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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유치
항상 보살펴 주옵시는 신령하신 화엄성중님, 자재하신 신통력과 끝없는 위신력으로 마구니를 꺾고 정법의
깃발을 높이 세우시니 그러므로 저희 정법 수행자들은 귀명정례 하나이다.
저희들의 지난날을 생각하오면 시작 없는 옛적부터 내려오면서 햇빛 같은 성품 등져버리고 탐진사견 온갖
번뇌 지어 왔으되 미혹하고 우둔한 성품 탓으로 어떤 것은 기억에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잘못된 줄조차 모
르니 이제라도 저희들 정법 제자는 행동과 말과 생각, 신구의 삼업을 맑히고 비워 바르게 하오리니 저희 향
한 보살핌 거두지 마옵시고 저희 가정과 우리 이웃들을 온갖 사악한 것들로부터 지켜 주시옵소서.
이 유치라고 하는 말은 까닭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신중기도를 올려야 되는가?
신중기도를 올리는 까닭이 바로 끝 부분에 [저희 향한 보살핌 거두지 마옵시고 저희 가정과 우리 이웃들을
온갖 사악한 것 들로부터 지켜 주시기를 바라는] 그런 의미에서 이 신중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일일명상록중에서 능정관음 33관음응신도 가운데서 8번째 받은 그림 뒤에 보시면
[자식 잘 되는 집을 보면 그 선대들이 기도를 많이 드린 집안이다. 선대에서 들인 공은 헛될 리가 없다. 돈을
남겨주는 대신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 해주라.]
그리고 오늘 화엄경 약찬게 공부를 이어가겠습니다.
77페이지 화엄경 약찬게 조금만 읽어보겠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 나무화장세계해 비로자나진법신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래 과거현재미래세 시방일체제대성
근본화엄전법륜 해인삼매세력고 보현보살제대중 집금강신신중신
집금강신신중신 그 뒤로는 전부 신장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삿된 마구니를 처단하는 그런신
장들입니다. 이건 후일 공부가 될테고요.
[비로자나진법신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래]찾았습니까?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비로자나진법신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법신 보신 화신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신 보신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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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받으신 특별유인물을 보시겠습니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자나진법신라 했잖아요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진짜 법신이다 이 말입니다.
진짜 부처님은 뭐냐? 바로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Vairocana]
바이로차나[Vairocana]라고 하는 말 어디서 들어봤습니까?
광명진언
바로 광명진언의 바이로차나가 비로자나입니다.
비로자나[Vairocana] 를 광명변조[光明邊照]라고 한다.
광명이 두루두루비추인다 이말입니다.
변일제처 일체에 두루하신분이다. 비로자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어요 두루두루 비추는 광명
일체에 두루미치는 그런 부처님 빛을 비로자나라!
법신[ 法身]을 인격화해서 부를 때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비로자나불은 이 우주전체의 본체이며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은 그 응화일뿐이다. 비로자나불은 개별적인
모든 존재들이 불가분리의 유기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연기의 주체인것이다.
마음이라 하여도 관계없고 일심이라 하여도 관계없다. 비로자나불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며 어디에나 존재
하는 보편적인 것이며, 만물에 똑같이 열려있는 평등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이다.
비로자나불은 살아 움직이며 모든 것을 살게하며 창조의 주인공이자 원동력이다.
모든 것과 하나를 이룩하는 하나님이다. 그 하나는 전체가 되며 전체는 다시 하나가 된다. 법신은 자성신이
며 법성이며 진여이다.
비로자나부처님 법신불에 대해서 그냥 요약해서 잘 설명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하는 분입니다 바로 법신 그대로입니다. 이부처님은 있다 없다라
고 하는 그런 정도의 부처님이 아닙니다. 이 우주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시는 부처님.
그런 부처님이 우주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계시는 부처님
이 법신 부처님속에서 뭇 생명들이 살고 있고 뭇 존재들이 현재 놓여져있는 것입니다.
바로 온 우주 생명의 근원이 바로 이 비로자나부처님!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비로자나부처님인데 바로 진리의 부처님 법신입니다.
마치 우주 허공과도 같고 , 또 사람에게 있어서는 산소와도 같은 그런 분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 즉 법
신불입니다. 억지로 이름 붙여서 비로자나부처님했지만은 사실은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그런 존재. 바로 그러한 진리의 부처님입니다. 바로 영원하고 그리고 아니 계신 곳 없는 부처님 그런 부처님을 우리는 비로자나진법신이라 이렇게 부릅니다.
(가)보화비진료망연(報化非眞了妄緣)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이로다.
이것은 스님들의 염불속에도 많이 나오고요 또,이것은 금강경 오가해 해설에서도 나타나는 그런 말씀입니
다.
보화비진료망연(報化非眞了妄緣)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이로다.
그 밑에 해설을 보시면,.
보신과 화신은 진짜가 아니고 망연인줄 알라
망연이란 말은 인연으로 나타났단 말입니다 얽힌 인연인줄알라. 그러니 보신과 화신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근데 이 법신은 비로자나부처님의 법신은 홀로 절대적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구차한 인연을 빙자하지 아니하고 의지하지 않고 오롯이 똑똑히 홀로 절대적으로 계시는분
이 바로 이 비로자나 부처님. 즉 법신불입니다
완전한 부처님이지요
상대가 없습니다 법신불은
망연이라 망연인 줄 알라 또는 망연인 줄 마침내 망연이라 이 말은 상대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보신과 화신불은 바로 비로자나부님에 비하면 아직도 덜 미치는 부처님자리이지요.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건 뒷부분에 설명하고요
조금 어렵지만 잘 보세요
보화비진료망연이라
바로 이 말은 상대가 없다 독보적이고 절대적이다 이 말입니다.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이라
법신만이 청정하여 끝도 갓도 없느니라.
법신은 청정해 넓어 가이 없음이라. 이 법신청정이라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 또 그렇게 말을 할때가 있지요?
