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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종주기 3부 (2018년 11월 12일~13일)
숭의전지 → 장남교 → 율곡습지공원 → 반구정 → 임월교
○ 습(習)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데
3시 반에 일어나 서둘렀는데도
집을 나서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5시 반이 다되어서다.
직장생활 할 때도 그랬고 은퇴하고도 언제나 정해진 그 시간이 되어야만
타이머에 반응하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몸을 보면서 습관의 무서움을 새삼 느낀다.
그렇다면 오늘은 빨리 나가도 차편이 없으니 좀 더 자지 않고 왜 일찍 일어나야 했을까?
일어나서 집을 나설 때까지 매일 습관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 때문이다.
몸 풀기 체조, 화장실 가기, 간단한 식사와 커피 한 잔 등등
사소하지만 하지 않으면 뭔가 찜찜한,
차라리 잠자는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반드시 해야만 개운한 무서운 습관!
어떤 일이든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고 싶으면 습관부터 바꾸라는 말은 진리다.
○ 늙은이 걱정이 오늘 하루를 살렸다
오늘은 먼저 동두천 중앙역으로 가야 한다.
창동역에서는 37분이 걸리고 다시
숭의전지행 52-1번 버스를 타는 역전사거리까지 10분이 걸리니
창동역에서 역전사거리까지는 총 47분이 소요된다.
숭의전지행 첫차 시간이 6시 50분이니
그 시간에 맞는 열차는 5시 53분과 6시03분 열차가 있다.
앞차는 10분의 여유가 있고 뒷차는 빠듯하다.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에 앞차를 탔고 결국 그 선택이 오늘 하루를 살렸다.
열차시간표대로 정확하게 6시 반 동두천역에 도착했다.
(요즘 새벽열차를 타면서 느낀 것은 전철 운행시간이 놀랍도록 정확하다는 것이다.
내가 타 본 새벽열차들은 단 1분의 오차도 없었다)
화장실을 들러서 역전사거리 정류장에 도착하니 6시 38분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정류장엔 아주머니 몇 분이 앉아 계시고
나는 추위를 쫓느라 발을 동동거리며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6시 40분 막 지나 버스 한 대가 불을 환히 밝히고 오는데 어라! 52-1번이다.
“숭의전 가요?” “예, 가요!” 얼른 올라타고 나서 물어본다.
“아저씨, 이 차 6시 50분 차 아닌가요?”
“예? 아~ 시간이 바꿨어요. 벌써 1년도 더 되었는데요!”
다음 차는 무려 10시 반! 결국 늙은이 걱정이 현실이 된 셈이다.
뒷차를 탔더라면 오늘 하루가 날라 갈 뻔 했다.
돌아와서 인터넷을 다시 확인해 봐도 네이버나 다음이나
모두 첫차시간은 여전히 6시 50분으로 되어있다.
(daum은 그후 지도 <틀린정보신고>에 올렸더니 6시40분으로 고쳐졌다)
인터넷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 10코스 <고랑포길>
○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 했던가!
지난 주 11월 6일 밤에 떠났던 숭의전지에 다시 도착한 시간은 7시 20분,
출발시간이 10분 앞당겨졌고 도착시간도 10분 정도 빠른 것 같다.
생각지도 않았던 여유가 생겼기에 지난 주 어둑해질 때 도착하여 제대로 보지 못한
임진강 절벽을 보기 위해 다시 숭의전 뒷산을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개가 자욱하여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고 했던가! 보여주고 말고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그래도 안개 낀 임진강은 운치가 있었고
일부러 보려고 해도 어려운 구경이라 생각하니 이것만 봐도 좋기만 하다.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숭의전 앞 청국장을 먹었던 고려가든
② 숭의전의 아침
③ 안개 낀 임진강
④ 안개 낀 숭의전을 떠나며
○ 무진기행(霧津紀行)
숭의전을 뒤로 하고 아주 잠깐 들길을 걷다 바로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또 다시 왼편 아래쪽으로 절벽이 우뚝 서 있고
그 절벽 아래 임진강이 풍만하게 누워있는데
안개는 뭐가 부끄러운지 자꾸만 풍경을 숨기려 한다.
또 오른편으로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들판이
안개에 푹 잠긴 채 고요 속에 누워있다.
이 이른 아침 찬서리에 젖은 낙엽과 안개를 헤치며
호젓한 산길을 홀로 가는 사람 누구인가!
나는 그만 나를 잊고 길마저도 잊고 꿈길인 듯 그렇게 아득히 흘러갔다.
(사진) 무진기행-안개 낀 임진강변
산이 끝나면서 잠시 깨어났던 꿈은
해쌀펜션 지나 뚝방길을 오르자 다시 꿈길로 떨어진다.
이제는 아예 임진강을 옆에 두고 나란히 걷는다.
뚝방길 바로 옆 오른쪽으로는 주택들이 한 채 또 한 채 이어지고 있다.
뚝방 왼편은 아직도 안개에 젖은 임진강이고
오른쪽은 안개 속에서 깊은 잠을 깨어나지 못하는 전원주택들.
