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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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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tusjye/221855464680
광치기해변을 빠져나와
제주 올레 2코스를 정방향으로 따라간다.
제주 성산 일출로를 건넌다.
건널목을 건너니
올레 정방향을 가르키는 파란 화살표가
고성리 방향, 좌측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뭔가 이상하다.
사전에 확인한 내용이나 지도어플에서는
성산리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우회로로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이왕 올레를 걷기로 한 이상
거리가 더 멀더라도 정규방향을 따르기로 하고
성산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지도에는 유채꽃밭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미 피었거나 꽃대가 올라왔어야하는데
황량하다.
새롭게 조성 작업을 하는지
맨 흙이 드러난 곳이 많고 밭담이 깔끔하다.
야자매트가 새 것으로 깔려있고
모래와 돌을 쌓아놓은 무더기, 포크레인도 세워져있다.
올레가 표시하는 둑방길이 건너다 보이는데
진입할 길을 찾을 수 없다.
보도에 연한
발목높이 나즈막한 돌담을 넘는다.
무슨 조화속인지
노랗게 꽃을 피운 유채가 유독 이곳에만 일렬로 늘어섰다.
둑방방향을 보며
보도블럭 깔린길을 따라가지만
이내 길이 끊어진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유채가
수난속에서도 드문드문 예쁜 꽃을 피웠다.
하는 수 없이 얼기설기 쌓인 구조물 넘어
둑방 방향으로 다가선다.
오조리와 성산리를 잇는 갑문으로 드나드는 바닷물,
제주의 대표적인 철새도래지다.
드넓은 면적의 수면위에
저어새, 큰고니, 매, 황조롱이 등
희귀하고 다양한 종류의 철새, 조류가 찾아드는 곳이다.
둑방으로 다시 한 번 막아
안쪽에 대규모 내수면 양어장을 만들어놓았다.
둑방으로 드나드는 물을 조절하는
수문이 설치되어있다.
둑방 안쪽으로도 엄청나게 넓은 수면이 있는데
그 수면위로 구획을 나눠 돌담을 쌓아놓았다
방금 지나온 길이다.
해변 개활지를 구불구불 지나는 둑방,
휘몰아치는 세찬바람을 그대로 맞는 갈대의 아우성이
뺨을 에인다.
품안에 안긴 새끼새들의 꼬물거림처럼
수면은 일렁임이 소란스럽지않다
돌담은 쌓여있지만 막혀있지 않아
물이든 고기든 자유롭게 넘나든다.
철새탐조대라 하기엔 사방이 확틔인
둑방길 전망대에 올라선다.
오른쪽 보이는 봉우리가
왜놈의 노략질의지를 꺽었다는 식산봉이다.
수로를 빠져나가는 물살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든다.
2코스 출발점에서 약 2킬로미터를 걸어오면서
습관처럼 올레 표지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일반적인 코스라면 벌써 십여개는 보았을터,
건널목건너며 화살표 이정표가 다였으니
폐쇄되었거나 일시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코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다만 제주 올레 홈페이지에는 설명이 없으니
비록 충실하게 또는 스탬프투어를 하는 입장은 아니라도
묘하게 배신당하는 느낌이다.
목책을 두른 산책로가 숲으로 꺽어진다.
아마도 사람 발길이 잦아든지 오래인 듯,
검불이 데크위로 침범하고있다
내수면에 여가 드러났다.
그 너머 성산일출봉이
아흔 아홉개보석으로 장식한 왕관처럼
바다를 함으로 놓여있다.
데크끝에 제법 너른 벌판이 나타나더니
이내 깊은 울창한 숲에 든 느낌이다.
길따라 높은 고갯마루를
혼자 걷는듯한 고적함.
아련한 꿈이었던듯
곶자왈을 걷는 시간은 짧았다.
밭담 안 파종을 기다리는 밭에
파란 비닐천막을 뒤집어쓴 농기계가
마을에서 멀지않은 곳, 현실로 나를 이끈다.
오돌토돌한 바닥에드러난 까만 화산석,
너럭바위처럼 암반 위라는 증거다.
바다 깊숙한 만 안쪽같은,
내수면 거의 끝 부분이다.
갑문이 있어 조수간만의 차가 없을듯 하다.
