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1일>
산악회의 계획에 따라 '대관령 → 제왕산
갈림길 → 능경봉 → 행운의 돌탑 → 오목골 갈림길 → 대관령 전망대
→ 고루포기산 → 목장끝문 → 닭목재' 12km, 6시간 30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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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경봉[陵京峰]
높이: 1,123m
위치: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제왕산의 모산으로 오르기가 다소 힘드나 찾는 이가 적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산이다. 겨울철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나,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눈 덮인 겨울 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능경봉 산행 들머리는 해발 850m가 넘는 대관령 고갯마루인 대관령 남쪽휴게소에서 시작된다.
고루포기산
높이: 1,238.3m
위치: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평창군 도암면
고루포기산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주변의 발왕산, 제왕산, 능경봉의 명성에 가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던 산이다.
백두대간 상에 솟아 있는 산으로 울창한 숲과 초원지대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환상적인 산행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 발아래는 왕산리 계곡이 펼쳐지고 그 뒤 멀리 강릉시와 동해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오며, 북쪽으로는 초록빛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한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 한국의 산하
목표한 산행이 '산에 다닐 수 있을 때, 1,000m가 넘는 산을 다 오른다!'라 의도적으로 한 번이라도 갔던 산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연말의 기념 산행으로 지리, 덕유, 관악 등을 다녀왔다. 산은 어디든 좋지만, 목표 달성이 늦어지는 게 아쉬울 뿐이다. 해서 2020년 경자년 신년산행은 백두대간이자 해발 1,000m가 넘는 초행의 금강산 제2봉 마산봉을 다녀왔다[산행기]. 그런데 쉬지 않고 다닌다고 다녔지만, 아직도 80여 곳의 산이 남아있다. 해서 무턱대고 다니기보다는 그 산이 가장 절경인 시기에 맞춰 다니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겨울 설산은 누가 뭐래도 강원도 산이고, 거기에 맞추기 위해 가능하면 강원도 산은 겨울로 미뤄뒀었다. 어차피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목표라면 순서는 의미가 없어 북에서 남진하기로 했다. 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년산행으로 마산을 다녀왔고! 당연히 1월 2주 차 산행은 선자령이 대상이 되지만, 선자령은 등산방에서 정기산행으로 가기로 해, 백두대간 상에서 대관령을 기준으로 선자령 반대편에 있는 고루포기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안내 산악회로서는 구 대관령 휴게소에 등산객을 풀어놓고 취향에 따라 선자령, 제왕산, 또는 고루포기산을 선택하여 오르게 하면 되니 아주 편리한 코스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야 당연히 능경봉을 거쳐 고루포기산에 올라 백두대간 닭목재로 하산하는 코스다!
마침 12월 중순 내가 애용하는 산악회가 선자령, 고루포기산, 제왕산 산행 계획이 있어 신청을 할까 하다가, 성원 미달로 취소될 수도 있어 실행 일주일 전에 신청하겠다는 생각으로 산행 계획에 입력만 하고 신청은 미뤄두고 있었다. 그런데 마산봉을 다녀오고 나서 현황을 보니 이미 버스 한 대는 다 채우고, 두 번째 버스는 성원을 채우고 세 번째 버스는 신청을 받고 있었다. 더 늦었다가는 자리가 없어 못 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요일 밤늦게 회비를 입금하고 두 번째 버스에 자리를 신청했다. 한 산악회에서 버스 3대를 동원하는 산행이라, 처음 보는 현상이다.
신청이 폭주한 이유는 이번 겨울, 날이 따뜻해 비는 내릴망정, 눈이 내리지 않아 많은 산악회가 강원도가 아닌 남쪽의 산을 택했는데, 기습적으로 1월 6일~8일 강원도 산간지대에 폭설이 내릴 거라는 기상 예보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그 기간 중 설악산은 폭설로 등산로가 통제됐었다. 이번 겨울 처음 산에서 눈다운 눈을 볼 수 있는 기회지만, 그곳에 데려다주는 산악회는 거의 없는 상황! 번잡한 걸 싫어하는 내게는 드러난 현상만 보면 짜증 나는 상황이지만, 버스 세 대의 대부분 등산객이 선자령을 택할 거라 보기 때문에 산에서 번거로움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오히려 고루포기산을 택한 등산객이 적으면 소수의 인원이 아니, 단독으로 러셀하며 전진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거 같아 걱정이었다.
