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당선작] 류현서 외
■ 대상
당삼채 / 류현서
짙은 햇살이 창가에 와서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을 하는 아침이다. 팔월 초의 날씨는 여름의 권위를 내세우기라도 하려는 듯 온 힘을 다해 적의를 뿜어댄다. 햇볕은 불덩이를 녹이는 것같이 이글거린다. 잡다한 일상을 접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주로 향했다. 여기에도 마치 하얀 불 파도가 출렁이는 것 같다. 박물관 입구부터 햇살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그늘을 찾아든다. 이런 것을 보면 자연이 천지 만물의 주인이고, 거기에 따르며 사는 사람들은 손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신라역사관으로 들어섰다. 소장된 문화재들이 많다. 그중에서 자그마한 항아리에 시선이 꽂혔다. 붉은색과 푸른색과 하얀색의 무늬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다. 삼색이 어울리어 안정감을 준 무늬가 곱다. 경주에서 출토되었지만, 당나라에서 제작되었다는 항아리이다.
중국 당나라는 일찍이 ‘삼 종주국’으로 일컬었다. 도자기의 종주국, 옥공예의 종주국, 차의 종주국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형태가 둥글면서 색조는 유럽풍이 깃들었다. 당시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는 상태에서 800–900도의 온도를 견뎌내지 못하여 서서히 흘러내린 무늬가 당삼채다.
어찌하여 당나라의 그릇이 먼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었을까. 아마 그때부터 문화교류를 한 당나라와 신라는 교역이 잦았다는 입증이 아닐까. 당삼채의 매력은 단연 색깔이다. 그만큼 신라가 문화의 다방면으로 활발했다는 증거품이리라. 당삼채는 주로 귀족이나 왕가 무덤의 부장품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특이한 도자기의 빛에서 당대의 귀족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당삼채로 만들어진 작품은 항아리뿐만 아니라, 벼루를 비롯하여 술잔, 사발, 말, 낙타, 마부, 사자, 남녀 인물상 등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색이 아닌 몇 가지의 색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배색이 되었다. 화려하되 난분하지 않고, 호화로운 느낌을 주는 채색이 인상적이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묘하다. 생각에 잠기어 그늘에 홀로 앉았다. 알록달록한 무늬가 조화를 이룬 빛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 세포들이 뜀박질하기 시작한다. 생각은 비어 있는 허공을 채우려는 듯, 절묘하게 배색된 빛에 온갖 상상이 춤을 춘다.
혼자 분리된 색깔이 아니라 함께 섞이어 더 고운 빛. 당삼채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근원을 읽는다. 살을 섞고 사는 부부나 그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생각이나 취향이 각자 다를 수가 있으며, 음식의 구미도 제각각일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엇갈리는 의견에 부딪혀 된소리도 나오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 허망함을 느끼기도 한다. 자식의 실수에 얼굴을 찡그리고 남편이 하는 일이 마땅치 않아 투덜대는 날도 있다. 쇠털같이 많은 날에 함박웃음을 웃는 날이 있는가 하면, 고뇌하는 날, 때론 화들짝 놀라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럭저럭 맞추며 살아갈 수밖에.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서로를 감싸는 게 가족이다. 자신의 고집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 또한 인생 아니겠는가. 웃어른의 충고도 약으로 삼고 남편의 생각도 받아들이고 가족의 의견을 참작하면서, 조금씩 양보하여야 원만한 가정이 이루어진다. 남편의 뜻과 자식의 뜻과 내 뜻이 서로 합해져서 가정을 이루고 일가를 이뤄 간다. 남편과 아내와 자식이 어우러진 삼색. 그것이 바로 황색, 녹색, 백색이 배합된 당삼채 같은 빛이 아닐까 싶다.
붉은빛이 도드라지면서 푸르고 푸른빛이 선명한 가운데 흰색이 더 돋보인다. 자로 잰 것 같지 않고 격의가 없으면서 서로를 돋보일 수 있도록 떠받쳐 주고 있다. 딱딱한 느낌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고 유연하게 감싸 안아 자연스럽게 어울린 저 빛깔. 우리 인생도 부부간이나 자식에게나 저 빛처럼 서로를 떠받쳐 주어야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으리라.