들어보셨습니까?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청정법신비로자나불
법신만이 청정하여 끝도 가도 없느니라.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이라
천강에 물 있으면 천강에 달도 뜨고
이 말은 온천지가 진리의 몸 아닌것이 없다 이말입니다.
온천지가 진리의 몸 아닌것이 없다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라.
만 리에 구름 없으면 만 리가 하늘이다.
이 말은 중생심이 없어지면 그대로 참된 법신이 비추어지고 법이 열린다
시원해진다 그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절은
보화비진료망연(報化非眞了妄緣)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했어요
비로자나부처님은 주객이 나누어지기전에 계시는 절대적인 부처님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어야 되고 우
리 생명력의 근원이신 부처님이다.
나를 현재 지금 여기에 현장에 이 시간에 나를 나대도록 지금 놓아주시는 바로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시는 가
장 근원적인 부처님이 바로 이 비로자나부처님 바로 법신이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생각을 해야됩니다.
그에 따라서 저 위에 문장을 다시 보시면 마음이라 하여도 관계없고 일심이라 하여도 관계없다 비로자나부
처님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상주불이지요.
그러니까 항상 존재하는 분이다. 부처님이 늘 나와 같이 항상 존재한다면 우리는 마음을 좀 넉넉하게 가져갈 수도 있어요
마치 어린이아가 자기 어머니가 자기옆에 있는 줄 알면 마음이 넉넉해 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더라 늘 그 생각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는 가장 훌륭한 마음의 자세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즉 이 부처님을 내가 모시는만큼 내 마음이 그만큼 넉넉해져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 불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비로자나부처님의 덕화.
덕화에 대한 감동으로 우리가 생각을 한다면 첫째 이 넉넉한 맛이 있어야 된다 그 말씀을 드립니다.
넉넉한 맛이 있어야 된다
불자가 비로자나부처님의 이런 덕화를 입고 있는 이상 좀 넉넉하게 살아야된다.
시아버님이 백만원을 빌려달라해서 빌려주기 싫은데 시아버님이 빌려달라하니 할 수 없이 빌려주었어요
'내 쪼금만 쓰다 주께' 이래 백만원을 빌려드렸는데 한 달이 가도 소식이 없고 두 달이 가도 소식이 없고
세 달이 가도 소식이 없고 그래 이제 화병이 날 지경입니다. 시아버님한테 돈 백만원 빌려주고 그걸 달라
하기도 뭐하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마음의 병이 생겨가지고
이제 같은 성을 가진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하는거라. 어떻게 이런 가족들이 다 있는가 싶어가지고
같이 앉아 밥먹기도 싫고 그게 점점 도가 심해지니까 이제 애들까지도 보기 싫어 지는거라
자기 할아버지 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 화가 얼마나 나는지 자신도 주체가 안되고 감당이 안되는겁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그래도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데는 한국불교대학대관음사가 아닌가? 입학을 하였답니
다.
입학을 해서 다니는데 마음이 조금 추스러지고 강의듣고 법문듣고 하다보니 이제 괜잖아졌어요
어느날 법당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자기 내면의 소리가 들렸어요
'내가 참 나쁜여자구나' 그까짓 돈 백만원 가지고 시아버님이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소리가 들린거라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은겁니다
그 소리가 들린 이후로는 지극히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한거지요
남편도 이해가 돼요. 남편은 아무 잘못이 없잖아요
'내가 남편을 미워한 것이 잘못이구나'또 애들 자기가 낳은 애들인데 미워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같은 성을 가졌다는 이유때문에 애들이 미워지기 시작한거지요
그런데' 내가 왜 애를 미워했던가? 이래 마음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겁니다
그런데도 깊은 내면의 마음가운데는 그래도 시아버지한테 돈 백만원을 빌려주었는데 잊어먹고 있지는 않았
겠지요
전에는 어떻겠어요
어쩌다가 명절때나 시아버지 만나면 정말 피가 꺼꾸로 쏟는것처럼 그런 아주 못된 감정이 일어났다는 겁니
다.
근데 내면의 소리가 들리고 차차 불교대학다니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나니까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그런 감
정도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다 2년쯤 지났는데 어느날 시아버지께서 오셔가지고 '2년전에 내가 니한테 백
만원 빌렸쩨'그러더라는 겁니다.'아버님 지난 일인데요' 내숭을 떨고 그렇게 이야기 했대요' '아니다 빌린건
빌린거지'그러면서 백만원을 주는거지요
그리고 다른 봉투를 또 꺼집어 내더니 '이건 이자다'50만원 넣어가지고 주더랍니다.
그러더니 또 다른 봉투를 꺼집어 내더니 '그래 내가 너를 2년여 동안 지켜보니 너 참 사람이 괜잖다 선물을
주고싶다'선물로 준 돈이 5백만원이였어요
시아버지가 불평없이 참아준 댓가로 오백만원을 내 주었다는겁니다. 그러니까 이 며느리가 감격을 해서 바
로 특등을 달았답니다.
넉넉하게 살 수 없느냐 이거지요
우리가 절대 비로자나부처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만 있으면 그렇게 조급할 이유가 없다는겁니다
마음을 넉넉하게 가져가라.
불자라면 우리가 부처님을 알고 있는 불자라면 비로자나진법신을 알고 있는 불자라면 마음 넉넉해져야 된
다 이거지요
보면 난전에 가가지고 난전에 그 물건파는 사람들 힘들거든요
자기는 어디 다니면서 먹을거는 펑펑써대고 말이여 그리고 난전에 앉아 가지고 10원 20원 깍는다고 난리지
요 100원 깍아 가지고 뭐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한테 후하게 부르는대로 줘도 그거 10원 20원 30원 차이라 그런데 뭐 그거 앉아서 깍고 있느냐
이거지요.
