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가장 좋은 전도서 2(Romans - The Best Ecclesiastes)-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 그리고 이신칭의(롬 3-4장)-죄인이 의롭게 된다.
할렐루야!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오랜 세월을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만 많이 전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한이 없으신 인류에 대한 사랑과 함께 엄위하신 하나님의 의가 함께 나타나 있음을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이 내용을 우리가 함께 생각하며 배우게 하시는 크신 은총을 찬양합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적어지고 세상이 불의로 물들어가는 지금의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배움을 통해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정의로운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시고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의가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세상에서 이런 하나님의 은총으로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된 성도의 올바른 삶을 통해서 이 땅에 모든 사람이 살기에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로 인해서 이 땅에 소망과 그리고 무질서와 강포와 거짓과 폭력이 물러가고 질서와 평화가 기쁨이 충만한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로마서를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며 이 땅에 구원을 얻는 백성이 날로 늘어가게 하시고 주변국에서 로마서를 통한 복음의 전파가 확산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무지한 저에게도 지혜를 주셔서 말씀을 잘 이해하고 모든 사람에게 잘 설명하게 하여 주옵소서! 늘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우리를 깨닫게 지혜를 주시는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을 찬양합니다.
샬롬!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내일 아침의 기온이 대폭 떨어질 것이라 예보가 되고 있고 가을비가 오면 날씨가 추워진다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알고 있습니다. 제 밭에 있는 작물들도 곧 마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시작해서 중단한 로마서- 가장 좋은 전도서의 글을 두 번째로 올립니다. 첫 글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이 선포가 되었는데 이제 이 죄인을 구원하셔서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이 의를 실천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로마서의 설명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의 큰 주제들인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심과 그리고 성령님을 통한 승리와 성령의 인도로 세상에서 성도가 하나님과 이웃과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고 의롭게 사는 구체적인 예 중에서 오늘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로마서 3장 21-26절의 내용을 4가지 버전으로 가져와서 다시 보면서 알아보겠습니다.(개역개정, 공동 번역, NASB, NIV 순서)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1. But now apart from the Law [the] righteousness of God has been manifested, being witnessed by the Law and the Prophets,
22.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for all those who believe; for there is no distinction;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being justified as a gift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which is in Christ Jesus;
25. whom God displayed publicly as a propitiation in His blood through faith. [This was]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because in the forbearance of God He passed over the sins previously committed;
26. for the demonstration, [I say,] of His righteousness at the present time, that He might be just and the justifier of the one who has faith in Jesus.
21.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26.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성경을 이렇게 다양한 버전으로 보면 어떤 부분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이 쉽게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두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버전이 있으니 비교를 하면서 그 이해를 높일 수가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4가지 버전을 보면서 성경의 이해를 늘렸고 그리고 이렇게 로마서를 배우고 전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 새롭게 이해가 되었으며 이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해한 내용을 우리가 모두가 이해할 수가 있도록 함께 살펴보면,
첫째 로마서 3장 21절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은 율법과 별도의 하나님의 의가 하나 나타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통해서 나타나는 의가 있는데 이 의와는 다른 종류의 하나님의 한 가지 의가 나타났는데 이 의는 그냥 어디 근거도 없이 어디서 뚝 떨어진 의가 아니라 율법서와 예언서를 통해서 이미 증거가 되어 있는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유대인들은 구약을 가지고 지키고 보존하고 그리고 예수님 오신 시대 그리고 바울 살던 시대에는 헬라어로 번역을 해서 읽을 수가 있게 했습니다. 이 유대인의 성경이 우리가 지금 보는 구약 성경인데 여기엔 율법서와 예언서와 우리가 또 아는 시가서와 역사서도 있는데 이렇게 구약 성경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는 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선 예언서로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으로 믿음으로 의인은 삶을 산다(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를 인용했고 그리고 로마서 4장 17-22절에는 창세기의 내용을 인용을 했는데 창세기 아브라함의 일생을 설명하는 창세기 12-25장에 그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창세기는 모세 오경 즉 율법서에 속하고 하박국서는 예언서에 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 하면 바로 우리는 율법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 생각할 수가 있는데 그 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서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속성을 가장 잘 설명했다고 믿는데 우리가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고자 하면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지구상 가장 정의롭고 공평한 법인 율법을 배우면 되는데 이 율법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하면 바로 율법으로 들어가고 율법 하면 의로우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가 있기에 여기에서는 유대인이 율법을 통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의가 아니라 이번에는 새로운 한 의가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났으니 그 의는 말씀드린 데로 창세기(율법서, 율법)에 있고 그리고 하박국(예언서, 예언)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는 의입니다 라고 저는 설명을 드립니다.
