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잊기 위해 이곳 묵호 발한 삼거리로 내려왔다.
그곳은 동해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던 곳이다.
그래서 슬펐다!
아름다운 동해 바다는 그녀가 없어서 더욱 슬펐다!
아침에 일어나면 태양이 거실 가득 들어서곤 했다.
그래서 슬펐다!
가슴 한가득 바닷바람이 가득 채워지고, 동문산 자락의 신선항 공기가 방안 깊숙이 들어섰다.
그래서 슬펐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동해 바다를 아내와 항상 같이 내려다 보았다.
1988년 결혼을 하고, 학교 수업 때문에 신혼 여행을 설악산 하루 갔다 오고 일본으로 와야 했다.
맞선으로 만난 아내는, 남편이었던 내가 낯 설었으리라.
학교에 갔다오면 항상 아내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다.
학교의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일본어 교실에 자전거로 태워주고, 아내 스스로 일본어를 하게 되면서 다행히 아내의 鄕愁病 조금씩 사라졌다.
첫 아이를 낳고, 젖 몸살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내를 위해, 나는 밤새도록 마사지 해야 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 아이가, 하라주쿠의 코스프레를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아내와 나는 태교를 잘못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일본을 항상 그리워 했다.
그래서 일본에 어학 연수 갔다가 후쿠시마 핵 때문에 다시 돌아오고, 그것 때문인지 백혈병에 걸려서, 나와 아내를 마음 아프게 했다.
아내가 없는 그곳 경치 좋은 아파트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 발한 삼거리 원룸으로 내려왔다.
겨우, 아내로부터 벗어나고 우울증을 이겨내고 이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묵호 발한 삼거리에서 아내를 다시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