나는 그런 안개 속을 걸으면서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이 떠올랐다.
혹시 이곳이 무진은 아닐까?
30代인 주인공에게 무진은 꿈이지만 서울은 현실이라고 했다.
“무진은 몽환적이고 탈속적인 공간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우며,
아름다우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무진은 2박 3일이면 족한 것이다. <네이버 두산백과에서>”
그렇다면 60代인 나에게 무진은 어떠한 곳이어야 하는가?
나의 무진은 어디에 있기나 한가?
만약 있다면 나의 무진을 찾아가서 한 사나흘 머물고 싶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걷는 뚝방길은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였다.
○ 누구는 꿈을 좇고, 누구는 꿈을 심는다
뚝방길이 끝나고 아스팔트길을 걸어 학곡리로 들어선다.
이 길은 특이하게 학곡리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마치 민속마을을 관람하는 것처럼 이곳 주민들의 삶을 살펴보라는 배려인가?
학곡리 적석총을 지나 길은 다시 강 쪽으로 내려가서 하상길을 걷게 한다.
어느 듯 안개는 사라지고 늦가을 하늘이 청명하지만
하상길 곳곳은 물웅덩이가 고여 진창길이다.
임진강적벽처럼 경치도 빼어나지 않는 이 길을 왜 굳이 걸어야만하나 하는
회의가 들 즈음 하나의 풍경이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사진) 위: 임진강변의 저 한 사람!
아래: 비룡대교 근처 화훼단지 조성 터
멀리 임진강변에 실루엣으로 떠 오른 사내 하나,
이 이른 아침 왜 거기 서 있나!
억겁을 구르다 기진맥진하여 이 강변에 자빠져버린 돌들,
그 돌들을 팽개쳐놓고 이제는 저 혼자서 흘러가고 있는 무심한 강물,
그런 강물의 등 위에서 반짝이는 햇살,
그 햇살 속에 실루엣으로 떠 있는 사내…
저 사내는 분명 꿈을 좇아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진창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멀리 비룡대교까지 거대한 밭이 조성되어 있다.
강변 고수부지를 정리하여 화훼단지를 조성한 곳이란다.
꽃을 심는다? 아름다운 꽃을 심어 사람을 부른다?
그렇다고 사람이 벌이 될 수 있나? 나비가 될 수 있나?
그래도 누군가는 벌과 나비처럼 이곳을 찾아오겠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꿈을 좇아 이른 아침부터 강변을 헤매고,
누군가는 꿈을 심기 위해 이 넓은 고수부지에 꽃밭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꿈을 좇지도, 심지도 못하는 나는 그저 이곳을 스쳐가는 나그네 일 뿐!
숭의전에서 비룡대교까지는 2시간 반이 걸렸다.
쉴 곳이 마땅찮아 비룡대교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배낭을 다시 꾸린다.
○ 이 가을의 절정을 보다
안개 개인 임진강변의 아침은 어린 학생처럼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끊임없이 말을 걸며 따라온다.
그러다 뚝방길이 크게 선회하는 곳,
석장천이 사미천과 합류하고 그 사미천이 다시 임진강의 품에 안겨드는,
그런 합수부가 내려다보이는 뚝방길 위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곳에 앉아 모여드는 물길과 그런 물 위에 어리는 석양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을 한 번 상상해 본다.
(사진) 석장천, 사미천, 임진강이 만나는 합수부 머리맡에 놓여진 뚝방길의 벤치
아! 이 기막힌 곳에 의자 하나를 놓아두자고 제안한
어떤 사람의 심미안이 존경스럽다.
그러나 지금은 낡고 퇴락하여 아무도 앉지 않을 것 같은,
쓰레기처럼 방치된 의자가 안쓰러워 시(詩) 한 편을 들려준다.
공원 벤치
-박재희
멀리서 산책을 하다가도
의자를 보면 앉고 싶어진다
의자에는 항상 누군가의 체취가 묻어있다
한가한 오후 노부부가 쓸쓸함을 기대다 가고,
아이들이 실웃음을 흘리다 가고,
그늘이 몰래 쉬었다 가고,
가끔은 석양도 붉은 하늘을 끌고 와 놀다 간다
늦가을 날
의자 위에 나뭇잎이 떨어져있다
가난한 죽음이다
죽음도 의자를 보면 쉬었다 간다
그러나 이곳 의자는 공원 벤치보다 훨씬 더 외로운 의자다.
이곳에서는 노부부도 아이들도 보기 어렵고,
그늘과 낙엽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날이 좋으면 아주 맑고 깨끗한 석양을 볼 수 있고
저 아래 바람에 출렁거리는 갈대밭과 밤새도록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이 있으니
그만하면 이 가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고 싶다.
나 또한 한 장 나뭇잎처럼 잠시 쉬었다 가고 싶다.
저 낡은 의자 하나가 이 가을의 절정이다.
○ 두 개의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 사바세계로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석장천 징검다리 ②③ 하상길 ④ 사미천 징검다리
합수부의 의자를 지나 얼마 안 가니 석장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난다.