이 사람들이 참 열심히 살려고 하는구나
이 사람들을 내가 바로 도와주지는 못해도 내가 물건 값을 과도하게 깍지는 말아야지 이런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지요
특히 재래시장 전통시장 다니면서 그리 해주시길 바라고요
또 보면 택시를 타고 골목골목 가가지고 십분이나 올라가가지고 5550원 또는 5750원 나왔다 그러면 꼭 잔돈
받아가는 사람 있거든요
그 동안은 내가 한국불교대학다니는데 참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기사님도 오십시요 그래 놓고는
내릴 때는 잔돈 거스름 돈 받아가지고 그기거 꺼꾸로 내려가는 것도 생각해 주어야 되잖아요 그렇게 아주 너무 계산적으로 그렇게 살게 뭐 있냐 이거지요.
자기는 어차피 택시타고 올라갔으니 차 조금 밀렸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딴 사람들이 불교인들이 한국불교대학 다닌다는 사람이 어찌 저리 인색할 수 있는고? 그런 이미지를 남길
이유가 뭐 있냐? 이거지요 그거 없어도 살잖아요
좀 넉넉한 마음으로 살 수 없느냐 그런 말씀을 드리고
가족들에게도 그렇잖아요
집에 어디 남편이나 보살들에게 [너도 옛날에 그랬으니 나도 그래야된다]
[니도 옜날에 열두시에 들어왔으니까 나도 들어간다]그리할거 뭐 있느냐 이거지요.
분명히 절에 나가는 사람은 좀 다르구나
진법신을 아는 분이 다르구나 이러한 딴사람이 보기에도 그러니 본인은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그리 살면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불자는 넉넉하고 이해심도 있어야되고 그런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로자나진법신을 아는 우리 불자는 넉넉한 맛이 있어야 된다 했는데 이것은 이해심을 말하는
겁니다 이해심
그 다음 두번째 문단을 보시면
노사나불[盧舍那佛] 입니다.
현재설법노사나 그랬지요?
현재설법하고 있는 노사나불입니다.
내용이 아주 어렵습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보신을 인격화해서 부를 때 노사나불이라 한다.
법신을 인으로 삼아 그 과보로 나타난 몸이므로 보신이라 하는 것이다. 이 보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여당
체인 법신이 형태를 취하여 나타난 몸이다.
보살이 원을 세운뒤 무량한 시간을 두고 온갖 수행을 한 결과 진리와 하나가 된 만덕이 원만하여진 몸이다.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 할 때 원만이란 수행에 의해 온갖 것을 성취 했다는 뜻이다.
법장비구가 48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아미타불이 되었는데 이 아미타불이 바로 보신이다. 초지이상의 보살
이 되어야 그 몸을 볼 수 있고 그 법문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이들 보살에게 법락을 수용시키는 부처님의 몸
이므로 수용신이다.]그랬어요
여기서 내용을 가만히 봐요
이 노사나불도 위의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이 비로자나진법신은 보통 범부중생의 눈에는 아예 안보입니다 감
으로 [아! 생명력으로 가득하신 부처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지]감만 잡을 뿐인데 이 노사나불은 그래도 조
금은 중생계 밑으로 조금더 내려왔어요
그렇지만 보통 사람 눈에는 안보입니다 초지 이상의 보살이 되어야된다고 그랬잖아요 거기보면
초지이상의 보살이 되어야 그 몸을 볼 수 있다.
이 말도 잘 새겨들어야 됩니다.
우리가 보면 초지 이지 삼지 사지 오지 해서 십지보살까지 있는데 초지이상의 보살이 되어야지 노사나불을
볼 수가 있습니다.노사나불은 현재 설법을 하고 있어요. 현재설법노사나 그랬잖아요
이 보신이신 현재설법노사나께서 우리 중생을 위해서 지금도 법문을 하고 있지만은 정신수양단계가 낮은
사람은 그 법문을 알아들을수가 없다 그런데 이 노사나불은 법락을 수용시킨다
이들 보살에게 법락을 수용시키는 부처님의 몸이므로 수용신이다 그러한 어떤 상대에게 법락을 수용시켜주
고하는 그러한 자비를 베풀고 법신을 바탕으로 해서 노사나불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래에 보시면[법신을 인으로 삼아 그 과보로 나타나더라]
그리고 또 보면 원과 행의 과보로 나타났다 그랬잖아요
보살이 원을 세우고 난 뒤에 나타났다 이 말은 원과 행의 과보로 나타난 부처님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법장비구가 48원을 세웠다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은 [시작은 있어요,.
앞에서 비로자나부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우주 그대로 계시는 부처님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인데
이 노사나불은 원과 행의 과보로 또는 비로자나부처님을 인으로 해서 노사나불이 된 것이니 처음이 있어요
처음 원을 세웁니다. 노사나불이 된 것이니까.
그리고 열심히 수행을 했어요
근데 나중에 부처가 되었습니다 바로 법장비구가 아미타불이 되었다 했지요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습니다
그 뒤로는 계속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비로자나부처님이 가장 우선이고 그다음이 노사나불이 되는것입니다
소동파의 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溪聲便是廣長說 계성변시광장설인댄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기비청정신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사인 있고
저 쏟아지는 계곡의 물소리가 부처님의 음성인데
산색이 어찌 부처님의 몸이 아니던가
지난밤 팔만사천 법문을 들었는데
이 소식을 누구에게 내가 들어서 보일까?
소동파가 깨치고 난뒤에 한 말입니다.
이 말이 뭐냐하면 시냇물소리가 늘 법문을하고 저 산천그대로가 바로 부처님 몸뚱아리다.
그걸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초지보살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산천과 그러한 자연의 어떠한 법에서 나오는 소리를 못 듣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수행력이 그만큼 부족하고 초지 이상의 보살이 못 되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부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법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법문하는 당체가 누구냐?
바로 노사나불이라 했어요 노사나불!
