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2 - 나이롱 기타 -
♬ 기타의 종류 : 1.클래식 기타 (나이롱 기타) 2.포크 기타 (쐬줄 기타) 3.12줄 기타 4.앰프 기타 5.베이스 기타
* 통기타란 위의 1.2를 통칭하는 말임. 3.4.5는 딴따라 전문가들이 사용함.
* 나는 주로 1을 쳤으며, 2는 싫어하고, 3과 4는 딱 한번 쳐봤으며, 5는 만져보지도 못했음.
* 앰프 기타에 얽힌 사연 : 고2때 교회 예술제에서 중.고등부 예산으로 앰프와 앰프 기타, 드럼 빌려서 한바탕 굿판 벌이려다
좌절한 적이 있음. 연습 과정에서 적발되어 우리 뿐 아니라 선생님들까지 작살났음.
그때 하려던 곡 - 딥퍼플의 '스뫀 언 더 워터' 이종용의 '너'.
얼마전 가스펠 경연대회 심사하러 갔는데 격세지감을 통감함.
요즘 같으면 거교회적 지원을 받으며 우덜의 음악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을텐데 ㅉㅉㅉ
♬ 나의 첫 기타 : 중3 때의 어느날 아버지가 사 오셨다. 난 하모니카 사 달라 했는데 쌩뚱맞게 이름 모를 기타를 한 대
사 오신 것이다. '세고비아' '오봉' '세종' 등 알려진 브랜드가 아닌 '다이아몬드'라는 듣도보도 못한 상표였다.
아마 하모니카 가격과 가장 근접한 최저가의 기타였으리라.
근데 그 시절 난 딴데(미니 당구) 깊이 빠져 있었기에 걍 '도레미파솔라시도'만 실험해 보고 팽개쳐 두었다.
고1 때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니, 이 후진 기타라도 내게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아마 이때 사 달라 했으면 절대 안사주셨을 것이다.
또 이 기타가 명기의 반열에 드는 기타라는 것을 그땐 미처 몰랐다. 명기인 이유는 주인을 귀신같이 잘 알아본다는 것이다.
딴 넘들이 치면 직직거리고 소리가 잘 안나지만, 주인인 내가 치면 맑고 영롱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이윤즉슨 지판이 휘어져 줄 사이와의 공간이 크게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 주인 알아보던 명기는 고3 여름 방학 때, 기타 끊고 공부 좀 해보겠다는 취지에 의거 장렬히 산화하였다.
-만리포 해변의 어느 모닥불에서-
♬ 통기타와 맺은 인연 : 고1 때 5월 어느날, 독일어 시간이었다. 살벌하기 이를 데 없던 독어 선생님(민욱기)의 명이 떨어졌다.
"신동수!~ 노래해!~!~"
[자흐 아인 크나바인 뢰스라인 쉬텐, 뢰스라인 아우프 데어 하이덴, 바르 조 융 운트 모르겐 쇤, 리프 에르 쉬넬 에스 나추진,
자스 밑 필렌 프로이덴, 뢰스라인 뢰스라인 뢰스라인 쉬텐, 뢰스라인 아우프 데어 하이덴]
살떨리는 공포 속에서도 썩 잘 불렀는지 방과후 한 키 큰 녀석이 내게 말걸어왔다.
"동수야! 우리 휘문 셀(카톨릭 학생회) 발표회 하는데 나랑 같이 듀엣하자!"
명륜동 카톨릭 학생회관에서 연습하면서, 통기타의 세계에 첫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이때 발표곡 -어니언스의 '작은 새' 팝송 '드림' '바이 바이 러브'
*참고로 난 기타가 안되어 찰찰이를 쳤음. 하지만 화음 붙여서 노래하는 것이 저절로 되었음.
일단 통기타에 입문한지 한달도 안되서 난 키 큰 녀석(이문영)은 물론, 기라성 같은 뭇 선배들을 압도하는 기량을 갖추게 됨.
이후로 학교는 물론 교회에서도 전천후 반주맨으로 맹활약하게 됨. 그 시절의 거의 모든 노래를 외우고,
노래책 없이(코드 기호 안보고) 칠 수 있고, 카포 없이도 키(높이) 조절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음.
* 에피소드 #1 ; 셀 발표를 계기로 고2때 선배(6대 김명현)에게 멱살잡혀 스텔라 합창단(카톨릭 학생 합창단)에 입단하게 된다.
내가 7대인데 7대 회장이 바로 청사칠의 가수 신동일(당시 경성고 2학년) 스텔라는 11대 활동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나,
그 때의 인연은 오늘날까지 계속됨(참고로 신동일은 미적지근함)
스텔라 합창단에서의 활약은 내가 음악을 전공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
* 에피소드 #2 ; 고3 여름 방학, 정신나간 6명이 의기 투합하여 만리포로 놀러감. 물론 난 기타맨으로서 교통비만 부담하는 조건.
