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3시 반쯤.
오늘 내가 '신세계'를 보여주려고 했던 지인이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서 못오게 됐다는 전화가 왔다.
벌써 예매했는데...하지만 공연 다니면서 이런 일도 제법 익숙해져서 그다지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그래도 표를 그냥 날리기는 아깝고, 또 한 사람이라도 같이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서 같이 갈 만한 사람한테 연락을 해봤다.
나보다 더 밴드 공연 경험도 많고, 음악도 다양하게 듣는, 특히 메탈 계열 음악도 좋아한다고 했던 지인과 연락이 닿았다.
사실 원래 이 공연을 보러 가려고 했을 때 같이 가려고 했던 지인이다. 그런데 다른 지인이 가겠다고 했고,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 연락하지 않았던 건데, 결국 이 지인과 같이 가게 되었다.
역시 볼 사람은 따로 있는 거구나.
시간도 촉박하고 홍대까지 오려면 꽤 먼 거리인데도 흔쾌히 오겠다고 해서 같이 공연을 보러 갔다.
우리가 공연장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8시쯤.
들어가니, 쿼츠가 공연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탑밴드2 예선 동영상 올린 것을 봤었기 때문에 금방 쿼츠라는 것을 알았다.
어둡고, 낮고, 무겁고, 그리고 조금 느리게 느껴지는 사운드.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어떤 무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쿼츠의 보컬은 '우리가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네요.'라는 얘기를 몇 번 했다.
왜? 이것도 좋은데...
화려하게 치달리지는 않지만, 결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음악인 것 같은데...
이건 이것대로 매력적인 사운드인데, 그냥 밀어부치세요.
까짓 관객들, 싫으면 말구 너희가 우리 사운드의 매력을 알아? 하는 배짱으로.
두번째로 본 무대가 Mad Fret 이라는 여성 밴드.
그렇잖아도 여성 록밴드의 무대를 보고 싶었었다.
좋은 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해야지!
여성 록밴드는 어떤 사운드를 만들어낼까 궁금하기도 해서 이 밴드의 무대를 좀 기대하고 있었다.
여성 밴드의 무대라고 해서 그리 녹녹치는 않구나...
이 밴드의 무대를 보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여성 록밴드들의 무대를 좀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밴드는 아니지만, 여성 록보컬이 있는 붉은나비합창단의 무대를 하루빨리 보고 싶다.
그리고 세 번째가 티어드롭이라는 밴드.
언젠가 브발 팬 카페 음악 게시판에 누군가 이 밴드의 라이브 동영상을 올려 논 적이 있었다.
그 동영상 설명에 영상이 잘 안나왔는데 원래 라이브는 굉장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심 오늘의 무대를 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 온 사람들 중에 아까 문 앞에서 표를 팔던 남자가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기타를 들고.
나중에 소개할 때 보니, 이 분이 신철단 단장님이라고 하신다.
이런, 이런, 나는 스텝인줄만 알았는데...그리고 그 앞에서 붉은나비합창단 CD만 샀는데...어쩐지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팀이 사운드 체킹을 하는데,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사운드라는 느낌이 들었다.
본 무대도 열정적인 연주와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노래 가사가 잘 안 들렸는데, 딱 한 군데,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마...'라는 노랫말이 들려왔다.(좀 자신 없는데... 그렇게 들렸다.) 그 앞에도 그 뒤에도 무슨 가사인지 잘 안들렸는데, 이상하게 딱 그 한 구절만 들렸다. 순간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열심히 가사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나의 귀가 영 바보라서 잘 안들렸다. 나중에 이 노래의 가사를 꼭 찾아보고 싶은데, 문제는 노래 제목도 모른다는 거.
당연히 앵콜도 받았다. 이런 공연에 앵콜을 안 하면 너무 섭섭하지.
같이 간 지인은 자기한테는 티어드롭이 더 홍대 아이돌 같다고 했다. 멤버들이 한 외모 한다는 뜻이다.^^
훈남 밴드 티어드롭, 홍대 아이돌 티어드롭!!!^^
신철단의 밴드들은 하나같이 오늘의 공연이 근래 들어 가장 즐거운 공연이라고 했고, 관중들 호응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다들 브발을 보러 온 거 아니냐고도 했다.
이런 말은 탑밴드 이후, 탑밴드 출연 밴드들이 나오는 공연엘 가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멘트였다.
그 말을 들을 때는 항상 자랑스러움과 미안함이 뒤엉킨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다들, 잘 될거예요.