언제나 산에서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이지만, 간단하게 과일과 비상식으로 하기로 했다. 물론 버너, 코펠, 라면, 햇반, 물이 들어 있는 비상용 디팩도 가져간다. 산악기상 예보를 하는 강원도 산 중 설악산을 제외하고는 고루포기산 위아래의 오대산, 두타산 부근에는 폭설 예보가 없는 거로 봐선 고루포기산 또한 눈이 많을 거 같지는 않았지만, 고산지대의 기상은 수시로 변하는 거라 러셀에 대비해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 않던 스틱과 스패츠를 챙겼다. 당연 등산화는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잠발란을 꺼냈다. 물론 간이 의자도!
2 - 1
오랜만에 토요일 새벽에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6시 10분경 집을 나섰다. 6시 57분경 등산객의 성지 신사역에 도착해 출구로 나가려고 보니, 버스가 도착하려면 10여 분이 남아 그나마 따뜻한 지하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산객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나도 지하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뭐 그 추위 못 참겠냐는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는 등산객도 의외로 많았지만, 4번 출구를 출발지로 쓰는 다른 산악회의 버스가 보이지 않는 것도 의외였다.
7시 5분경 버스가 도착했는데, 영광의 구수산행이었다. 구수산? 그런 산이 있었나? 이어 도착한 버스가 구 대관령 휴게소가 목적지인 선자령, 제왕산, 고루포기산행 1호 차였다. 그런데 그 차가 ‘비발디 파크’ 버스였다. 버스를 보자마자 "아니, 저 버스가 토요일 새벽 여기에? 스키장을 향해 달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였다. 작년 말 덕유산 정기산행 시 느낀거지만, 스키 인구가 주는 와중에 날씨마저 받쳐주지 않아, 스키장이 망해가는 듯! 그다음 차가 3호 차, 당연히 그 뒤차가 2호 차라 생각해 비좁은 도로를 뚫고 가보니 덕유산행 버스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2호 차 승객이 다 몰려들어 사고가 날 정도였는데, 저 앞에서 2호 차는 제일 앞에 있다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에 도착해 정차할 곳이 없어 버스 정류장을 지나 세운 거였다.
이미 3호 차까지 만원이라 고민 없이 배낭을 짐칸에 넣고, 패드와 카메라만 들고 버스에 탔다. 하나둘 등산객이 타기 시작하고 내 옆자리에도 등산객이 앉았다. 출발 예정 시각인 7시 10분 신사역을 출발해 죽전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태우고 목적지인 구 대관령 휴게소를 향해 달렸다. 버스 실내등이 꺼지고, 잠을 청했다. 느낌상 막힘은 없는 거 같았다. 실내등이 켜지고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아, 횡성 휴게소에서 쉰다고 알려주었다. 다른 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휴식 시간은 거의 30분이 주어졌다. 계속 아랫배가 좋지 않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줄이 상상을 초월했다. 횡성 휴게소의 규모에 비해 많은 눈놀이 인파가 몰렸기 때문이다.
9시 20분 버스가 휴게소를 떠나며,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코스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A 코스 선자령 환종주, B 코스 제왕산, C 코스 고루포기산에 관해 순서대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으며 창으로 주변을 살펴봤지만, 눈은 음지에 조금 흔적만 있는 게 다였다. 거의 40분 동안 각 코스를 자세히 설명 후, 주 코스인 선자령이 아닌, 제왕산이나, 고루포기산을 가는 등산객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었다. 그런데 나를 포함 손을 든 등산객이 절반에 육박했다. 인솔 대장도 놀랐고, 버스에 타고 있던 등산객도 놀랐다. 옆에서 하는 얘기를 들으니, 설악산에 폭설이 내릴 때 선자령 쪽은 비와 눈이 번갈아 내려 눈이 바로 녹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신청한 산행을 포기할 수 없어 고루포기를 선택했다고.
