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하나로 통하는가?
클래식 기타를 공부하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 중의 하나는 아마도 "연주자는 자신이 만드는 음 하나 하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풀륫을 배울 때에도,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대가들이 연주하는 음반을 듣노라면 처음에 짜안~하고 나오는 소리만 듣고도 얼마나 큰 내공이 숨어있는지 알 수 있다. 앙헬 로메로의 스페인 모음곡을 들으면 그는 실로 큰 공력을 가진 기타리스트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리의 윤기, 크기, 관통력, 호소력 등 모두가 일반 기타리스트들과는 다른 것을 느낀다. 아니,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이 국내의 지명도있는 연주가들의 음만 들어도 일반 대중(아마추어를 포함)들이 내는 기타소리와는 다른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흔히 <동네 기타>라는 말로 보잘 것 없는 기타연주를 일컫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가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중에 약간 뛰어난 사람들은 남 앞에서 소품이나마 연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 앞에서 소품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클래식이건, 팦송이건, 재즈이건 대단히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혼자서 독주회를 가지는 사람들이야말로 분명히 수준급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음 하나 하나는 범인들의 것과는 다른 내공을 가진다. 그래야만 연주가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무대의 첫 곡에 연주자가 내는 음 하나만 듣고서 시원찮다고 생각되면 객석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사람도 보았다.
이런 일들이 팦 연주나 재즈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기는 하겠지만, 전기의 도움이 없이 나무 소리통을 이용하여 음악을 만들어 내는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에게는 내공이 실려있는 예술적인 음을 만든다는 것이 아주 심각한 요구사항이 아닐 수 없다.
플라멩꼬 기타리스트들의 상황은 어떨까?
외국의 사례는 나는 아주 많이는 모른다.
플라멩꼬 기타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지 몇 년 되지 않지만 나름 대로 느낀 바가 있어서 몇 자 적으려 한다. 플라멩꼬 기타는 클래식 기타와 그 접근 방식이 다소 다른 듯이 보인다.
먼저 플라멩꼬 기타를 공부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기초과정이 있는데 아주 많이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비록 플라멩꼬 기타가 현대적이며 체계적 공부를 하지 못한 안달루시아 사람들이 많이 연주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비카스나 리카르도, 근래에는 파코 데 루시아 같은 훌륭한 사람들을 배출하였지만, 그 사람들은 극히 예외적인 인물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파코 데 루시아의 가슴을 관통하는 음을 느껴 본 사람들은 그가 보통 공력의 연주자가 아니라는 점을 수긍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연주는 정갈하고 실수가 없다. 그런데 그는 소위 말하는 escuela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한국의 김막동이도 파코와 같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어디에나 예외적 인물들이 있는 법이지만 그들을 보편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흔히 어느 어느 기타리스트의 소리는 이러 이러하다고 말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일부 플라멩꼬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리에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다. 반주를 주로 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다. 반주의 화음은 단음으로 이루어지며 정갈한 단음의 집합체인 화음이라야 듣는 사람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다.
이전에는 물론 흔하지 않았겠지만, 지금 스페인의 플라멩꼬 연주자나 교육자들은 <기초교육>에 큰 신경을 쓰고 있다. 그들이 매년 만들어 내는 플라멩꼬 기타 교본은 클래식 기타와 비슷하게 exercises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찌 보면 클래식 기타의 교육 방법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책 들을 출판하고 있다.
개인적 경험으로, 플라멩꼬 기타도 클래식 기타에서 하는 것과 같은, 아니 조금 더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만일 플라멩꼬 기타를 라스게오나 하는 <동네기타> 정도로 알고 세월이 가면 늘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이며 절대로 자신의 발전을 기대해서는 아니된다.
기타의 기초적인 연주법, 충분한 연습곡, 효율적 교수법 등을 통하여 플라멩꼬 기타리스트가 나오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길 '플라멩꼬는 그쪽(스페인) 분위기에 젖어서 세월을 오래 보내면 무용이건 기타건 이루어지는 것이고 클래식 기타와는 다른 그 무엇(know-how)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플라멩꼬 기타를 연주하려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이 분야는 기술과 주법 상 크게 다른 몇 가지를 제외하곤 클래식 기타와 다를 것이 없으므로 매일 스케일과 연습곡 등을 충분히 연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작품을 생각하는 것이다.
플라멩꼬 기타의 선생(본토)들은 생각보다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자신이 하는 것과 같은 음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다시 해! 다시 해!"하며 야단치고 심한 말도 한다. 비록 그들이 악보는 볼 수 없었을 지라도 우리나라 판소리의 명인들처럼 자신의 제자들을 혹독하게 가르쳐서 자신과 동일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의 현실은?
클래식 기타인이나 플라멩꼬 기타인이나, 은연 중에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그곳의 선생이나 학생들처럼이라도 하고 있는가?
그러나...............
클래식 기타나, 플라멩꼬 기타나, 플륫이나, 바이올린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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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