22절은 새롭게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에 대해서 풀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의로서 믿는 사람이면 차별이 없는 의라고 합니다. 즉 모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공동 번역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설명을 했습니다. 믿음으로 오는 의인 이신칭의의 내용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로마서 하면 생각나게 쉬지 않고 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구절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 의롭게 되느냐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반드시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짐승의 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부수적인 노력들이 기록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이라고 또 500년의 세월을 개신교는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 있으니 예수님의 어떤 부분을 믿느냐 하는 것과 믿음이라고 광범위하게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인가에 대해서 또 성경을 반드시 보고 이 구절을 이해하고 내가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을 받을 믿음이 되는가를 검토하고서 이 모든 조건에 합격해야 비로소 나의 의로움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 인정의 단계를 생각해 볼 수는 있으나 이도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절대로 아니고 그렇게 하시는 분의 결정에 달렸다는 사실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데 500년 전의 이 이신칭의를 성경에서 발견하신 분은 과연 이런 과정의 검토가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3절은 하나님의 새로운 한 의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나타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가장 좋은 전도서 1에서 살펴본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하는 부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 즉 율법을 통해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유대인과 그리고 율법도 없이 사는 이방인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는지도 역시 로마서에 잘 설명이 되어 있는데 로마서 5장에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를 통해서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고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이를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롬 5:12-21)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이 없이 절대로 예수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죄인이라는 인식이 없이 성경을 읽을 수는 있고 신학도 학문으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절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러 오셨다는 말씀은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지만 이런 사람 중에서 스스로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만 진실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임은 로마서 1-3장의 주요 내용인데 첫 시간에 자세하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즉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살다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짓고 에덴에서 추방이 되었습니다. 이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 혹은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다로 설명합니다. 이 모든 조상인 아담의 죄로 인해서 그 후손인 모든 사람이 원죄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담의 범죄의 결과로 에덴에서 누리던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릴 수가 없게 되고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서 조금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투며 자연과 투쟁하며 심지어는 대규모의 전쟁을 통해서 서로 죽이며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천국이 아니며 약육강식의 세상이며 폭력이 난무하고 악이 쉬지 않고 발생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세상을 각종 국가의 법으로 통제하고 좋은 세상으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역사상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질서 있게 기쁨을 누리며 사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고 강대국은 대부분 주변의 약한 나라를 약탈하고 살인하고 방화하고 유린했으니 세상은 정신을 잃고 이런 자들을 위인이라 추켜세워서 이렇게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희락이 넘치는 정의로운 나라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모든 사람이 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알지도 찾지도 않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쉬지 않고 죄를 짓고 살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서 원죄를 가지고 반드시 죽을 인간의 한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며 그리고 이들은 본래 이렇게 죽을 존재로 창조가 된 것이 아니라 에덴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영원토록 죽음도 없이 땀을 흘리는 노동도 없이 해산의 고통도 없이 늙고 병이 드는 일도 없이 동물들과도 잘 지내면서 살 수가 있었는데 죄를 범하므로 그런 삶에서 완전히 멀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죄인만 가득하고 온 세상이 무질서로 물들어 소망이 없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24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혹은 그리스도를 통한 속량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에서 풀리게 되었고 마침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죄는 명령을 어기는 것이고 죄는 법을 어기는 것을 말하며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를 짓게 되면즉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되면 반드시 그에 대한즉 죄에 대한 대가를 그 죄를 지은 죄인은 지불을 하는 것이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올바름, 공정함, 그리고 공평함 등의 의미도 있고 이렇게 죄에 대한 벌을 반드시 내리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죄에 대한 합당한 벌이 정의인데 율법은 어떤 행위가 죄가 되는 것을 규정했습니다. 죄형 법정주의가 지금으로부터 약 3천5백 년 전의 법인 율법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지금의 모든 세상의 법을 능가하는 정의롭고 공정한 법입니다. 