어쨌든 나로서는 충격이다. 눈이야 예상했던 바지만, 그래서 등산객이 선자령이 아니라 고루포기산을 선택하다니. 여차하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줄 서서 인증해야 한다는 거다. 3대의 버스에 절반이라면 총 60명 내외인데, 아무래도 오늘은 빨리 달려야 그나마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창밖을 보고 놀랐다. 우리가 탄 버스가 구 대관령 휴게소 대형 주차장을 지나, 위에 있는 소형 주차장을 향해 가는 중, 도로보다 높은 주차장에 보이는 주차중인 버스만 30대가 넘었다. 보이는 것만 그렇고 보이지 않는 것도 만만치 않을 거고, 또 계속해서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뉴스에 낚인 눈에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당장 대관령 주차장 주변에 보이는 눈이라고는 도로에 내린 눈을 치워 한쪽 쌓아뒀던 흔적이 다였다. 그것도 응달만! 햇볕 잘 드는 선자령에 눈이 있을리가!
10시 10분경 버스가 소형 차량 주차장에 도착했고, 인솔 대장이 애초 A 코스 3:30, B 코스 3시 50분, C 코스 4시 10분 마감인데, 이 시간이 10시 산행 시작 기준이라 10분이 늦었으니, 각 코스 10분씩 늦춘 시간을 마감으로 한다고 얘기하는 거로 산행을 시작했다. 10시 10분 시작 4시 20분 마감이면, 산악회 기준 13.5km의 구간을 6시간 10분 동안 가면 된다. 14km를 6시간이라면 고민이다. 거의 1시간 가까이 딱히 할 일 없이 버스가 올 때까지 멀뚱거려야 한다는 얘기라. 인솔 대장의 말에 의하면 A 코스 선자령은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휴게소 근처에 식당가가 조성되어 있고, B, C 코스는 아무것도 없다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자령 들머리이자 날머리에 식당가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는 거. 다음 주 등산방 정기산행 옵션 폭이 넓어진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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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여기저기 짧게 관찰 후 바로 산행에 돌입했다. 조금만 늦으면, 인증도 찍지 못할 상황이라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영동고속도로 기념비를 우회해 바로 고루포기산을 향해 갔다. 아래 주차장에는 없던 눈이 보이기 시작하고 등산로는 오간 등산객? 관광이 잘 다녀놓아 단단히 얼어 있었다. 아이젠 없이는 가기 힘들 정도로. 관광버스가 풀어 놓은 수많은 관광객? 등산객?의 5%만 고루포기산을 선택해도 적은 숫자가 아니었으니. 문제는 나는 내가 본 30여 대의 버스 승객보다 늦게 출발했다는 거다. 그렇다고 그 버스가 1시간 전에 도착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으로 서둘러 올라가는데 등산로를 막을 정도로 많은 등산객? 관광객이 아이젠을 착용하느라 정신 없었다.
미끄럽기는 했지만, 아이젠을 착용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들을 지나쳐 계속 위로 갔다. 10시 24분에 제왕산 갈림길을 지나 1.1km 떨어진 능경봉을 향해 갔다. 해발 890m의 제왕산 갈림길에서 해발 1,123m인 능경봉까지 233m를 1.1km에 올라가야 한다. 사실 높이나 거리는 별 게 아니었지만, 서북 사면이라 눈이 녹지 않았고, 그동안 오간 등산객과 대간꾼에 의해 눈이 잘 다져져 아주 미끄러웠다. 일단 능경봉에 도착해 인증이라도 하나 남긴 후 아이젠을 착용하자는 생각에 미끄러운 등산로에 익숙한 발걸음으로 계속 올라갔다. 유감이지만, 까만 소 100대 산에 이어 까만 소 인증 백두대간, 인증 장소 중 내가 이번에 가는 코스 능경봉, 고루포기산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등산로를 올라가며 앞에 보이는 등산객을 추월할 때마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부분 대도시에서나 볼 듯한 복장에 털부츠(한때 유행했던 어그부츠?)를 신은 여성이 미끄러운 능경봉 깔딱을 오르고 있었다. 아주 기본적으로 아이젠은 했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추월하면서 신발을 보면 10에 3~4는 아이젠이 없었다. 그럼 놀라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면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왜 대부분이 여성인 이들 관광객이 이 미끄러운 능경봉을 오르는지 추측해 보니, 선자령에 눈놀이 왔지만, 선자령에 눈이 없다고 하자 그나마 눈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반대편 능경봉을 선택한 거로 보였다.
