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인] 기다림, 그 끝은..
#상
「오늘도 날씨가 맑아.
이젠 추운 바람이 불고 있어.
사람들의 옷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여름 내내 안보였던 색색의 목도리들이 눈에 들어온단다.
이제 겨우 겨울의 색을 입은 도시는 쓸쓸 해보여.
아직도 아름다운 그 빛을 잃지 않았지만 나무들이 가을에 간직했던
선명한 단풍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려.
아마도 눈이 안 내려서 그런가봐.
빨리 눈이 내렸으면 해.
첫 눈이 오면 새하얀 그것을 순수한 그대로 너에게 전해주고 싶어.」
“아.”
손에 힘이 들어가서 그런지 샤프심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툭, 부러져 버린다.
힘을 빼주기 위해 손을 가볍게 털어준 다음 편지지를 네 번 곱게 접어 하늘빛이 은은하게
도는 편지 봉투에 집어넣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구름모양 스티커로 편지봉투 입구를 봉하고,
가디건과 목도리를 걸친 체 밖으로 나왔다.
구름이 많이 꼈다.
새하얀 구름들은 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정처 없는 여행길을 떠나고 있다.
손에 쥔 편지가 구름을 따라 가 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발작을 일으키듯 빠르게 달려갔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손에 쥔 이것이 그에게 전해질 수 있는 그 곳으로..
멀리서도 눈에 띄는 빨간 우체통. 우체통 앞에서 잠깐 숨을 가다듬었다.
이 편지를 먹어서 그에게 전해주렴.
소원을 빌듯 간절한 마음으로 우체통의 빨간 입에 편지를 집어넣었다.
맛있게 편지를 삼킨 우체통의 붉은 입을 바라보다 다시 뒤돌아 집을 향해 걸었다.
분명 우체통은 그에게 전해줄거야.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변함없는 그 믿음도 같이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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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에서 편지를 꺼내가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우체부가 해야 하는 당연하고 지겨운 일.
그래서 난 그 일을 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가끔씩 해야 할 때 도 있었다.
그런날은 운이 나쁜 날이기만 했다. 그날도 내 당번이었다.
평소처럼 우체통에서 편지를 꺼내는 도중 난 그것을 발견했다.
“어?”
연한 하늘빛이 도는 봉투였다. 주소도 보내는 사람도 적혀있지 않은 그런 봉투.
이런 편지는 아주 가끔 있지만 그 편지는 어쩐지 특별해 보였다.
이건 보내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읽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편지봉투의 입구를 막고
있는 구름모양의 스티커를 떼어내어 안의 담긴 편지지를 꺼냈다.
반듯하게 네 번 접혀진 편지를 펼치자 정갈하게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따뜻했어.
오후의 바람이 너무 부드럽고 포근해서 강의 시간에 깜빡 졸았지 뭐야.
덕분에 교수님께 엄청 혼나고, 운 나쁜 날이었다니깐.
교수님께 혼나면서도 속으론 이 생각을 했어.
‘이 바람이 네가 있는 곳까지 닿으면 좋겠다.’ 라고..
너도 이런 바람을 느꼈으면 해.
그리고 내게 불었던 그 바람이 네게 가길 바래.」
2003. 0월 0일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읽기 바란다면 분명 주소를 썼을 텐데..
왠지 남의 연애편지를 읽은 것만 같아 편지지를 다시 봉투에 넣고 앞주머니에 넣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이 궁금했다. 더불어 이것을 받는 사람의 얼굴도 궁금했다.
그들과 난 타인이지만 이것 을 읽음으로써 엮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이상한 편지는 3년 내내 계속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그것도 매주 둘째 주 화요일이면 반드시 있는 그 편지를 난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대체 누구에게 보내는 거지?
전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증이 3년이 지나가면서 물에 불려지듯 불어갔고,
오늘 시간이 비는 난 편지를 보내는 그 사람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편지를 보내는 그 사람을 기다렸다.
드디어 얼굴을 본다는 기대감으로 내 마음은 잔뜩 부풀어 있었다.