누구든지 율법을 읽어 보시면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죄를 짓는데 처벌이 없으면 이런 사회는 아무런 소망도 질서도 행복도 없는 무법천지로 바로 지옥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나름대로 각국이 다양하게 법을 만들어서 질서를 유지하고 평안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나 독재국가나 혹은 전체주의 국가나 대부분의 국가의 헌법은 권력을 가진 집단의 산물이기에 다양하게 국민의 인권의 보장에 대해서 규정을 하고 있으나 율법과 비교할 때 너무나 부족한 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행시를 하면서 헌법을 어느 정도 배우고 다른 법도 어느 정도 배우고 그리고 율법을 조금 배워보니 그렇게 된 것을 보았고 이 율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어느 집단 국가의 법도 율법과 같이 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말씀을 또 믿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용납지 않으시고 반드시 벌을 내리십니다. 그 벌을 받을 우리들의 죄를 대신 속량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죄인의 죄를 풀어주심으로 우리는 아무런 노력 없이 즉 죄에 대해서 벌을 받지 아니하고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속의 의미는 나의 죄를 대신 속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저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하는 죄의 대가를 대신 받았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입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5절은 이를 다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25절은 모든 크리스천이 정확하게 완전하게 이해를 해야 되는 구절인데 보시는 바와 같이 어느 번역으로도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25절 이후부터는 별로 논의도 하지 않고 있지만 저는 이 부분이 바로 로마서의 핵심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제가 이 구절에 대해서 잘 모를 때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에 오천만의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 구절에 대한 영어 번역을 읽는 분들에게 요청을 했고 그리고 제 나름대로의 번역을 시도했습니다. 지금 보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새롭게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영어를 조금 알아도 이렇게 4가지 버전을 보면서 이 내용을 파악을 할 수가 있으니 이 공부 방법은 신학도 아니요, 헬라어 히브리어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 허락된 번역본을 보면서 그 이해를 높이는 방법인데 모든 크리스천이 다 누릴 수가 있는 축복입니다. 먼저 공동 번역의 내용이 더 이해가 쉽습니다. 그래서 가져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의를 나타내시려 어떻게 하셨다는 것입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 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입니까? 레위기에서 우리는 5대 제사 제도를 배우고 그리고 제물에 대해서 배우고 그리고 제사장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그 제사 중에서 죄를 지으면 드리는 제사가 있는데 반드시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하고 죽여서 제사를 드립니다. 흠이 없는 짐승이 제물이 됩니다. 죄를 지었기에 죄를 지은 사람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을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 택하셔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렇게 죄를 사함 받는 은혜를 베푸셨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제물로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내가 피를 흘리며 죽어야만 마땅한데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제물이 되셔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으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의를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이렇게 증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서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죄에 대한 벌이 정의임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독생자를 대신 벌을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이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셨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셔야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의는 이신칭의의 의가 아니라 이신칭의가 되도록 예수님을 희생시킨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분명하게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조금만 보시면 바로 보이는 것이 최후의 심판입니다. 죄는 결단코 하나님의 해결이 없이, 없어질 수가 절대로 없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독생자를 통해서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해결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절대로 절대로 죄에 대한 벌이 없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이는 최후의 심판에서 이렇게 죄인이 벌을 받게 될 일이 너무나 분명하고 또 피할 수도 없는 사실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죄를 용서받을 길을 열어 놓았는데 이를 믿지 않고 그냥 사는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그 심판을 피해 갈 길이 절대로 절대로 어디에도 없고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굳게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최후 심판이 반드시 존재함을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최후 심판의 존재에 대해서 깊이깊이 그리고 굳게 믿어야 하며 그 대상은 첫째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불신 가족과 이웃과 동료들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25절의 후반부는 영어로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because in the forbearance of God He passed over the sins previously committed;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공동 번역의 내용의 뒤에 있는 영문이 위와 같습니다. NASB, NIV의 두 가지 버전을 가져왔는데 두 버전은 첫 단어를 because로 사용해서 앞의 문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25장의 내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제물로 내어 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의를 드려내셨습니다. 이를 저도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제물로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게 하신 이유가 위의 밑줄 친 문장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개역개정과 공동 번역은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짧은 영어 실력을 동원해서 위의 문장을 아는 데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울 때 하나님께서 언제나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오신 성령께서는 늘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때 믿는 우리는 성경을 모든 사람보다 더 잘 이해를 할 수가 있으니 이는 그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짧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말씀을 사랑하고 늘 배우고 실천하고자 하면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는데 제 모든 글도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믿고 제 자신의 노력과 공부는 참으로 미미함을 밝힙니다. 할렐루야!!