그 아래 징검다리를 건너 하상길을 걷는데
이곳의 풍경은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하다.
종교계에서 말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
즉 불교의 중유(中有)이거나 가톨릭의 연옥(煉獄) 같다.
물로서 심판한 세상이 이런 모습일까?
거센 물살에 휩쓸려 쓰러진 나무들의 단발마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하상길이 끝나는 곳에 사미천(?)의 징검다리가 있어
마치 구원을 받은 것처럼, 환생처럼
다시 이 사바세계로 건너오니 긴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참으로 인상 깊은 풍경이었다.
사미천부터 장남교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별 특징이 없는 평범한 농촌길을 걸어가면서 문득 깨달은 것은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누리길을 안내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정표와 안내판 물론 특별한 시설물을 설치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붙이는 안내스티커 혹은 리본이 펄럭인다.
도로를 따라 그어진 자전거길 파란선도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었다.
평화누리길을 관리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정성을 다하고 있는 데도
나 같은 길치는 자꾸만 ‘알바’를 하면서 투덜대는 것이었다.
평화누리길 관계자분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여러 가지 안내물
■ 9코스 <율곡길: 장남교에서 장파사거리까지>
○ TV드라마를 너무 본 탓이다.
10코스 출발지점에서 스탬프와 인증샷을 찍고 장남교를 건넜다.
두지리 야산을 들어서는데 입구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길을 물어본다.
“이 산 정상이 어딘가요?”
“저도 초행이라 모르겠는데요. 왜 그러세요?”
“산소를 찾는데 네비는 여기까지 밖에 안내를 하지 않는군요”
“예전에 와 보지 않으셨어요?”
“예, 저도 처음이에요”
같이 조금 산을 올라가다 안 되겠는지 아주머니는 인사를 하고 도로 내려간다.
다시 혼자 상상해본다.
생전 처음 와보는 산소라면 친정보다 시댁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것도 여자 혼자?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TV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일 것이다.
머리를 흔들며 잡생각을 털어버린다.
문득 군청 지적과 같은 곳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돌아가 조언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부디 고생 많이 하지 않고 잘 찾으시기를 빌어줄 뿐이다.
○ 생각처럼 잘 되는 일은 드물다
두지리 야산을 넘어 자장리 들어서는 입구에 자전거길 공사가 한창인데
그 바람에 평화누리길 안내 깃대가 쓰러져 나뒹굴고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나 소중하지 공사장 인부한테는 무슨 소용이 있겠나!
오히려 사정을 안다면 “팔자 좋은 ○○!” 이라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은 어느 듯 2시 가까이 되어 간식을 먹은 지도 세 시간이 넘었는데
마땅히 쉴 곳을 만날 수 없다. 마침 마을 입구에 농촌문화체험관이 보였다.
올라가보니 방치된 지 오래된 듯 여기저기 쓰레기더미만 가득할 뿐
황량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소중한 쉼터이다.
(사진) 방치된 농촌문화체험관
먼지가 수북한 의자에 깔판을 깔고 앉아 간식을 꺼내 먹으면서
찬찬히 둘러보니 건물이 깨끗한 것이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마당에는 어린이들 물놀이 시설도 만들어져 있어
여름이면 아이들의 활기찬 웃음이 넘쳐나던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쓰레기와 먼지만 가득한 폐허처럼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답답한 일이겠다.
찾는 사람도 없는 이런 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을 둔다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처음 이 농촌문화체험관을 지을 때에는 많은 계획이 있었겠지.
그러나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생각과는 다른 현실을 만났을 것이고,
그제야 다시 궁리를 해봐도 별 뾰쪽한 답을 찾을 수가 없으니
이렇게 손을 놓게 되었겠지.
우리나라 곳곳에 이런 시설이 꽤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나 또한 마찬가지다.
깊이 숙고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선택하였으나
곧 대책이 없어 손을 들고 말았던,
지금도 마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잡초만 무성해진 일들… 사람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나 제대로 정리나 할 수 있을 런지…
이러다 그냥 가슴에 안고 가는 것은 아닌지…
○ My Way! 묵묵히 나의 길을 갈 뿐이다
간식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서 마을을 지나가는 데
자장리마을회관이 나오고 쉼터가 보인다.
깨끗하게 관리된 그곳을 보니 ‘조금만 더 와서 간식을 먹을 것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것인가,
다음번 또 다시 이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폐허처럼 버려진 아까 그곳을 먼저 찾고 싶은 것을.
이어지는 길은 넓은 벌판을 가로지르는 길인데
멀리 저 쪽에서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멀리서 봐도 평화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가까이 마주치니 반갑게 물어온다.
“평화누리길 걷는 거죠?”
“아, 정말! 1코스부터 걸어오는데 길에서 누리길 걷는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에요!”
“저쪽 길은 어때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통성명이 필요 없는 것 같다.
그저 길 이야기만 몇 마디 나누고 표표(飄飄)히 떠나는 것이
노상(路上)에서의 예절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알고 싶은 것은 다 알았다.