지나온 길을 잠시 돌아본다.
내수면을 지나는 둑방길로 연결된
자그마한 섬 안으로 들어선다.
올레 공식 표지판이 아닌,
마을에서 만든것으로 보이는 표지판에
주인에게 외면당한 '올레 2코스' 방향안내가 있다.
그려진지 오래인듯,
빛바랜 주황, 파랑 화살표 색이 바랬다.
'오조리감상소',
마을을 알리는 전시공간으로 보이는데
방치된 모습이 올레 2코스와 운명을 같이하는 애잔함이 느껴진다.
내수면 위 이리저리 난 둑방길을 따라간다.
뒤로 성산갑문과
그 위로 난 한도교가 보인다.
야트막한 식산봉으로
둑방길이 이어진다.
식산봉 입구,
제주 올레 2코스는
오른쪽 목책을 따라 올라간다.
전망대에서
나무사이로 성산일출봉을 잠깐 감상하고
바위가 무더기로 쌓인 곳을 지나
해발 66미터, 식산봉 정상에 닿는다.
전망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제주도 부근 바다에 왜구의 노략질이 잦았다.
특히 소섬(우도)과 오조리,
성산포 부근에 왜구의 출몰이 심했다.
오조리 해안을 지키던 조방장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 식산봉을 낟가리처럼 위장하게 하여
군량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먼 바다에서 이 모습을 본 왜구들이
산처럼 쌓인 군량미를 보고는
일대를 지키는 군사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
그 후로는 노략질을 하지 못하였다 한다.
이에 연유하여
식산봉(食山峰)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오름에 유독 바위가 많아
바우오름으로 불리우다
바오름, 바위오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성산십경 중 열번째,
식산주해(食山周海)를 조망한다.
식산봉에서 바라보는 주변 바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 아쉽지만 볼 수 없다.
또한 식산봉에서 보는 쌍월,
하늘의 달과 내수면에 비친 달도 가히 선경이라는데
달 뜨는 밤도 아니려니와
역시 나무에 가려 조망하기 어렵겠다.
높지않은 오름을 가볍게 내려가는 길이지만
계단으로 이어진 길을 길,
제법 경사가 졌다
암반 흙길과 내수면 너머
우뚝솟은 성산일출봉이 호출한 부장처럼 부복한다.
드넓은 내수면 안쪽,
올레를 따라 목책데크산책로가 뻗어나간다.
제주도 기념물 47호,
식산봉 황근 및 상록활엽수림 보호지역 안내문이다.
밀물과 썰물로 인해 염습지가 생기는데
이러한 환경에 자라는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
황근 20여 그루가 자생하는 지역이다.
특히 5미터가 넘는 황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근은 노랑색 꽃이 피는 무궁화나무다.
내수면 사이 돌담위로 만들어진 산책로가
말간 수면 아래 비친다.
일부러 조경을 위해 모아놓은 듯,
한 켠에 놓인 수석이 눈에 감겨온다.
그 끝에서 오조리 마을에 닿는다.
내수면 끝부분에 맞닿아 용천수,
족지물이 솟아난다.
이 곳 역시 두 구역으로 나누어
위쪽은 여자탕, 아래쪽은 남자탕으로 이용했다.
맨 위쪽은 음용수로,
채소 등을 씻기도 했다.
그 외 빨래와 목욕, 마소의 식수로 사용했다.
지금은 여름철 피서지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의 쉼터로 이용하고있다.
차가운 계절이라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치어가 노닌다.
오조리 마을길을 지난다.
오조리사무소가
퐁낭쉼터를 겸하고있다.
하지만 주위에는 퐁낭,
팽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간간히 보이는 빛바랜 화살표와
마을 이정표가 전부인 길을
수마트폰지도를 보며 방향을 가늠하여 따라간다.
단조롭던 돌담이
대비색인 하얀 뿔소라를 친구로 어우러졌다.
마치 바다속 바위에 달라붙은듯
쉽사리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져
내수면과 접한 들길로 이어진다.
무성하진 않지만
이렇게 기교를 부리면 지천으로 유채꽃이 된다.
마을을 돌아 다시 내수면으로 돌아왔다.
그 곁으로 오솔길이 동행한다.
그 길을 따라 나도 동행한다.