because는 누구나 이유를 설명하는 단어임을 압니다. 왜냐하면으로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어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번역을 개역개정 그리고 공동 번역 등 다양하게 가지고 있으니 이를 또 참고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내와 혹은 길이 참으심으로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로 개역개정은 번역을 했고 공동 번역은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눈을 감고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문도 한 영문은 즉 NIV는 he had left로 NASB는 He passed over로 과거 완료와 과거로 다르게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그냥 보는 것이지 전문적인 분석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절대로 저는 그런 영어 실력이 있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냥 세상에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번역한 성경을 그냥 값없이 오직 그분들의 노고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시대에 이렇게 보는 것뿐이며 누구나 이렇게 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즉 참기가 어려우신데 이를 참으시고 그냥 넘어 갔다고 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넘어간 대상이 무엇이냐가 그 이후의 표현입니다. 이때 영어로 보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시면 바로 한글 번역으로 갑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혹은 과거에는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영문을 또 보면 He passed over the sins previously committed;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둘 다 sins라 해서 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들을 그냥 넘어갔다고 하십니다. 혹은 간과하셨다 하십니다. 그리고 남은 단어는 previously committed 와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입니다. 이 단어는 죄들을 설명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냥 영어로 볼 때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번역을 이렇게 끝이 났고 NIV는 unpunished 가 더 있습니다. 이는 벌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제 모두가 because로 연결이 되는 문장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함께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혹은 인내하시는 중에 그분께서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냥 넘어가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모든 분이 이해가 가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벌하지 않고는 한 번역에는 있고 다른 번역은 없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왜나하면 앞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의 혹은 의를 나타내신 이유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냐 하면 이렇게 보아도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미 간과하셨기 때문입니다.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벌을 하지 않으시고는 있는 버전이 있고 없는 버전도 있습니다. 한글 번역은 죄를 눈감아 주다 혹은 죄를 간과하셨다로 되어 있으니 벌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설명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역은 과거이고 한 번역은 대과거로 되어 있으니 만약에 헬라어 원본이 NIV로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렇게 대속의 재물로 보내시기 전에 이미 이렇게 하셨다라고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는 있는 번역을 통해서 누구나 이해가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를 영어를 중심으로 그리고 모르면 한글 번역을 보면서 이제 이해를 해 보시면 25절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됩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 번역은 그대로 가져와서 이에 대한 이유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벌하지 않으시고 그냥 넘어가셨기 때문입니다. 혹은 간과하셨기 때문입니다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26절은 또 같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보면 됩니다. 한글의 두 버전은 서로 조금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25절부터 조금 다르게 번역이 되니 결론이 되는 부분도 조금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26절은 21-25절까지 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은 자신도 의로우시며 예수를 믿는 분들을 의롭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로 설명을 합니다. 역시 공동 번역은 하나님과 관계를 올바르게 하시려고로 번역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21-25절의 일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은 자신이 의로우신 분이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내시려 하신 것입니다로 한글 번역 영문 번역을 보면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로마서 21-26절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제가 쉽게 이어서 설명을 드립니다. 이제는 율법과 별도로 율법서와 예언서에서 이미 예언한 하나님의 새로운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 율법서와 예언서는 창세기(창 12-25장)와 하박국(하바국 2장)서 입니다.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의니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께서 누리게 하신 영광스러운 에덴에서의 영원한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의롭다 함을 얻을 수가 있는 자가 되게 하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과거에 우리의 지은 죄를 그냥 넘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때에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은 자신이 의로운 분이시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심입니다 로 이해를 해 봅니다.