40중반의 친구사이로 그동안 서울둘레길을 비롯하여 많은 길을 같이 걸었으며,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고 있는 것도,
우연히 나하고 비슷한 경로를 계속하여 걷고 있다는 것도,
앞으로의 계획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길은 가지 말라는 충고도 들었다.
무엇보다 1코스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사람이 없었다면
그만큼 이 계절에 평화누리길을 역방향으로 걷는 사람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스쳐가는 바람처럼 헤어졌다.
잠시 가다 뒤돌아서서 사이좋게 걸어가는 그들을 한참 지켜보았다.
멀리서 봐도 오래된 친구사이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걸음걸이마저 닮아보였다.
문득 외로움이 사무쳤다.
외롭다! 지금 내 곁에 누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마음이 맞는 누구와 같이 걸어가면 얼마나 행복할까!
한없이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급히 다잡는다.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평생 남들처럼, 남들이 가라고 한 길을 걸어왔던 내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걸어보리라 선택한 길이다.
끝까지, 흔들림 없이, 묵묵히 걸어갈 따름이다.
***이 종주기를 쓰면서 생각이 났는데 이 두 분은 꼭 전에 한 번 만났던 분들 같다.
작년 봄 눈이 채 다 녹지 않은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있었는데
사패산 중턱에 앉아서 쉬고 있던 어떤 사람이 불쑥 물어왔다.
“둘레길 걸어요? 길 어때요?” 똑 같다.
친구와 둘이서 걷고 있는 거나, 물어보는 말투나…
그 때는 내가 순방향, 그들이 역방향이었지만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났던 인연이 또 한 번의 인연을 만들었다고 믿고 싶다
○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한 시간 남짓 더 걸어 오늘의 목적지인 장파사거리에 도착했다.
문산역으로 가는 92번 버스편이 많아 문산역까지도 금방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데는 2시간이 더 걸리지만
수시로 출발하는 전철이 있으니 마음이 넉넉하다.
오늘은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평화누리길이란 이름에 걸맞은 길을 걸은 것 같다.
문산역 앞 순대국집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미리 먹었다. 아주 느긋하게^^
■ 11월 13일 <장파사거리에서 임월교까지>
○ 단 1분의 여유, 지하철1호선에서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기
지하철1호선 창동역 5시 40분 출발, 회기역 5시 56분 도착,
경의중앙선 문산행 5시 57분 출발. 단 1분의 여유 밖에 없다.
1호선이 연착을 하거나 문산행이 조금 빨리 떠나거나 하면 안 되는 시간표다.
우리나라 전철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조회한 ‘빠른 환승’ 출입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문 앞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뛰어올라가
건너편 경의중앙선 플랫폼으로 뛰어 내려가는 데
벌써 문산행 전철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시간표대로 되었다. 우리나라 전철이 이렇게 정확했다.
(이번 종주길에 새벽 일찍 탄 전철들은 단 1분도 틀린 적이 없었다)
회기역에서 문산역까지 1시간 30분 쯤 걸렸다.
문산역 앞 정류장에서 92번 버스를 타고 어제 돌아왔던 장파사거리에 다시 내렸다.
■ 9코스 <율곡길: 장파사거리에서 율곡습지공원까지>
○ 어느 듯 하얗게 서리 내린 길을 따라
어제 오후부터 장파사거리에서 역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입구를 찾지 못해 뺑뺑이를 돌았다.
마을 안까지 들어갔다 나오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서야
사거리에서 바로 우측으로 들어가는 자전거 길을 발견했다.
길을 찾고 나서야 근처에 있는 이정표를 제대로 해득할 수 있었다.
내 길눈이 어두운 탓도 있겠지만 역방향 도보자를 위한 배려도 아쉬웠다.
판자를 이어붙인 자전거길은 서리가 하얗게 내려 미끄러웠다.
근방의 논에도, 이어지는 임진강적벽산책길도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춥다. 손이 곱아 아리다. 곧 겨울이 멀지 않았다.
임진강적벽산책길에 적벽의 유래가 적혀있다.
11번 코스 <임진적벽길>에서도 보지 못했던 적벽의 유래를
여기 9번 코스 <율곡길>에서 보게 된 것이다.
(사진) 서릿길과 임진강적벽산책길
○ 자전거가 약한 건지? 사람이 강한 건지?
이어지는 길은 37번 국도 옆으로 가는데
거의 자전거길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길 곳곳에 자전거를 위한 안전 안내판이 서 있는 데
사람에 대한 안전 안내판은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가 약한 건지? 아니면 사람이 강한 건지?”
(사진) 자전거 보호 안내판
자동차, 자전거, 사람 이 셋 중 누가 가장 강하고 누가 가장 약할까?
당연히 자동차가 가장 강하고 사람이 가장 약할 것이다.
그런데 평화누리길 곳곳에는 자전거를 보호해주라는 안내판은 많았지만
사람을 보호해 주라는 안내판은 거의 보지를 못했다.
