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도
야구선수도 아닌 내가
국가로부터 여섯번씩이나 헹가래를 받아보았으니
원이 없다
'저 새끼, 연행해,'
평택 미군기지 이전확장 반대 투쟁 때
여덟명의 전경들이
머리가 깨져 혼미한 나를 들고
대추리 논길을 쏜살같이 내달렸다
물침대마냥 쿨렁이던 온몸
하늘도 태양도 흔들리고
푸른 들녘도 흔들리던 황홀한 순간
'잡았다.'
용산 철거민학살 진상규명 투쟁 때
네번째 가투 동을 뜬 당산역 뒷길
중무장한 체포조 일곱명이 나를 들고 기계처럼 뛰었다
컨베이어벨트에라도 올라탄 듯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닭장차 문 앞에서 쫓아온 동지들과 경찰 간에
내 사지를 놓고 다툼이 벌어져
능지처참 당하는 기분만 아니었다면
'.......'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누군가 몇명이 뒤로 다가와
어느 순간 나를 휙 잡아들고
기륭전자 문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닭장차에 인계했다
이렇게 속전속결 전광석화처럼 빠른 헹가래가 있을 수 있다니 탄복했다
기습적으로 망루를 쌓고
경찰과 구사대와 용역깡패들과
시위대가 회오리처럼 얽혀 싸우던 때
연행을 피하려고 격돌 현장 바깥에 서 있었지만
표적이었다
'멈춰.'
멈출 인간들이 아니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촉구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점거 이틀째 늦은 밤 열한시
한순간 문이란 문이 모두 열리며
특공경찰과 국회경비대들이 도적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내 발로 갈 테니 내려놓으라 했지만
밤길의 꿀벙어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국회 경내는 참 조용한 게 좋았다
동맥을 그을까 말까 호주머니에 숨긴 칼이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느라 헹가래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없었다
'제압해.'
세월호 진상규명 청와대 행진이
보신각 사거리에서 방향을 틀고
경찰과 몇시간째 대치하던 때,
방송차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던 나는
서른겹의 경찰벽에 싸인 고립된 섬이었다
위에서 밀쳐 던진 나를 아래에서 토스 받아
럭비선수들처럼 뛰던 경찰들
이렇게 니들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어야 했던 곳은
여기가 아니라 세월호였다고
입까지 연행당한 건 아니어서 악을 쓰던 말
수중엔 유치장 가면 읽으려 넣어온
쌍용차 해고자 르뽀집
[그의 슬픔과 기쁨] 한권뿐이었다
'이젠 나가시죠'
유성기업 한강호 열사 투쟁 때
다시 들어간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이었다
함께 들어가기로 했던 친구들이
문 앞에서 모두 꼬리가 잘려 혼자였다
삿대질을 하며 한참을 싸우던 시간
여비서가 어느 순간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 방금 내 몸에 손댔지, 성희롱이야.'
'다들 봤지요.'
'예.'
'무슨 소리들이야. 당장 CC카메라 확인해.'
'없는데요.'
국회 경위들이 여비서를 따라서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아, 이렇게 정치라는 거짓이 조작되는구나
허탈함에 기운 빠진 내 몸을 들기에
경위 여섯은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