저는 이렇게 전하는 과정을 통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어제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이 구절을 묵상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 성경은 과학이다" 성경은 우주 최강의 과학이다란 내용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달을 탐험하고 우주로 나아가고 그리고 바닷속을 깊이깊이 들어가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탐험을 떠나지만 우리가 탐험하고 우리가 연구하고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알기 위해서 떠날 가장 크고 넓고 오묘하고 그리고 정확하고 변함이 없는 대상이 바로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혹자는 성경을 법으로 이해를 하기도 하지만 저는 성경은 가장 정확한 과학이며 그 깊이와 넓이는 우주 보다 넓고 깊다로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과 온 세상의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이 일생을 걸고 읽고 배우고 정리하고 이해를 해야 할 가장 위대한 대상이며 가장 복을 받는 대상이 성경이며, 그리고 인간의 일 중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 바로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정리하며 성경을 탐험하는 길이라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때문에 제 친구 세계에서 비뇨기과 일인자 의사인 정 경우(스마일 비뇨기과) 박사를 이제는 그만 수술하고 그만 환자를 보고 힘없는 남자를 세우는 일을 그만하고 성경을 읽고 이해해서 진실로 영혼을 세워 온 사람을 세우는 일에 전념하도록 환상을 보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제 친구가 이렇게 성경을 배우는 일에 속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접어들길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상이 너무나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임을 더욱 굳게 믿습니다.
이제는 이신칭의즉 위에서 배운 율법과 선지서에 나타난 율법을 지켜서 얻는 의와 별도의 하나님의 의를 이해해야 하고 이와 더불어서 이 새로운 의가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피 흘리심과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이며 이는 하나님의 의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며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즉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이미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서 길이 참으심으로 이미 간과를 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벌을 하지 않고 간과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일을 하셔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의로우신 분이시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만드시는 분이심을 만방에 나타내려 하시기 위함임을 우리는 아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신칭의만 보고 오직 믿으면 의롭게 된다네 하고 노래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의롭게 된 과정에는 예수님의 피를 흘리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의 역사적인 사실이 있고 이는 우리를 벌하지 않고 예수님께 죄를 물으신 하나님의 정의가 있으며 이렇게 모든 일을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바로 벌하지 않으시고 참기가 몹시 어려우신데 참으시고 벌을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이해를 하는 것도 더욱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나타내시고 하는 자신의 의로우심과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란 사실을 알고 믿고 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배우며 가장 좋은 전도서가 로마서 임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해야 하고 그리고 이 죄의 문제는 의로우신 하나님 외에는 해결하실 분이 없으시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를 묻고 죽어서도 죄는 피해 갈 길이 없고 최후 심판을 받게 예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꼭 전해야 하며 이런 죄인이 의롭게 되는 길은 우리의 선행이나 혹은 수도나 혹은 물질을 바침을 통해서 절대로 불가하고 어떤 방법도 없으며 오직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란 진리를 이렇게 로마서를 배우면서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 진리는 꼭 전해야 하고 또 많은 전도자들이 전하고 있지만 죄에 대한 벌로서 심판에 대해서 전하는 것도 꼭 필요한데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으로서 죄를 반드시 벌을 주지만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자신의 독생자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벌을 