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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HISA FUJITA is an influential member of the ruling Democratic Party of Japan. As chief of the DPJ's international department and head of the Research Committee on Foreign Affairs in the upper house of Japan's parliament, to which he was elected in 2007, he is a Brahmin in the foreign policy establishment of Washington's most important East Asian ally. He also seems to think that America's rendering of the events of Sept. 11, 2001, is a gigantic hoax.
Mr. Fujita's ideas about the attack on the World Trade Center, which he shared with us in a recent interview, are too bizarre, half-baked and intellectually bogus to merit serious discussion. He questions whether it was really the work of terrorists; suggests that shadowy forces with advance knowledge of the plot played the stock market to profit from it; peddles the fantastic idea that eight of the 19 hijackers are alive and well; and hints that controlled demolition rather than fire or debris may be a more likely explanation for at least the collapse of the building at 7 World Trade Center, which was adjacent to the twin towers.
As with almost any calamity whose scale and scope assume historic proportions, the events of Sept. 11 have spawned a thriving subculture of conspiracy theorists at home and abroad. The only thing novel about Mr. Fujita is that a man so susceptible to the imaginings of the lunatic fringe happens to occupy a notable position in the governing apparatus of a nation that boasts the world's second-largest economy.
We have no reason to believe that Mr. Fujita's views are widely shared in Japan; we suspect that they are not and that many Japanese would be embarrassed by them. His proposal two years ago that Tokyo undertake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into the Sept. 11 attacks, in which 24 Japanese citizens died, went nowhere. Nonetheless, his views, rooted as they are in profound distrust of the United States, seem to reflect a strain of anti-American thought that runs through the DPJ and the government of Prime Minister Yukio Hatoyama.
Mr. Hatoyama, elected last summer, has called for a more "mature" relationship with Washington and closer ties between Japan and China. Although he has reaffirmed longstanding doctrine that Japan's alliance with the United States remains the cornerstone of its security, his actions and those of the DPJ-led government, raise questions about that commitment. It's a cliche but nonetheless true that the U.S.-Japan alliance has been a critical force for stability in East Asia for decades. That relationship, and its benefits for the region, will be severely tested if Mr. Hatoyama tolerates elements of his own party as reckless and fact-averse as Mr. Fuj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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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방 언론의 보도 가운데 아주 흥미로운 점 하나가 발견된다.
우선, 지난 3월 6일,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국가 수반으로는 처음으로 놀랄만한 발언을 했다.
이란 관영 IRNA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란 정보관리들과의 회의에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붕괴된 9·11테러는 복잡하게 얽힌 정보기관의 시나리오와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9·11테러는 테러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위한 구실로 대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이미 지난 1월에도 유사한 언급을 한 바 있지만, 당시에는 “9·11테러가 미심쩍다”며 “중동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언급했었다.)
물론, 이 보도를 전세계가 똑같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이란 정부에 적대적이었던 태도를 취했던 정부나 단체, 개인들은 이란 대통령의 이번 언급을 반서방 경향 정부쪽에서 으례 나오는 단순한 정치적 선전이라고 일축하고 싶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는 이보다 더 멀리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9.11 테러 관련 언급이 있고나서 이틀 뒤인 지난 3월 8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례적으로 한 일본 정치인을 사설에서 다루었다.
이 사설에서 논란이 된 인물은 현재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도 아니고 민주당 간사장이자 '막후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도 아니었다.
이 신문이 문제삼은 사람은 현재 일본 민주당 국제부장이자, 일본 상원 외교조사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후지타 유키히사(藤田 幸久)라는 일본 민주당 참의원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현 일본 민주당 정부에서 일본의 외교관계 문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인 셈이다.
후지타 유키히사(藤田 幸久) 일본 민주당 참의원
그런 그가 이 신문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지난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사건에 대하여 의구심을 표명한 것이다.