관광객과 등산객을 추월해 10시 52분에 능경봉 정상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제왕봉이 목표인 B 코스의 경우 시간이 많이 남으니 능경봉을 다녀와도 된다고 했었는데 정확했다. 대관령에서 능경봉까지 40분이 채 안 걸린다. 그래서인지 능경봉에는 나보다 조금 앞선 산악회 구성원 몇이 이미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등산객과 관광객이 올라오고 있었고. 이 상황에서 삼각대 설치해 사진 찍고는 욕먹기 딱 좋은 상황이라 그 중 한가해 보이는 등산객에게 카메라를 주고 사진 한 장 부탁했다.
인증을 찍은 후 능경봉 정상에서 보이는 경치를 즐기고자 했지만, 앙상한 뼈만 남은 울창한 숲이 시야는 방해하지 않았지만, 카메라 렌즈는 방해해 뭐 건질 만한 게 없었다. 능경봉에 올라오며 비록 산 전체에는 눈이 없지만, 햇살이 비치지 않는 북서 사면은 눈과 얼음에 미끄럽다는 걸 체험해 아이젠을 착용하기로 했었다. 해서 열심히 서로 인증을 찍어주는 산악회원들을 구경하며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다. 물론 고루포기산 정상에서 닭목재를 향하는 길은 눈이 다 녹았을 테지만,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까지의 5.2km가 만만치 않은 거리고, 남들보다 먼저 도착해야 그나마 인증이라도 제대로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10시 56분 능경봉을 떠나 급경사를 하산하며 앞에 보이는 고루포기 산세를 나름 분석하며 갔다. 뼈만 남아 앙상하지만, 울창한 숲이 카메라의 렌즈를 방해해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11시 1분에 '행운의 돌탑'에 도착했다. 행운의 돌탑이라, 내가 보기에는 호식총(虎食塚)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어쨌든 돌탑에 돌을 추가하고 계속 길을 갔다. 겨우살이 군락지를 지나, 예상대로 햇살이 내리쬐어 눈의 흔적조차 없는 남서 사면을 따라 관목 터널도 지났다.
대관령 터널 위를 지나 12시 21분에 연리지에 도착했다. 내가 지나친 3.5km의 구간 중 햇볕 좋고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는 삼삼오오 점심을 먹는 등산객이 있었다. 휴게소에서 예정에 없던 볼일을 본 이후라 배가 고팠지만, 이번 산행 최고 높이의 정상 고루포기산에서 그나마 인증이라도 하나 남기려면 남들이 쉴 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달렸다. 그런데 이번 산행의 거의 마지막 깔딱이랄 수 있는 전망대까지의 북서 사면은 예상대로 급경사에 미끄러운 길이라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
12시 31분 전망대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에서 같은 버스를 탄 등산객은 거의 보지 못하고 인천에서 온 산악회 구성원과 앞서거니 뒤서기니 하며 달렸다. 그 구성원의 숫자에 약간 놀라기도 했지만. 능경봉에서는 보지 못했던 산악회라 최소 우리보다 20분 정도는 앞서 시작한 팀으로 보였다. 그 팀원이 전망대를 장악하고 있어, 거기서 뭘 할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딱히 전망대에서 할 일도 없어서 선자령 쪽만 사진으로 남겼다. 미세 먼지로 조망이 좋지 않아 주변 산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어쨌든 전망대에서 보는 선자령은 그 많은 버스와 자가용으로 온 모든 관광객을 배신하듯 눈의 흔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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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인천 산악회의 산행 대장을 봤을 때는 사진 찍고 뭐 할 여유 없이 바로 고루포기산 정상을 향해 달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장이 후미에 무전으로 하는 소리를 듣고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선두는 점심 먹을 자리를 알아보러 고루포기산 쪽으로 먼저 가겠으니 후미는 전망대에 집합해 있으라는 무전이었다. 정상에는 점심 후 가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고로 내게는 그들이 점심을 먹을 동안은 여유가 있었다.
