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선사(漢岩禪師)
여기에서 말한 ‘일귀하처(一歸何處)는 화두(話頭)를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일(一)각(覺) 주인공(主人公)을 보라‘는 것이 반조(返照)를 말함이 아니겠는가.
고봉은 이미 ‘일귀하처’에서 굳건히 정(定)을 잡고 주인이 되었는데,
설암스님은 무엇 때문에 힐책하여 다시 ‘일각주인공’을 보도록 하였을까?
이는 특별히 화두를 보는 가운데 철저하지 못한 자를 위하여
이와 같이 가르쳐준 것이니, 과연 무엇이 우수하고, 무엇이 열등하며,
무엇이 원만하고, 무엇이 편벽하다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는 깨달음이 철저하고 못함이 사람의 진실과 허위, 구경(究竟)을
얻었느냐와 못 얻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방편의 우열(優劣)과 심천(深淺)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삼가 불조(佛祖)의 정법(正法)상에서 부질없이 이견(二見)을
내어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을 지어서는 안될 것이다.
종고 선사가 영시랑(榮侍郞)에게 보내는 답서에 이르기를.
“다만 일상생활의 인연이 있는 곳에서 무시로 살피되,
내가 타인과 더불어 명쾌히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끊어 버림은
누구의 은혜를 입은 것이며, 필경 어느 곳에서 유출되었는가를
살피고 살핀다면 평소 생소한 곳이 스스로 익숙해질 것이니,
생소한 곳이 익숙하여지면 익숙한 곳은 도리어 생소하게 될 것이다.
어느 곳이 익숙한 곳인가.
5음(五音), 6입(六入), 12처(十二處), 18계(十八界), 25유(二十五有),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사량계교(思量計較)하는 심식(心識)이
밤낮으로 아지랑이처럼 번뜩여서 잠시도 쉼이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하나의 끄나풀이 사람들로 하여금 생사에 유랑케 하며
모든 고통을 만들어 내지만,
이 하나의 끄나풀이 이미 생겨나면 보리열반과 진여불성이
문득 현전(現前)하게 될 것이다.
현전(現前)한 때에 이르러서는 또한 현전(現前)한 사량(思量)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스님이 깨달음을 얻고서 말하기를.
“눈에 응한 때에는 일 천 개의 태양이 비춤과 같아서
만상이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귀에 응한 때에는 깊은 골짜기와 같아서 크고 작은 소리가
족히 응하지 않음이 없다.”
고 하니, 이와 같은 일들은 다른 데에서 구하지 않고
다른 힘을 빌리지 않은 것이다.
자연히 인연에 응할 때에 활발하고 활발한 것이다.
이와 같음을 얻지 못한다면, 또한 세간의 속된 일을 사량하는 마음으로,
사량이 미치지 못한 곳을 돌이켜서 사량하여 보아라.
어느 곳이 사량이 미치지 못한 곳인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스님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이 하나의 글자에 어떠한 기량이 있는 것일까?
청컨대 안배하여 헤아려 보도록 하라.
계교와 안배를 놓아 둘 곳이 없을 것이니,
다만 뱃속에서 번민하며 마음에서 번뇌할 때가 바로 좋은 시절이어서
제8식(第八識)이 서로 차례로 행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깨달은 때에는 놓아 버리지 말고 다만 ‘무자(無字)’를 들어야 한다.
이를 들어오고 이를 들어가면, 생소한 곳은 스스로 익숙하고
익숙한 곳은 스스로 생소하게 될 것이다.“ 고 하였으니,
대체로 일용 인연처에서 살피고 살피는 것이 반조(返照)가 아니겠는가.
사량진로(思量塵勞)의 마음을 가지고서 ‘무자(無字)’상으로 돌아가
이를 들어서 놓지 않는 것이 화두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종고선사 또한 사람들에게 반조하는 법을 가르쳤고,
겸하여 화두 드는 법의 대략을 보여주었느니,
다만 그 법의 대략만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분명하고 분명하게 말씀하기를,
“보리열반과 진묘여불성(珍妙如佛性)이 문득 분명하게 드러나서
스스로 생소한 곳은 스스로 익숙하여지고
익숙한 곳은 스스로 생소하여진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미루어 살펴본다면, 화두를 드는 것과 반조하는 두 가지의 공부에서
그 효험을 얻음이 어찌 깊고 얕음이 있겠는가.
