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선운사'란 노래다. 송창식이 있고, 서정주가 있어서 괜시리 마음 속에 메아리치듯 여운이 남는 곳이 바로 선운사다.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만큼 빼어난 절경을 가지고 있으며, 곳곳에 자리 잡은 유물과 전설들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백파선사비
절간 초입 부도밭에는 유홍준 교수가 찬사를 늘어놓은 추사 김정희의 '백파선사비문'이 서있다. '華嚴宗主 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라는 해서체의 필치다. 관련책에는 '송곳으로 강판을 뚫는 힘'으로 붓끝을 강하게 내리 꽂았다고 할
정도로 힘이 실려 있다고 적혀있다. 글씨의 문외한이 어찌 알랴만은
그저 추사가 썼다니 다시 한번 어루 만지게 된다.
추사와 백파와는 상당기간
논쟁을 벌인다. 처음엔 백파는 대흥사의 '초의선사'와 불교의 교리에 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초의와 오랜 친구인 추사가 이 논쟁에 끼어
든다. 얼마나 심하게 백파를 몰아세웠는지 다음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스님은
80년 공을 쌓은 나이인데 그 공을 쌓은 것이 겨우 이것이냐? 아무런 심증도 없이 이것저것 주워
들어서 입으로만 지껄이는 그 꼴이 점점 볼
만하도다."
아마 요새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렸으면, 명예훼손이니 인격모독이니 하면서 '사이버 수사대'에 고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범인이 보기엔 욕설이 난무한 편지 공방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쟁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의 학문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나서 추사는 9년에 걸친 제주도 귀양살이로 통해 인생의 쓴맛과 겸손을 터득한다. 기고 만장한 그의 성격이 삶을 초월한 사람으로
변한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대흥사에 가서 원교의 현판을 다시 세우고, 매몰차게 내 몰았던 백파마저 최고의 고승이라고 추켜세우며 시비를 직접
쓰지 않았던가? 그런 인간애가 풍겨 나오기 때문에 나는 추사를 좋아한다.
천왕문
천왕문은 2층 맞배집으로 아래층은 사천왕을 모시고 있고, 위층에는 종과 북을 매달고 있는 종루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맞배지붕의 간결한 선이
아름답다. 지붕마루의 부드러운 곡선이 뒷산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이 천왕문 현판은 조선후기 명필인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푸른 바탕에 하얀 글씨가 장쾌한 힘을 발휘하며 춤을 추고 있다. 그 아래 내건 '도솔산 선운사' 현판은 현세의 대가 일중 선생의 예서 글씨라고 한다.
사천왕상 발아래는 탐관오리와 음탕한 여인네가 깔려 있다. 여인네의 야릇한 눈빛을 보라.
만세루
천왕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건물이 '萬歲樓'다. 정면 9칸이나 되는 거대한 건물이다. 선운사가 흥성 했을 때는 무려 3천명이 넘는 승려가
있었다는데..이곳 만세루에서 까까머리 스님들이 가득 앉아 설법을 청해 들었을 것이다. 그걸 상상해본다.
만세루는 기단도
낮으며 건물로서 세련된 기교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우직한 '돌쇠'의 모습이랄까? 통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자연미가 넘친다. 실제 다른 건물을 짓고 남은 목재를 가져다 지었다고 한다. 선운사가 용의 연못임을 증명하듯 대들보에는 커다란 용이 걸터 앉아
있다.
대웅보전 (보물 290호)
정면 5칸 측면 3칸의 제법 큰 건물이다.
맞배지붕으로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정면의 공포가 유난히 화려하다. 그러나 측면에는 공포가 없으며, 원목도 깍지 않고 자연 주춧돌에 기둥으로
삼고 있다. 특히 오른쪽에서 바라본 측면의 모습이 아름다운데, 부재가 훤희 드러나는 것이 수덕사 대웅전 측면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뒷쪽의 공포는 앞쪽과 달리 익공계로 간단히 처리되어 있어 사방의 공포가 모두 제 각각임을 알 수 있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셔야하는데 특이하게도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또한 불상 뒤에는 탱화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벽화가 그려져 있어 여러모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천장에는 힘차게
약동하는 용이 가득 채워져 있어 이곳이 연못을 메었다는 창건설화를 말해준다.
금동보살좌상(보물 279호)
대웅전 우측에 '관음전'이 놓여 있는데 그 안에 관음보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상이 앉아 있다. 우리나라 지장보살 중에서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지장보살이다.