라는 마음 속 응원을 보내 본다.
그래도, 성환님이 어떤 공연에서 '**무대가 끝났는데도 가지 않고 많이 남아 주셨네요.' 라고 하셨을 때 만큼 마음 아팠던 적은 없었다. 물론 그 말은 농담이었을 테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하신 말이었을 테지만, 알면서도 그 말을 듣는 순간엔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제발, 그런 생각은 이제 머리 속에서 지워주세요. 그리고 브로큰 발렌타인 팬들의 사랑을 믿어주세요.
그 브로큰 발렌타인의 무대가 오늘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신철단 공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무대를 마지막에 배정한 것은 아마도 어떤 '배려'가 아닐까 생각했다.
브로큰 발렌타인과 그 팬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브로큰 발렌타인은
언제나처럼 로열스트레이트플러쉬로 막을 열었다.
오늘의 선곡은 RSF,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MK Dance, Down, Answer me, 앵콜곡 Poker Face였다.(순서는 틀릴지도.)
오늘 멤버들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열정적으로, 광적인 무대를 보여줬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요즘 앨범 녹음 작업하고 있어서 스케쥴이 타이트해서 그런지, 곡이 끝나고 잠깐 쉴 때 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일단 곡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에너제틱한 무대를 보여줬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오늘 브발이 무대에 딱 올라왔을 때 뭔가 그리운 사람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아, 정이 들었구나...
저 멀리 있던 나의 스타였던 브발이 이제, 나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와 있음을 느꼈다.
사랑보다 더 깊은 게 정이라는데...
브발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이제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오늘 연주한 곡들은 조금씩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브발은 공연 때마다 조금씩 다른 버전을 시험해 보고 있나보다.
라이브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모든 무대가 같은 듯하면서도 매번 다른 모습으로 생생하게 다시 태어난다.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시들지 않는 젊은 음악.
공연 내내, 변G님은 완전히 뜨거워져서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무대가 좁아 보였다.(사실 무대는 좁았다.)
아마도 그 순간 사운드의 에너지와 일심동체가 되나보다.
악기만으로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짜 넣어서 그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은 성환님도 다르지 않다.
연주 중인 성환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왠지 거기만, 붉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성환님이 그 불 속에서 노래하고 연주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심지어 거기만 붉은 아우라가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자신을 태워서 그 불로 연주하는 건 아닌지...
내가 너무 감정이입되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왠지 무대에서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아니, 진짜 타는 냄새가 났다. 과열?)
으~, 과열로 불났나봐, 타는 냄새가 나.
앤썰미에서 예---------------------를 따라하다가 숨차서 죽는 줄 알았다.
그냥 립싱크하는 거였는데도 끝까지 따라하지도 못하고 중도 포기.
내가 좋아하는 부분인데...
이 예--------------------------도 무대마다 조금씩 느낌이 다르다.
세련되고 말끔한 예---------, 고속도로처럼 쭉 뻗는, 시원하게 질주하는 예--------
그리고, 오늘은 사나운 짐승처럼 거칠고 터프한 매력의 울부짖는 듯한 예----------------------------
였다.
하긴 오늘의 반님은 전체적으로 좀 거칠었다.
목에 터키석 같은 짙은 하늘색 조형물이 달려있는 짧은 목걸이를 하고 깊게 파인 회색 옷을 입으셨는데,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치달을 때, 무대가 무르익어갈 때쯤 보니,
파인 옷자락 사이로 파랗게 핏줄이 선 게 보였다.
그리고 마이크 잡은 손가락이 참 가느다랗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섬세하면서도 어린 아이 같은 느낌의 손.
근육질의 몸과 대조되는 느낌의 손이다.
이 손은 그냥 그대로 그렇게를 부를 때의 어딘지 소년 같은 천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닮았다.
아무튼 아주 리얼한 거리였다.
오늘 반님은 황야에서 울부짖는 늑대 같았다.
오늘의 무대는 단순히 뜨겁다가 아니라,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적인 거칠음이 느껴져서
무대를 보고 있는 동안
내가 메마른 더운 바람이 부는 드넓은 황야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브발이 언제까지나 길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뜨거운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성환님, 그리고 신철단 밴드님들,
'그지같은 현실'인 건 사실이지만, 그 별볼일 없는 일차원의 세계를, 빛나게 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건
타협하지 않고 외길을 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세상을 바꾸는 건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같이 좀더 힘을 내봐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화이팅!!!!!!!^^
첫댓글 후기 감동입니다. 기다린 보람이 느껴져요~
그냥그대로그렇게님, 공연 갔다오면 후기 꼭 올려달라고 하셨잖아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약속(?) 지켜보려고 하고 있어요.^^ 좋은 공연은 같이 나누어야죠.*^^*
글을 읽으며 감동의 눈물이..ㅠㅠ 역시 브발은 팬 분들이 만들어준 밴드라는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굿!