당삼채 앞에 섰다. 이렇게 고운 그릇에 죽은 사람의 뼈를 담았다는 거다. 한 생애 동안 깃들었던 일들을 바라보듯 한참을 바라본다. 어떤 분의 육신을 담았을까. 혼은 구천을 떠돌고 무거운 육신이 담겨 있는 쉼터. 고고한 빛은 과거의 색과 현재의 색과 미래의 색이 아닐는지.
우리 인생에서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별할 수 없는 것임을. 삶과 죽음에 연결되지 않으려고 하는 한 시인이 있다. 그의 방에는 시계가 없고, 거울이 없으며, 달력이 없다고 한다. 시계가 없으니 초조함과 조급함을 모르고, 거울이 없으니 늙어가는 줄 모르며, 달력이 없으니 세월 가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절로 살고 싶다 하여 그의 호가 ‘나절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영원히 만나지 않으랴.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지극히 슬픈 만남인 것을. 나절로 선생도 남은 생을 혼자 능동적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 없이 먼 여정을 가기에는 고독하지 않으랴. 누군가의 도움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어야 사람 냄새를 풍길 수 있을 터이다.
주름진 나의 얼굴에도, 흰 머리카락이 희끗거리기 시작한 남편의 모습에도 당삼채 같은 세월이 담겨 있다. 그 반면에, 이제 이십 대의 푸름을 내뿜는 활기찬 자식은 무슨 색을 뽐낼까. 지금은 푸른색의 저 자식도 세월 따라 이 색 저 색으로 섞이어 결국엔 당삼채의 빛으로 물들어 갈 터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분해되는 일 없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다.
생生과 사死는 아무 걸릴 것 없이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순환 법칙은 사람이나 만물이나 다 같아서 오면 가고 가면 오게 되는 것을. 이렇듯 우주는 쉼 없이 회전하게 되는 것이리라.
온종일 당삼채에 빠져 있다가 늦은 오후에 발길을 돌린다. 돌아오는 길에 진한 흙냄새 풍기는 들녘엔,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인생이 박혀 있다. 새색시 치마 같은 노을이 서산마루에 펼쳐졌다. 황새 한 마리 깃을 털며 너울너울 날아간다. 초록으로 물든 들판 위에 빨갛게 타는 노을 아래, 하얀 황새의 색이 더욱 선명하다. 황새가 날아간 하늘가에는 아직도 햇볕이 마지막 열기를 뿌리고 있다.
호기심 많은 내가 박물관을 찾아온 것은 역사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붉은 노을과 푸른 들판과 하얀 황새에서 세월을 읽는다. 삼색이 어울린 자유로운 조화를 보며 인생도 당삼채 같은 빛으로 늙고 싶다. 당삼채에 담긴 세월이 곱다.
류현서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201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2016년 청림남구문학상 △2017년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2019년 원종린 수필문학 작품상 외 다수.
■ 금상
경주 먹 이야기 / 이은숙
그 빛은 경건하여 천년을 비추고, 그 향은 겸허하여 천 리를 간다.
옛 선비들은 나를 문방사우 중 으뜸으로, 한낱 물건이 아닌 고결한 정신을 가진 인격체로 여겨서 정신 수양의 매개로 삼았었다.
벼루 위에 나를 세우고 온 마음을 모아 혼탁한 정신을 갈아내면 내가 닳아지는 만큼 선비의 정신은 정갈해지고 맑아져서 마침내 높은 경지로 고양되고, 그 고양된 영혼이 나를 통해 글로, 그림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선비의 붓에 묻혀지는 순간의 나는 단순한 먹물이 아닌 정신 수양의 결정체이며 드높이 고양된 인간 영혼의 분신인 것이다.
하나의 먹으로 태어나 인간의 정신 수양의 매개로서, 고양된 영혼의 분신으로서 그것을 쓰고 그려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 수 있으니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고난 속에 살아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꿈만 같은 일이다. 나는 사실 상처 입은 30년 된 소나무였다.
세파에 시달려 온몸에 생채기가 끊이질 않았고,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이 없어 홀로 몸속의 송진을 쥐어짜내 덮어가며 살아왔다. 그러던 나를 경주 먹장 유병조 선생이 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 것이다.