전망대를 떠나 이번 백두대간 산행의 최고봉이자, 1,000m 이상 산행의 최고봉인 고루포기산 정상(1238.3m)을 향해 갔다. 그 길에는 ‘호식총’이든 ‘행운의 돌탑’이든 돌탑이 있었고, 거대한 풍력발전기의 행렬과 송전탑의 행렬이 보였다. 아주 당연히 발전기가 있으니,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도로도 있었다. 물론 그 도로로 정상에 오르면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런데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산을 넘어가는 송전탑이었다. 그걸 보고 "아니, 이 사람들이!" 했는데, 가까이 접근해 풍력 발전기를 보자 왜 송전탑이 거기 있어야 했는지 이해가 됐다. 문명의 이기냐? 자연이냐? 난 별 시답지 않은 자연인이 아니라, 문명의 이기를 좋아한다. 문명을 위해 자연을 어느 정도 희생할 것이냐? 늘 하는 고민이기는 하지만.
미끄러운 도로를 따라가다가 좌측 위로 보이는 등산로로 접어들어 30여 미터를 더 가면 고루포기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이미 인천 산악회 전용 사진사가 미리 도착해, (내 기준) 상황을 모르고 정상에 오른 몇몇 산악회 멤버의 인증을 찍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듣고 이해하기론 점심을 먹고 하산하는 거였는데, 왜 점심 전에 정상으로 올라오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사진사가 하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그 인천 산악회는 정상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정상을 지나 닭목재로 하산하는 게 아니라, 발전기와 송전탑 관리용 임도? 도로를 따라 하산한다고 했다. 고로 정상은 각자 알아서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파가 늘어난다는 거라, 지금 찍는 인원이 빠져나간 후 삼각대 설치하고 무게 잡고 사진 찍을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해서 삼각대를 조립하다 말고, 바로 그 산악회 사진사에게 카메라를 주고 인증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사진 몇 장 찍고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며 점심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는데, 정상이 분지고 정상석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지자체에서 설치한 의자가 있었다. 거기에 배낭을 벗어 두고 점심이 든 디팩을 꺼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정상을 향해 오르며, 인파에 쫓기지 않았으면 남는 게 시간이라 여유 있게 올랐을 산을 인파 때문에 다른 걸 뒤로 미루고 올라, 앞으로 남은 시간이 고민이었다. 하산지에 막걸릿집 하나 없는 마당에 일찍 내려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산에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비상용 디팩에 들어 있는 라면 세트를 꺼내 라면을 끓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놈의 귀차니즘이 말렸다. 해서 애초 계획대로 갱 하나, 미니 핫바 둘, 초콜릿 과자 하나와 뜨거운 우엉차로 점심을 마쳤다.
겨울 산행 시 몸을 녹여주는 뜨거운 우엉차를 산에 가지고 가는 방법은, 산행 날 아침 먼저 말린 우엉 조각 2~3개를 보온 물통에 넣고 팔팔 끓인 뜨거운 물을 부어준 후 뚜껑을 닫고 배낭 옆 주머니에 넣는 거다. 그리고 점심시간 즈음에 산에서 물을 따라 보면 뜨거워서 물을 마실 수 없을 정도다. 처음 뜨거운 물이 마시고 싶어 따라 마시다 입과 목을 델뻔한 이후 마시기 전에 미리 따라두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산에서 물을 거의 안 마시는 체질이라 사실 그 차를 산에서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10번 산행에 두 번 정도, 나머지 8번은 그냥 들고 온다. 물론 마시는 2번의 경우도 대부분 물은 그대로 들고 온다. 그럼 그 물은 2~3일 정도 아지트에서 내 전용 차가 된다.
