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신비(사람의 생각=비물질)
무엇이 그토록 서러운 일을 만들어 버렸을까? 생명의 본이 무엇이고 생명의 숨은 무엇을 타고 흐른다는 말인가? 대본도 없는 역사의 창에서 나는 그렇게 엄청난 영역에 노출이 되어 있었다. 가면 갈수록 깊어지는 바다에서 난 도무지 주님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주님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딸아? 연비와 생략하고 보름과 주님하자꾸나! 인간의 의지는 그 무엇에도 갇히지 않느니라! 그러나 주님! 내가 나를 모르던 시간을 넘어 나는 태어나 있지 않았는지요? -기침이 발생한다 - 발음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 기감계는 인상에 갇혀 있는 것이 싫은가 보다. 그러면 지식은 무엇으로 만들어 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대뇌는 소뇌를 다루고 있지만 대뇌는 소뇌의 일을 통해서 살고 있는 물질이 아닌가? 예수더 알기 원합니다. 셀라하고 보름해서 마음의 주를 바로 알기를 원합니다. 조용히(why) 머리를 숙이고 나를 돌아본다.
하나님 전상서. 부모님 전상서였다. 언제 인침을 받았느냐? 네 주님! 주후 이천 칠년에서 육년하고 육년에서 오년과 더불어 팔년입니다. 아람어와 비어하고 속어와 예수해서 그 증세를 연합해 주겠느냐? 발작이었고 두려움이었고 공포였고 상함으로 오신 주님입니다. 베드로 전후서를 묶어서 요한복음의 영성으로 마태복음 십 육장 십육절이 입으로 선포되면서 그 엄청난 기감이 나를 휘감았는데 차거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서 사지가 떨리던 시간입니다. 영이 나를 다스렸는데 그 일에 내 몸이 엄청난 영력으로 힘이 주어지면서 사지가 떨리면서 발악을 하던 시간이군요! 자세한 것은 생략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뱃속의 상황도 설명해 주겠느냐? 네 주님! 다양한 소리들이 발생이 되는데 이유는 모릅니다. 설사와 설사기운하고 설기와 설형문자를 내 조국의 언어(목이 뻣뻣해 진다)법으로 기도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문자를 굵은 글씨로 설정한다. 왼쪽 가슴에 통증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설사 기운들은 복부에서 요란한 소릴 내고 있다.
*))* 선포되는 입술의 말은 베드로의 고백이었다. 그런데 내 혼과 영으로 인침을 당한 그 기운을 없애 버리겠다고 선포한 입술의 말은 이사야서 오십 삼장 오. 육절이었다. 주일 아침이었고 주후 이천 육년 십이월 삼십 일일이었다.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에서 운영자로 있을 즈음이다. 쉐아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이 카페에 있었는데 혹여 그 분께 상함이 전달 될까봐 양해를 구하고 먼저 카페를 나와 버렸다. 그리고 일어나는 몸의 기운은 내가 감당이 되지 않는 기이한 증상이 엄습했는데 뭔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불안하면서 몸이 휘감겼다. 마음은 영을 안다. 생각의 물질이 조성되기도 전에 율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이 생각이고 생각이 마음이라는 것을 전혀 직감하지 못했기에 함부로 영원(나노/미터=영상과 영원하고 영물과 몸속 한다. 별들의 움직임이니라! 딸亞! 오호라! 아니 이들이 어떻게 성운과 연합이 된다는 말인지요? 아버지의 영을 이루는 남성의 물자가 아니었더냐? 남성? 그랬다. 아버지. 오빠. 남편이 이름으로 임제한 영을 좇아 버리겠다고 하다가 혼이 났던 사건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게바하고 요셉과 여호수아를 묶어서 욥바성을 주님의 이름으로 엮어 드린다. 디엔에이와 알엔에이를 가지고 물질과 비 물질들이 바른 기감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의 물자를 선포하다가 엄청난 장력에 몸이 응징을 당했던 사건이다.
