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마라. 때가 되면 그러지 말라고 막아도 밤송이는 벌어지며 알밤이 툭 떨어진다. 초가을에 이제 막 익어가는 상수리가 쏟아지라고 메나 큰 돌로 참나무 허리통을 마구 두들겨 팼다. 상수리는 좀처럼 꿈쩍 않고 수없이 얻어맞은 참나무 몸통만 너부죽하게 일그러졌다. 며칠 기다리면 저절로 떨어질 텐데 그새를 못 참아 평생토록 상처로 남았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밤송이가 가시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 송충이처럼 생긴 꽃은 볼품없어도 향기는 산자락 가득했다. 꿀이 많아 꿀벌이 열심히 드나들었다. 아카시아 다음으로 양봉업자에게 인기를 누렸다. 밤송이는 여름 내내 가시로 무장하여 빈틈없고 흐트러짐이 없이 삼복더위도 잘 이겨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서 바깥세상이 궁금한지 스스로 그 가시 가죽을 찢고 슬그머니 속 알맹이를 빠끔하게 내보이다가 농익어 더는 견디기에 갑갑한지 탈출하듯 툭 떨어졌다. 밤은 송이마다 한 톨, 두 톨, 많으면 세 톨이다. 혼자는 외롭고 둘 셋은 비좁아도 다정하게 어깨를 기대고 통통하니 야무지게 여물었다. 삼 형제 중 가운데는 양쪽에서 치받혀 너부죽하다. 밤이 익어갈수록 밤송이는 점점 벌어지고 검붉은 알밤이 나무 밑으로 떨어진다. 쏟아지고 남은 빈 껍질은 할 일 끝내고 홀가분하다. 이처럼 자연의 세계는 씨앗인 알밤이 한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머물 수 없다. 알밤은 열심히 주워 담아 수확하고 빈 껍데기가 된 밤송이는 별 쓸모가 없어 기껏해야 땔감으로나 쓰일 정도다. 밤송이가 성장 과정에서 밤톨을 보호하는 데 꼭 필요한 보육 도구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떨어진 알밤은 다람쥐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고 흙에 묻혀 이듬해 새싹으로 움트고 자라서 훌륭한 밤나무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람없이 썩어버린다. 대부분 자신의 노력보다는 타의에 의해 혹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참으로 신비로우며 아름다운 생태계 모습으로 기다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