아픔은 느껴 본 사람만이 그 고통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고, 시련을 겪어내고 더 큰 가치를 추구해 본 사람만이 참고 견뎌 온 세월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름 없는 산골짜기에서 볼품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던 나를 알아보신 유병조 선생도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살아오셨다. 궁핍하고 남루한 생활 속에서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이 먹만 바라보며 팔십 평생을 살아오셨다.
마음의 상처를 눈물로 덮고 육신의 고통을 땀방울로 덮으면서 보낸 팔십 년의 세월이 송진처럼 엉겨 붙어있었지만, 그 세월을 태우고 또 태워서 고통을 날려 보내고 그 그을음처럼 가벼워진 정수를 긁고 또 긁어모아 드디어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35호 경주 먹장으로 지정되신 것이다.
“나의 인생은 한 번도 호화롭게 살지 못하였으나 막상 무형 문화재가 되니 굶주리며 살아온 인생에 후회 없고 더 바랄 것이 없다.”
모 언론 인터뷰에서 하신 이 말씀 속에는 팔십 평생 살아오신 선생의 모든 삶과 철학이 먹처럼 응축되어 있다.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열세 살의 소년 유병조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먹과 인연을 시작하여 70년을 먹과 함께 외길을 걸어오셨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먹을 만들었으나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평생 그을음을 들이마신 대가로 천식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먹을 향한 선생의 끊임없는 열정과 집념은 고단한 삶을 견뎌내는 원천이었고 수없이 많은 실패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수천 번의 도전 끝에 전통의 먹을 재현하는 데 성공하여, 1997년 먹 만들기 기능 전수자 (1997-04호)로 선정되었고, 2005년 해인사 팔만대장경 탁본용 먹물 스무 말을 제공하였고, 2009년에는 마침내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평생을 깨끗한 손을 가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새까만 그을음 속에 뒹굴면서 열세 살 소년은 백발의 팔십 노인이 되었지만, 선생의 얼굴에선 품격있는 묵향이 풍겨 나오는 듯하고 선생의 형형한 눈빛은 먹을 닮아있다.
나는 소나무를 태워 얻는 그을음에 아교와 향을 배합하여 만들어진다. 나는 곱게 자란 소나무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생채기로 얼룩진 상처마다 진물 같은 송진이 흘러나와 엉겨 붙은 ‘관솔’이라야 한다. 30년 이상 된 관솔 한 그루를 모두 태워야 손가락 하나만 한 나를 겨우 얻을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생명이 더해진다.
농경 사회에서 한 식구처럼 지내며 평생 온갖 궂은일을 해낸 소의 일생이 더해지는 것이다. 소의 가장 질긴 힘줄과 가죽과 뼈를 몇 날 며칠 고아서 끈끈한 원형질이 남으면 소나무의 그을음과 섞어 반죽을 한다. 소나무가 연소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분신인 그을음을 긁어모아, 소의 가죽과 뼈와 힘줄을 고아서 마지막 남은 원형질과 섞는 것이다. 여기에 장인의 땀방울과 눈물이 섞이면서 품격있는 영원함을 향한 준비를 한다.
장인은 산천을 헤매며 장뇌, 용뇌, 매화 그리고 사향 등에서 향을 채취하여 마지막 품격을 높인다. 묵향이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고매한 묵향이 더해지면서 먹은 비로소 경건하고 겸허한 장인의 영혼과 완결된 일체가 된다.
이제 완성된 하나의 먹은 동트기 직전의 밤하늘처럼 푸른 빛이 감도는 고고한 검은 빛을 내뿜으며, 송진이 엉겨 붙도록 처절하게 그러나 이상을 잃지 않고 살아온 30년 소나무의 삶과, 힘줄이 질겨질 대로 질겨지도록 고단하게 그러나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성실히 살아온 소의 삶과, 묵묵히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향을 키워온 장뇌, 용뇌와, 추운 날씨에도 기개를 잃지 않고 꽃 피운 매화의 삶을 경건하고 겸허하게 말한다. 경주 먹장 유병조 장인의 눈물과 피땀 어린 인생이 함께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이렇듯 세상에 함께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고귀한 삶과 장인의 피땀 어린 눈물을 간직하였기 때문에, 그저 단지 글씨나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아닌 인간의 정신을 가다듬고 인격을 정화하는 수양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고, 또 그리하여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있었다.