*))* 영은 안. 밖에서(창세기법) 존재한다. 기억은 그 품(기도가 막힘)을 가지고 인을 치고 있었는데 그 분의 의가 그들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도 못하고 믿음으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선포하다가 혼이 났다. 발작을 하고 숨이 막혀서 쓰러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충의 믿음으로 여섯 시간이었다. 믿음으로 환영을 좇겠다고 하다가 그 환영이 내 속을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불안한 증세가 감지되었고 나는 이미 어떤 기운에 내가 연합이 되어 있었는데 이사야서의 말씀(왼쪽 얼굴 광대뼈에서 근육이 통증을 이룬다)을 가지고 내 의를 이겠다고 하다가 내 몸이 영과 혼으로 발작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선포하는 입술의 말은 소용이 없었다. 성경책을 가슴에 꼭 안고 눈물이 범벅이 되면서 주님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분열을 했다. 우선 숨이 막혔고 경험하는 증세와 더불어 환영이 엄습했는데 주후 이십 세기를 가지고 십이세기 중세로마라고 하였다. 저승사자의 형상이 머리와 몸을 가지고 중세 로마 사도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빨리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주님의 품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되는 입술의 말은 그랬다. 아하! 아멘! 그렇군요! 굿투씨유! 굿바이를 연합한다. 주님의 날에 이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드러날 것이다.
*))* 영은 혼상이었다 -오른쪽 뱃속에서 꾸르르 소리를 낸다 - 그리고 영은 문상이고 인상이고 예상이고 예감이었다. 내가 멋모르고 내 안에 어둠의 영을 용서하고 수용하면서 빛과 그림자를 이루는 여정에 주님(퇴마..대퇴부. 치통. 치주염. 치골. 치샘)은 나를 품고 축사의 일을 경험하게 도왔다. 그 일은 보통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증세는 아니지만 아주 독특한 품이었고 사람의 속이었지만 그 증세와 증상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육감이 더 많았다. 우선 문자법으로 대충 연합한다. 복부에서 요란한 유산소 운동이 연합하고 있다. 딸아! 발원지가 어딘지 이해를 하겠느냐? 아직(치조골)은 잘 몰라요! 인상으로 드러나는 문자는 그렇지만 그 속을 따라가 보니 나는 없고 주님만 남았던 것이다. 육체는 병이 들면 정신의 모든 활동이 마비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의지가 의식을 이루는데 영안의 붉은 반점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축사를 했는데 그들이 뿌리를 건드렸던 것이다. 두피에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가려움이 주어진 모든 몸의 증세를 연합한다. 알르러기 증세와 더불어 몸의 감각 신경이 발칵 뒤집히는 몸의 감각계이다. 갑자기 송과샘이 나를 다루고 있다. 이명이 일어나면서 몽롱한 증세와 함께 복통은 여전히 요란하다. 이유는요? 눈에 들어온 기감을 굵은 글자로 설정한다.
잠시 묵상이 주어진다. 영과 혼과 몸이었다. 영과 혼과 상이었다. 의지는 불수를 이루었지만 의식은 살아 있었다. 정신의 일과 마음의 일을 가지고 몸으로 경험하는 주님의 일이다. 그런데 그 주님은 정작 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성과 지식하고 지성과 피부한다. 호흡과 질환의 시대가 성질과 성격을 다루고 있지만 보이는 영은 우리 몸이니 이것이 골치가 아프다! 산자의 영이니라! 딸아! 네 연합해요! 졸음이 갑자기 몰려온다. 영안에는 그 때 대충 기록을 해 둔 글이 있다는 것이 영안으로 인을 치고 있다. 찾아서 주님의 일에 연한을 포기하고 나를 다루었던 주의 이름에 부합한다. 생명도 내 것이고 주님도 내것이지만 이들이 어떻게 인간의 혈을 다루는지 전혀 앎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배속하고 설사기운해서 배뇨와 혈변하고 기절과 운동신경하자꾸나! 감각이고 감성이니라! 묵상의 창과 더부신(시-잠시 묵시가 연합한다. 듣거라! 예언의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도 묶이지 않는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이다. 경로사상과 충효사상을 연합한다. 난 동양인이 정서를 갖고 있기 -트림이 발생하면서 하품이 주장된다 - 때문이다)경하고 예절을 모르던 시절을 가지고 드러난 문자의 시대를 보품한다. 어린아이의 영에서 양자의 영이 무엇이고 기쁨의 주가 어떻게 생명을 잉태하는지 좋은 본이 되었다. 우는 사자는 삼킬자도 구별하지 못하는 물자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나다. 그런데 내 영혼이 나를 발악을 쓰게 만들었다. 입술의 말과 마음의 말이 생각과 지능을 다스리는데 엄청난 몸의 댓가를 지불했다. 인성이 일이지만 의식은 지식의 물자를 바로 알지 못하면 애매히 당하는 고통을 수반한다. 이제 말이 본을 바로 알아서 품사를 구별하는 목적어가 계간이 되길 참으로 소망한다.