옛 사람이 이와 같이 가르쳐 준 기연을 하나하나 낱낱이 들어 말할 수는 없으나
모두 반조와 간화(看話)로써 차별 상을 가지지 않았거늘,
오늘 나의 학인들이 서로가 공격하여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 이처럼 배워 왔는가.
혹자는 본분화두에 따라서 여법(如法)히 참구(參究)하다가,
조금 쉬어진 곳이 있으면 곧 만족하다고 생각하여 다시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조금 이로(理路)를 섭렵해 보았다 하면 곧 이를 쓸어버리고자 하여 발자취를 없애니,
이는 불조(佛祖)의 가르침 가운데 무한한 방편이 모두 의리(義理)에서 나와서
진흙에 들어가고 물에 들어가 사람들을 위하여 철저하게
큰 방편을 삼은 줄 알지 못하니,
이러한 사람들은 냉담무위(冷痰無爲)의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 꼼짝도 하지 못한 자이다.
혹자는 반조의 법문으로써 여실히 참구하다가, 조금이라도 응집된 기미가 있으면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하여 다시금 자세히 살피지 아니하고,
기특한 생각을 가져 사람을 만나면 곧바로 도리를 말하고 지견을 나타내니,
이는 납승가(納僧家)의 본분정령(本分正令)이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으며,
뼈에 사무치고 골수에 사무쳐 거듭거듭 모조리 명근(命根)을
끊어버리는 참수단인 줄 알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은 문호(門戶)의 빛과 그림자를 잘못 알아서
구경(究竟)의 안락처로 삼은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하고서 방치한다면, 우리 부처님의 바른 종지가
거의 땅에 떨어질 것이니, 애통하고 애석한 일이 아니겠느가.
생각이 여기에 미침에 그대가 물은 바는 때에 맞게 힘써야
할 일을 바로 알고서 물은 것이라 하겠다.
내 비록 얄팍한 지식에 공부한 게 없으나
어떻게 한 마디 말로 분명한 것을 가려서 말류(末流)의 폐단과
고질병을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와 같이 말하기를,
그러나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학인은 다만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사구(死句)는 이로(理路)와 언로(言路)가 없고
재미와 모색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참선을 하는 동인이 반조와 간화를 막론하고 여실히 참구하는 것은,
마치 서로 한덩이의 불과 같아서 가까이 하면 얼굴을 불태우게 된다.
모두 불법의 지혜를 조처할 곳이 없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화두니, 반조니, 같으니, 다르니 하는 허다한 것들을 논할 수 있겠는가.
다만 한 생각이 앞에 나타나 투철하게 관조하여 남음이 없으면,
백천 법문과 무량한 묘의(妙意)을 구하지 않고서도 원만하게 얻어서
여실히 보고 여실히 행하며 여실히 작용하여 생을 벗어나 죽음으로 들어감에
큰 자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오로지 모든 생각들이 이에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제 11문> 온 누리의 사람들이 색을 보고 색을 초월하지 못하고
소리 를 듣고 소리를 초월하지 못하니, 어떠한 것이 소리와 색을 초월한 것입니까?
(* 이 아래의 열 가지 물음은 나옹조사의 물음을 그대로 인용한 것임)
<답> 성색(聲色)을 초월하여 무얼 할까.
(* 이 아래의 열 가지 물음은 나옹조사가 공부의 절목(節目)을 물은 것이 기 때문에
착(着)어(語)를 붙이는 데 그칠 뿐이다.)
<제 12문> 이미 소리와 색을 초월하였다면 반드시 공부를 하여야 할 것이니,
어떻게 바른 공부를 해야 합니까?
<답> 벌써 삿됨 이로다.
<제 13문> 이미 공부를 하였다면 반드시 공부가 익숙해야 할 것이니,
공부가 익숙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답> 밥이 익는 것은 그럴싸하지만, 공부가 익는 것은 아니다.
<제 14문> 이미 공부가 익숙하였다면 다시 더욱 콧구멍을 잃어야 할 것이니,
콧구멍을 잃어버릴 때는 어떠합니까?
<답> 익숙된 공부 이전에도 또한 콧구멍이 있는가, 없는가.