그래서 내가 눈을 뜨고 보면 온갖 것들이 다 나를 위해서 장엄되어지고 온갖 것들이 다 나를 위해서 법문
하시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입니다
오늘 특별히 부처님 두 분을 모셔 내 놨는데
오늘 3층에 앉으신 분들은 운이 좋은겁니다.
금칠 좀 해 놨지요?
이 부처님은 순전히 돌로 된 부처님입니다.
있다 나와서 만져보셔도 됩니다.
위의 부처님은 중국에서 들어오셨고,
요부처님은 소화 15년 일제시대때 조성된 대추나무로 조성된 관세음보살님입니다.
1940년도 그때 조성된 부처님 같아요
제가 이 부처님들을 고물상에서 구했어요.
돌에 어떻게 칠을 할 수 있을꼬?
고물상에 있는 사람들은 부처님으로 생각안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봤을때는 부처님이 왜 여기계십니까?
하고 퍼뜩 모셔왔지요,.
그 돈 몇푼 주면 모셔오는 겁니다. 여기에 우리 3층 법당에 모셔놓은것입니다.
더 이상 개금할 필요도 없고
돌로 된 부처님인데 이미 중국에서는 개금을 하고 해서 모셨던것 같습니다.
이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이러한 몸을 장엄하시고 장광설을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신다 한들 고물상에
있는 사람들이 이걸 알아들을 수 없는거에요
생각이 있고 이해를 할만한 사람만 이걸 모셔다가 모시는 겁니다.
이 세상에 있는 보여지는 모든 물건들 들리는 모든 소리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재설법노사나
현재 노사나불께서 법문을 하시는데 그 법문을 듣고 못 듣는 것은 자기의 책임이지 노사나불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수행정진을 해서 초지이상의 보살이 되도록 그런 노력을 해야하는것이지요
부처님은 아는 자만이 안다
부처님이 음성인지 부처님의 법신인지 부처님의 몸인지 하는것은 아는자만이 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부처님도 원과행의 과보로 나타나는 부처님이 바로 노사나불 보신불이라 했지요
보신불을 억지로 인격화해서 노사나불 이렇게 붙인 것입니다
노사나불하면 원과 행의 나타내는 부처님이 노사나불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결국에는 조성된 부처님도 노사나불입니다.
조성된부처님도 결국에는 보신불이라 볼수있어요 일단 조성되었으니까 처음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부처님이 진행을 하시는데 거의 우리 인간들보다는 훨씬 더 오래 지속합니다 천년 만년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는 정확한 안목에서는 바로 이 만들어진 등상의 부처님들 , 조성된 부처님들은
다 바로 보신불이다
왜냐하면 처음 이 부처님을 조성할 때 조성하신 분은 반드시 어떤 원을 가지고 조성했을것입니다
원.
나는 이 부처님을 통해서 많은 중생들이 이익을 얻고, 많은 중생들이 행복해지기를 발원합니다 하는 그런
원이 이 돌을 옜날에 어떤 연장이나 돌을 가지고 부처님을 조성한다 생각해봐요
수년이 걸립니다 이건 거의 한평생을 전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부처님.
그런 부처님은 원이 없으면 조성할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원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부처님은 보신불인데 노사나불인데 바로 이렇게 조성된 부처님은
다 보신불이다. 그래서 조성된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지극정성 예경하고 기도하면 바로 원과 행의
조성된 분의 그러한 힘 에너지를 입게되고 또 내가 지극정성 그리하면 내가 점점 보신불 이 되어가는것이지요. 노사나불이 되어가는겁니다.
(나)해상중영내외가(海上衆營內外家)
왕래상속기수파(往來相續機隨波)
마음의 바다 가운데서 안팎의 집안을 다스리는데 갔다 왔다 상속하여 얼마나 많은 파도를 일으켰던가.
바로 안팍의 집안을 다스린다하는 말은 중생계와 보살계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한다 이말입니다 그리고 중생
심과 바로 보살심을 종횡무진한다 이말입니다 바로 노사나불은 그런분입니다
갔다 왔다 상속하여 얼마나 많은 파도를 일으켰던가. 이 말은 제도할려고 괜한 파도를 일으키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눈에 띄게 한다 이 말입니다. 여러번 읽어보셔야됩니다.
다시 여기서 말씀드리면 만들어진 부처님 조성된 부처님은 바로 보신불이다.
영원히 앞으로는 부처님입니다 이렇게 조성되면
그러니 시작은 있으되 끝이 없이 계속 진행되는 거지요
그런데 부처님을 보고도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부처님을 보고 우상이니 그런말 하는거지요.
부처의 눈이라야지 부처를 알아보는거지요
이러한 부처님, 현재도 설법하고 계시는 바로 노사나불 보신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틔여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원과 행을 세워야 되고 수행력이 뒷받침되어야 된다.
보살이 원을 세운 뒤 무량한 시간을 두고 온갖 수행을 한 결과 진리와 하나가 되었다.
수행을 한 결과 진리와 하나가 되었다.
수행을 한 결과 진리와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비밀번호를 내가 입력하는 것이다 생각해야됩니다.
비밀번호를 잘 사용해야지 요즘 현대인이다는 소리를 듣지요.
우리가 고급 문화를 즐길려면 이 비밀번호가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처님 세계에 내 몸을 의탁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비밀번호를 잘 사용해야됩니다. 아마 요즘은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집이 있지 싶어요
은행에서 돈 찾을 때 비밀번호 사용하지요. 안 그러면 돈도 못 찾지요.
요즘 카페 활동하기 위해서 로그인을 하기 위해서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됩니까 안해야됩니까? 그거 안하
면 못 들어가지요
요즘은 비밀번호가 없으면 고급놀이를 할 수가 없어요
그와 같이 불자들에게 주어진 비밀번호가 뭐냐?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 부르는 기도요 . 그 다음에 참선할 때 화두.
