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옷자락이 번쩍거리고 구두가 번쩍거리고 머리가 번쩍거리고 얼굴이 번쩍거리고 눈동자까지 번쩍거린다. 보는 것으로 어질어질 현기증이 돈다. 때 빼고 광낸다더니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같다. 푸른 하늘에 해님도 번쩍거린다. 온 세상 생동감으로 넘쳐흐른다. 어느 날 소문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깨비불 같다. 바지런한 것인지 오지랖이 넓은 것인지 아무튼 쉴 틈 없다. 홍길동이냐 임꺽정이냐 여기 번쩍 저기 번쩍 한곳에 머물지를 못하고 나돌지 싶다. 번쩍이면서 한순간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게 아닌데 한눈팔면 다시 번쩍 깜짝 놀라서 가슴까지 번쩍인다. 무더위에 시달리며 참고 참느라 녹초가 되었다. 길가에 잔디밭도 벌겋게 타들어 간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들어 하늘을 뒤덮으며 사방팔방이 컴컴해지는가 싶더니 몇 번 번쩍, 번쩍하다가 우르릉 쾅. 하늘을 찢고 고막을 찢는다. 순간 바짝 오그라드는 가슴에 새파랗게 질린다. 눈을 부라리는 불빛에 소리로 혼비백산이다. 네 잘못 네가 알지 않느냐고 호통이다. 지난날이 필름으로 잽싸게 돌아간다. 잘한 것은 없고 이것저것 잘못하고 잘못된 것뿐이다. 이유나 변명은 필요 없다. 내 탓에 내 잘못이다. 용서를 빌 시간도 없다. 반복해서 번쩍 우르릉 쾅. 파랗게 질려서 빠른 호흡에 가슴 철렁거린다. 무기력에 적막이 감돌며 어디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까아악 까악까악 울부짖는다. 누가 들으라고 힘주어 울어 쌓는지, 긴박한 상황에 다급하게 전하는 메시지인지 아리송하다. 그러지 말았어야지. 처음부터 잘 했어야지. 그러지 말라니까 왜 그랬냐고 다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질문도 책망도 의심도 아니다. 입이 열리지 않는다. 혼자 마구 돌고 돌아가는 필름에서 갑자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빛이번쩍인다. 얼렁뚱땅 넘기려고 잔꾀를 부리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라고 한다. 거저 얻는 무임승차는 아예 생각지 말라고 한다. 흐리멍덩해지는 마음에서 벗어나라고 찬물을 끼얹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