사람이니까, 다들 알아서 스스로를 잘 보호할 수 있으니까,
의당 그러려니 하고 잘도 다니는데 나만 너무 예민한가?
○ 그래도 군대는 군대였다
이 길을 걷다 보니 파평면사무소에서 92번 버스길과 다시 만난다.
다음번에는 장파사거리 지나 1시간을 더 걸어와서 파평면사무소에서
문산행 92번을 타는 것이 다음날 다시 걷는데 더 유리할 것 같다.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우측으로 빠지게 되는데
여기서도 역방향 도보자를 위한 배려가 아쉬운 곳이다.
순방향 도보자는 면사무소 뒤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입구로 빠져 이정표의 안내를 받을 수 있지만
역도보자는 면사무소 안에서 어디로 갈지 우왕좌왕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헤맸다는 말이다^^)
면사무소 뒷산을 오르는 데 가까운 곳에서 사격훈련을 하는 지
대포소리와 소총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쿵~쿵~ 대지를 울리는 대포소리,
탕 타당 탕 온 산이 시끄러운 소총소리는
여기가 전방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37번 도로에서는 장갑차들이 열을 지어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고 있다.
고요했던 최전방과는 달리 조금 떨어진 이곳에서는 훈련이 한창이어서
요즘 우리 군대에 대한 우려가 많이 가셨다.
당나라 군대가 되었다는 둥, 요즘 군인은 군인도 아니라는 둥 말도 많이 들었지만
이곳에서 직접 보고 들으니 그래도 군대는 군대였다.
○ 우리나라가 지방자치제임을 깨닫다
10시 반이 다되어 율곡습지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은 별다른 시설물이 없이 청보리밭이 거의 전부인 듯하여 휑하다.
어찌 보면 이 모습이 습지공원의 본래 모습일 터인데
내 눈에 낯설어 보인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인공적 시설물들에 익숙한 탓일 것이다.
화장실에 가보니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아직 화장실 안에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다.
오랜만에 쓰레기통에 쌓인 휴지 등을 보니 왠지 불결해 보인다.
나중에 반구정의 화장실을 가보니 그곳도 쓰레기통이 있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를 시행하니 자치단체마다 행정기준이 다르겠구나.
그래서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비치할까 말까 여부도 지방마다 다르겠구나’ 라고.
(사진) 율곡습지공원 시설물들
관리사무소 건물 뒤쪽으로 철책이 있고 철책 바로 앞에 벤치가 보여
그곳에 앉아 간식을 먹고 일어서는 데 어떤 늙은이가 다가와 말을 건다.
법원읍에서 이곳까지 흙길을 따라 걸어왔다고 한다.
이곳은 강변을 방어하는 철책선은 있어도 DMZ와는 거리가 있어
이렇게 민간인들이 자유롭게 산책도 할 수 있는 곳인가 보다.
■ 8코스 <반구정길>
○ 율곡선생에게 경의를 표하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참으로 청명한 가을 하늘이다
② 팔세마음길에 있는 율곡선생의 시
③④ 화석정 풍경
습지공원을 떠나 얼마 안 가니 ‘팔세마음길’이 나온다.
길가에 율곡선생이 8세에 지었다는 시가 적힌 안내판이 있는데
시를 가만 읽어보니 기가 막힌다.
8세 어린이의 감성이 어찌 60대 중반인 나보다 더 풍부한가!
늦가을 평화누리길의 정취가 바로 그대로 이 시에 녹아있었다.
과거에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를 하였다더니 정말 천재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시가 더 좋다.
화석정은 평화누리길 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에 있었다.
잠시 화석정 주변을 살피며 율곡선생에게 경의를 표하고 발길을 돌린다.
○ 장산전망대는 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삭막했다
장산전망대를 그냥 지나치려다 그래도 소문난 경치인데 싶어 잠시 들리기로 했다.
혹시 휴식을 취할 곳이 있다면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전망대로 가는 길을 접어들어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반바지 차림의 청년이 불쑥 나타났다.
처음에는 아랫마을 청년인가 했더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사람 하나 없는 곳을 나 혼자 어슬렁거리며 다니니 살펴보려(?) 나온 것 같다.
전망대는 예상과는 달리 황량했다. 달랑 벤치 두 개가 전부다.
한 곳에는 내가 앉고 옆 벤치에는 그 청년이 앉아
말없이 강 건너편을 맨송맨송 바라보다 사진 두어 장 찍고 서둘러 일어섰다.
(사진) 장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 누가 이 벌판에다 배를 가져다 놓았을까
벌판 한 쪽 야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배 한 척이 놓여있다.
노아의 방주처럼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신의 계시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일까?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처럼 돛대도 삿대도 없이
그냥 푸른 꿈 하나를 싣고 가다 여기서 좌초하고 만 것일까?
나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다만 이곳에서 꼼짝없이 묶여버린 저 배를
이제는 그만 놓아주면 좋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평화누리길이란 이름에 걸맞게…
(사진) 마른 땅 위에 묶여버린 배
○ 누가 이 벌판 한가운데 쉼터를 만들자고 했을까
다시 길을 가는 데 하늘은 맑고 기온도 적당하니 아~ 참 좋은 날이다.