3~4시간을 근처 벤치에 앉아 기다리자 멀리서 달려오는 한 인영이 보였다.
마구 풀어헤쳐져 있는 긴 생머리. 얇은 가디건과 그 위에 둘러져 있는 목도리.
그리고 손에 쥐어진 익숙한 봉투. 저 사람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달려온 건지 새하얀 볼이 붉어졌다. 우체통 앞에서 숨을 가다듬던 그녀는
두 손으로 곱게 편지를 우체통으로 밀어 넣고 환하게 웃었다.
평범한 여자였다. 내가 생각했던 그렇게 아름답던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 순간 만큼음 아름다웠다. 단 한 사람만을 생각하는 여자의 웃음은 새하얀 햇빛보다 눈부셨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여자는 미련 없이 뒤돌아 뛰어갔다.
나비가 나풀거리는 것 같은 가벼운 몸짓으로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금방 까만 점이 되어 사라졌다.
그녀만 보이던 거리는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순간 난 결심하였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중
유달리 아름다운 하늘이다.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직전의 하늘은, 이 세상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 거라 나는 믿는다.
우체통을 향하는 내 발걸음은 경쾌하다.
“너도 혹시 봤을까?”
걸음을 멈추지 않을 채 작게 중얼거렸다.
너도 혹시 봤니?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을..
이제 붉은색이 선명히 보인다.
“어?”
오늘은 다르다. 빨간 우체통 옆에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우체부아저씨가 보인다.
가까워져 갈수록 모습은 선명하다.
“안녕하세요?”
우체부 아저씨가 먼저 인사한다. 빨간 모자를 벗자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서글서글 해보이는 부드러운 웃음이다.
“누구시죠?”
“편지요.”
말을 마치고 그는 내 손에 내 것과 똑같은 하늘빛이 도는 편지봉투를 쥐어주었다.
“당신께 전해주기 위해왔어요.”
다시 한 번 그가 웃었다. 내가 기뻐하길 바라는 웃음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를 위해 웃어주고, 편지를 쥐고 뒤돌아 걸었다.
빠르게 걸어가는 도중 편지 봉투를 열고 편지지를 꺼내들었다.
「이곳의 겨울은 추워.
너와 똑같은 기분이야.
난 좀 고된 일을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너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 내겐 위안이 되.」
2006. 0월 0일
3년 동안 답장 같은 것 따윈 기다리지 않았다.
그러나 답장이 왔다.
가슴이 미어질 듯 한 통증을 동반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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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는 둘째 주 화요일이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똑같은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고, 나도 그런 그녀에게 똑같이 웃어주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마음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건 그녀가 원하는 사람의 답장이 아니다.
그녀를 기쁘게 해주려 한 짓이 어쩌면 그녀를 기만하는 짓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속이고 싶지 않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녀가 먼저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녀의 손은 텅 비었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은 무언가를 털어버린 듯 했다.
“오늘 당신과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작은 벤치로 이끌었다.
손 안에 가득 들어온 작은 손은 뜨거웠다.
겨울의 추위를 단 숨에 날려 버릴 만큼..
그녀는 옆 자판기에서 뜨거운 커피를 두잔 뽑았다.
내 옆에 앉은 그녀가 내 손에 커피를 쥐어주며 말했다.
“당신한테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가 그 말을 한 뒤 나는 어쩐지 목이 타 뜨거운 커피를 한 입 마셨다.
목안의 뜨거움은 여전했다.
“고마웠어요. 그동안의 편지 당신이 내게 준거란 거 알아요.”
충격에 손에 쥐고 있던 커피를 놓아버렸다.
커피는 바닥으로 흩뿌려진다.
아스팔트 바닥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새겨졌다.
“답장이 올 수 없는 사람인걸요. 그러면서도 편지를 보냈어요. 그는 읽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내게 다시 올 거라고.. 그러나 그는 오지 않고 당신이 왔어요.
보내지지 않는 편지의 답장을 쥐고 당신이 왔어요.”
말을 마친 후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그 눈엔 원망도 슬픔도 괴로움도 없었다.
그저 그 눈은 당황하는 어리석은 나를 비출 뿐이었다.