<제 15문> 콧구멍을 잃어버리면 냉랭하고 담담하여 전혀 맛이 없고
힘이 없어 의식이 미치지 못하고,
마음이 행하지 않는 이 러한 때에도 또한 환신(幻身)이
사람에게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하니,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시절입니까?
<답> 환화공신(幻化空身)이 곧 법신(法身)이요. 무명실성(無明實性)이 곧 불성(佛性)이다.
<제 16문> 공부가 이미 동정(動靜)에 사이가 없고 자나깨나 항상 한결 같아서,
부딪쳐도 부서지지 아니하고 방탕하여도 잃지 아니 하며,
마치 개가 뜨거운 기름 솥을 넘보는 것처럼 햩으려고 해도 햩을 수 없고,
버리려 해도 버리지 못할 때에 이르러 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절대 자만하지 말라.
<제 17문> 갑자기 120근의 짐을 부려버리는 것처럼 졸지에 꺾이고
갑자기 끊어진 때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것이 자성(自性)입니 까?
<답> 장한(張翰)이 강동으로 떠나가니, 바로 가을 바람이 불어온 때이다.
<제 18문> 이미 자성을 깨쳤다면 반드시 본용(本用)과 응용(應用)을 알아야 할 것이니,
어떠한 것이 본용과 응용입니까?
<답> 몸을 감춘 곳에 자취가 없고, 자취가 없는 곳에 몸을 감추지 말라.
<제 19문> 이미 본성의 작용을 알았다면 생사를 초탈해야 하니
눈빛 이 땅에 떨어질 때(죽음을 말함)에는 어떻게 초탈해야 합 니까?
<답> 잠꼬대하지 말라.
<제 20문> 이미 생사를 초탈하였다면 갈 곳을 알아야 할 것이니,
사대 (四大)가 각기 나누어짐에 어느 곳을 향하여 가야 합니까?
<답> 일면불(一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니라.
<제 21문>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 온다면, 어떻게 제접하실렵니까?
<답> 너에게 대도(大道)를 체득하도록 하여줄 것이다.
또 물었다.
“이미 이러한 사람인데, 어떻게 대도를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답하였다.
“다만 이 하나의 봉합(縫合)을 오히려 어찌 할 수 없다.”
다시 물었다.
“위에서 말한 스물 한 가지의 대답은 철저하고 철저하지만
이후의 한 방망이는 어떻게 상향하시렵니까?”
답하였다. 양(養)화(化)병(柄)을 치면서 말하기를, “무슨 견해를 일으키는가.”
또 물었다. “나를 잘못 치지 마소서.”
답하였다.
“그만 두어라. 그만 두어…. 말하지 말라.
나의 법은 오묘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한암선사 일대기>
봉은사 판전성원시절
망월사 계단에서 인례(引例)를 맡은 스님은 지금의 조계종 종정이신 고암 스님이다.
당시는 이름을 상언 스님이라 했었다.
그해 삼동 결제는 봉은사 판전성원이었는데 역시 쟁쟁한 선객들이 운집하였다.
정금오(鄭金烏) 이단암(李檀庵) 이탄옹(李呑翁) 이백우(李百牛) 설석우(薛石友)
하정광(河淨光) 장설봉(張雪峰) 정운봉(鄭雲峰)
그밖에 여러 스님이 계셨는데 과연 눈 푸른 납자들뿐이었다.
정진도 짬지게 계속하였지만 당시 의호도 훌륭했다.
당시에 대중들의 이름을 보면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설석우스님은 한때 정화운동과정에서 비구승종단의 종정을 지내셨고
그밖에 스님들 모두가 견성한 스님으로
오늘의 한국불교를 형성해간 주도니 산맥인 것을 알 것이다.
금오 스님은 그 당시 이름을 운정이라 하였었다.
그때 외호는 을축년 장마때 칠백팔명의 인명을 구한 것으로
너무나 유명한 나청호(羅請湖) 주지를 잊을 수 없다.
그는 극진하게 외호하였었다.
워낙 한암 조실스님이 생불(生佛)이라는 호가 널리 퍼져 있기도 하였고
유상궁 백상궁 들을 통한 궁중공양도 종종 있었다.
봉은사 판전선원에서는 비록 한철을 지냈지만
선방을 중심한 사중과 사부대중의 협동단결은
나의 기억에서 길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음은 하편에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한암선사 일대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