두툼한 테를 두른 두건을 쓰고 있으며, 후덕한 얼굴에 볼에는 살이 통통히 올랐다. 중국집 주방장 얼굴을 하고 있지만 옷자락의 주름이나
섬세한 손가락 모양을 보면 보통 공력을 들인 것이 아니다. 휘황 찬란한 목 장식을
유심히 보라. 어찌나 섬세하게 다듬었는지.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서 이런 멋진 불상이 나오다니 믿기 힘들 정도다. 당시 선운사가 성종의 부모와 왕비의 넋을 기리는 왕찰이기에 최고의 조각가를 동원했을
것이다.
이 불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三藏' 사상을 알아야 할것이다. 지장보살이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양 협시로 하는 삼존체제에 시왕을 부가하여 지옥의 구제자라는 면모를 갖추었다. 이것이 후세에 와서는 天地人 三才사상과 혼합된다. 보통 천장, 인장, 지장을 나란히 그린 탱화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선운사는 그
삼장을 탱화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불상으로 모신 것이다. 선운사가 지표상 가장 낮으니 '지장'이고, 참당암은 '인장'이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솔암에는 '천장'이 모셔져 있다.
원교 이광사가 썼다는 '정와' 현판
영산전
정면 5칸 특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이곳은 자연스런 2중 축대가
아름답다. 원래 화엄사 각황전처럼 2층의 장륙전으로 쓰였는데..건물이 허술하여 다시 지은 것이 '영산전'이다. 2층에 놓였던 불상이 단층으로
옮겨졌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불상이 큰 것이 아니라 집이 작은 것이다.
근년에도 어느 비구가 이 불상을 다른 곳으로 이안해 모시려다 이곳에서 火光이 충천하여 달려온 사람에게 발각되어 화를 모면한 영험이
전해지기도 하다.
약수 떨어지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정화된다.
동백꽃
사실 이걸 볼려고 이곳에 왔는지도 모른다. 서정주가 외쳐서인지.
송창식이 흥얼거려서인지..동백꽃하면 당연히 '선운사'가 떠오른다. 사실 여수 오동도나 강진의 백련사 동백이 더 멋지고 아름다운데 말이다.
서양에서 동백꽃이 소개된 시기는 19세기가 지나서다. 오페라 '춘희'의 주인공 품에 꽂혀 있는 꽃이 동백꽃이기에 동백은
창녀나 음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동백꽃의 의미는 정절을 상징한다.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며 얌전히
앉아있는 반가의 여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꽃봉오리를 튼 동백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동백 잎처럼 강렬한 초록색은 없을 것이다. 그 바탕에 붉은 꽃이 뚝뚝 달려 있으니
정절 이상의 것을 표현한다. 다른 꽃은 꽃잎을 휘날리며 죽어가지만 동백은 꽃봉오리 자체가 뚝뚝 부러져 나간다. 그래서 동백이 가장 멋지게
보일때가 그 꽃이 부러져 시체처럼 땅에 머리를 박고 누워 있을 때다.
3천명의 선운사 스님은 이런 동백꽃과 상사화를 보면서
속세의 여인들을 생각하고 떠난 것이 아닌지? 강장식품인 장어와 복분자술이 질펀나게 널려져 있는데 어찌 부처님을 향해 마음이 열려져 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선운사 담
선운사
경내 높이와 담의 높이가 똑같다. 왜 이런 쓸모없는 담을 세웠을까?
그러한 담을 '헛담'이라
부른다. 화려한 일주문에
담마져 높고 화려하면 위압적이고 싫증이 날 우려가 있다. 화려함이 있으면 소박함이 있어야 하고, 높음이 있으면
낮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네 음양이며 고저장단이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이다.
미륵불
선운사에서 도솔암 오르는 길가에 나그네의 안녕을 기리는 돌장승이 자리잡고 있다. 옛날엔 바닷가에서 선운사로 들어 올려면 도솔산 고개를 넘어다녔을 것이다. 그 미소가 정겹다.
참당암
참당암까지 오르는 오솔길이 아름답다. 우선 조용하고 숲이 우거져 있어 산사의 맛을 느낀다.
돌담벼락이 아니라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담이 포근하게 탐승객을 맞이한다.
선운사가 상춘객으로 몰살을 앓는다면 이곳에서는 고요와 여유가 깔려있다. 대웅전 뒷편엔 굴직한 노송들이 어머님 손길처럼 암자를 감싸주고 있다. 보물 803호 대웅전은 조선초기의 맞배지붕이며 색바랜 포작이 일품이다. 기교와 가식이 없는 담백함이 배어있다.