3박4일 동안 실컫 노래하고, 먹고 마시고, 빨갛게 태움. 근데 옆 텐트의 대학생 꼬심에 넘어가 나만 2박3일을 더하게 됨.
'천막 고고장'에서 초저녁에 기타치면서 노래하는 아르바이트 -조건은 단지 숙식(음료 포함) 제공.
보충수업 2일 땡깐 댓가는 각오보단 약소했음 -안그래도 따가워 죽겠는 잔등을 손바닥으로 수차례
독사(당시 담임 황진락 선생님)에게 가격당함. 같은 반이었던 지노신아! 기억나냐! ㅎㅎㅎ
♬ 클래식의 세계를 접수하다 : 우리 교회에서 주중에는 예배실을 독서실로 운영하였는데, 난 주로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 꼬셔서
옥상에 올라가 기타치며 놀다가, 가끔은 정란여상 애들 체육복 갈아입는거 훔쳐 보곤 하였다.
고1 때 9월의 어느날, 옥상에서 경이로운 음율과 함께 놀라운 광경을 접하게 됨. 웬 오스트랄로 피데쿠스(서울 농대 다니던 교회
선배 신호현, 시커먼 얼굴에 쑥대머리 산발에 앞니 빠진 중강새)가 기타를 뜯고 있는데 음반으로나 듣던 그런 곡이었다.
곧 난 다짜고짜 '클래식 기타 명곡집'을 사고, 기타 삼매경에 빠짐.
* 레파토리 -로망스, 작은 로망스, 라리아네의 축제, 소르의 월광, 레인 드롭스, 알함브라 궁전의 회상, 엘리제를 위하여(내 수준에
맞추어 내가 편곡) 등. 아울러 가요 반주도 단순히 코드 잡고 두들기는데서 벗어나 멜로디와 화음을 함께 표현하는 시도를 하게됨.
* 에피소드 #1 ; 고2 때 진명여고 삼일당 '휘문의 밤' 행사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회상'을 연주하게 되었는데, 며칠전 오른손을 크게 다치는 사건 발생하여 결국 연주를 못하게 되고, 이때 마침 빠져들게 된 피아노의 마력(쇼팽의 즉흥환상곡)에 기타를 등한히하게 된다. 오른손 부상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음.
* 에피소드 #2 ; 고2 때 어느날 국어 시간, 늘 하던대로 열심히 여드름을 짜고 있던 내게 황복동(시인, 필명 황명) 선생님이 다가오심.
짜기-유난히 여드름이 많았던 나의 유일한 시간 죽이기 프로그램, 큰거 짜면 그자리에 대일밴드 붙이고 다녔음, 그때의 분화구가 아직도 낯짝에 남아있음. "야! 너 뭐하는 놈인데 사내자식이 손톱을 기르고 있나?" "예, 저 기타치는데요." "가방 좀 열어봐."
가방에 들어 있는 것 - 도시락(필수품) 기타책, 카포(높이 조절기), 피크(화투짝으로 대신하기도 함) 종합장 한권(전과목용),
다행이 담배(역시 필수품)는 양말속에 있었음. "이그 한심한 놈" 쿡~~ 군밤 한대 끝
깡패(영어)나 용가리(中수학), 미누끼(독어) 또는 미친개(교련)였음 난 그날 곡소리나게 맞았을 것임
♬ 나의 첫 작곡 : 수도교회 중.고등부 회가
고2 때 교회 친구 권영국(경신고 출신)이 작사하고 내가 처음으로 작곡한 통기타를 위한, 통기타에 의한, 통기타의 노래이다.
요즘은 중.고등부 예배를 마칠 때,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한다.
그 후로 우리 콤비가 만든 가요가 몇곡 있지만 가사는 사라지고 멜로디 몇개는 내가 딴 곡에 써먹었음.
음대 진학 후 가요를 쓸려면 자꾸 가곡틱해져서 절필하게 됨.
주님의 사랑속에 모인 우리들 발자취 따르려는 조그만 무리
불신과 부조리의 사회 속에서 기도와 찬송으로 살아갈 때에
커다란 힘되시는 우리 주예수 지극히 귀하신몸 여기 오셔서
십자가 고통속에 숨을 거두며 죄인들 용서하신 크신 그사랑
나항상 찬양하며 살아 가리라 나항상 찬양하며 살아 가리라
★ 청운 국민학교 동창회 (청47) 홈피에 올렸던 글을 당당히 빼왔음 ★
첫댓글 잘보고갑니다~당구얘긴언제?ㅋ
3. 다마 2편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