유구한 세월,
암반은 바스러져 생명을 받아들였다.
물에 닿은 부분만이
그 거칠고 단단한 속살을 보여준다.
길은 드러난 암반으로 이어져
낮은 나무 사이로 지난다.
잠시 숲으로 들어갔다
다시 수변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갑문을 만들기 전,
깊숙한 만인 이곳까지 밀물과 썰물이 작용하여
섬으로 고립되기도 했을 터이다.
마지막 돌다리를 건너
잠시 만났던 별천지와 헤어져야한다.
길이 막혀있다.
여기 저기 둘러보지만
열려있는 곳을 찾을수 없다.
정낭에 매달린 바랜 안내판을 해독(?)한다.
'노인말이 있읍니다.
돌위로 올라가세요.
댁에 행운있기를
문을 꼭 닫으세요.'
왼쪽 끝 모서리에 돌이 놓여있고
석책 담이 뚫려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화살표가 반갑다.
5킬로미터 지점 성산하수처리장 옆 공원,
우회로를 따라온 올레 2코스와 만나는 곳이다.
아마도 우회로를 따라왔다면
1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 거리일 것이다.
제주 홍마트 성산점 앞,
2코스 중간스탬프 찍는 곳이다.
홍마트에서 고성동서로를 따라가다
산성효자로와 만난다.
성산읍사무소 소재지 고성리,
길게 이어지는 마을길을 따라간다.
마을 끝무렵에서
서성일로 건널목을 지난다.
대수산봉 방향으로 급하게 꺽어져
쉼터 앞에서 다시 좌측,
밭길로 접어든다.
시멘트포장 길을 따라 들어가면
대수산봉 오르는 입구를 만난다.
숲으로 들어서
조금 더 따라가면
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올라간다.
길지 않지만
돌아 올라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정상을 두른 목책이 보이고
하얀의자가 동쪽, 바다를 향하고있다.
해발 134.4미터, 대수산봉 정상이다.
물뫼(물미)오름라고 부르다가,
동쪽의 족은물뫼와 구별하여 큰물뫼로 부르면서
한자로 표기하며 대수산봉이라 부른다.
정상에 봉수대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조 초기 소수산봉에 있던 것을
중·후기 이곳으로 옮긴것으로 추정된다.
북동방향 성산봉수(성산일출봉),
남서방향 독자봉수(독자봉)와 교신했었다.
족은물뫼, 소수산봉 너머
은모래와 비취빛 바다 신양섭지해수욕장과 섭지코지가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 왼쪽, 성산일출봉과 우도, 광치기해안이
그 못지않은 경관을 뽐내고있다.
넓은 풍경으로 담아보았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
바로 밑에 산불감시초소 위 전망대가 설치되어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에 비해 다소 긴 반면
편안하게 이어진다.
거의 내려와
오른쪽에 쪽문이 보인다.
가까운 곳에 특별한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
무성한 솔밭을 지나오니
제주 곶자왈과 같은 식생이 보인다.
커다란 돌에 묶인 안내문이 섬뜩하다.
진입금지, 씽크홀 추락 위험.
평평해 보이는 억새 사이,
땅꺼짐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포장로에 닿은 올레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안내한다.
제주 고유의 산담과 다른 재료,
시멘트로 담을 만들어 사방을 막아놓았다.
망자가 출일할 수 있는 시문이나
돌계단이 보이질 않는다.
올레길도 끝무렵이어서 일까,
바다, 또는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떠나
만나는 숲과 밭이 심드렁하다.
심지어는 밭담과,
특유의 돌담도
눈에 썩 들어오지 않는다.
구불 구불 이어지는 길은
화살표를 따라 꺽어진다.
수확을 기다리는 초록빛 밭은
갈색으로 황량한 들을 걸어온 나그네에게
다소나마 활력을 준다.
제주 제 2공항 건설 계획이 있는 곳 인근이다.
찬반 양측의 입장이 잘 정리되어
원만하게 갈등이 봉합될수 있기를 바란다.
한참이어지던 밭길이
왕복 2차선, 난고로에 오른다.
다시 밭길로 빠져 2백미터쯤 지나
혼인지에 다다랐다.