경주 먹장 유병조 선생의 피땀 어린 집념과 열정으로 내가 다시 존재함을 깊이 되새기며, 장인의 뜻을 받들어 나의 본분인 인간 영혼의 고양된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는 데 온몸을 사를 것을 다짐한다. 나를 통해 글과 그림으로 표현된 최고 경지의 인간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이 땅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이은숙 △1986년 공주 사대부고 졸 △1990년 충북대학교 약학대학 졸 △현) 서울 더세인트병원 이사
■ 은상
손이 말하다 / 염귀순
손은 세상과 소통하는 열쇠다. 숨길 수 없는 온도를 담아 타자와 교감하고 세상과 교류한다. 손을 잡고 놓고 오므리고 펴고 엎는다. 악수는 우호의 표시이고 박수는 환영과 응원, 찬사를 표하는 것이며 ‘손에 손잡고’는 마음과 힘을 합한다는 뜻이다. 세상 밖 어떤 힘이 간절할 적에는 두 손부터 모은다. 조용히 합장하고 비손하는 자세엔 신에게로 향한 혼신의 염원이 담겨있다.
호미곶 ‘상생의 손’은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 모든 국민이 서로 도우며 살자는 의미를 담았다. 동해안 해돋이 명소와 ‘손’, 생각해 보니 썩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엄청나게 큰 청동상(靑銅像)의 손이 하나가 아니다. 육지의 해맞이광장엔 왼손이, 바다엔 오른손이, 그리 멀지 않은 사이를 두고 마주 보며 있다. 그리움은 저 두 손의 거리 안에 있는 것인지. 손바닥에 인생의 골목길 같은 손금이 선명하게 드러난 손 모양에 놀라면서도 친근감이 와 닿는다. 우리는 삶이라는 거친 바다를 손에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손과 손이 맞닿으면서 삶의 용기, 감동, 풍요가 더해지는 것이 인생길인 만큼 눈앞의 손이 왠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손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손이 되었다’고, ‘손에 대한 묵상’에서 정호승 시인이 말했다. 손은 감성적이다. 손을 잡고 보면 체온이 통하고 끈끈한 무엇이 흐르고 마음 문이 스르르 열린다. 힘든 세상 고독한 관계에서 단절의 아픔을 딛고 사람들과 소통하고픈 누군가의 꿈이, 통신망을 발달시키고 우리에게 스마트폰의 세계를 열어주었을 테다. 그렇다고 심층의 외로움까지야….
가끔은 세상살이가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간다. 난데없는 ‘비대면’ 시대를 맞아 일상이 휑해졌다.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 없다. 가급적 사람끼리 손잡지 말기를 권장 받는 상황이 하룻길 여행을 부추겼다 할까. 마스크로 무장하고 막연함과 홀가분함으로 한반도의 최동단 호미곶을 찾아왔다. 여행이 주는 설렘과 객기가 보태어졌는가, 알려진 동해안 풍광 말고도 몰랐던 역사 이야기까지 펼친다.
역사의 진실은 이따금 아프다. 하지만 되돌아보고 새겨야 한다고 바다에 불쑥 솟아있는 손이 말하는 것 같다.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호미곶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했다. 육당 최남선은 일출제일의 호미곶을 조선 10경의 하나로 꼽았다. 한반도를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으로 묘사하고,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며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했으니, 일제는 이곳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하였다. 거기에다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하며 호미곶을 토끼 꼬리로 비하해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 해방 후 세대인 내가 여중에 다니던 시절 지리 과목 시간에도 어찌 된 영문인지 호미곶을 토끼 꼬리를 닮았다고 외운 기억이 난다. 새삼 알았지만 굴곡의 역사는 질기도록 사람의 머리 한구석을 지배하기도 한다.