어제 아침은 숭의전지에서 내려오면서 안개에 젖은 임진강 적벽을 실큰 구경했는데
오늘은 파주 벌판을 쏘다니며 바람과 햇볕을 마음껏 쬐고 있다.
누가 벌판 한가운데 쉼터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 사람도 고심 끝에 여기에 쉼터를 만들자고 했을 것이다.
한여름에는 그늘이 없어 좀 불편하겠지만 늦가을, 신발도 양말도 벗어버리고
편안하게 간이의자에 앉아 적당한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간식을 먹는 즐거움이 크다.
그러나 좋은 일이 많으면 나쁜 일도 근심해야 하는 법,
나는 곧 일어날 참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 벌판 한가운데 있는 쉼터
○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늦가을 평화누리길을 걷자면 점점 짧아지는 해와
등산로를 지워버리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고려해야 한다.
또 음력 그믐께는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한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突發變數)가 더 있으니
바로 군사훈련과 평화누리길에서 벌어지는 각종 공사다.
군사훈련은 특정장소를 통제하는 것이기에
그곳을 피해 누리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지만,
대규모의 공사는 평화누리길 자체를 파헤쳐
일시적으로 길을 없애버리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대규모 공사는 대부분 수로공사로 여름내 기다리다
농한기를 맞아서 비로소 실시하는 공사들이다.
따라서 농부들 탓을 할 수도 없는데 다만, 그 정도의 규모가 큰 공사라면
당연히 시청이나 군청에 사전에 신고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회도로를 안내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9코스 자장리 자전거도로 공사
② 10코스 구미리 수로 공사
③④ 8코스 마정리 수로 공사
벌판 쉼터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규모 수로 공사 현장을 만나게 되었다.
길을 완전히 뒤집어놓아 그냥 걷기가 어려웠는데,
달리 길을 찾아 우회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초행의 평화누리길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어떠하든 지금 여기서
길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저~쪽 수로 위에 통나무다리가 놓여있지 않은가!
아마도 농부들이 멀리 우회하기 힘드니까
수로 군데군데 통나무다리를 만든 모양이었다.
경사진 뚝방을 조심조심 걸어가 통나무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우지끈~ 뚝! 다리가 부러지면서
나는 사정없이 수로 아래로 나뒹굴게 되었다.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마정리 수로 공사 현장
②③ 부러진 통나무 다리
④ 보름쯤 후 아물어가는 상처
통나무가 곁은 멀쩡하게 보였지만 완전히 썩어버린 것이다.
잠시 눈앞이 아뜩한데 공사장 인부가 달려와 손을 내밀어주어
그 손을 잡고 겨우 수로를 올라올 수 있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냐며 걱정스레 묻는 인부에게
우선 머리부터 살펴봐달라고 했다.
다행히 이마에 큼직한 혹이 하나 생기기는 했지만 괜찮아 보인다고 한다.
다시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오른 팔뚝에 꽤 큰 찰과상이 하나 있을 뿐
다른 곳은 이상이 없는 듯하다.
아마 모자 덕분에 머리는 혹 하나로 때울 수 있었고,
수로가 거의 말라붙은 데다 매고 있던 배낭이
떨어지는 충격을 많이 완화시켜준 덕분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잇살이나 먹었다는 사람이
덤벙대다 개골창에 처박힌 꼴이 너무 창피스럽고
어디 하소연하기도 멋쩍은 일이라
잠시 정신을 수습한 뒤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한참을 걸어가다 뒤돌아보니
멀리 왼쪽 대각선부분에 수로공사 현장이 보였다.
그곳에서 직진하다 왼편으로 꺾어 다시 직진하였으니
이 넓은 벌판을 직사각형으로 걸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저 공사현장에서 이곳까지 돌아올 수 있는 우회도로를
얼마든지 안내할 수 있었을 것 아니냐는 서운한 마음이 잠시 들었다.
○ 사랑만 있다면 염소도 반려동물이다
걸어가며 스틱을 움직일수록 팔뚝의 상처가 점점 더 쓰라려온다.
20여 분을 가니 임진강역이 보인다.
멀찍이서 바라보니 사람 하나 없이 적막하기 그지없는데
저기가 옛날 열차 등 전시물과 망배단이 있던 임진각이 맞나? 싶다.
(나중에 지도를 확인해보니 역에서 조금 더 가야 임진각이 있었다)
어쨌든 오늘은 반구정을 거쳐 임월교까지 가야하는 바쁜 일정이다.
어서 빨리 반구정에 도착하자는 일념으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나타난 전경을 보고는 그만 웃음이 터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진 ) 나를 웃게 만든 염소들
하얗고 까만 염소 두 마리가 길에서 놀고 있었다.
깨끗하게 관리된 털이나 사람을 많이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 반려동물임에 틀림없다.
길을 다니면서 개나 고양이는 많이 봤지만 염소는 처음이다.