혼인지를 관광자원으로 만들어
음식점과 전통혼례 및
신랑, 신부, 수모, 혼주 등을 체험할수 있고
리마인드 웨딩, 은혼, 금혼, 회혼식 등
혼인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진해한다.
삼성혈에서 솟아난 세 신인이
수렵을 하다가 온평리에 이르렀다.
우연히 바다를 보니
무언가 해안으로 떠밀려오고 있었다.
해변으로 내려가 자세히 보니
자주색 진흙으로 봉인된 목함이었다.
떠밀려온 목함이 해안에 닿자
이를 신기하게 여긴 세 신인이 목함을 열었다.
목함안에는 석함과
자주색 옷에 붉은 띠를 두른 사자가 나왔다.
"저는 본래 벽랑국 사신입니다.
저의 벽랑국에 공주님이 세 분 계십니다.
어느 날 왕께서 서쪽바다 가운데 높은 산에
삼 신인이 내려와 장차 나라를 열려고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는 것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신에게 세 공주를 데리고 가 배필을 정해
마땅히 대업을 이루도록 하라'고 명하시었습니다."
아뢰고는 구름을 타고 사라진다.
세 신인이 그 석함을 여니
푸른 옷을 입은 세 명의 처녀와
망아지와 송아지, 그리고 오곡 종자가 들어있었다.
세 신인은 세 공주와
이 연못에서 목욕하고 혼인을 올렸다.
이 때 삼 공주가 가지고 온
말과 소를 기르고 오곡 종자를 뿌려
농경생활을 시작하며 태평한 세상을 열었다고 전한다.
혼인지 바로 옆,
입구가 하나인 동굴 세 개가 있는데,
그 굴에서 첫 날 밤을 보내게 된다.
이 굴을 신방굴이라 부른다.
굴은 나즈막하지만 꽤 깊다.
신방굴 들어가는 입구다.
벽랑국 삼 공주 추원비다.
혼인지 연못 앞으로
'혼인지'표지석이 보인다.
혼인지를 나선 올레가
약 오 백미터 혼인지로를 따라가다
상동교차로에서 일주동로와 만난다.
일주동로를 건너는 건널목 앞,
혼인지마을 마스코트, 삼 신인과 삼 공주가
방문객을 환영하는 조형물이 서있다.
올레 2코스 종착지, 온평포구로 가는
온평리 마을 길이다
마을 길에 붙은 어느 집,
나무와 돌로 개성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마을 끝에 다다르니
해안도로에 닿는다.
온평환해장성이
그 너머 바다를 가리운다.
다른 곳과 달리 장성이 높다.
우측으로 돌아
약 이 백여 미터를 가면
마침내 2코스 종착점에 선다.
짧은 온평포구 방파제에
삼 신인과 삼 공주, 말과 소 등 가축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있다.
마침내 2코스 종착지에 선다.
방파제에 세워진 조형물로 가는 입구다.
용천수 공원쉼터다.
작년 5월, 3코스를 역으로 돌았을때
이 공원 이름이 '신비스러운 공원쉼터'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남, 여 두 개로 나뉜 용천수가
이름도 각각이다.
남자물은 '열은이물',
여자물은 '가르메물' 또는 물 맛이 달아 '도는물'이라고도 한다.
이로써 본섬 올레 21개 코스를 완주하였다.
마음에 두었던 것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 찾아온 셈이다.
비록 공인된 스탬프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약 사백 이십여 킬로미터를 완주한 기쁨은 적지않다.
아직 추자도, 우도, 가파도,
섬 세 곳이 남았지만
이번 기회 거기에 더해 본섬 세 곳,
A, B코스 중 가보지 못한 곳도 걸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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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차장님!
잘 다녀 오셨는지요..?"
그런데 글을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보여요...
힘들어요....
서너번으로 잘라 올리셔야 꼼꼼히 보지요^^
죄송해요...ㅎㅎ
죄송합니다.
그렇게 나누어 올리면
정말 도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사진으로 즐기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독특한 보행문 잘 느껴 보았습니다
쉬지않고 8시간 가찹게 걸려서 올레길을 완주허셨네유.....^^
올레글 읽다보면 차장님의 발목과 절로 함께 하는 제자신을 보게됩니다
자연유산이 훼손되는 모습이 안타깝게 보입니다.....
쫌 쉬셔유......수고했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