오늘따라 호미곶의 바다는 잔잔한 남색 평원이다. 세상을 더 많이 더 깊이 읽는 중인지 이따금 몸을 뒤척일 뿐 고요하다. 뭍에서 바다 위로 이어진 ‘해파랑길’로 들어서니 하늘과 바다를 가늠하기 어려운 수평선이 파도도 없이 가물거린다. 한여름 외딴곳임에도 마스크를 쓴 여행객들에게 막 생성된 청정한 바람이 호의를 베풀어준다. 온몸으로 바람의 기운을 들이킨다. 세속의 티끌마저 씻어보고자 깊숙한 호흡을 해본다. 균형추가 덜커덕거리는 길을 잠시 벗어난 걸음들이 바람처럼 의외로 유유하다. 삶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더라도 세월은 흐르고 역사는 오늘도 고된 한 구비를 엮어내고 있음을 바람인들 모르리.
바다에 떠 있는 손이 기억의 매듭 하나를 푼다. 사납게 갈퀴를 세운 어마어마한 태풍이 세상을 휩쓸던 추석날 아침이었다. 퍼붓는 빗줄기에 위험수위를 넘긴 저수지가 순식간에 범람했고 천지는 물바다였다. 동생을 업고 피난길에 나선 어머니가 넘어지면서 급물살에 휩쓸렸다. 누가 팔을 붙들고 늘어지다 놓쳐버리는 걸 발견한 아버지는 한 손에 든 짐과 내 손을 놓고 달려가셨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물살과, 죽음으로 떠밀리는 어머니의 젖은 몸과, 신기(神技)의 힘으로 끌어올리던 아버지의 손. 어린 나에게 그날은 천지개벽의 순간이었다. 비바람을 뚫고 엄청난 공포에 맞선 아버지의 손은 내가 본 가장 위대한 손이었다.
손은 한 인생의 노트다. 오랫동안 받아낸 세월과 살아온 자취가 오롯이 새겨진다. 삶의 험난한 바다에서 아버지의 손은 강직하고 정직했으나 재물을 갖진 못하였다. 내 젊은 발목을 낚아채는 현실이 원망스럽던 탓에, 손을 잡아주기만 바라고 아버지의 손을 다정하게 먼저 잡아본 적이 없다. 그런 맏딸을 겉으론 무표정으로 지켜보시며 홀로 삼킨 외로움이 쓰리고 아리지 않았으랴. 이제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아버지의 손, 돌아볼수록 한없이 외로운 손. 그럼에도 삶을 가꾸는 모든 손은 귀하고 아름답다.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저 손은 무엇을 꿈꾸는 걸까. 또 다른 손이 포개어주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건 아닐까. 사시장철 바람, 파도, 바닷물과 더불어 지내는 게 일상일, 조금은 서늘해 보이는 청동의 손은 언제나 무언이다. 갈매기 한 마리가 손가락 끝에 가볍게 앉았다가 날아간다. 새에겐 바다에 솟은 커다란 손이 지친 날개를 접을 수 있는 세상없는 쉼터인가보다. 바다와 손과 새의 어울림이라니, 얼마나 서로 믿고 어우러져야 사람끼리도 저리 여유로울 수 있을지.
고립이라는 막막함에 하루 일탈을 감행했던 길에서 손을 보았다. 코로나 19가 이끌고 온 의심과 불안의 공기에 ‘지나치게 혼자이다’가 달려오고 말았던 건 무슨 끌림에서였나. 호미곶 지형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형상으로 다가온다. 손이 말없이 가르침을 준다. 얼굴은 천연스레 가면을 쓰거나 입술은 새빨간 거짓말도 서슴없지만 손은 무언으로 소통하는 거라고. 쉼과 나아감이 조화롭게 이어져야 건강한 삶이라고. 한 찰나는 뜻밖의 깊은 시간도 될 수 있겠다. 하루하루가 옥죄던 차에 탁 트인 바다 곁으로 와본 것은 잘한 선택이었지 싶다. 여기 커다란 손 앞에서라도 나, 힘들다며 한 번쯤 백기를 들어보는 거다.
‘상생의 손’이 질문을 던진다. 인생은 결국 공수래공수거이거늘 어떤 손을 가졌나요? 두 손을 맞댄 채 눈을 감으면 1분 안에 서로 전기가 통하는 손이라면 좋겠다. 움켜쥐거나 오므리기만 하는 손 말고, 밀치거나 선을 긋는 손 말고, 손가락질하는 손 말고, 잡아주고 박수쳐주는 손이면 더욱더 좋겠다. 베푸는 손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런 손이기를 소망하며 두 손 모은다.
