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게 묻고 싶은 말 외 2편 / 임봉금

파도에게 묻고 싶은 말 외 2편임봉금  종교가 없어 내 편이 없습니다다들 하나님 부처님 백그라운드 삼아거칠 것 없이 돈을 벌고 사랑을 사고조직적 연대감도 뛰어나타인은 안중에도 없더군요 위로가 필요하지만 언어는 피곤합니다과묵하고 편안한 품이 그리워도시를 탈출합니다이상하게 바다는 편안합니다나만의 종교 나만의 어머니강요하지 않고 꾸짖지 않아 좋습니다 한 가지 언어로만 소통이 가능합니다바다는 파도가 언어입니다내가 묻습니다나는 나쁜 짓도 나쁜 마음도 없는데왜 가난할까요먹고 사는 게 힘들어 죽겠어요 파도가 자잘한 물보라를 일으키며서너 번 왔다 갑니다너무 조용하여 못 알아듣습니다혼자서 생각을 합니다그래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어떤 남자 이야기를 묻습니다나를 헷갈리게 하는 남자 이야기입니다순간 아득히 먼 곳에서깊은 여운을 끌고 오는 파도가 보이더니순간 짧고 단호하게 부서집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그렇게 시시각각다른 형태로 몰려오는 파도와 씨름을 하다 보니허기가 집니다영혼의 고갈로 황폐해져 찾아온 바다폭발적 식욕이 부끄러워집니다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어쩐 지 다 알아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허기가 생기니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겨울 문턱에서 희한한 경험이다조바심이 없어지네어른이 되면 조심해야 할 것들벌써 부터 나는 어른이었나 보다몸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버린 조숙증 환자한 번도 아이인 적이 없었던성숙한 굴레가 감옥이 되어 버린죄목을 알 수 없는 수감자였나 보다 세월이 열어 놓은방향을 알 수 없는 문비로소 주변을 돌아보지 않아도 됐다이런 것이었구나나만 행복하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애초부터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고혼자만 조바심으로 세상을 사랑했었다 더는 묻지 않아도 좋고 알지 못해도 좋을너무 늦게 찾은 나의 지천명조바심이 사라졌다      바다의 전설 그 옛날아주 오만하고 건방진 천사가 있었어요날개가 무슨 훈장인 양거들먹거리며 잘난 체를 했지요사실 이 천사의 날개가 가장 크고 아름답긴 했어요불이 났어요다른 천사들은 서로의 날개로서로를 보듬으며 아름답게 죽어 갔지만이 천사는 혼자서 날갯짓 하며 버둥거리다볼썽사납게 바다로 떨어졌지요 그곳에선 날개 따윈 필요도 없었어요지느러미가 있어야 했지요서로를 보듬다 바다로 추락한 천사들은지느러미를 선물 받았지만이 천사는 여전히 날개뿐이라 허우적거렸어요날개 천사는 지느러미 천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혼자 바위 위에 앉아 부상당한 날개를 손질했지요 사람들이 보였어요바다에서 뭔가를 건져 올렸어요지느러미 천사들이네요사람들이 웃고 좋아합니다천사들도 기꺼이 웃어 줍니다함께 웃는 순간 천사들은 날개를 얻어 날아오릅니다 바위 위 천사의 날개는이미 너무 상해 움직일 수가 없어요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아팠지만신을 원망할 수가 없었어요뭔가 자신이 잘못된 것 같았거든요이대로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날개 따윈 아무렇게나 돼도 상관없다고 죽지 않았어요지느러미 천사들이 바다를 이끌고날개를 어루만지며 손질해 주고입까지 맞춰주고 있지 뭐예요날개 천사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려 봤어요심장이 뜨끈해져 이대로 녹아 버리는 것 같았어요그런데 이상하게 상쾌해졌어요그 후로도 바다는 천사가 외롭지 않게줄곧 찾아와 주고 소리도 들려주고 날개를 회복했지만천사는 날아오르지 않았어요그 아름다운 날개를 바다에 돌려주고천사이기를 사양하며그대로 바닷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바다는 천사를 품고천사는 바다가 되어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포용합니다    시인의 사색   고백을 하나 하자면 아무래도 나는 성격적 장애가 있는 듯싶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성격과 심성 이 두 가지 요소가 심한 불협화음을 내는 바람에 내 정신은 온전히 평안하지가 않다. 아마도 내 글도 그럴 것이다. 예를 들면 여름철 둥근 모기향을 분리하지 못한다. 태극 문양으로 뒤엉킨 모기향을 분리하다 보면 내 인내심에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한쪽으로 잡고 한쪽으로 누르고 그래도 분리되지 않는 반복적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 피를 말린다. 한 번도 모기향 분리에 성공한 적이 없다. 또는 잘못 삶아진 달걀 껍데기를 벗기지 못한다. 껍질과 흰자가 착 들러붙어 도무지 곁을 주지 않으니 시도하는 내내 온몸이 간지럽고 기분 나쁜 요의를 느끼다 포기한다. 하나 더, 지퍼백 지퍼 아귀 맞추기에 심한 노여움을 느낀다. 도무지 닫히지가 않는다. 여기까지가 내 성격적 장애 부분이다. 인내심과 차분함은 내 몫이 아닌 듯싶다. 심성적 문제점은 지나친 감정 이입에 있다. 모든 무생물적 사물에도 내 감정을 넣어 사유하다 보니 혼자서 오지랖 끝에 희로애락을 반복하다 탈진하곤 한다. 문득 모든 미소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이 모든 불안정한 기운이 내 글 내 미소에 스며들어 어쩐지 불안하고 위태롭다. 매일 웃는 연습을 새로 시도해 보지만 결국엔 참담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름답지 않은 미소로 나를 대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정체성은 숙명인 것을. 미소를 그만둘 수 없듯이 글쓰기 또한 그렇다. 내 안의 혼란과 감정의 오지랖에 치이지 않도록 최대한 다독이며 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