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지옥 편 제1곡 서가(序歌)
‘신곡’ 전체는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3부로 되어 있다.
각각 33곡의 칸토(canto 서사시)로 이루어지고, 지옥 편 앞에 서가(序歌)가 있어 칸토 34로 되어 전체는 100곡에 이르는 구성이다.
각 칸토는 140행 전후이고, 3행이 1조를 이루는, 이른바 ‘3행 각운’ 형식이다.
오늘부터 단테의 신곡을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올려보려고 한다.
첫 올림은 제1곡 서가(序歌)이다.
단테가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편 여행을 떠나면서 부르는 시의 주요한 행들을 요약 발췌하여 주석(註釋)을 곁들인다.
길을 잃고 숲속을 헤매는 단테
{지옥 편 제1 곡 서가(序歌)}
단테의 나이 35살에 길을 잃고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 숲속에서 표범과 사자 늑대를 만나 절망하고 있을 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지옥과 연옥으로 안내할 것을 약속한다.
숲은 단테가 지은 죄악을 의미한다. 표범(정욕) 사자(거만) 늑대(탐욕)는 구체적인 죄를 상징한다.
때는 1300년 부활절 주간인 성목요일 밤부터(예수 당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이 있었던 밤) 성금요일 아침까지의 여행이다. 참고로 이스라엘은 해가 진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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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인생의 중반기에서
올바를 길을 벗어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캄캄한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 아침이란 시간도 이 상쾌한 계절도
선명한 털의 이 표범으로 해서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마음을 놓은 것은 잠시뿐 이번에는
한 마리의 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게다가 잇따라 암늑대가 한 마리 나타났으니
말라비틀어진 피에 굶주린 늑대는
전에도 수많은 사람을 비탄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것을 보았을 때 겁에 질린 나머지
내 마음은 무겁게 짓눌리고 말아
언덕으로 올라가려는 희망을 버리게 되었다.
(註)
중반기 : 사람의 일생을 70으로 볼 때 단테의 나이 35살 때의 일이다. 그리스도 수난일인 성금요일인 그해 4월 8일 지옥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표범 ·사자 · 암늑대: 중세 이래로 표범은 정욕, 사자는 거만, 늑대는 탐욕을 상징했다.
짐승들은 나를 향해 한 발 한 발 돌진해 왔고
골짜기 쪽으로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던 나의
눈앞에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를 본 나는 살려달라고 외쳤다. 그가 대답했다
내가 태어난 때는 줄리어스 시저의 시대 후기였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로마에서 살았느니
나는 시인이었다. 그래서 트로이에서 온 안키세스의
정의로운 아들 '아이네이스'를 시로 읊었다.
자랑스러운 트로이의 성이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왜 이런 고뇌의 골짜기로 물러나는가?
어찌하여 기쁨의 산에 오르지 않는가?
모든 환희의 시초요 근원인 저 산기슭에?
"그럼 당신은 저 베르길리우스,
벅찬 강물처럼 언어의 근원이 되신 그분이십니까?"
(註)
후기 : 줄리어스 시저보다 28년 후에 태어났다는 의미.
트로이 :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도시 이름
정의로운 아들 : 트로이의 명장인 안키세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출생한 아에네이스를 말함.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왕의 아들인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의 손님으로 있던 중 그 왕비 헬레네를 빼앗아 본국으로 돌아간 데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기쁨의 산 : 연옥의 산 정상
베르길리우스 : 로마 최고의 시인. 그가 단테에게 끼친 영향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보다 더 깊었다. 신곡에서는 이성(理性)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의 대표작인 <아에네이스>는 그 소재만 두고 보더라도 주인공 아에네이스의 저승 순례나 이탈리아 건국 사업 등 단테 자신 및 그 詩에 관계가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말했다.
"오오, 모든 시인들의 명예이고 빛이신 당신,
당신은 나의 스승이시오 나의 시인입니다.
내가 자랑으로 삼는 아름다운 문체는
오로지 당신에게 배운 것입니다.
스승님 저 늑대로부터 나를 구해주십시오
두려움에 떠는 나를 보고 스승이 말했다.
그 천성이 흉악하고 잔인하여
피에 굶주려 먹어도 먹어도 만족을 모르고
먹기 전보다 먹고 난 뒤에 더 허기져 하는 놈이다.
장차 그 숫자가 더욱 많아지리니
결국은 사냥개 펠트로가 나타나
저놈을 학대하여 죽일 것이다.
대지의 산물이나 돈을 먹이로 삼지 않고
지혜와 사랑과 덕을 양식으로 삼는 펠트로의 고향은
펠트로와 펠트로의 사이에 위치할 것이다.
그는 처녀 캄말라와 에우리알로스, 톨노스, 그리고
네조스가 수호하다 상처를 입고 죽어갔던 저
가엾은 이탈리아의 구원이 되리라.
(註)
펠트로 : 장차 세상에 나타나서 물질과 정신을 구원할 위대한 인물을 뜻함
캄말라, 네조스 :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캄말라는 볼시의 왕 메타불의 아내가 되어 톨노스(루툴리아 왕으로 아에네이스와 싸우다 전사함)를 도와 트로인들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에우리알로스, 네조스는 트로이 사람 친구로서 볼시 사람들과 싸우다 전사한다.
귀스타브 도레(1832~1883년), 1861년.
나를 따라오너라, 너를 안내해 주마
여기서부터 너를 영원한 곳으로 인도하리라.
거기서 너는 절망의 외침을 들을 것이며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고대인의 망령을 보리니
또한 불꽃 속에 만족해하는 사람들도 보리니
그들에게는 언젠가 행복한 사람들이 무리 속에
끼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천국)에도 오르고 싶다면
나보다 훌륭한 분이 계시니
헤어지기 전에 너를 그분에게 맡기기로 하겠다.
(註)
영원한 곳 : 지옥을 뜻함.
불꽃 속에 만족해 하는 사람들 : 연옥에 있는 혼백들로서 때가 되면 죄씻음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만족해한다
훌륭한 분 : 베아트리체를 말함. 단테의 영원한 여성인 베아트리체는 그의 서정 시집 ‘신생(新生)’에 생동감 있고 아름답게 노래 되어 있다. 단테가 ‘신생’에서 써놓은 후기에 의하면, 단테의 나이 아홉 살 때 같은 또래인 베아트리체를 만났고, 열여덟 살 때 다시 만나게 되어 사랑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시모네디 바르디와 결혼한 후, 1290년 24살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 뒤 10년 동안 걸친 단테의 타락한 생활에 대해서는 ‘신곡’ 첫머리에 캄캄한 숲으로 방황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연옥 편 23곡 및 30곡 등에 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지상 낙원에 모습을 나타내어 단테를 천국으로 안내하게 된다. 단테의 그녀를 향한 사랑은 지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천국에서 상봉한다는 꿈으로 신곡이라는 대작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치자는 모든 곳에 군림하시고 통치하시니
거기에는 王城(왕성)이 있고 옥좌가 있으며
택함을 받아 그 나라로 가는 이는 행복하여라
그래서 나는 말했다. 시인이시여 부탁합니다
당신께서 생전에 모르셨던 신의 이름으로
부디 이 악과 이 이상의 악을 면하게 하소서
지금 말씀하신 곳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그리하여 부디 성 베드로의 문과
당신이 말한 비참한 자들을 보게 하소서.
이윽고 그는 걷기 시작했으며, 나 또한 그의 뒤를 따랐다.
(註)
모르셨던 :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도 이전에 출생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문 : 연옥의 문. 그리스도는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고, 베드로는 그것을 천사에게 맡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