혹시 6.3km 산행 중 배가 고플 때를 대비해, 귤 두 개와 미니 핫바 두 개를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미리 따라두었던 차를 다 마신 후 단 미니 핫바를 먹고 나니, 물이 당겨 깜빡하고 뜨거운 차를 바로 따라 마셨다가 뜨거워서 뱉는 쇼를 했다. 물이 식기를 기다리면 되지만, 멀뚱히 앉아 물이 식기를 기다리는 건 체질이 아니라 입은 달아 죽겠지만, 그 뜨거운 물을 바닥에 버리고 배낭을 다시 쌌다. 그 순간 뒤에서 여성이 "다 드셨나요?"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점심 먹을 곳을 찾고 있던 여성 등산객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해서 빠르게 배낭을 싸 짊어지고 자리를 내준 후 닭목재를 향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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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4km의 코스 중 남은 거리가 7km 정도 되니, 절반이 남았다는 얘기다. 고로 비록 하산이지만,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을 거란 뜻이다. 그래서 인천 산악회는 정상 아래에서 도로를 따라 하산했을 거다. 닭목재를 향해 하산하며 알게 된 사실은 그 코스로 하산하는 팀은 나와 같이 온 안내 산악회가 유일했다. 정상에서 20여 분 내려가니 햇볕이 잘 드는 남서 사면 하산 코스로 눈의 흔적만 보일 뿐 아이젠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해서 아이젠을 벗을 장소를 찾다가 등산로 바로 옆 송전탑이 적격이라 그리로 갔다. 다리를 세우기 위해 만든 시멘트 구조물이 5~6명이 앉아서 밥 먹기 좋았고, 바람도 막아주며 햇볕도 따뜻한 점심 식당으로 최상의 장소였다. 그리고 조망도 좋았다. 물론 송전탑의 구조물이 카메라 렌즈를 방해하기는 했지만. 아이젠을 벗어 배낭 옆에 매단 후 주변 경치 사진을 찍고 있는데, 등산객 한 명이 내게 와 잠깐 비껴달라고 해 비켜주니, 반대쪽 다리로 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1시 31분에 송전탑을 떠났다. 그런데 산행 마감 시간이자, 버스에 탈 수 있는 시각은 4시 20분이었다. 남은 시간은 2시간 50분 정도, 남은 거리는 5.5km가량. 두 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그럼 남은 시간이 문제다. 천천히 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자리 잡고 앉아 배낭을 풀고 디팩을 꺼내고 하는 절차가 귀찮아 가능한 주위의 경치에 집중하며 그걸 사진으로 남기는 거로 시간을 소비하려 애를 썼다.
저 멀리 고루포기산 정상 옆의 헐벗은 채소밭을 보며,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안반데기였다.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가다 닭목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아래를 보니 도로가 보이고 넓은 밭이 보였다. 처음에는 건물을 짓기 위해 토지를 다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기에 뭔 건물을 지을까하는 것과 안반데기에 관한 얘기를 듣고 고랭지 채소밭이라고 결론지었다. 아닐 수도!
도로를 따라가도 되지만, 이왕 시작한 거 백두대간 등산로를 따라가기로 하고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계단과 등산로를 따라가며 주변 채소밭을 구경하다 미끈해서 엉덩방아를 찍었다. 능경봉과 고루포기산의 눈과 얼음 길을 아무 사고 없이 헤치고 나왔는데, 눈에 보이지 않은 얼음에 미끄러졌다. 백두대간의 등산로는 도로와 만나 도로를 따라 50여 미터를 가다가 내 예상대로 다시 능선으로 빠졌다.
닭목재를 향해 가는 등산로는 중간에 비가 좀 심하게 오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코스를 지나 채소밭으로 들어갔다. 눈이 녹아 진흙탕인 채소밭 길을 따라 계속 닭목재를 향해 갔다. 그리고 3시 14분에 닭목재에 도착했다. 문제는 버스가 와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A, B 코스에서 등산객을 태운 후 마지막 코스인 닭목재로 4시 10분경 도착할 예정이라 그때까지 1시간 정도 딱히 할 일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어디 들어가 바람을 피할 곳이 없어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소리고!