화두가 바로 비밀번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할때 관세음보살님을 지극정성 부르면 그게 비밀번호가 되어 부처님 세계 들어가요 참선할 때 화두를 잡고 화두를 챙겨서 화두가 타파 됨으로서 그걸 뚫고 들어가야지 해탈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그 마음을 부처님의 세계에 좀 더 높은 곳에 그걸 상향심이라 말합니다.
내 마음을 높은 곳에 두고 무조건 이 비밀번호를 딸려고 애를 쓰고 들어가야 되는 것이지요
자꾸 불평불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수행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자기 인격 자기 수행 공부를 방해
하는 것이 불평불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절에 행자원이 있었는데 요즘은 행자 받아들이기도 힘들어요. 출가도 잘 안하고 집안에서도 반대를 하고., 살기도 좋으니 전생부터 부처님하고 인연이 아니면 출가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 행자원에 원주스님이 무슨 생각이 있었던지 행자 하나가 들어왔는데 보니 사람이 꼴통이라.
'니는 말하지 말고 묵언해라 한 달에 한 번 딱 말할 기회를 주겠다'
한 달에 한 번 말 할 기회를 주겠다해서 한 달이 지났어요
원주스님이 물었습니다.
'할 말이 있거든 해 보라'
행자가 하는 이야기가'침대가 아니라서 자는 것이 불편합니다'
절 안에는 침대 없습니다. 다섯명이서도 자고 열명도 자고 큰 방에는 같이 잘 수도 있는데 침대가 있을 수도 없고 옛날에는 다 맨바닥에 안잤습니까?
옛날뿐만 아니라 지금도 절에서는 침대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그게 불평인거라. 그러니 이 사람은 자나깨나 침대가 있었으면 좋을낀데 .왜 절에 침대도 없노? 문화가 뒤
떨어졌나 그 생각뿐인거라.
원주스님이 '아 그래요?' 딱 한마디로 끝냈어요
다시 묵언에 들어갔습니다.
'한 달후에 이야기 합시다 .' 묵언을 또 시켰어요.
한 달 후에 ' 뭐 할 얘기가 있습니까?' 원주가 물었더니
'스님 왜 나물반찬만 줍니까?'
절에서는 나물만 먹는거지 도끼나물이라고 하는게 있긴 있거든요 도끼로 찍은 나물 요즘 수입 소고기 때문에 말이 많다는데 그거 안 먹으면 간단해요, 그거 가지고 고민할게 뭐 있어요 .
절에서도 도끼나물이라 그래요 .
사회관습이라해서 절이라 할지라도 좀 다릅니다.
요즘 한참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티벳있지요. 힘이 없으면 저레 당합니다 그래 종교도 힘이 있어야 됩니다.
50여년전 중국이 티벳이 자원도 많고 관광지화 될것 같으니 집어 삼킨거 아닙니까.
힘 있는 놈 많이 세상을 지배하는거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그렇게 당한것도 마찬가지고요.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라 해가지고 옜날 고구려 땅도 발해도 모두 자기 땅이다 주장하는거 아닙니까?
우리가 여기서 힘이 없어지면 중국사람이 한강 이북을 다 먹어버립니다 기가찬현실 아닙니까?
일단 힘이 있어야됩니다.
우리들이 일단은 힘을 갖추어야 되고 우리 내면의 힘을 다져가야 되는 것입니다. 근데 불평불만을 해 가지고는 그런 힘이 안 생깁니다. 근데 불평불만이 많아요.
티벳에 가보면 제가 쓴 [티벳트 체험과 달라이라마 친견]순례책에도 보면 절안에서 참으로 도끼 나물이에
요. 도끼로 나물을 쓸고 있는데 보니 소고기를 썰고 있어요 그쪽에서는 산소가 모자라기 때문에 그걸 먹지
않으면 죽어요. 그 상황에 맞도록 불교가 적응이 된 것이지요
그걸 두고 너희들 왜 소고기 먹나? 이러면
만약 한달 두달 살면은 그걸 안먹으면 죽는데 그걸 가지고 객이 가서 '왜 먹느냐?' ㅣ이리 말한다면 나쁜 사
람이지요. 문화가 있는데....
도끼나물이라고 하는것이 있어요.
이 행자가 하는 말이 '왜 도끼 나물은 안 줍니까?'
한 달 후에 말해보라 하니까.
이 야채 나물만 먹고는 못 살겠다 이 말인거지요.
그래 이 원주스님이 '아. 그래요?' 그러고는 또 대화 끝입니다. 그런 사람하고는 대화 할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행자가 들어오고 한 달 한 달 석달 째 되었지요.
'행자님 뭐 또 다른이야기 할 것이 있습니까? 해보십시오'
'저는요 더러워서 갈랍니다.'도끼 나물 달라해도 도끼나물안주지요. '하니 한 달을 불평불만 속으로 그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한마디 하라니까 더러워서 간다는거여 .
그러니까 원주스님이'아 그러세요' 그래 보냈다는거 아닙니까
혹시 우리 신도님들도 이 좋은 절에 이렇게 여건이 좋은데 참선하고 싶으면 참선하고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
하고 , 봉사하고 싶으면 봉사하고 문화를 즐길려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이런데 다니면서 혹시 내가 불평
불만꾼자는 아닌지 생각해봐요
나는 우리절에 얼마나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는가를
만약 불평불만이 가득하다면 공부는 끝입니다. 그 행자처럼!
언덕에 선 나무가 아래로 넘어져 있으면 언젠가는 그 나무는 아래로 넘어지고 맙니다. 언덕에 선 나무가
꼿꼿이 또는 위쪽으로 이렇게 자기는 넘어질 것을 생각해서 정신차리고 있는 나무는 절대 아래로 넘어지지않습니다 윗쪽으로 넘어지지 계곡아래쪽으로 넘어지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우리는 좀 힘들더라도 부처님을 향해서 버티고 있어야 돼요
비밀번호를 잘 사용해야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것이 바로 상향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상향심.