받게 하셨고 그리고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는 놀라운 구원의 진리도 꼭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진실로 의로우신 분이시며 또한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도 꼭 이해를 하고 잘 믿고 더 나아가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빛이 된 자녀로서 로마서 9-16장에 있는 하나님의 당부를 잘 이해하고 이 세상에서 꼭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길이 참으심의 간과의 의미와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심과 사역과 이를 통한 우리가 칭의가 되는 과정을 늘 묵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성경 속으로 힘찬 탐험을 시작해 보시기를 바라며 다음 시간에 3번째 글로 로마서 가장 좋은 전도서 3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그 강도와 그 사랑의 결과와 그 사랑의 궁극적이 승리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더욱 강렬해지고 우리의 성경에 대한 이해도 풍성해지며 더욱 깊은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깊은 영혼의 목마름이 채워지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리고 성경을 배우고자 하는 불타는 정열이 그대의 심령을 사로잡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칭의되는 믿음에 대해서는 하박국서 3장을 반드시 보셔야 하고 그리고 로마서 4장 17-22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로움을 인정을 받을 때 어떤 믿음의 연륜과 과정과 상태를 거쳐서 비로소 칭의의 단계에 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반드시 확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이와 함께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이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죄에 대한 용서가 있고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물로 그리고 작품으로 우리에게 낙관을 즉 도장 인을 남깁니다.
칭의는 이런 과정 속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절대로 처음부터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 하나 교회에서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돌과 같은 인생을 참으시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고시 공부한다고 공부를 잘 한다고 껄쭉대던 인간의 모습이 잘 신앙 생활을 하신 분께는 참으로 미숙하고 그리고 죄인의 모습을 그대로 가진 저를 참고 보시기도 어려웠게지만 저를 사랑하신 반석교회 성경석 목사님과 성숙하신 성도님들 그리고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우시면서 설교하심으로 제가 불을 받았고 제게 목사 안수를 해 주신 박 기수 목사님과 성도님들 그리고 불순종으로 심히 징계를 받아 살가가는 것도 불가능한 병들고 무너진 자를 받아서 치유해 주시고 결혼도 시켜 주신 잠실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의 쉬지 않는 도움으로 여기까지 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 안에 사랑이 있고 구원이 있고 회복이 있고 그리고 소망이 있고 그리고 문제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럴수록 교회에 꼭 붙어 있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모두가 부족하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세워가는 곳이 교회이며 눈에 보지지 않지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을 가장 잘 만날 수가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시고 홀로 그 무거운 세상의 짐과 죄악의 짐을 지시고 힘겹게 사시고 있으십니까? 속히 가까운 교회로 오셔서 예수님께 모든 수고와 짐을 맏기시고 쉼을 얻고 새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속의 타는 목마름은 세상의 어떤 성공으로도 채울 수가 없고 오직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심을 통해서 해소가 되는데 이 물을 가장 쉽게 속히 받아서 마실 수가 있는 우물이 바로 여러분 곁에 있는 교회입니다. 너무나 크서 감당이 되지 않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대신 받아야 하는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내가 아직도 지고 사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짐을 다 내려놓고 가볍게 되었기에 이제 여유도 생기고 사랑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그분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고 저와 여러분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사랑과 관심을 받기 원하시면 예수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곳이 바로 가까운 교회입니다. 그냥 교회로 발길을 옮기시면 살게 됩니다. 숨통이 터집니다.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교회로 가시기 바랍니다.
