채집으로 연명하며 살았다. 농사를 시작한 건 아무리 길게 잡아도 1만 2,000년 전이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이 시대를 신석기 시대(BC10000~BC2200)라고 부른다. 청동기 시대(BC3300~BC1200)를 거쳐 철기시대(BC1200~BC550)를 거치면서 역사 시대로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문명국가를 만들어 나갔다. 노자가 살던 춘추 시대(春秋時代, BC770~BC403)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 36명의 군주가 신하의 손에 시해당하고 140개의 제후국 가운데 10여 개만 가까스로 살아남을 정도로 극도의 무질서와 대혼란이 이어졌다. (문성재 - 새로 읽는 노자 도덕경)
2,500년이 흐른 지금, 노자가 살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쟁은 끊이질 않고 인간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정치와 경제는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하고 인간사회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끝없이 대립하고 갈등한다. 급격하게 변화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소외를 낳고 수많은 사람이 환각과 중독에 빠져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소비와 공급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급증시켜 지구의 기온을 급격히 올려 더워 죽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동식물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몇 년 후면 우리의 식량을 담당하는 풀들의 멸종이 시작될 것이다. 밀과 옥수수, 쌀 등 풀들은 기후변화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종들이다. 지금처럼 인류가 소비와 공급을 늘려나가고 2030년 지구의 인구가 100억 명을 넘기면 지구의 자정능력인 리질리언스를 상실한다. 식량 위기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낳는다. 인류의 종말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내가 인간이 가진 본성을 공부하면서 인간만이 가진 도덕(道德)의 진화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이유가 코로나 전염병이었다. 도덕심은 자기 길들이기이다. 자기를 통제하고 절제하는 고도의 능력이다. 가장 선진적이라고 느꼈던 서구 문명이 코로나 전염병 앞에서 맥없이 무질서해지는 것을 보고, 마스크 하나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썼던 대한민국과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게 바로 높은 도덕심과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개인 지향성이 아닌 우리는 집단지향성, 공동지향성을 유전자 안에 각인(刻印)되어 있구나! 라는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도덕을 진화론적으로 접근한 다수의 진화인류학자의 저술을 읽고 노자의 도덕경을 노자의 언어 그대로 내가 번역해서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구를 실현한 것이 이 책의 결과이다. 인류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노자의 가르침을 인간 개체들과 공동체가 실현하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통일된 지구 제국을 건설하여 지구 안에 닥친 위기를 공동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그 대안으로 노자의 가르침을 지금 당장 지구 구성원들이 실천해야 한다. 내가 노자가 되어 외쳐본다.
“하늘의 도는(天之道), 이로울 뿐(利而) 해롭지 아니하니(不害), 성인의 도는(聖人之道), 스스로 다스림으로써(爲而) 다툴 일이 없게 되는 법이다(不爭).”
지금 우리에게 닥친 공통의 위기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다.
도덕경 마지막 장입니다! 드디어 끝을 보았습니다!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