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요 10:14∼18
제목: 예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노라
● 기독교는 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심을 알고 믿는 신앙입니다.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지금 한국에서 가축을 기르고 개∙고양이를 사랑하고 예뻐하며 기르는 분들이 많지만 그런 것들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친부모도 유기하고 요양원에 버리는 사람이 많은 판국인데, 애완동물이나 가축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없을 것입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
혹시라도 정신이 혼미해서 동물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죽음으로 동물을 부활시키거나 동물을 천국에 보내지는 못합니다. 동물을 과도하게 위해주다가 비참하게 변사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양들)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주십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예수님은 목자이시고 성도들이 양떼인 것은 불신자들조차도 익히 알고 있는 비유인데요. 양들(성도)을 찾아오는 자들은 크게 3 부류입니다. 절도와 강도가 첫 번째 부류이고, 삯꾼이 두 번째 부류인데요. 절도∙강도와 삯꾼은 목자가 아닙니다. 목자가 아닌 자들이 양들을 찾아오기 때문에 성도들은 불행해집니다. 유일하시고 진정한 목자, 즉 선한 목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삯꾼이 절도나 강도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악하기는 하지만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일은 절대 못합니다. 돈 되는 일만 하는 자들인데요.
요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
삯(돈)을 받은 만큼만 양을 돌보는 것이 삯꾼의 특징입니다. 절도와 강도는 돈 받은 만큼은 고사하고 오히려 성도들의 돈과 육체를 속여먹고 강탈해 갑니다. 목자와 양은 서로 압니다. 선한 목자를 가진 양은 참 성도입니다.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성부와 성자가 서로 아는 것같이 양들(성도)은 선한 목자(예수)를 알고 선한 목자도 참 양을 압니다. 이 양들은 ‘성부께서 성자에게 주신’ 성도들이기 때문에 선한 목자를 아는 것입니다. 아래 말씀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마태복음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흔히 성도의 견인을 이야기 하는데요. 성도들의 믿음과 구원의 원동력은 성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부께서 성자께 주시고 인도하신 것에서 그 원동력이 있습니다. 이 원동력을 알면 담력과 평안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 오늘의 본문 중 요10:17에는 의미 있는 교리(능동적 순종)가 나옵니다. 이 내용은 어느 정도 기성 신자가 된 분이 읽으시면 편하고 초신자가 읽으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포함한다는 것이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다수설입니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 교리의 내용은 알아 놓아야 합니다. ‘능동적 순종’은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 죄인들을 위해서 율법을 준수하신 일을 말하고, ‘수동적 순종’은 죄의 형벌을 치르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써 자신의 모든 백성들의 부채(죄 값)를 탕감해 주신 것입니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분리되지는 않지만 구분은 될 수 있습니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이 둘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늘 붙어 다녔습니다. ‘능동적 순종’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진해서 고난과 죽음을 선택하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요10:17.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누군가가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주님이 엉겁결에 피살된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순종을 하셨던 것입니다. 요10:18에서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는 것은 ‘순종’을 의미하고 “목숨을 버리는 것”(요10:17)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10:18)는 예수님의 순종이 ‘능동적’인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왕에 오늘 묵상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알았다면 수동적 순종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수동적 순종은 율법에 복종하며 사시고 종의 형체를 지니고 사신 것(빌2:7)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동적 순종을 통해서 죄의 형벌을 받으시고 인류의 죄에서 저주를 제거하셨고 능동적 순종을 통홰서 죄인을 위해 영생을 얻어주시고 최후의 영광의 목적지로 인도하십니다. 주요 성경구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꼭들 읽어 보세요. 성경이 가장 명확한 교리입니다.
수동 순종 |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롬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요일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능동 순종 | 롬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10:3,4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갈4:4,5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 요10:7∼18은 한 문단인데, 14절부터 선한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이 선한 목자를 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도(양)와 그리스도(선한 목자)가 서로 아는 것은 성부와 성자가 서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요10: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선한 목자는 강도∙절도와 달리 삯꾼과도 달리,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자발적으로 버리는데요. 선한 목자에게는 목숨을 버릴 권세는 물론이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습니다.