상한자의 영은 속함이다. 성한자의 영은 속함을 떠나서 사는 무리수이다. 그 일에 주님은 나를 데리고 영이 무엇이고 정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했는데 내 영혼이 막을 내리는 시대로 나를 조율했다. 그리고 성사는 고사를 지나서 품성으로 인성의 물질을 다루었는데 그 역시도 경험한 영성을 가지고 깨닫는 비밀의 주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하! 아멘! 그렇군요! 잘자요! 내일봐요! 또 다시 만나요!” 하는 인사법이다. 몽롱한 상태에서 이 글이 주장되고 있다. 그리고 한 참을 왼손으로 목을 두들겨 주었다. 주님은 한참(왼쪽 뱃속에서 설사기운이 또 복통을 이룬다)인지 모르지만 나는 일분도 되지 않았다. 삼십초 정도이다. 이번에는 오른손으로 다시 복사를 한다. 몇 번 시도해 보더니 생략한다.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른다. 습도와 물질하고 분절음과 바이러스한다. 인식하는 물자는 몸의 기운으로 연합해서 주의 날에 자세한 몸의 증세들이 발견(각)되길 원한다. 발견. 발생. 발기. 발췌. 발신. 수신 바람 물질이다. 뇌압이 잡힌다. 그리고 이명이 연합하고 있음이 인지된다. “대륙은 마구 돌아 다녔다!”(너무 격을 높이는 것이 아니냐? 사실이잖아요! 아니니라! 불소니라! 마음의 말을 연합한다. 아멘)라는 단자를 내 안에 물고기에서 발췌해서 연합한다. 인간의 비밀을 이루는 일에 아주 적절한 표현이 기록되어 있기에 인용한다. 닐 슈빈(오른쪽 복부에서 소리가 발생함) 지음. 김명남 옮김. 김영사. 2009년 6월 간행물이다. “내 안에 물고기” 내 손에 잡힌지 며칠 되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이제 지능은 스스로 지식의 모든 것을 이루는데 절상과 절하의 아름다운 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 통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전체라는 뜻이다. 전해질과 용언하고 수질과 용음한다. 주님이 할 일은 많지만 드러나는 문자는 참으로 미약함을 돌아본다. 주님! 감사합니다. 생각이 갑자기 맑아졌다. 그리고 잠분자가 도망가 버렸다. 아멘!
딸아? 주후와 연합하고 주전과 곡기하거라! 그리고 성질이 성분을 이루는 여정에 네 몸이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지만 생각의 물질은 그 일을 가지고 나를 다루고 있으니 미안하니라. 나를. 날을이니라. 왼쪽 가슴에서 경통을 당한다. 그리고 우뇌엽과 측두엽을 가지고 정수리를 긁고 있다. 정신의 시대는 몸을 다루고 있다. 이제 호흡과 질환을 가지고 정신과 몸을 다루는 기질성들이 지능을 잘 다루어서 기의 운행에도 아름다운 격이 있기를 사모한다. 미련한 자의 입술을 다루신 주님이시다. 그 일을 경험한 후로 내가 삶은 참으로 기이한 일들이 발생했는데 여전히 할 말이 없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시편 백 십구편을 연합한다.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 주후 이천 육년 십 이월 이십 구일과 삼심 일일을 가지고 그 어느날 승강기(엘리베이트. 엘레바도) 앞에서 발생한 영적 부흥의 물결을 기억한다. “주님! 나 어떻게 해봐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하면서 양 손으로 가슴을 감싸고 있었다. 어떤 희열이 마음을 타고 흐르는데 감당이 되지 않았다. 심장이 폭발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주님을 부르짖고 있었다. 딸아! 축복하니라! 영적 대 부흥의 물결이 너를 찾은 날이구나! 연합하여 주님하고 연합하여 부 교감계를 다루었던 그 모든 숨내를 기다려 보자꾸나! 주후하고 주전해서 암자하고 임자의 원리를 이루는 몸(신경세포. 시신경)의 물질이니라! 대 폭발. 영적 대부흥. 말씀으로 돌아가자! 눈에 들어오는 단자를 연합한다. 정수리에서 경통이 일어나면서 눈이 찌푸려진다. 통증이 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일구(119) 시편 백 시구편이다. 잠시 수면증이 연합하면서 호르몬과 화학 물질이 내 혀를 보증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영들이다. 그 일에 내 몸은 지율을 하고 있는데 언어 질환이고 언어 장애를 다루었던 삼각법이다. 영과 혼과 몸이다. 정과 주와 님이다. 이성과 복성으로 주님과 주님해서 우리 주의 영상에 내 주 예수의 이름에 복사한다. 의와 식과 주를 가지고 말이다.