※ 로마서 3장 21-26절의 심화 학습
이 부분은 로마서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아직 번역도 완전히 통일스럽지 못합니다. 이런 내용을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게 전한다는 마음으로 전합니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알기론 깊이 논의도 없습니다. 주님께 불을 받고 오직 전도하고 그리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며 약 35년을 한국에서 가장 극빈자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1992년 예수님께 불을 받고 일반 대학원, 신학 대학원 공부를 했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배운 지식도 있고 신학도 있고 그리고 전도와 쉬지 않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여기까지 주님께서 인도하셨으니 이 모든 증거가 되는 자료가 오천만의 로마서이며 이 자료를 하버드와 예일, 그리고 프린스턴 그리고 영국의 옥스퍼드에 영어로 번역을 해서 요약해서 신학과 교수님께 보냈습니다. 서울 보고서란 이름으로 보냈는데 2018년도입니다. 그 자료를 이곳에 대부분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약 4년이 조금 넘게 이렇게 전하다 보니 또 새롭게 이해가 된 자료도 많은데 주님께서 늘 전하라고 하셔서 또 전합니다.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책으로 정리된 자료를 일부 제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과 원로 목사님, 박기수 전 대신 총회장, 그리고 조용기 목사님께서 아직 병원에 계실 때 순복음 교회에 보냈고 일부 장로님과 지인에게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21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한 의는 율법과 예언에 이미 증거가 된 내용으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와 함께 25절의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셨다고 하는 내용은 율법을 통한 의인데 이 의는 죄에 대한 심판 혹은 벌을 받는 의인데 우리 대신에 예수님께서 받으신 피를 흘리심과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심입니다. 로마서 21-26절에는 이와 같은 다른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이신칭의는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은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한 의이지만 이의는 반드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의의 나타남이 먼저 있어야 효력이 발생하는 의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는 이 세상의 어떤 죄인도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는 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1절의 하나님의 의는 25절의 하나님의 의로부터 발생이 됨을 우리는 확실히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주의를 해서 본문을 보시면 누구나 제 설명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의가 나타나 있으니 첫째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의이고 둘째는 예수님의 수난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를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25절의 하반부의 하나님의 간과에 대한 이해입니다. 간과 혹은 눈 감아 주심으로 번역이 된 부분은 우리가 또 깊이 이해를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영문으로 어떤 번역은 과거로 어떤 번역은 대과거로 되어 있으니 영어권에서도 어쩌면 헬라어 본문에 대한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도 논의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 혹은 눈 감아 주심이 없으면 참으로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부분이 바로 저에게 성경이 과학이다란 고백을 하게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주 최강의 과학이다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내용인지 기도하면서 꼭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의 노력과 지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망극하신 은혜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입니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진리를 만나고 성경의 과학성에 대해서 공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간과 혹은 눈 감아 주심은 우리가 과거에 죄를 지을 때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편에서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왜 하나님께서 죄를 보시고 참는 것이 어렵습니까?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과응보로 알고 있기도 하는데 율법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반드시 짐승의 피로 절대로 사할 수가 없고 그대로 죄인을 돌로 쳐서 죽이든 혹은 목을 매달든 혹은 불로 태워서 죽이든 죽어야 했습니다. 사함이 없는 죄들입니다. 반드시 돌로 쳐서 죽여라 하는 죄는 바로 죄를 발견하고 재판을 거쳐서 형을 집행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이에 해당이 되지 않는 죄는 물건으로 돼 값은 다든지 혹은 태형을 받는다 든지 혹은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서 대속을 해야 그 죄가 없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죄에는 바로 벌이 따라서 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 법의 집행은 구약의 경우에는 이스라엘에서 행해졌고 율법이 없는 경우에는 역사의 주관자로서 하나님께서 벌을 주셨음이 분명하고 그리고 죽어서 심판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든지 아니면 최후 심판의 자리에서 벌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정의가 유보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예수님께서 이제 오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아래 오십니다. 이미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계획과 실행이 있을 것인데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하나님의 이런 간과 혹은 눈 감아 주심 없이 바로바로 하나님께서 벌을 주셨다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런 벌을 받은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네 과거의 죄를 용서해 준다 너는 너의 죄로 벌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하면 바로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죄의 대속에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과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 간과 혹은 눈을 감고 계신다면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우리의 죄는 용서받게 되고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벌도 받지 않게 되니 참으로 죄에 대한 용서로 우리는 죄의 모든 결과 즉 벌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살인을 했을 경우 하나님은 유보하고 계시지만 세상은 나를 체포해서 사형을 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감옥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게 되면 살인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은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간과가 대 과거로 예수님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를 미리 하신 걸로 저는 이해가 되고 이렇게 영문으로 번역한 NIV가 신기합니다.