늘 위로 향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절에 다니면서 절에 대한 불평불만 스님에 대한 불평불만 믿지 못하는 불신 그런것을 가지고 있어서는 관세
음보살을 외운다하더라도 그게 진실한 비밀번호가 못 됩니다 내가 화두를 잡고 있다 하더라도 그 선지식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진실한 비밀번호가 못돼요
우리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비밀번호를 잘만 사용하면 우리는 반드시 적어도 여기서 말하고 있는 초지이상
의 보살이 되어서 노사나불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서가모니불 釋迦牟尼-佛 했습니다.
화신의 대명사격이며 대표적인 분이 서가모니불이다
화신이란 법신을 본질로 하는 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미등지의 보살과 범부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갖가지
근기에 맞추어 갖가지 방편의 몸을 나타내시는 부처님의 몸을 말한다
소망에 따라 나투시는 몸이므로 중생과 같은 육체를 지니시고 중생과 함께 생활하신다. 중생의 근기에
응하므로 응신이라고도 한다. 즉 변화신이다.
이 서가모니불같은 분은 화신불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변화신, 변화해서 우리 중생에게 나타나는 부처님 몸이지요 변화신이지요
응신이라고 한다했지요. 응신.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응해서 나타나는 분이기 때문에 응신불 응신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화신은 어차피 우리 중생들이 사는 이 뻘밭에 이미 걸어들어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서가모니부처님 같은 분은 이미 가사자락에 온갖 더러운 것은 묻히고 살 수 밖에 없어요 . 그래서 서가모니불 같은 분도 이 사바세계에 오신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시기 질투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욕도 얻어먹고 그러시는 분이 이 화신불입니다
오시지 않아도 될 분인데 오신 분이 화신불입니다
그래서 이 화신불은 시작도 있고 끝도 있습니다.
이 화신의 부처님 서가모니부처님은 왜 돌아가셨나?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 진리의 부처님 법신불이 계시는데 그 법신불을 바탕으로 해
서 나타나신 화신부처님은 어차피 중생 본보이려고 오셨기 때문에 시작도 있고 끝도 있습니다.
만일에 끝이 없는 부처님이라면 화신불이 있다면 진리에 역행하는 진리라고 하는 입법을 부정하는 그런 부처님이기때문에 그 부처님은 완전히 중생계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부처님이 아닌것이지요 아주 이 궤도를 이탈한 부처님이 됩니다
그래서 화신불은 무조건 중생처럼 생활하시고 중생처럼 나중에 돌아가셔야지 그게 진리입니다 화신불 입장
에서
그런데 그러한 화신불이 주위 도처에 아주 많습니다 화신의 부처님은 우리 주위에 더러 많습니다.그래서
서가모니제여래 이렇게 했잖아요.
서가모니부처님과 같은 많은 부처님 제여래 그게 이해가 되십니까?
화신은 많다 이말입니다 시작도 있고 끝도 있으니까 많을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 이 화신불은 더러 척보면[아 저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네. 참 보살이네. 저사람이 내 공부를
인도해서 또는 저 사람 본 받고 살면 크게 후회할 일은 안하겠다]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안 있습니까?
주위에 보면 가족중에서도 그렇고 거룩한 행위를 하는 그 순간은 바로 화신의 영험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
다. 바로 화신의 몸짓으로 나타나는겁니다.
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한 번더 몸을 중생가까이 나타나신 분 그게 바로 화신아닙니까?
보신불.
보신불은 초지이상의 보살에게 나타났는데 이 화신은 미등지의 보살이라 초지 이하 범부중생을 제
도하기 위해서 나타나신 분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서가모니부처님에 대해서 서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은 다른 종교인도 거의
없습니다. 그냥 만들어진 형상을 보고 속을 모르다보니까 더러 헛된 소리를 하지마는 불교를 진정아는 사람
은 다른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부처님. 서가모니 부처님 화신불을 비록 화신불이라 할지라도 범부중생에게는 다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서가모니불은 대단하지요
서가모니부처님 말씀을 가지고 비판하는 다른 종교인은 없습니다.
모든 현재 우주과학자들도 부처님 말씀에 대해서는 아 참으로 어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감탄만 할 뿐이지요
잘 보세요.
서가모니불은 화신의 대명사격이다
소망에 따라 나투시는 몸이므로 중생과 같은 육체를 지니신다.
(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
새하얀 달빛이 점점 커서 둥글어지니 소박한 밝은 빛이 대천을 비추도다.
새하얀 달빛이 점점 커져서 둥글어지더라 이 말은 수행의 모습도 보여주시고,
서가모니부처님은 그리하셨지요? 또 직접 움직이고 직접 활동하는 모습도 보여주셨다 이 말입니다.
새하얀 달빛이
달이라고 하는 것은 크다 작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있는데 그냥 그렇게 보여질 뿐이지요
서가모니부처님은 원래 법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은 중생들 보도록 달이 점점 커진다 하지만은 달이 커지기는 뭐가 커집니까 우리 중생들 눈에 커질뿐이지요 그것처럼 점점 커져서 둥글어지더라
수행자의 모습도 있는 것처럼 보여주시고 직접 움직이고 활동하시는 모습도 보여주시는 모습이다 이말입니
다.
소박한 밝은 빛이 대천을 비추도다. 이 말은 길가는 길손들에게 너무나 고마운 역활을 한다 이말입니다.
밤길을 가는 길손에게 그 달빛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제가 20대 걸망을 매고 밤길을 다닐때요 달이 있는 날은 그 달이 얼마나 고마운지 별로 어둠 없이 갈 수 있
어요.,근데 날이 깜깜하면 가다가 질퍽거리는 길도 만나게 되고 가시덤불도 만나게 되고 그런거지요.
빛에 대해서 고마움을 못 느끼는 것은 왜 그렇냐?