홍대 아이돌 티어드롭의 드러머님? 티어드롭이 있어 티어드롭의 팬이 있고, 브발이 있어 브발의 팬이 있는 거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런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줘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예요.m(_ _)m
홍대 아이돌을 너머, 대한민국 아이돌, 세계의 아이돌 티어드롭으로 쭉쭉 뻗어나가시길 바랍니다.^^
예리하시면서도 정성이 가득 담긴 후기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의 똥배짱 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공연 때마다 좋은 에너지를 나눠 받고 오는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브로큰 발렌타인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저에겐 신의 한 수!!*.*
그랑블루님의 후기는 역시..ㅋㅋ 같은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내뿜는 그 특유의 에너지와 느낌때문에 브발 공연을 빼놓지않고 더 다니게 되는것같아요..ㅇㅅㅇ 그리고 17일 공연날 유난히 모든 팀들이 보컬쪽 음향이 또릿하게 안들리고 크게 들려서 조금 아쉽긴 하더라구요..ㅋㅋ 티어드롭 앨범 사주시면 그 노래를 알지않을까요??ㅋㅋ
카르마님, 그런 간단 명쾌한 방법이 있었군요!!!^^ 오늘 바로 향뮤직으로 Go, Go!!!^^
언제나 그랑블루님의 진지한 고찰이 담긴 후기에 감탄하곤 합니다. 늘 좋은 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지나간 공연을 되새기며 그때의 감흥에 다시 한 번 젖어들 수 있었습니다.:)
저의 주관적 감정 만땅의 후기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시다니..무척 기쁘네요.ㅎㅎㅎ
저도 그 밤의 열기를, 감흥을 좀더 오래 오래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후기 잘 봤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후기 감사합니다 ㅎㅎ 담번에도 열심히 표 받겠습니다^^
읔...티어드롭 기타님, 단장님이시네요..죄송해요, 바보 같은 착각을 해서. 그날 저랑 지인이 단장님뿐만 아니라 쿼츠의 보컬님에게도 좀 어리버리한 짓을 해서...둘이서 돌아오면서 두고 두고 미안해 했어요.m(_ _)m
담번에 표 받는 데서 만나면 앨범에 사인 해달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할따름입니다^^ 저도 브발 팬이에요 ㅋㅋㅋ
멋진 밴드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으시네요.^^
티어드롭 화이팅!! 브로큰 발렌타인 화이팅!!
약속을 잘 지키시는 그랑블루님. 후기 항상 감동입니다.
전 나오면서 티켓부스에서 티어드랍,붉나합,인세인독스 앨범 샀어요.
위에 언급하신 곡은 (DIE TO LIVE)라는 곡이네요.
'네 죽지 못한 영혼 후회하지 말아줘!'라는 가사가 있어요.
저는 공연 가기전에 이번 공연에 나오는 밴드들 음악을 다 들어보고 가서, 가사가 들렸어요.ㅋㅋ
예습의 힘??ㅋㅋ
반페님, 고마워요ㅠㅠ 역시 준비성 철저하시네요^^ 공연 예습! 배워야 겠어요^^
저두 그동안 브발공연이 너무나 그리웠나봐요ㅠㅡㅠ공연보는데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겟더라구요ㅎㅎ우리의 자랑스러운 밴드 브로큰발렌타인 사랑합니다~~^^글구 그랑블루님 매공연 멋진 후기 써주셔서 감사해요~오늘도 감동받고 가네요!
자랑스러운 브로큰 발렌타인! 마구마구 자랑하자구요^^
후기 정말 감동입니다 ^^ 저는 후기를 제대로 써본적이 없어서 이런 후기글보면 참 맘이 보이는게 신기합니다.제가 맘이 없는건 아니지만...ㅜ.ㅜ 후기 정말 잘봤습니다! ^^
누가 쓴 어떤 후기라도 마음이 담기는 것 같아요.^^
오 감동과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ㅎ
늘 감동의 무대를 보여주시는 브발님들이신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