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은 우리 민족의 의성(醫聖)이라고 추앙을 받는 허준(許浚) 선생이 저술한 의학서다. 1596년(선조 29년), 왕명에 의해 내의원(內醫院)에 편찬국을 두고 허준ㆍ양예수(楊禮壽)ㆍ이명원(李明源)ㆍ정작(鄭碏)ㆍ김응탁(金應鐸)ㆍ정예남(鄭禮男) 등이 중국 한대(漢代)에 이미 체계화를 이룬 한의학을 중심으로 동방의학의 총집성과 더불어 민족의학을 정립시키는 대역사(大役事)에 착수하여, 14년 후인 1610년(광해군 2년)에 완성한 25권의 방대한 책이다. 1613년 활자본으로 인쇄 간행되었다.
이 책은 내과에 관계되는 내경편(內經篇) 4권, 외과에 관한 외형편(外形篇) 4권, 유행성병ㆍ급성병ㆍ부인과ㆍ소아과 등을 합한 잡병편 11권, 약제학ㆍ약물학에 관한 탕액편(湯液篇) 3권, 침구편(鍼久篇) 1권, 목차편 2권 총 2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의서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의료와 약재를 선택하고자 했으며, 약재의 속명(俗名)을 한글로 부기하여 편리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옛날 의서(醫書)를 고증할 때 인용한 학설이나 처방의 출저를 명시하여 오늘날의 논문 형식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존숭하여 서로 구해 보려고 애를 먹었다고 하며, 실제로 일본ㆍ중국판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간행 이래로 한의학의 경전이 되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허준 선생의 字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岩)이고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1546년 4월 15일, 양천허(許)씨의 근본 터전인, 김포군 양천면(현재 양천구 가양동)에서 아버지 허론(許碖)과 어머니 손(孫)씨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한 것으로 되어있다. 무인 가정의 서자(庶子)로 태어난 그는 경상남도 산청(山淸)에서 자랐고 청년기에 명의로 알려진 그 곳 유의태(柳義泰)에게서 의학 공부를 하여 醫科에 합격하고 궁중 의사가 되며, 나중에는 한국 최고의 명의로 추앙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연속극‘허준'의 내용과 비슷한 앞서의 허준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몇 가지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을 해주는 학자가 있다.‘동의보감 편찬의 역사적 배경과 의학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설화 비슷하게 남아있는 허준 선생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찾아 10년여의 세월동안 추적을 계속해 온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김호 박사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허준 선생의 생몰연대는 1539년부터 1615년이며, 출생지는 전라남도, 어머니는 전라남도 담양의 효자로 이름난 영광김씨의 서녀로 영광김씨이고, 형제는 형 허옥과 누님 두 분, 동생 허징이 있었으며, 성장지는 전라남도 담양과 해남 일대라고 한다. 스승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고,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는 숙종연간에 살았으며 경상도 산청ㆍ진주ㆍ합천ㆍ거창 등지에서 많은 사람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해내어 신의(神醫)로 명성이 자자했던 유이태라는 사람으로 오히려 허준 선생보다 뒷시대의 인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 정도의 연구 업적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듯 해서 필자는 김호 박사의 주장에 찬성을 하고 있다.
허(許)씨의 시조는 가락국의 김수로왕(金首露王:김해김씨의 시조)의 비(妃) 허황옥(許黃玉) 할머니다. 수로왕과 허황후 사이에는 아들 열 명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아버지의 김씨 성을 따르고, 다음 두 아들은 허씨 성을 따랐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스님이 되셨다고 한다.
가락국이 신라에 의해 무너지면서 각 지방으로 흩어진 자손들이 그 지방을 본관으로 삼게 되어 양천(陽川)ㆍ하양(河陽)ㆍ김해(金海)ㆍ태인(泰仁)ㆍ함창(咸昌)ㆍ수원(水原)ㆍ양주(梁州:梁山)허씨 등이 있다. 뒤에, 허씨 중의 한 분이 당(唐)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갔다가 이(李)씨 성을 하사받게 되어 인천이씨(仁川李氏)가 되는데, 김해김씨ㆍ허씨ㆍ인천이씨 3성은 오늘날 가락종친회를 중심으로 혈족(血族)으로서의 유대를 긴밀히 맺고 있다. 아들이 어머니의 성씨를 따랐다는 데에 기쁨을 감추지 못할 여자 분들이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허황후처럼 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듯한 공로를 세우는 분발을 해 볼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