나를 보고는 슬금슬금 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문득 옆을 보니 멋지게 수염을 기르고 머리 위에는 위엄 있게 뿔을 치켜세운
커다란 염소가 나 같은 사람은 아랑곳없이 점잖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사랑만 있다면 어떤 동물이든 반려동물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 화장실 없는 관광지… 그러나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열심히 걸은 덕에 3시 반이 못되어 반구정에 도착했다.
스탬프와 인증샷을 찍고 화장실을 찾아보니 주차장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럼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구정 입장권을 구매해야만 된다는 것 아닌가!
세상에 화장실이 없는 관광지도 있다니!
마음이 상해 그냥 가려다 입장료가 저렴(1,000원)하고
이번 기회에 반구정 구경이나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고 입장권을 끊었다.
우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어디를 볼까 하다 황희선생의 방촌기념관에 들어갔다.
중년의 안내원이 일어서며 “손님, 이쪽부터 보세요!” 안내한다. 문득 생각이 나
“혹시 빨간 소독약 있어요?”
“아니 왜요? 어디 다쳤어요?”
“예, 다리에서 떨어져서…”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살피더니 웃으면서
“다리에서 떨어진 사람치곤 멀쩡하네요.”
그러고는 핸드백에서 꺼낸 후시딘을 바르고 일회용 반창고를 붙여준다.
“아~ 이런 것은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서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녀요.”
“아~ 예! 고맙습니다.”
“차 한 잔 드릴까요? 뭘로?”
“커피요! 감사합니다.” 찾는 사람 없는 방촌기념관에서 때 아니게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갑자기 행복한 느낌이 밀려왔다.
“여행은 왜 다니세요?”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우물쭈물하고 있자 자신이 스스로 대답을 한다.
둘째가 대학에 합격하는 날 남편과 담판을 지었단다.
한 달만, 단 한 달만이라도 시간을 달라고.
그러고선 22일 동안 제주도 일주를 했단다.
고수다! 그러나 부럽지는 않다.
다만 떠남을 실행한 존경스런 선배일 뿐.
“어디로 가세요?”
“문산역이요!”
“나도 그 방향으로 가니 태워드릴까요? 5시 퇴근이니 시간이 다 되었네요.”
“아뇨,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저는 오늘 임월교까지 걸어가야 하니 안 되겠네요.”
그러고 보니 4시가 훨씬 넘었다.
서둘러 배낭을 짊어지니 기념사진 한 장 찍어주겠다 한다.
(사진) 반구정에서
오늘 다리에서 떨어진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고
반구정 주차장에 화장실이 없었던 것도 별로였지만,
상처를 치료받고 따뜻한 커피까지 얻어 마실 수 있었으니
결국 오늘의 길흉화복은 비긴 셈인가? 아니었다.
마지막 시련이 남아 있음을 반구정을 떠날 때까지는 까맣게 몰랐었다.
■ 7코스 <헤이리길: 반구정에서 임월교까지>
○ 함정처럼 숨어 있었던 시련, 임월교가는 길
반구정에서 임월교까지는 그냥 농로나 차도로서
쉽게 걸어갈 수 있는 평범한 길 인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반구정을 떠나자마자 곧바로 산으로 올라가더니
서너 개의 고개를 오르내리도록 내려가지를 않는다.
아무리 문산읍에서 가깝고 민가가 바로 곁에 있다하더라도
정해진 길을 따라가야 하는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해는 점점 기울어 곧 어둠이 내릴 것 같은데
초조하여 급한 마음은 오히려 역방향갈림길에서
‘알바’까지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다하고야 만다.
겨우 문산읍내 아파트 단지 옆으로 내려서니 해가 꼴깍 넘어간다.
(사진) 잠시 알바를 한 역방향 갈림길과 야산에서 바라본 임진강의 황혼
임월교를 확인하고 문산역으로 가려고 하는데
사거리 이정표에 문산역이란 글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어보니 이리저리 가라고 알려주는데
단번에 기억을 다 할 수가 없어 중간중간 서너 번을 물어가며
문산역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넘어 캄캄한 밤이 되었다.
○ 어제 먹고 오늘 또 찾은 순대국
(사진) 이틀 계속 저녁을 먹은 순대국집
이왕 늦은 것 밥이나 먹자.
그래도 문산역 앞에 오니 늦더라도 집에 가는 열차가 있어 마음이 편하다.
역 바로 앞 <가보자 순대국>, 자칭 국가대표 순대국이라 했다.
어제 장파사거리에서 좀 일찍 문산역으로 나왔기에 저녁을 먹으려고 살펴보다
군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 기본 이상은 하겠다 싶어 이집을 선택했었다.
기대한대로 맛있게 먹었기에 오늘 또 다시 왔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늦은 저녁시간이어서인지 군인들이 더 많았다.
천천히 맛을 음미해보니 이집 순대국밥의 비결을 알 것 같다.
무엇보다 돼지고기 자체가 맛있다.
갓 잡은 돼지고기처럼 부드럽고 찰진 것이 입에 착 들어붙는다.