이미 만성이 되어서 그래요
우리가 서가모니부처님하면 서가모니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준 가피나 얼나마 큽니까?
부처님 말씀 한 조각만 얻어들어도 참 대단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서점에 가거나 불교대학에 오면
감당을 못할 정도로 쏟아져 있잖아요. 그러니까 고마운줄 모르는거라 이게요.
만성이 되어가지고 우리는 있는듯 없는듯 존재하시면서도 잘 느끼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너무나 은혜가 커서 은혜가 너무나 크면 못 느낍니다.
티벳 같은 곳에 가면 산소가 모자라서 산소를 사서 먹기도 하거든요 산소를 팔아요 산소 모자라면 말 그대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가서는 ' 아 산소 참 고맙네' 느낍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누가 산소 고맙네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왜냐? 너무 큰 은혜를 너무 큰 혜택을 이미 입고 있으면은 몰라 그걸.,
생각을 잘해야 됩니다.
진짜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지금 무한대의 은혜을 입고 있다는 이 사실을 순간순간 잊지않고 자각하는 사람이야 말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소박한 밝은 빛이 대천을 비추도다.그랬잖아요
위에 다시 보시면 [중생과 같은 육체를 지니시고 중생과 함께 생활하신다]우리가 부처님은 일반 사람들이 봤을때는 더러 하자도 있어보입니다. 부처님은 어디 배탈이 안났겠습니까? 아파서 몸져 누웠을때 없었겠느냐 이거지요
화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중생 그대로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 ' 아고 서가모니부처님도 아파서 몸져 누웠네, 서가모니부처님도 생명이 다해서 돌아가셨네 '그런 말을 하는것은 이 부처님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법신이 있는 줄도 몰랐고 바로 보신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완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나타나신 그 사람에게 흠을 잡는다는것은 배은망덕한 짓이지요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중생과 같은 육체를 지니셨다' 이걸 다른말로 하면 '중생과 함께 생활하시는분 아닙니까 응신 변화신 아닙니까?
크게 보아야한다 우리 중생들이 화신불을 보면서 우리가 닮아야 하는 점이 뭐냐? 서가모니같은 화신불을 보면서 우리가 닮아야 하는 점이 뭐냐? 우리 마음이 닮아야 하는 것이 뭐냐?
크게 보고가야한다.
크게 보아야한다.
크게 보고 가야한다
바로 이 대승심을 일으켜야 된다 이말입니다. 대승심.
마음을 크게 열고 봐야된다.
어제 옥불보전에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저한테 한사코 주례를 해달라 해서 제가 20대 중반에 주례를 한번 하고 그 뒤로 한번도 주례를 한적이 없었어요 근데 우리절에서 웨딩홀을 차리고 처음하는데 오픈은 스님이 해줘야된다 그래서 제가 했습니다.
제가 어제 처음 한말이 뭐냐?
'상대에게 너무 완벽을 요구하지 말라'
두번째 한말은
'나는 잘 났는지 생각해 봐라'
그랫는데 어제 신혼부부 둘이도 이 이야기를 듣더니 웃더라니까요
스님 말이 맞는것 같다 동조하는 거지요.우리는 상대에게 너무 완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의 강점이 많고 약점이 좀 작으면 그 사람은 잘봐주면 되는겁니다. 그렇잖아요?
화신으로 오신 우리 부처님도 딴 사람이 보기에는 약점도 많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더 큰 것을 보고 서가모니부처님 서가모니부처님 이렇게 안합니까?
남자들은 그러는 모양입니다.
자기 부인에게 '너 자동차 한대 사주까?' 돈도 없으면서
그러니 사달라고 그럼 사주는 김에 한 오천만원짜리 비싼거 사 달라 그랬어요
'좀 기다려 내 사줄게
그레 놓고는 몇달 지나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만한 걸 사들고 왔어요
'왜 이걸 가져왔느냐?'
'내 자동차 대신에 이걸 가져왔다' 자동차 대신에 굵은 반지를 하나 가져온겁니다. 보고 부인은 가짜인줄 알아요.
다이아몬드를 갖다주는 것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거 아닙니까?
이 부인은 아주 현명한 부인이였어요
'아 그래도 나를 이렇게 챙겨주니 참 고맙습니다 이걸 자동차 대신준다니까 자동차보다도 더 귀히 여기겠습니다' 그래가지고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래요
근데 조금 오질없는 부인 같으면 어떻겠어요?
. 남편 돈 없는 줄 뻔히 알면서
'이거 가짠줄 내 안다. 자동차 사준다했으면 자동차 사주어야지 자동차는 왜 가짜가 없더나?'
그렇게 대들어봐요 그 집안 꼬라지가 되겠습니까?
안되지요. 그래도 그나마 마음써주는게 고맙지 않느냐 말입니다. 제말은 크게 보고 가라는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람이 완벽하지 못해요
BBK사건, 위장전입 뭐 문제가 많지만은 그래도 경제는 안 살리겠나 더 큰 일은 안하시겠나 그래가지고 우리가 뽑아준거 아닙니까?
그와 같은 것입니다 보면 여기 다니는분들중에 보면 자꾸 딴 사람 흠을 해요.
그 사람이 불교대학에 오기전에 어떻게 살았던지 무슨 허물이 되었던지 무슨 문제가 되느냐 말입니다.
현재 그 보살님이 여기 다니고 있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고 열심히 기도수행을 하고 참선수행을 하고 있고, 또 절에와서 봉사를 하고 내가 봤을때는 그만한 보살이 없더라고요
개과천선해서 열심히 살면 되는일이지 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그것도 기억에도 없는 어떻게 그렇게도 자기 자신것은 잊어버리고 남 것은 그렇게도 기억을 잘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치매증세가 어떤지 압니까
치매라고 하는 것이 자기것은 다 잊어버리고 남 것은 기억하는거 그것이 치매입니다.
어느 거사님이 그래요.
