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에는 과거, 동문산을 올라가는, 산제골, 논골, 게구석길 주변에는 춤선생들이 많았다.
요즘, 친구 형과 콜라텍에 몇 번 갔다.
그리고, ‘유나의 거리’에서 춤 선생을 문득 기억했다.
‘서울의 달’과 ‘’유나의 거리‘에서의 작가 김운경을 생각했다.
그리고, 박정희 개발 독재의 전투병 한국형 프롤레타리아 공순이 공돌이와 동문산 자락의 묵호형 프롤레타리아를 생각했다.
박정히 개발 독재시대, 농촌의 빈농들이 마치 잡초 뽑히듯 뽑혀서 서울로 올라와 달동네에 그들의 무허가 터전을 삼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오징어가 찍어낸 돈을 벌기 위해 묵호항 산동네로 몰려 들었다.
서울의 달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과거 농촌의 따스한 인심은 그들의 끈끈한 공동체에서 출발하였고, 서울의 달에서의 달동네는 바로 그것의 연장이었던 셈이다.
무엇일까? 1994년의 서울의 달과 2014년의 유나의 거리. 그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작은 사건 하나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의 달에서의 주인공 최민식은 도저히 서울의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은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유나의 거리 초반에 등장했던 깡패 한 명이 있는데, 그는 강북의 자영업자를 등쳐서 먹고 사는 인간이었다.
그 인간을 문간방의 흘러간 건달 도끼 할아버지가 제압을 하게 되고, 그 깡패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자존심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을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의 달과 유나의 거리의 차이는 귀농의 조건이었다.
서울의 달에서의 최민식은 서울에 빈털털이가 되어 맨몸으로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유나의 거리에서의 깡패는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 하는 조건으로 사람들에게 1억이라는 돈을 요구했다.
물론, 흥정을 하여 몇 천으로 깍아서 시골로 보내버리게 되고 사람들은 역시 나쁜 인간은 끝까지 거머리 같은 인간이었다고 욕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는 점은 그것이 아니다.
20년 전의 농촌의 조건과 지금의 농촌의 조건에 대한 것이다. 과거의 농촌은 맨 몸뚱이 하나면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의 농촌은 그것이 아니다.
땅값은 고사하더라도 땅을 빌리는 돈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일반적인 작물을 길러서는 입에 풀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7천평 논밭으로 도시에서의 일년치 알바비를 벌 수 있으면 다행인 것이다.
도시 노동자의 임금 정도를 건질려면 시설농이라도 해야 되는 것이다.
유나의 거리에서의 깡패는 바로 그 점을 생각했던 것이고, 그래서 그는 자영업자에게 마지막 발악을 해서 돈을 챙겨간 것이다.
20년 동안 농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농촌은 이제 과거의 인심 좋은 고향이 아니다. 도시보다 더 흉흉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그 원인은 오로지 국가에게 있다.
농산물 수입 자유화로 농촌에서의 농업 방식은 자급에서 이윤으로 변질 되었다.
오로지 돈이 되는 환금 작물에만 혈안되어 있다. 그리고 전 국토의 난개발로 농민들은 빨리 농촌이 개발되어 자신의 땅이 팔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좌파 정권이라고 믿었던 노무현 정부시절 농촌의 인구가 제일 많이 감소하였다. 노무현은 농촌의 마지막 숨통 마저 끊어 버린 것이다.
두 드라마의 차이점이 또 하나 있다. 그 무대가 달동네에서 강북의 어느 서민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의 달에서의 각 인물들의 삶의 방식과 유나의 거리에서의 삶의 방식이다.
유나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삶의 방식은 오로지 돈이다. 농촌을 옮겨놓았던 달동네의 공동체 의식이 재개발로 완전히 와해되고, 그들은 드디어 산 아래로 내려 온 것이다.
그 산 아래의 세상은 달동네의 그것이 아니었다. 살아 남기 위하여 유나의 거리에서의 인물들은 치열한 것이다.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재개발과 IMF가 아니던가. 달동네 재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의 초라한 빈민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나마 버틸 수 잇었던 힘 마저 IMF가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돈에 대해 지독하고 집요하고 집착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작가의 세심한 시선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유나의 거리에서 작가는 희망을 갖는다. 그래서 살짝 미소 지을 수 있고, 눈과 가슴이 촉촉해지는 것이다.
유나의 거리를 보고 나면 한 동안 가슴이 행복하다.
희망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진정한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삶은 결코 돈이 아니다. 가슴이다. 작가는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드라마 ‘유나의 거리’ 에 대한 소감문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작가 김운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창 대게 장사를 하던 때, 김운경 작가는 매출을 대단히 많이 올려주었다.
나로서는 드라마 소감문 하나로 땡 잡은 셈이다.
유나의 거리, 20 년전, 김운경 작가는 드라마, ‘서울의 달’을 썼다.
중학교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온 최민식, 농고를 졸업한 한석규는 고향친구 끼리 달동네에서 같이 산다.
작은 공장 경리였던 채시라를 두 사람이 좋아한다. 한석규는 엉성한 사기꾼 제비였고, 우직한 최민식과의 사랑 싸움은 물론 한석규의 승리였다.
동네 춤선생 김용건을 존경하던 한석규와 최민식, 김용건에게 사랑의 조언을 받으며 김용건 역시 윤미라를 유혹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다 드디어 성공한다.
그들의 사랑 싸움은 사실 알고보면 별거 아닌셈이다.
서울의 달동네는, 우리나라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억울한 피해자들의 고향이다.
달동네는, 그들이 상경하기 전에 살았던 농촌공동체의 2탄이다.
여전히 달동네는 존재한다.
서울의 달, 20 년 후 김운경 작가는 ‘유나의 거리’를 발표한다.
현대판 신파 드라마를 보지 않던 나는, JTBC에서 드라마를 광고 하는 과정에서 김운경의 이름을 발견했다.
가슴이 뛰면서, 드디어 ‘유나의 거리’를 시청했다. 역시 김운경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나의 거리’ 는, 아파트 건설의 건설 재벌과 땅투기 복부인 세력에 의해 달동네에서 쫒겨나 겨우 서울의 강북 변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서울의 달’ 2탄이었다.
주인공 김옥빈은 고아로 자라면서, 소매치기로 살아간다. 그녀를 좋아했던, 우직한 청년 이희준, 그들이 세들어 사는 집 주인 이문식을 비롯하여, 유나의 거리 캐릭터들은 악역과 선한 역이 헷갈리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심지어 작은 캐릭터 중에 하나였던 동네 깡패까지도 미워할 수 없었다.
서울의 달에서 최민식은 서울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그를 짝사랑했던 김원희를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유나의 거리에서의 동네 깡패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농촌도 이미 20 년전과 다르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달에서의 농촌은 빈손으로 돌아가도 충분히 농사를 할 수 있었지만, 20 년이 지난, 유나의 거리에서의 농촌은 서울에서와 비슷하게 탕투기 세력들에 의해 돈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땅값이 상승해 있었다.
부동산 세력들은, 땅이 가진 원래의 의미를 더럽히는 나쁜 놈들이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필요한 일들을 못하게 하는,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도둑놈들이다.
서울의 달과 유나의 거리에서의 사람들은 땅투기의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동산 투기는, 투기 한사람 뿐만아니라, 전 국민에게 피해를 안겨준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사람은 졸부가 된다.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은 졸부를 탄생시켰다.
유나의 거리에 출연했던, 배우 김옥빈 신소율 이희준은 내가 젊은 배우들 중에 유일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서울의 달의 최민식 한석규 채시라 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다.