○ 한 역도 거르지 않으면서도 급행열차라니
맛있게 저녁을 먹고 열차를 타려가니 마침 용문행 급행열차가 대기하고 있다.
이게 웬 횡잰가! 몇 분이라도 빨리 집에 갈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기분 좋게 올라타고 가는데 이상하다.
한 역도 건너뛰지 않고 모든 역에서 다 정차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안내방송은 계속 “이 열차는 용문행 급행열차입니다”라고 한참을 안내하였다.
결국 한 역도 건너뛰지 못한 채 오히려 평소보다 조금 늦게 회기역까지 왔다.
창동행 전철로 환승하고 나서 생각하니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되며,
정해진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처럼 급행으로 간다고 해놓고서도
제멋대로 완행으로 가버린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대도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하면서
그냥 그러려니,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서 참고 마는 것이
너무 비겁하다거나 분하지도 않냐며 흥분할 것도 없다.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뭐
그런대로 수긍할 만한 하루 아니겠냐며 자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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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결코 무모하지 않은 제망님의 <무모한 종주기 3부>를 숨죽이면 끝까지 다 읽고 벅찬 가슴을 진정하며 첫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10코스(高浪浦길) 역도보를 崇義殿부터 하는데 낙엽 수북한 '아미산'에서 본 11월 중순의 안개낀 臨津江을 그리면서 소제목 [무진기행]을 보자마자 아~ 金承玉(1941 - ) 작가의 그 작품 제목과 비슷한 무언가 쓰겠지 하며 반색을 했습니다. 鶴谷里 둑방과 飛龍(25사단 비룡부대 관할)대교 사이의 한 사내.. 표현도 무척 좋습니다.
코스가 변경되어 지금은 그리 지나지 않지만 不倒난 임진강 번지점프 캠핑장의 번지점프대가 보이는 沙尾川과 石墻川의 합수지점에 놓인 벤치 풍광도 동감하는데요. 저도 예닐곱번을
그 지점 順/逆도보를 하면서 등받이가 빠져 버린 그 벤치를 찍어 後記에 올리곤 했었지요. 벤치 놓은 관리자의 심미안까지 천착하는 제망님의 마음씀이 외려 부럽습니다.
9코스(栗谷길) 역도보 때 농촌문화체험관(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를 겸한)은 폐가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두번째 역도보 종주라면 당근~ 자장리 쉼터에서 간식 드실 수 있었을 터인데.. 저도 아쉽군요. 이튿날 장파사거리에서 율곡습지공원 도보 후 8코스(伴鷗亭길) 장산리에서 마장리 사이 평야지대에 農水路 공사 때문에 우회(迂廻)하라는 공지는 카페지기 단세포님이 진즉 상설공지해 놨었는데 망제님이 간과하신 것 같고.
그나저나 썩은 통나무를 건너다 수로에 낙상했
숭의전에서 임월교까지의 주옥같은 후기,
수필이나 소설을 읽은듯 아름다운 후기네요.
연세도 지긋해 보이시는데 긴 글을 쓰셨군요.
제망님의 글을 보며 보잘것 없는 저의 후기에 부끄러움을 반성해 봅니다.
큰 부상을 당하시고도 임월교까지 어두운 밤길에 고생하셨습니다.
지금쯤은 부상에서 회복 되셨는지요?
초행길 역방향이라 알바까지 하시면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연시 되세요.
다는 부분에서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오른쪽 팔뚝에 찰과상이 보통 아닌데.. 얼마나 놀라고 황망하셨는지요. 저는 이 글이 올라온 12월 추운 겨울인가 하고 또 한번 속으로 놀랐습니다. 역도보 한 때가 11월 중순이라 가을, 늦가을이란 표현이 이해되었답니다. 호사다마!라 반구정 안의 尨村기념관 여직원의 친절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으셨고 7코스(헤이리길) 역도보 첫구간은 역시나 산길이 장난 아니지요. 게다가 일몰이 가까운 시각에는.. 애쓰셨습니다.
창동 자택으로 귀가하는 汶山 → 龍門(지평역까지 연장) 직행 전철은 아마도 출퇴근 시간에만 운행할 겁니다. 白馬역 1번 선로로 직행 먼저 보내려고 보통전동차는 비켜주는데
하룻길에서 새옹지마를 겪으셨네요.... 도보여행의 묘미를 맛깔나게 표현해주시고..
읽는내내 동행하는듯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치신 곳 빠른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어제걸은길의 여운과함께...따뜻한난로끼고앉아 차가운 강바람을 다시한번 느끼게 합니다.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슬며시 올라오는 웃음으로 찬찬히 글을 읽다 깜짝 놀랐습니다.
상처가 크지 않으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는건지ㅠ
이제쯤 괜찮을꺼라 믿어요.
늘 제망님의 후기는 삶의 길인듯 많은 생각을 줍니다.
길은 한길인데 도보자의 시선,생각에 따라 다른길이 될수도있다는 깨달음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따뜻한 연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