예상대로 닭의 목을 닮았다는 닭목재, 닭목령은 다른 옛 고개와는 다르게 지금도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개로 이용 중으로 2차선의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내가 시간을 끌기 위해 산에서 노닥거리는 사이 나를 지나쳐 갔던 등산객 예닐곱 명이 이미 도착해 양지바른 곳에 앉아 진흙탕을 지나오며 등산화에 묻은 흙을 털어내거나 "백두대간 닭목령"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도로 건너에 배낭을 벗어 두고 삼각대를 설치한 후 닭목령 표지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원래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에 고개의 표지석도 있는데, 닭목령이 빠진 이유는 바로 도로라 사고의 위험이 있었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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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목령에 도착하는 거로 대관령에서 시작한 경자년 2주 차 첫 무 음주 산행이 끝났다. 그 시각이 3시 14분이다. 닭목령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일단 주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딱히 찍을 것도 없어 10분 정도 후에 나도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배낭에서 의자를 꺼내 건물 앞에 자리를 잡았다. 건물의 벽을 등받이 삼아 앉아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라면이라도 끓일까 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 따뜻한 물로 만족했다.
3시 40분경이 되자 인솔 대장을 비롯한 대부분 등산객이 도착했고 이후 한두 명이 산발적으로 도착해 4시 15분경 버스 3대를 나누어 타고 온 등산객 전부가 도착한 거로 보였다. 애초 4시 20분 산행 마감이니 최소한 4시 10분경에는 버스가 도착할 거라 예상했지만, 20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왜 아직 안 오냐고 항의하는 여성 등산객에게 애초 30분이었다고 인솔 대장이 둘러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인솔 대장도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초조했지만, 도로에서 사정이 생겼다면 어떡하겠나, 해서 노련하게 받아치고 있는 거였다.
기다리다 못해 4시 21분경 인솔 대장이 1호 차의 인솔 대장에게 어디쯤이냐고 전화를 했고, 닭목령 바로 아래라는 답을 들었지만, 버스는 4시 25분경 두 대만 닭목령에 도착했다. 3호 차는 500여 미터 떨어진 급경사의 비좁은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고. 급경사의 급커브를 돌다 회전반경이 나오지 않아, 후진하려다 버스가 뒤로 밀리며 뒤에 있던 3대의 차를 연달아 받은 사고였다. 일단 배낭을 짐칸에 싣고 3호 차의 등산객은 1호 차와 2호 차에 나누어 타고 사고가 난 곳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이유는 3호 차가 운행을 못 하면 3호 차에 타고 있던 등산객을 나누어 태우고 가기 위함이었다. 돌아가서 보니 이런 도로를 버스가 올라왔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여기다 도로를 낸 사람들도 대단하고. 받힌 차가 문제였지, 받은 버스는 운행에 문제가 없어 사고 처리를 하는 대로 서울로 출발하기로 하고 1, 2호 차에 타고 있던 3호 차의 승객은 다시 3호 차로 옮겨 태운 후 1, 2호 차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서울을 향해 본격적으로 달리는 버스에서 다들 산행에 지쳐 잤지만, 잠을 잘 만큼 피곤한 산행이 아니었던 나는 패드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책을 읽을 만한 정신 상태는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배가 고프다는 거였다. 단독 산행의 경우 두어 달 전부터 과일과 핫바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는데, 그때마다 허기를 느꼈다. 대부분은 날머리에 식당이 있어 간단히 막걸리와 그 지역 묵무침으로 허기를 달랬는데, 막걸리 마실 곳이 없는 곳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해서 6시 51분 버스가 여주 휴게소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려 떡볶이로 허기를 달랬다. 떡볶이로 허기를 달랜다? 시간에 쫓기는 휴게소가 아니라면 상상이 안 되는 행위다.
여주 휴게소에서 7시 5분에 출발한 버스는 죽전에 일부 등산객을 내려주고 8시 3분에 출발지였던 신사역에 도착했다. 여주에서 신사동까지 1시간도 안 걸린다는 게 놀라웠다.
예정대로 '대관령 → 제왕산 갈림길 → 능경봉 → 행운의 돌탑 → 오목골 갈림길 → 대관령 전망대 → 고루포기산 → 목장끝문 → 닭목재'의 14.63km(트랭글 기준), 5시간 12분 코스의 백두대간을 달렸다. 이동 4시간 56분, 휴식 16분!
능경봉, 고루포기산 해발 1,000m가 넘는 두 봉을 오른 산행이었다.
대관령에서 닭목령에 이르는 백두대간 20번째 구간 중 일부를 걸었다.
나와 같이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오르겠다는 목표나, 백두대간 종주가 목표가 아니라면 굳이 오를 이유가 있을까 하는 산이고 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