간과와 눈 감음과 대속은 다른 의미라 봅니다. 이에 대해서 신학을 하시는 분들의 검토가 필요할 것인데 저는 오직 하나님은 은혜로 헬라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위의 번역을 보면서 이렇게 설명을 드립니다. 제가 행정고시 2차에서 1점 차 낙방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성령을 주심으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라는 명에 의해서 성경을 차분하게 창세기로부터 보니 처음에는 제가 보던 사회 과학 즉 경제학, 정치학, 행정학, 심리학, 그리고 역사학 등과 너무나 달라서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으로 성경의 내용이 어느 한 구절 틀린 곳이 없음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창조로부터 인간의 역사와 종말까지를 다 믿고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다 믿으며 인간의 역사의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그리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도 다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믿지 못할 내용이 없으며 모두가 진리라 굳게 믿는 것입니다. 단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구절도 있으니 이는 성경이 바다보다 깊고 우주보다 넓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정확성은 바로 과학 그리고 어떤 과학도 절대로 따라올 수가 없는 정확한 과학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죄인에게 주신 말로 다할 수 없는 깨달음으로 믿습니다. 간과와 용서는 간과는 말 그대로 죄를 보시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이 몹시 괴롭고 화가 나시면서도 벌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을 말하는 내용이고 용서는 죄를 없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간과를 하고 예수님 즉 독생자를 보내서 회생을 시켜 용서받을 기회를 온 인류에게 하나님께 길이 참는 중에 주시고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분에게는 용서와 함께 성령의 선물과 함께 의롭다 인정도 오고 영생과 천국이 보장이 되나 이를 거부하는 자는 모든 기회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사랑도 인내도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도 사랑도 저버리는 자니 이런 사람이 최후의 심판에서 살아남을 길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우리는 이런 사실을 믿지도 않고 사는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의무를 태만히 하는 자도 벌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하면 변명이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성경의 이런 부분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알았다면 제 의무가 첫째로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전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영광과 함께 의무도 엄청 큰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쉬지 않고 모든 분을 위해서 성령을 받고 형통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가 먼저 있고 예수님의 오심과 피 흘리심과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죽음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두 가지 의를 나타내시고(믿음으로 오는 의와 예수님을 통한 우리의 죄에 대해서 벌을 받게 하시는 의)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의로우신 분이시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21-26장은 이렇게 이해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도 4년 전보다 많이 향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4년 전에 이 영문을 번역한 자료도 오천만의 로마서에 그대로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은 과학이구나 인정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이래도 제가 많이 알고 많이 배운다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신학자분들의 글은 저의 이런 어설픈 글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정교하고 그리고 깊이와 논리적으로 온전하고 그 문체가 참으로 유려함을 봅니다. 저는 그분들의 글을 보면서 저는 절대로 그분과 같이 이제 공부를 해서 될 수가 없음을 믿습니다. 이미 저는 신학자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고 전도자로 목사로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어려서부터 많은 학문을 하시고 또 신학도 하셔서 성경을 너무나 논리적으로 많은 목사 장로 성도님들께 잘 전해 주심을 믿습니다. 제가 기록한 이 부분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와 그리고 논의로 성경의 진리가 올바르게 이해되고 전달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런 분들께서는 헬라어 히브리어도 모르는 전도자의 성경의 이해를 관대함과 아량으로 보아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분께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김 정관 드림 2022, 10, 13일 오후 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