대웅전안에는 동종이 있는데 이것 역시 사연이 있다.87년 창당암에서 동종이 도난 당했다. 91년 어느날 조계종으로 편지와 함께 소포가 배달되었다. 훔친사람의 꿈에 신장님과 지장보살이 나타나 본래의 곳에 돌려놓으라는 현몽이 나타나 양심의 가책에 혼쭐나며 그 뜻을 깨달아 돌려준 것이다
처마엔
종이 달려있어 봄바람이 감돌때마다 살포시 춤을 춘다. 앞마당에는 붉게 물든 동백
두 그루가 생기가 넘쳐 난다.
선운산 자락에 차밭이 일렬로 자라고 있다.
바위돌사이에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쓰인 바위가 서있어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다.
창담암은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소리재에서 바라본 선운산 기암 절벽이다 백두대간이 바다로 빠지기 전에 마지막 용솟음을 쳤다고 한다. 이곳에서 서해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천마봉에서 바라본 내원궁이 바위산에 사쁜히 앉아있다. 한편에 거대한 마애불도 보인다.
동불암 마애불(보물 1200호)
40여미터가 넘는 깍아지는 암벽이 새겨 있는 이 암각여래상은 우리나라 최대의 마애불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귀가 유난히 길고 꽉 다문 입술이 보통의 온아한 부처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신라말
이후 '누구나 수양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선종의 영향을 받아 지방호족들의 자화상적
이미지가 가미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온화한 얼굴보다 강인한 얼굴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쨌든
이 불상을 만든 것은 대역사일 것이다. 여래상 머리위에 보호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구멍이
나있고, 부러진 나무가 박혀있는 것이 보인다.
배꼽부위에 땜질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것이 유명한 '석불비결' 이다. 명치 부위에 네모난 서랍이 파여 있는데 보통 불경, 불화 등의 문서를 같이 봉안하는 감실이다. 그런데 그 부처님 배꼽 속에 신기한 비결이 들어 있어서 그 비결이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게 된다. 전라감사 이서구가 부임하여 선운사에 이르러 석불의 배꼽을 떼고 그 비결을 내어보려는데 뇌성벽력이 일어나 첫머리만 읽었다.'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란 글자만 본 것이다.
마애불 옆에 조그만 동굴이 있다. 한사람만 간신히 들어가는 좁은 공간인데 생각보다 깊숙하다.
여래상 옆길로 내원궁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내원궁은 도솔천 한 가운데 있는 궁전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기가 막히다. 산수화에 나옴직한 기암괴석,
계곡의 물소리등 난간에 서있으면 말 그대로 멋진 궁전에 들어온 기분이다.
저 산꼭대기가 천마봉이다. 계단을 타고 오를수 있다.
도솔암 지장보살좌상 (보물 280호)
내원궁엔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유홍준교수가 '경기고등학교 나온 보살님 같다'는 표현처럼 지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금테를 머리에 두르고 까까머리를 한 것이 특이하다. 왼손엔 법륜을 쥐고 있으며 화려한 옷주름과 목장식 그리고 세밀한 손금까지... 조선시대 불상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 지장보살은 꼭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여 신도들이 가득하다.
장사송(천연기념물 354호)
수령이 600년이며, 높이가 무려 23미터나, 가슴둘레가 3미터나 되는 거송이다.17미터나 되는 긴 줄기가 우산처럼 뻗어있다.
진흥굴
신라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물려주고 이곳에 머물었는데 굴에서 자다 꿈속에서 바위가 갈라가며 미륵삼존불이 현신하는 것을 보고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그 굴이 바로 이 진흥굴이다
송악(천연기념물)
의외로 송악을 보는 즐거움을 놓친 사람이 많다.
한켠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송악이 가장 크게 자란 곳이며
안내판에는 '송악 밑에 서 있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그걸 읽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치리... 돌다리를 건너 머리를 들이 밀어 본다.
풍천장어
풍천장어라고 불리는 이유는 고창 선운사 앞 인천강에 하루 2번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함께 바람을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바람風" "내川"이란 글자를 써서 풍천장어라고 한다.
이 곳이 유명한 것은 바다 부근에 염도가 높고 고기가 오염되지 않아 육질이 뛰어나서 고창에서 나는 풍천장어를 으뜸으로 한다. 풍천장어는 강물과 바닷물이 어울리는 곳이며 어디서든지 구경할 수있는 뱀장어의 일종이지만 식도락가들이 선운산 풍천장어만을 애써 찾는 것은 그 맛이 달리 담백하고 구수하기 때문이며, 특히 선운산에서 3대 별미는 풍천장어, 복분자술 그리고 작설차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첫댓글 선운사는 벌써부터 꼭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보니 조금 위안이되네...민호야~고마버 잘봤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