'스님 오늘 내가 큰 곤욕을 치뤘습니다. 내가 오늘 차를 시동을 걸라하는데 어떤 놈이 핸들을 훔쳐가버렸어요, 핸들을 뽑아 가버렸어 키를 빼고 핸들을 찾는다고 한 삼십분 찾앗는데 나중에 보니 자기가 뒷자리에 앉아 있는거라. 뒷자리에 앉아가지고 핸들을 찾으니까 어떤 놈이 핸들을 훔쳐갔느냐고 그게 치매 증세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할 수 없이 차를 둘러보니 자기가 뒷자리에 앉아 있는거라
그러면서도 남 이야기는 어찌 그리 많이하고 불평불만을 해 대는지 그런 거사가 있더라고요
혹시 그 거사가 제 이야기를 듣거들랑 기분나쁘게 듣지 말고.........
지 것은 또렷또렷하게 기억하고 남 것은 잊어버려야됩니다 그래야 크게 보고 가는 것이지요.
오늘 법보시 구입은 하셨지요?
군부대도 들어가고, 교도소도 들어가고 얼마나 많은 포교를 하는지 모릅니다.
법보시 6월호 2페이지
여시아문
사람이 어쩌다 잘못을 저질렀어도
착한 일 많이 하여 허물 묻히면
구름 벗어난 둥근달처럼 이 세상 누구에든 희망을 준다
-마음을 밝혀주는 새 법구경-중에서
늘 사람을 볼때 이렇게 봐야 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욕을 얻어먹을까 싶어서 안하지 말고 욕을 얻어먹더라도 해라 이겁니다 포교도 그렇고요
등권선도 그렇고요.
화신의 부처님으로 다니시는 분도 욕을 먹는것과 같이 대승의 보살은 욕을 얻어 먹습니다 마음을 크게 가져가야 됩니다 원래 이 큰나무에는 진딧물도 잔뜩 끼여 있습니다. 큰 나무에 진딧물 없습니까?
한번 보세요 온갖 벌레가 기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나무가 절데 그런데 동요하지 않습니다. 대보살은 그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일 하다보면 욕도 얻어 먹는것입니다
숫제 좋은일 안하는 사람은 욕도 안얻어 먹지만 그건 나약합니다.
똥물 한바가지를 우물에 넣어봐봐요 그럼 그 물 못먹습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의 강물이 너무나 넓고 넓어서 강물에 똥오물 한바가지를 넣어봐봐요. 그 강물은 끄떡도 안합니다
그와 같이 내 마음을 크게 가지고 갈 필요가 있다 이말 입니다.
그리하다보면 조금의 그런 잡음 조금의 그런문제,. 조금의 부작용 이런것은 다 묻혀 가는 겁니다.
다 묻혀갑니다
안하려고 하지말고 크게 보면서 대승심을 가지고 가다보면 나중에는 다 좋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지금 불교대학에서 하고 있는 많은 일들 여기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뭐 할려고 하는데 다른사람 입이 무서워 가지고 못한다 그래가지고는 일이 안됩니다
서가모니불같은 화신불도 당시에 부처님의 전기를 보면 해칠려는 사람도 있고 비방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우리는 서가모니 부처님보다 못한 부처님 제자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좋은일 하다보면 욕을 얻어먹지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구나?
우리는 장이라고하는 더 크고 더 중요한것이 있기때문에 구더기 정도는 감수하는거 아니냐는 말이지요.
그렇게 사셔야 된다 는 말입니다.
화신불에서 우리가 직접 배울수 있는 것은 이 내용입니다.
응신이라 변화신이라 크게 보고 가자
대승심을 가져야 된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로자나불 나에게 생명의 힘을 주시는 부처님
노사나불 나에게 지금도 법문 하시며 살아계시는 부처님
서가모니불 나에게 끝없는 자비심으로 나타나시는 부처님
법신 보신, 화신
이런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불자는 불자라고 하는 이름값을 해야됩니다 부처님 자식이라고 하는 이름값을 해야됩니다.
나폴레옹이라는 사람이 사열을 하다가 일등병가운데서 나풀레옹이라 명찰을 달고 있는 사병을 발견했어요
니가 나폴레옹이냐?
'예 나폴레옹입니다'
나폴레옹이 나폴레옹이 만난거지요
'이름값을 하던지 이름을 바꾸던지 해라'그랬어요
우리가 불자라면 불자 이름값을 하던지 불자라는 이름을 아예 달지 말던지 해야되지요
오늘 특별히 제가 불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법신 보신 화신중에 간간히 설명을 드렸는데 세 가지를 다시 요약을 하겠습니다.
따라 하십시오.
불자는 넉넉한 맛이 있어야 한다
불자는 비밀번호를 잘 사용해야한다
불자는 크게 보고 가야한다
불자는 넉넉한 맛이 있어야 한다 이해심이있어야 된다 이말입니다.
두번째는 비밀번호를 잘 사용해야한다 상향심이 있어야 된다 이말입니다.
세번째 불자는 크게 보고가야한다 대승심이 있어야 된다 이말입니다
오늘 법신 보신 화신 삼신불을 보면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오늘 모든 우리 신도님들은 법신 보신 화신의 존재에 대해서 철저한 믿음 완전한 믿음을 가지셔야 됩니다 그리하면 그것이 다 자기한테 득 되는 일이지 남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 자기한테 득되고 그로 인해서 모든 존재가 행복해지고 그러는 것이지요
지금 부처님오신 날이 일주일 정도 남았습니다 등권선 화주운동에 다 동참을 하시고요
전부 우리 절이다 바로 정법도량은 내가 지켜야겠다 이 생각을 가지고 절에 다니시고 불사에 임해 주셔야 됩니다.
법회에 동참하신 공덕으로 가정이 평안하시고 가족들이 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두루두루 원만하게 잘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초하루 법회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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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 보신 화신불에 대한 말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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