요10:17.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그리스도 순종의 능동적 성격을 잘 부각시킨 번역은 새번역이고 목숨을 버릴∙다시 얻을 권세가 특권이라고 잘 표현한 것은 현대인의 성경 같습니다.
새번역)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현대인의성경) 이 생명을 내게서 빼앗아 갈 자는 없지만 내가 스스로 버린다. 나에게는 생명을 버릴 권한도 있고 다시 가질 권한도 있다. 이것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특권이다. |
이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나 개념용어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능동/수동)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속하여지고(속죄, 贖罪)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으며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묵상을 읽으신 우리 모두가 ‘나(예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1,15)의 그 양들 중 하나하나인 것을 믿고 기억하시며 거룩한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72회 고신총회 소식8] 능동 순종은 성경적 교리로 계속해서 지켜가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훨씬 더 풍성하게 이해하게 하고, 칭의에 대한 보다 강력한 확신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교리이다.
http://reformedjr.com/index.php?document_srl=1039769&l=ko&mid=board01_01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네요.
좋은 내용이고 공감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수동 순종 • 능동 순종 (자료 첨부)
수동 순종•능동 순종이라는 용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성부께 순종을 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의가 성도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https://cafe.daum.net/1107/Y4OK/56
첨부된 이승구 교수님의 그리스도 순종에 대한 글은 딱딱해서 시간 나는 대로 틈틈히 계속 읽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공감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서민적 설명
- 개신교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the active obedience of Jesus Christ)은 그의 의식적 순종 (preceptive obedience)이라고 불린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있어서 그의 행위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이다. 개혁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칭의의 일부로 그들에게 그의 의의 전가가 되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은 초기 종교개혁부터 핵심 교리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가 1561년에 작성한 대요리 문답을 통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할 당시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고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알미니안주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반대한다. 루이스 벌꼽에 따르면 아르미니안주의는 칭의를 단순히 타락전 아담의 상태에 인간을 둔다고 한다.
- 미국 장로교 신학자이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설립자인 존 그레섬 메이천은 그의 친구인 존 머레이에게 마지막 전보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하여 대단히 감사한다"라고 썼다. 그것없이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https://cafe.daum.net/1107/Y4OK/23
@장코뱅 역시 서민들의 백과사전 설명이 쉽네요.^^
@노베 공감합니다.
한국 장로교 신학의 거목인 죽산(박형룡)의 능동 순종에 대한 지지와 주장
"죽산은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가 피동적 순종뿐만 아니라 능동적 순종에 미친다고 본다. 피동적순종은 수난을 통하여 죽음의 채무를 지는 것이다. 이로써 주님의 대속은 죄 사함의 공로가 있다. 능동적 순종은 율법에 대한 순종을 뜻한다. 이로써 주님의 의는 성도의 거룩한 삶에까지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문병호, 「죽산 박형룡, 지로적 신학자」, p.29."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대한 논쟁이 지엽적이지만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박형룡의 능동적 순종은 전반적으로 벌코프와 촬스 하지의 입장을 따른 것이다. 이것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일맥상통하는 입장이다.
정승원, 「죽산 박형룡, 지로적 신학자」, p.45."
https://cafe.daum.net/1107/Y4OK/33
박목사님같이 보수적인 원로가 능동 순종을 인정하고 지지했다면 어느 정도 신뢰가 가네요.
교리 용어는 잘은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서 우리에게 속죄가 일어나고 의의 전가가 일어났다는 내용은 너무나 검동적이고 감사합니다.
아멘! 공감합니다.
예수님만이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고 대속하여 주심을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으로 설명하여 주셨군요.
요 10:14~18절과 해당 구절을 도표로 정리하여 주시니 완전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 순종은 율법을 순종하심으로써 의를 전가하여 주시고 영생과 최후의 영광으로 이끄시는 것이고, 수동 순종은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속죄하여 주신 것을 말한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리셨으나, 삯군 목자는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네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더욱 따르고 사랑하렵니다. 감사합니다.
요약하고 정리해 주셔서 저의 이해를 도와주시네요. 매우 공감합니다.
깊고 풍성한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포스팅 본문과 댓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해 다시 잘 배우고 은혜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