어둡고 탁한 것들을 염치없이 바다에 부려놓고 돌아서는데 아버지의 손이 다가와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준다. “따뜻한 가슴 오래 간직하여라.” 울컥, 목젖이 따가워진다.
염귀순 △문학예술 등단 △BS금융문학상공모 대상 외 다수 △수필집 ‘펜을 문 소리새’
제11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수필부문 심사평 / 코로나19에도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기 이어가
제11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에 400여 편의 작품이 응모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체험을 통한 글쓰기가 어려운 여건인데도, 오랜 전통에 빛나는 대회에 참가하려는 열기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동양의 고전 주역에는 ‘글로는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로는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글쓰기가 무척 어렵다는 말이다. 그중에도 주제를 경북문화체험으로 한정한 글쓰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삼중고를 겪게 됐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응모자들의 열정을 생각하며 심사에 임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답답한 심정으로 심사를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70편의 작품들은 일정 수준에 닿아 있었다. 어느 작품을 입상작으로 뽑더라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응모자들의 각고의 노력과 예심을 한 심사위원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문화유산 답사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참신성과 대상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한 편의 수필로 꽃 피우는 작품성, 문화체험에서 찾은 의미를 현재의 삶과 연결해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서 나도 그곳을 찾고 싶도록 쓴 명작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컸다.
류현서의 ‘당삼채’를 대상으로 뽑기까지 심사위원들은 세 편을 놓고 진통을 겪었다.
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에서 당나라 때 제작한 항아리를 만난 감동을 쓴 글이다. 온종일 당삼채에 푹 빠져서 쓴 글이다. 죽은 사람의 뼈를 담은 항아리를 통해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에 잠긴다.
당삼채는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으로 구성돼 있다. 홍안의 내 얼굴과 남편의 희끗희끗한 머리, 푸름을 내뿜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당삼채의 빛깔을 발견한다. 또 붉은 저녁노을과 푸른 들판, 하얀 황새에서 세월을 읽으며 삼색이 어울린 조화로운 당삼채 같은 인생으로 늙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잔잔한 감동이 일어난다.
금상으로 뽑힌 이은숙의 ‘경주 먹 이야기’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5호 경주먹장으로 지정된 유병조 선생에 대한 글이다.
내가 먹이 되어 쓴 글이다. 수천 번의 도전 끝에 전통의 먹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팔십 평생 장인의 철학이 느껴진다. 30년 된 상처 입은 소나무를 태워 얻은 그을음에 소의 힘줄과 가죽과 뼈에 장뇌, 용뇌, 매화, 사향의 향으로 만든 전통 먹이다.
먹에는 소나무의 삶과 소의 삶과 매화의 삶과 장인의 눈물과 피땀 어린 인생이 녹아 있다. 주제가 분명하고 표현이 독창적인 글이다.
은상으로 뽑힌 염귀순의 ‘손이 말하다’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의 시대에 마스크를 하고 찾은 호미곶의 ‘상생의 손’을 보고 쓴 글이다. 손을 잡을 수 없는 시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사는 시대를 맞아 손에 대한 묵상이 가슴에 스며든다.
태풍이 휩쓸던 추석날 아침 저수지가 범람해 피난길에 나선 어머니가 급물살에 휩쓸리자 아버지는 초인의 힘으로 목숨을 걸고 구한다. 그 아버지의 위대한 손을 떠 올린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토닥이는 손길과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상생의 손이 던지는 질문 ‘당신은 어떤 손을 가졌나요?’에도 귀를 기울인다. 시대상이 잘 나타났으며 손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 11년 동안 경상북도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체험을 수필로 기록함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고 감동을 독자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한 전국수필대전은 문화와 수필의 멋진 만남이다.
응모자의 분포가 전국을 망라하고 있으며, 찾는 발길도 경북 전 지역으로 넓혀지고 있음은 이 대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대회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앞으로 이름난 유산보다는 숨어있는 곳을 찾아 이를 알리는 데 좀 더 노력하면 좋겠다. 또 지난 입상작을 닮기보다 나만의 방법을 찾는 도전 정신을 갖기 바란다.
구활 심사위원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