(서방 언론 매체들은 이 보도를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언급만큼 국제적으로 확산시키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직접 보도하지 않고 간접보도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 때문에 그가 직접적으로 기자들에게 어떤 말들을 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워싱턴 포스트>지가 간접적으로 전한 바에 따르면, 그는 9.11 테러 사건이 정말로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인지 의심스러워했으며, 이미 이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알려지지 않은 세력들(shadowy forces)" 이 주식 시장을 움직여 이익을 취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이 사건에 연루된 테러리스트들 19명 가운데 8명이 멀쩡하게 살아있으며, 사건 당시 건물들의 붕괴는 화재나 잔해 때문이 아니라 통제된 파괴("controlled demolition")로 설명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일찌기 그는 2년 전인 지난 2008년, 24명의 일본인이 목숨을 잃은 이번 '테러' 사건에 대해 일본이 독립적인 조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워싱턴 포스트>는 그의 주장에 대해 "매우 기괴하며, 설익었고, 진지한 토론을 할 만한 가치가 없을 정도로 가짜"라고 간단히 일축했다.
그러면서, <워싱턴 포스트>지는 "우리는 후지타 씨같은 견해가 일본내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이러한 주장이 일본 민주당과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내에 만연한 반미감정을 반영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동안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미국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중시한다고 재확인했지만, 그와 일본 민주당 정부의 행동은 그러한 공언에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면서, 만약 하토야마 총리가 후지타 씨와 같이 분별없고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요소들에 대해 앞으로도 관용을 베푼다면, 미국과 일본의 동맹관계는 심각한 시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도처럼, 과연 후지타 유키히사 참의원이라는 사람이 "분별없고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부류의 사람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 점에서 우리는 후지타 유키히사 참의원이 어떤 사람인 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08년 12월, 일본 후생성이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광산에 2차대전 당시 전쟁포로들을 투입, 강제노동을 시켰음을 시인한 적이 있다.
당시 이 같은 사실을 계속 부인해오던 일본 정부가 이를 시인한 것은, 전쟁포로들의 강제노동 사실을 입증하는 새로운 문서들이 발견된데 따른 것이었는데, 이 문서에는 1945년 4월부터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약 4개월 간 300명에 달하는 영국과 네덜란드, 호주의 전쟁포로들이 후쿠오카에 있는 아소 총리 가족들이 운영하는 광산에서 강제노동에 투입됐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사건이 정부의 인정까지 받았던 데에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후지타 유키히사 의원이 새로 발견된 이 전쟁문서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사 및 이에 대한 답변을 끈질기에 요구한데 따른 것이다.
당시 후생노동성은 후지타 의원이 제출한 문서들이 모두 진본이라고 밝혔으며, 정부가 당시 전쟁문서들을 조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간과돼 왔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작년 일본 총선 전에도 후지타 의원은 "미국과의 관계는 일본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유엔과 아시아, 유럽과의 관계 역시 중요하며 우리는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지난 2008년, 일본 참의원 외교/방위 위원회에서 9.11 '테러' 사건에 대해 질의하고 있는 후지타 유키히사 의원
마지막으로, 지난 2월 2일 미 평화 연구소(USIP)· 한국 외교안보연구원· 일본 외교국가안보연구원(IIPS)주최로 열린 제4차 한·미·일 3자대화에서 후지타 의원은 더욱 직설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서 참석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조지프 도노반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도 참여한 당시 토론회에서 그는 “미국이 하토야마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 공동체’에 왜 들어옵니까. 원하는 국가에 다 들어오라고 하면, 모든 나라를 다 포함해야겠죠.”라고 발언했다.
(당시 싯점은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 출범 이후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도요타 자동차 문제, 과거 미-일간 밀약 확인 및 공개 문제로 미·일 간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이었다.)
또한, 그는 “대서양 국가인 미국이 언제 유럽연합(EU)에 참여하려 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주창해 결성된 아·태경제협력체(APEC)에 미국이 끼어듦으로써 성격이 흐려진 전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그는 “비밀협약과 불평등 합의가 일본과 미국 두 나라 국민들의 효율적인 관계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 미국 핵무장 군함의 일본 영해 통과 및 기항을 사실상 허용한 미·일 핵밀약 의혹을 간접적으로 제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