“당신의 답장을 읽은 후론 계속 마음이 아팠어요.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나를 향한 그 마음이 너무 잘 나타나있어서,
그리고 난 그 마음을 받아 줄 수 없어서 그렇게 마음이 아팠어요.”
“받아줄 수 없는 건가요?”
내가 나쁜 거 알아요. 내가 다 잘못한 거 알아요. 하지만 이 마음만은 진심이에요.
정말로 당신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잘 못된걸 알면서도 편지를 썼지만
당신을 향한 이 마음만큼은 진실했어요.
마음속의 외침은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당신이 좋았어요. 내 편지는 당신이 원하던 사람의 답장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당신을 속이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편지를 쓴건 당신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아무 말 없었다.
그녀는 먹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추위에 붉어진 입술을 벌리고 말했다.
“고마웠습니다.”
마지막까지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그녀는 천천히 나를 등지고 걸어갔다.
#하
매달 둘째 주 화요일.
나는 오늘도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녀를 기다린다.
빨간 우체통 앞에 그녀가 없는 건 ,내가 원하는 편지봉투가 없는 건 쓸쓸하기만 하다.
그녀가 올 거란 믿음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둘째 주 화요일, 우체통을 열었다.
여러 가지 색의 편지 중 내 눈에 들어온 건…….그녀의 편지였다.
분명 아무것도 안 써졌으리라 여기고 편지봉투의 앞면을 보았을 때
“이건..”
당신께. 이건 분명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다.
익숙한 구름모양의 스티커를 떼어내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읽었다.
「힘들고 아팠던 상처를 다시 되새김질 했던 기다림 끝에,
당신이 와줬어요.
내게 기다림, 그 끝은 괴로움만이 아니었답니다.
분명 내게 줬던 그 마음만은 간직할게요.」
-P.S 이름을 물어볼걸 그랬나봐요.
제 이름은 한다희 랍니다.
“다희..다희..”
그녀의 이름은 입에서 부드럽게 흘렀다.
내 이름을 가르쳐 줬더라면 지금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있을까?
“제 이름은 강한입니다.”
앞에 없는 그녀에게 그러나 너무 선명한 그녀에게 말했다.
들리나요? 제 목소리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당신에게 갈게요.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당신에게 가겠습니다.
절 기다리고 있겠죠? 당신의 글에는 저에 대한 마음이 간절한 걸요.
가장 멋진 모습으로, 그 누구보다 당신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기다림의 끝으로 가겠습니다.
사랑하니까요..
#아이라인 입니다.
요즘 너무 글을 안쓴 것 같네요.
이제 중3인 아이라인은 시험공부로 바쁘답니다.
그래도 글을 쓰고 싶더라고요.
휴일이고, 시간도 비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판기를 두드렸답니다.
언제나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님들 사랑합니다.
첫댓글 소설 잘읽었어요~^0^ 그리구~ 시험공부 열심히 하세요!! 홧팅!!!!!!!)))사실 저도 시험공부중이라서....ㅋㅋ(( 저는 중2이에요~ 사적이지만....언니 동생으로 지내도 될까요~>?? 그냥....소설좋아하는거랑 나이도 비슷한듯 싶어서.....^^.... 괜찮으시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혹시 여자분이 아니라면 오빠 동생 사이도 괜찮구요!!^0^
앞으로 언니 동생 사이로 잘 지내봐요.좋은 동생 하나 얻어 기분이 매우 좋군요.
중, 중3이 이렇게잘 쓸수 있는거군…ㄷㄷㄷ 네, 저도 님 사랑합…뻥이에요, ㄷㄷㄷ. 잘보고갑니다^ㅇ^@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은데, 칭찬 한 마디에 기운이 불끈나는 아이라인 입니다. 요즘 날씨가 매우 쌀쌀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저보다1살 동생이네요^^ 저는 한심하게 뭐하는 건지 ㅠㅠ 너무 잘쓰세요 ㅠㅠ 정말 잘 읽고 가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칭찬 한마디에 글 쓰는 보람을 느끼는 군요.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