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아스와 다몬
초등학교 시절 도덕책에서 읽었던 두 친구 이야기가 생각난다. 기원전 4세기 경 그리스에 피시아스라는 사람이 억울한 일에 연루되어 교수형을 받게 되었다. 그는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 달라고 왕께 간청을 했다. 하지만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허락할 경우 선례가 될 뿐만 아니라 범인이 도망이라도 간다면 국법과 질서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때 피시아스의 친구인 다몬이 찾아와 왕께 아뢰었다.
“폐하! 제가 친구의 귀환을 보증하겠습니다. 그를 집으로 잠시 보내주십시오.” 왕이 그에게 물었다. “만일 피시아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친구를 잘못 사귄 죄로 대신 교수형을 받겠습니다.” “너는 진심으로 피시아스를 믿느냐?” “네. 폐하. 그는 제 친구입니다.” 왕은 피시아스를 허락하는 조건으로 다몬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약속했던 날이 되었는데도 피시아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할 수 없이 다몬은 교수대에 끌려 나왔다. 사람들은 우정을 저버린 피시아스를 질책했다. 그러나 다몬은 “제 친구 피시아스를 욕하지 마세요. 분명 사정이 있을 겁니다.”
왕이 집행관에게 교수형 집행을 명령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멀리서 피시아스가 고함을 치며 달려왔다. “폐하, 제가 돌아왔습니다. 다몬을 풀어주십시오.” 이들을 지켜보던 왕은 아름다운 그들의 우정에 감동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다. “피시아스의 죄를 사면해주노라.” 왕은 그 같은 명령을 내린 뒤 나직하게 혼잣말을 했다. “내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이런 친구를 한 번 사귀어 보고 싶구나.”
나에게도 진실한 우정을 나눈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오**이라는 친구를 처음 만났다. 친구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대야 고아원 시설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친구는 평소 말이 없었다. 친구는 항상 자기의 속마음을 노트에 자작시로 남겼다. 지금 딱히 기억나지 않지만 꿋꿋하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4년제 대학에 갈 가정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학비가 들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나란히 학과시험에 합격하고 체력검사와 체질검사까지 통과했다. 그러나 최종면접에서 우리는 낙방하고 말았다. 궁여지책으로 학비가 싸고 2년 후에 직장을 잡을 수 있는 교육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험 당일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는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친구와 함께 다닐 수 없다면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대야에 있는 고아원을 물어물어 찾아 갔다. 친구는 산에 나무하러 가고 없었다. 급히 친구를 찾아 학교에 가니 11시40분쯤 되었다. 수험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몹시 초조해졌다. 큰일이다. 재수할 형편도 안 되는데 어쩌나? 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헐레벌떡 뛰어 학장실로 들어갔다. 당시 김**학장님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너희의 우정이 참으로 아름답다. 꼭 동화 속에 나오는 두 친구 이야기 같구나. 어서 강당으로 가서 시험을 봐라” 하셨다. 너무 기뻤다. 며칠 후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280명 모집에 272명이 지원한 시험이었다. 그래서 간신히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런데 친구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친구의 등록금을 내 주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친구는 서울에서 재수를 해서 야간대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어느 새 1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원서를 사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원서를 사서 보냈다. 원서를 낼 때 예비고사합격증을 첨부하지 않았다. 합격자 발표 전까지 예비고사합격증을 제출해야 한다고 했는데 친구는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불합격처리 되었다. 경쟁률이 2대1이었다. 그 후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남원의 어느 공사현장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를 보는 순간 정말 기뻤다. 친구는 굴삭기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외국 건설현장으로 나겠다고 했다. 그 뒤 소식이 끊겼다. 그래서 아름다운 친구와의 우정은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였다. 다만 마음속에 꼭꼭 접어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다몬과 피시아스의 우정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우리들의 우정은 미완성이었으니 금방이라도 어디에서 나타날 것만 같아 가슴이 아련하다. 그렇지만 하늘아래 어느 곳에서 친구가 살든 건강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친구는 두 개의 몸을 가진 한 영혼이다” 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목숨까지도 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친구야 정말 그립다. 그리고 보고 싶다.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지(2022.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