지정의. 영혼몸. 의식주! 라는 구성체를 가지고 구속의 물질을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주님은 늘 당신의 방법으로 나를(날) 다루고 있다. 목줄기와 기도하고 의식주와 식상한 일에 주님의 모든 의를 가지고 품재한다. 나노미터! 복합체인데 아직은 이유를 모른다. 나노+미터인데 이 합성의가 지칭하는 문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 왼쪽 가슴에서 경침을 당한다. 세포와 단백(속에서 분열이 연합한다)질을 가지고 나노미터와 단백질하고 아미노산과 백제한다. 수면증과 송과샘하고 잠과 의식이 불수된 모든 몸의 증상을 바이러스한다. 올두바이. 올두세이. 올두연이. 올두체이. 올두말이. 올두족이. 올두감이다 잠이 연합한다. 중심은 가만히 있고 전이하고 변이되었다는 비유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날에 있었던 기운들을 주의 사자로 연합하여 내 이름을 찾아서 내가 만난 예수에 연합한다. 일기문으로 이 카페에 어디 기록이 되어 있을 것이다. 깊은 우숨이 나온다. 한숨은 이제 서서히 잠을 이루고 있는데 핏줄이 해결 되어서 인간의 뇌와 공명이 어떤 지격을 이루어야 하는지 지식과 상식을 가지고 이론과 문자의 비밀에 “내 영혼을 받으소서!”를 이룬다. 오 주님! 이 것은 죽음의 바다였다. 말이 안되지만 자아를 꺾여 버리겠다고 하다가 미침을 당하는 수숨이 주어졌다. 성령의 크고 작은 은혜로 말이다. 비문어와 속어하고 비속어와 예수한다. 생명의 창은 상함의 창을 수용하다가 몸이 발열이 되어 버렸다. 뱃속에서 또 소리가 발생한다. 묵직하고 굵은 톤이다. 딸아? 성사의 시대니라! 율법과 복음하고 생명과 기운 하자꾸나! 생명은 되어지고 탄생하지만 그 우물은 변함없는 인간의 의지가 아닌가 싶구나! 척색과 고물(갑자기 고막이 막히면서 이명이 들린다. 고색이다. 고명이다. 고감이다. 고막이다. 아멘)하고 비어와 속어 하자꾸나! 생로(노)병사니라! 우심방과 좌심방하고 뇌간과 시상하부니라!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건강 일기방으로 연합하여 주의 날을 더해서 나의 주 예수의 얼굴이 바른 회품이 되길 기다립니다. 샬롬의 시대와 복음이니라. 평등과 물질하고 평안과 화평해서 주의 주가 무엇인지 구체학으로 인물해 보자꾸나! 어간이 변질이 되는데 이 어법은 명사를 넘어서 복수하고 지정의를 넘어서 관계대명사를 이루고 있기에 절과 절이 어떻게 수용이 되는지 아직은 인식이 되지 않고 있다. 한 본이고 한 숨이다. 한 몸이고 한 성이다. 그런데 그 속에는 격감이 있다는 것인데 이들이 어떻게 무엇으로 인해서 나를 그리도 놀라게 했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기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에 언어 장애와 호흡 질환이 해결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기감과 운혈하고 혈액과 송사한다. 그리고 절체한다. 뱃속에서는 지속해서 소리가 발생하고 있다. 질궁. 질격. 질성. 궁원. 궁수. 궁좌. 궁정을 연합한다. 신명기 삼십장 십오절이다. **건강일기 백 구십 오번으로 연합옮겨 놓았다. 더부신경. 미주신경. 심차신경(예수신경). 얼굴신경. 혀 인두 신경. 혀밑신경!!!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